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7. 6. 08:07

너와 나의 공화국28(손진길 소설)

 

19937월초에 서기관 강훈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강훈이 전화를 받았더니 뜻밖에 집안 숙부인 강하삼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훈아, 내다. 잠시 의원회관 내 집무실로 와주면 좋겠는데혹시 많이 바쁜 것이 아니냐?... “.

급한 일은 오전에 마무리하였으므로 점심식사를 구내에서 일찍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쉬고 있던 강훈이다. 따라서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오후에는 크게 바쁜 일정이 없습니다. 바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날따라 강하삼 의원도 일식집에서 도시락을 배달하여 점심을 해결했는지 음식냄새가 집무실에 아직 남아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방안에 들어선 강훈이 한마디를 한다; “숙부님, 의정활동에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집무실에서 점심을 해결하신 것을 보니 그렇습니다… “.

그 말을 듣자 강하삼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요즘은 시간을 쪼개어가며 사용하고 있다. 보스가 대통령이 되어서 그런지 내 일이 더 많아지고 있어… “. 강훈이 궁금하여 물어본다; “숙부님, 청와대 비서실 근무도 아닌데 무슨 일이 그렇게 많습니까?... “.

강하삼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 내가 보스를 청와대비서실에서 직접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대통령이 비서실에 이야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그것을 은근히 알아보아주느라고 바쁜 것이지”.

그제서야 강훈은 숙부가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대강 눈치를 채고 있다. 방금 하신 그 말씀과 분명히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강하삼 의원이 말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의원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훈이, 너는 재산등록을 했니? 712일까지 서기관 이상 고위공직자들이 전부 재산등록을 하도록 제도화했는데 그 반응이 어떠한 것이냐?... “;

자신의 짐작이 맞았기에 강훈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는 6월말에 벌써 재산등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제도가 생각보다 실효성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명이나 익명으로 금융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재산을 빼돌릴 수 있는 뒷문이 열려 있는데 앞문만 닫고서 재산등록을 실시하고 있으니 그것이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강하삼 의원이 알아 들었다. 따라서 강훈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훈이 네 생각에는 어떻게 보완조치를 하면 좋겠는가?... “. 강훈이 즉시 대답한다; “두가지 조치가 필요하지요. 하나는, 금융거래를 실명제로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무기명채권의 발행을 못하도록 조치하는 것이지요”.

강하삼 의원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고 있다. 자신이 알고 싶은 내용을 확실하게 확인하였다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그날 강훈은 그 정도의 대화만 나누고 의원회관을 나와서 국회사무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한달 남짓 지나자 812일에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16가 발령이 되어 모든 금융거래가 실명으로 이루어지는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 1970년대 유신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던 대통령 긴급명령이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에 의하여 발령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기명채권의 발행도 금지가 되고 있다. 이제는 금융거래는 전적으로 본인증명이 되어야 가능하고 무기명채권을 사서 세금을 내지 아니하고 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 방법도 한국에서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제도적인 변화를 바라보면서 입법부에서 나름대로 경제정책의 검토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강훈이 내심 중얼거리고 있다; “참으로 민주투사 YS다운 전격적인 조치이구만. 그런데 언제까지 그러한 제도를 유지할 수가 있는지가 앞으로 문제가 되겠구만… “.

강훈의 우려가 불행하게도 1997년 하반기에 소위 IMF사태가 발생하게 되자 현실로 불거져 나오게 된다. 정부에서는 유동성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하여 비록 문제가 있는 자금이라고 하더라도 국내에 일단 묶어 두고자 한다. 그 방법이 그동안 금지한 무기명채권을 다시 발행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는 그 제도를 검토만 할 뿐 결코 실시를 하지 아니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잇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과거 국회에서 재무통이라고 불린 그의 이름 그대로 1998225일에 취임하자 곧바로 무기명채권의 발행을 지시하는 것이다.

참고로, 그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그림표가 다음과 같다;

당시 10%를 상회하고 있는 시중금리에 비추어보면 무기명채권의 금리는 절반 남짓이다. 그리고 만기가 5년이나 된다. 하지만 무기명채권을 사서 세금을 물지 아니하고 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이 다시 열렸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사태로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는 한국경제를 되살리는 방법으로서 그것은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시중의 비자금과 어두운 돈들이 무기명채권으로 자금세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IMF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자 무기명채권의 발행은 다시 중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조영백 변호사는 1993년 여름에 재종 처숙부인 권영해 장관의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기 위하여 국방부에 들리고 있다. 두사람만이 집무실에 남게 되자 권장관이 조카사위 뻘인 조영백 변호사에게 말한다; “내 동생이 지난달에 율곡사업비리에 연루가 되어 조사를 받았어. 따라서 김대통령에게 내가 체면을 구기게 되었어.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까?... “.

조영백 변호사가 조금 생각을 하다가 대답한다; “숙부님은 하나회 조직을 숙정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그 문제가 일단락이 되면 아마도 김대통령이 숙부님에게 자숙의 시간을 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이 됩니다”;

그 말을 듣자 권장관이 잠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자숙의 시간이라. 그것은 장관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구만… “. 그 다음에 조영백을 보면서 다시 묻는다; “장관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다시 권토중래를 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하나회 정리 건으로 주변에 적이 많이 생겼기에 나를 보호하여 줄 방패막이가 필요한 입장이야… “.

조영백이 고심하는 눈치이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한다; “적의 공격을 피하고 신변의 안전을 확실하게 도모하는 방법은 안기부장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시고 김대통령의 최측근과의 친분을 더욱 두텁게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숙부님 하시기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

그날의 대화가 있고 나서 연말이 되자 권장군이 현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자 이듬해 1994년에는 그가 김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과거 상도동계 출신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그가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1994년 말에 갑자기 안기부장이 되고 있다;

조영백은 권장관이 어떠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안기부장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따라서 해가 바뀌기 전에 조용히 권부장의 집무실을 방문하여 물어본다. 하지만 권부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만 할 뿐이다; “내년에 어떠한 변화가 한반도에서 발생하게 되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야. 아직은 아무리 내 조카사위라고 하더라도 말할 단계가 아니지… “.

그 말을 듣자 조영백 변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김일성이 지난 7월에 사망하고 이제는 후계자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무슨 이슈가 남아 있기에  내년에 남북간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인가?... “.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