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31강(렘5:20-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6월 21일(목)
자연과 달리 인간들은 어째서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는가?(렘5:20-23)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두가지로 지적하고 계십니다(렘5:20-23). 그 대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한 채 제멋대로 자기 머리로 판단하고 말하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렘5:21).
(2) 둘째로,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감히 반역하는 마음을 품고서 여호와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종의 신분을 벗어버린 채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예레미야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렘5:22-23).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본문의 구절에 대한 풀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렘5:20-2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렘5:20);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아직 망하지 아니하고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표현을 ‘야곱 집’과 ‘유다’라고 하십니다. 어째서 그렇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1) 그렇게 표현하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본문 앞에서 ‘야곱의 집’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의 집’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미 사용하신 바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렘2:4).
2) 참고로, 예레미야가 선지자 활동을 하던 유다 왕국 말기에는 벌써 100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집’이 벌써 망했다고 예레미야가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렘2:26).
3) 또 한가지 ‘야곱의 집’이 ‘유다의 집’이라는 용어와 함께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게 심히 반역하였느니라”(렘5:11).
(2)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렘5:21a); 마지막 남은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의미심장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첫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보는 눈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금방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며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줄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을 전혀 보는 눈이 없다는 것입니다; ①모세의 시대에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만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②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과를 시키고 추격한 애굽의 군대는 전부 수장해 버린 것입니다(출14:21-30).
2) ③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생존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④가깝게는,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의 대군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천사를 보내어 전부 진멸하신 여호와이십니다(왕하19:34-35). 그런데 히브리정경에서 자신들의 역사로 그 대목을 읽으면서도 선민들의 눈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보지 못하고 그 역사가 지금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백성들의 눈이 여호와의 능력이 숨어 있는 말씀의 세계를 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 드는 솔깃한 이야기만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귀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는 닫혀 있고 우상을 섬기는 무당의 말에는 열려 있습니다. 우상문화가 선민사회에 성행하게 되는 이유는 백성들이 잘 섬겨보아야 당장 이기적인 백성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 주지도 아니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만만하게 자신들의 이기적인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우상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4) 백성들이 다루기 쉬운 우상을 섬기고 자신들의 일방적인 이익을 그로부터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이란 그들의 편리한 도구이며 일종의 종과 같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와 사랑에 합치가 될 때에만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선민들에게 여호와의 뜻을 받드는 신실한 말씀의 종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선민들이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선민의 제국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용서하고 함께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 하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고 싶지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과 말씀을 선지자들이 아무리 외쳐보아야 그들에게는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 읽기)과 같은 것입니다.
5) 셋째, 사람은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을 종합하여 머리에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귀는 쉽게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도모해준다고 하는 거짓선지자와 무당의 소리만을 듣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지각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탐욕에 젖어 있는 외식적인 율법행위자들만이 선민사회에서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3) “이를 들을지어다”(렘5:21b);
1)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어째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시 한번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법치행정’(法治行政)에서 말하고 있는 ‘법률의 도달주의 원칙’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에게 반역의 죄와 신앙생활의 죄를 묻고 처벌을 하자면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렇게 미리 알려주게 되면 두가지의 효과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나중에 처벌을 하더라도 백성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 번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호와께서 경고를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그들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최후통첩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듣고서 그 죄악을 청산하고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심판의 현장에서도 구원을 얻게 되는 여호와의 은혜를 얻습니다(사65:2, 요3:16).
둘째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렘5:22-23); 역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렘5:22a);
1) 지혜의 대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솔로몬이 말년에 설교집을 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전도서’입니다. 그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3:14). 풀이를 해보자면, ①첫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것은 너무나 정확한 것이므로 오차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③셋째, 그러한 자연과 역사의 섭리를 보고서 피조물인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받들고 그 지혜와 능력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2)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다윗왕조의 유다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심을 깨닫고 부디 그 창조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이제는 중지하라고 경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뜻과 말씀을 계속 어기게 되면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이방인들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렘5:9, 19). 따라서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가르치심이 참으로 쉽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렘5:22a).
3) 바닷가에 나가보면 모래가 쌓여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바다가 육지를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고 계시는 선이라는 것입니다(욥38:10-11, 렘5:22a). 그러므로 그 모래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 한계를 침범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와 비슷한 행위를 제멋대로 하고 있는 백성들도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5:22b);
1) 바닷가에서 태풍이 불어올 때에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당장이라도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의 집들을 뒤덮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변의 모래둔덕을 넘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그 큰물이 덮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사람들이 안심을 하고서 바닷가에 집을 짓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일명 ‘쓰나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저지진이 연안에서 크게 발생하여 바다의 물이 마치 그 옛날 노아의 시대처럼 출렁이는 것입니다(창7:10-11). 그렇게 되면 바닷물이 육지를 덮치게 됩니다. 그것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명확하게 정하시고 계시는 여호와의 뜻을 자연이 해저지진을 통하여 거스르고 있는 현상입니다.
3) 어째서 자연이 그렇게 포악하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창세기 제6장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1-13). 한 마디로, 인간의 부패함이 짐승들의 포악함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무죄한 자들의 피가 흘러 마침내 온 땅이 부패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심판의 때가 이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지표라고 하겠습니다.
(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렘5:2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그 죄악의 책임을 사람들에게서 묻고 계십니다. 그것도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인 거룩한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그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는 그 맹세를 버리고 마치 이방인들처럼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이익만을 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타락한 그들은 육신적으로 호화사치와 퇴폐적인 향락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권력과 부를 쫓으며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역사의 주인이심을 부인하고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제멋대로 살아본 결과가 그와 같은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모든 잘못의 근본이 다음과 같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렘5:23)라고 지적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와 선택권이 없는 자연에 비하여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고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창1:26-27, 2:7). 그러나 선민들의 선택은 반역입니다(렘5:23).
영적인 삶을 포기한 그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르고 있는 자연보다도 못한 짓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강력하게 처벌을 받고 말 것입니다.
2,600년 전 조국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그러한 여호와의 뜻을 예언의 말씀으로 경고한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 목소리가 오늘날 현대교회와 성도들에게 들려오지 아니하도록 매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복음사역에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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