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33강(렘5:28-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28. 19:13

예레미야 강해 제33(5:28-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623()

 

선민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현세적인 이익을 쫓아서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사회를 만들게 되고 마는가?(5:28-31)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이 영적인 종교적 부패와 경제적인 사회적 타락이 마지막 남은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에서 만역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선민사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인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타락이 다음과 같이 심각합니다;

1)    첫째, 선지자들이 영안(靈眼,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대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처신과 이익에 따라 여호와의 말씀을 함부로 왜곡하여 거짓으로 전하고 있습니다(5:31a).

2)    둘째, 제사장들이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주는 직분을 행하고 있다는 섬김의 자세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측근이라고 하는 위세가 대단합니다. 제사장들이 신정국가 유다 왕국에서 종교적인 권력을 가진 높은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5:31b).

(2)  둘째로, 선민사회에서 경제적인 불평등과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다음과 같이 극심합니다;

1)    첫째, 사회적으로 어떠한 악한 일을 행하더라도 부와 권력을 얻어서 풍부하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선민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5:28a). 그렇게 하여 출세하고 부자가 된 사람을 부러워하는 반면에 그러하지 못한 자를 멸시하는 사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2)    둘째, 돈과 권력이면 모든 악한 일이 제도적으로 합리화가 되고 마는 무서운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없는 빈민과 부모가 없는 고아는 소송과 재판과정에서도 그 권리를 보호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5:28b).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공정한 재판을 규정하고 있는 율법이 그 효력을 상실하고 있는 선민의 사회입니다(23:1-3, 6-8).

(3)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이 실종이 되어버린 악한 선민사회를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유다 왕국의 권력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도 악하게 되어 어떻게 해서든지 출세를 하고 부귀를 누리는 것이 그들의 욕심이며 꿈이 되고 있습니다(5:31b). 여호와의 말씀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종교개혁과 회개의 정신이 실종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지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한번 더 경고의 말씀을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전달하고 있습니다(5:29-30). 그 기록이 바로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5:28);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5:28a);

1)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의 공통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 사는 민족, 번영된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대국가나 고대사회라고 하더라도 살지고 윤택한 삶을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가난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그러한 윤택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의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선민사회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면서 그 대가로 그와 같은 부익부’(富益富, 부자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것)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반대측면에서 빈익빈’(貧益貧, 가난한 자가 점점 더 가난하게 되고 마는 것)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백성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비극적인 선민국가의 말기적인 모습입니다.

(2)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5:28b);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와 생계가 막연한 자를 착취하지 아니하고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10:18-19). 그것이 율법의 취지입니다. ②또 하나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전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2)    그런데 선민들이 그 어느 것 하나도 실천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회마저 돈이 없으면 재판에서 불이익을 얻으며 부모가 없는 고아와 같은 자는 송사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5:28b). 왜냐하면,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소송과 재판마저 좌지우지하는 불공정한 사회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무죄이고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것)라고 하는 사회가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 왕국인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이익을 맞바꾸어 버린 무서운 선민의 사회입니다.

둘째로,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29);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5:29a);

1)    마지막 남은 선민의 국가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마저 타락하여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모습과 같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100여년 전에 이스라엘 왕국에 내린 여호와의 처벌이 동일하게 이제는 남조 유다 왕국에 임하게 된다는 취지의 말씀입니다(5:29a).

2)    공의의 하나님께서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똑같이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제는 다윗왕조의 멸망이 임박하고 있다고 여기서 경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사회에 대한 여호와의 처벌이 과연 선민의 나라의 멸망에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이방국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 점을 다음 구절에서 말씀하십니다.

(2)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29b);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같은 나라에 보복” (5:29ba)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이스라엘 왕국과 같이 타락한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을 처벌하듯이 마찬가지로 이방나라들도 그같이 타락을 하게 되면 똑같이 처벌을 하시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처벌에 있어서도 공정하십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특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고 하여 불이익을 주시지 않습니다.

2)    만약 어떤 특혜를 선민들에게 주셨다고 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뜻 곧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일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12:1-3). 그러므로 그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선민들의 특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민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동일한 범죄를 행하면 똑같이 처벌을 하십니다. 그와 같은 취지로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러한 이치를 담고 있는 구절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29bb)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0-3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5:30-31a);

1)    여기서 말하고 있는, “무섭고 놀라운 일”(5:30)은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①하나는, 여호와를 버리고 악한 사회를 만든 유다 왕국을 징벌하고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앞의 구절을 받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선민사회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이 엄청나게 타락을 하고 있는 그 악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다음 뒤의 구절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선지자들이 거짓 예언을 행하고 제사장들이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두 여호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5:31a). 선민나라의 왕의 잘못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 야단을 치십니다. 그 옛날 다윗대왕의 간음죄와 살인죄를 책망하기 위하여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삼하12:1-15).

3)    그런데 그러한 올바른 선지자 활동을 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목숨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후대에 와서는 많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에 맞는 말을 골라서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거짓선지자가 신정국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제사장들은 신정국가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의 잘못을 여호와 앞에 속죄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직분자들입니다(29:1, 38-46, 1:4-9). 따라서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여호와께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제사장들이 종교적인 특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5)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다는 그것이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일종의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위 무당과 같은 권력을 쥐게 되는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무당과 같은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자 제사장들이 무섭게 타락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권위를 이용하여 제물을 많이 거두고 일약 신정국가의 특권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1b);

1)    영적인 지도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며 특권층이라고 하는 권위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종교적인 권력자로 둔갑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렇다고 하면 선민국가의 백성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지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백성들이 영적인 지도자들의 타락에 한몫을 거들고 있습니다. 너무 거룩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 선지자나 참된 여호와의 종인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적당히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는 훨씬 다루기가 쉽고도 편한 상대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뒷감당이 참으로 걱정입니다(5:31b).

  결론적으로, 지금도 여호와의 말씀 곧,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1b)는 말씀이 귀에 들려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유다 왕국 말기의 모습이 오늘날 사회적 종교적 모습과 크게 다르지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저 돈을 좀 쥐어 주고 적당하게 존경심을 보여주면 타락한 영적인 지도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마치 우상을 모신 무당처럼 백성들의 소원을 듣고서 그에 알맞게 눈감고 쉽게 복을 빌어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기복신앙이 오늘날에도 예레미야 시대 유다 왕국에서처럼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왕조의 멸망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와 교민사회에서도 교회와 성도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위하여 또 동족을 위하여 속죄의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다시 사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영적인 기풍이 다시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