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32강(렘5:24-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6월 22일(금)
선민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반역하는 어떠한 마음을 가졌으며 어떻게 여호와를 배신하였는가?(렘5:24-25)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모습은 어떠하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도록 유혹한 악한 자들은 누구인가?(렘5:26-27)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지키고자 반역하고 배신하였다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렘5:24-25);
(1) 첫째, 이 땅을 창조하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게 하여 사람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선물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렘5:24a). 그 사실을 온세상에 전하도록 선민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위탁하였는데 그들은 여호와의 그 뜻을 저버린 것입니다(렘5:24b).
(2) 둘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 세상에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시며 추수의 기쁨까지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파하지 아니한 이유는 여호와의 축복을 자신들만 가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온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뜻에 반역하는 선민들의 마음입니다(렘5:23).
(3) 셋째, 자신들만 여호와의 구원과 축복을 향유하고 주변의 이방인들은 여호와를 모르고 살다가 진노 가운데 들어가서 망하는 것이 선민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그들입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현세적인 이익만을 탐한 그들의 죄가 이 세상을 멸망의 심판 가운데서 구원하고자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좋은 뜻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입니다(렘5:25, 요3:16).
그렇다면, 선민들에게 그러한 악한 마음을 심어준 자들이 누구일까요? 그 점에 대한 지적이 다음과 같습니다(렘5:26-27);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만 구원하시고 그들에게만 축복을 주신다고 믿게 한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세속적인 민족종교 안에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렘5:26).
(2) 둘째, 어렵게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서도 쉽게 바알 신을 섬겨서 풍년을 얻고 있는 이방인들의 효율적인 종교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민사회에서 발생한 바알 선지자들입니다(왕상18:18-19). 그들의 주장에 따라 선민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신을 섬긴 결과 우상문화가 번성하여 선민사회에 심각한 영적인 타락이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렘5:27).
(3) 셋째, 선민사회에서 세상적인 물질적 축복과 육체적인 향락만을 원하는 세상이 전개가 되고 말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렘5:31) 여호와의 뜻을 배신하고 반역자의 악한 사회를 만들어버린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선민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물으십니다. 따라서 선민의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렘5: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4-2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렘5:24a);
1) 첫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선민들이 풍작을 얻기 위해서는 두가지 종류의 비가 필요합니다. ①하나는 이른 비인데 그것은 봄철에 대지를 적시는 비입니다. 그 비가 농토를 부드럽게 하여 땅에 뿌려진 씨앗을 싹트게 합니다. ②또 하나는, 추수를 앞둔 시점의 늦은 여름비입니다. 추수를 하기 전에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곡식알을 튼튼하게 맺기 위해서는 많은 비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풍작을 얻을 수 있도록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신11:14)).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면서 선지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기에 주심으로 풍작의 기쁨을 주시듯이 그렇게 영적인 축복을 장차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선지자 요엘의 글에 따르게 되면 여호와의 말씀의 선생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와 영적인 추수를 위하여 오시는 성령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욜2:23). 요컨대, 하나님말씀의 정확한 뜻을 이 세상에 복음의 씨앗으로 뿌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튼실하게 맺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요14:16-17, 행1:8).
3) 셋째,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님의 역사가 오직 선민들에게만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선지자 이사야와 요엘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42:1),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8-29).
(2) “우리를 위하여 추수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렘5:24b);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생명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의 열매와 맛있는 과일 그리고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많은 풀들이 자랄 수 있도록 자연과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창1:29-31).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만민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주시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들의 책무입니다. 그 모범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벌써 창세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창12:1-5, 14:17-23, 20:7, 23:6).
2)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실천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독한 현세적인 이기주의가 그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그들만 얻고 누리고자 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은 모두 여호와가 창조주이신 줄 모르고 우상만 섬기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얻어 역사 가운데 멸망을 당하게 되면 좋겠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살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에게 복과 이익이 돌아가는 일을 결코 하고 싶지가 않다고 하는 것이 좁은 이기심에 가득 찬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지적 그대로 “반역하는 마음”(렘5:23)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1) 여기서 ‘이러한 일들’(렘5:25a)은 위에 있는 구절을 받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만민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주시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그 일을 선민들이 전혀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허물입니다.
2) 그 결과 이방인들의 사회와 선민사회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두가지가 발생하고 있다고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이 선민사회에서 이방인사회로 흘러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그만 막히게 되고 맙니다. ②또 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가 아니라 우상인 농사의 신 바알이 적당한 시기에 비를 내리게 하고 풍년을 가져온다고 믿는 죄가 온세상에 만연이 되고 맙니다. 현세적인 이익만을 도모하던 선민들이 이방인과 꼭 같아져서 그만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우상을 섬기는 영적인 타락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배신한 반역자들의 죄된 삶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렘5:26);
(1)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치 새 사냥꾼과 같은 악인들이 선민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 사냥꾼과 같은 그 악인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그 일을 선민들이 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 선민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일하시는 일종의 수호신이나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2)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다윗대왕의 시대처럼 주변의 이방인들을 정복하고 그들이 선민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 주셔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삼하8:1-15). 그와 같은 집단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에 매우 솔깃합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창조주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집단 이기적이고도 자기 중심적인 ‘정의’(正義, justice) 개념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는 축복을, 이방인들에게는 저주를 주시는지 아니하시는지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출17:7). 그렇게 선민들이 거짓선지자와 우상숭배자들의 말을 듣고서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렘5:27);
(1) 거짓 선지자, 우상숭배자, 이기적인 애국자의 말만 듣고서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섭리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방인들이 먼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들의 나라가 먼저 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2) 첫째, 본래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온 이방인들보다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선민사회의 타락상이 다음과 같이 더욱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는 선민들이 우상을 섬겨서 잘 살게 되는지 몰라도 가짜 신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므로 거짓이 횡행하고 정신적으로는 황폐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 여호와를 선민들이 떠났기 때문입니다”(렘5:27 의역).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먼저 버려 버리시는 것입니다.
(3) 둘째,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저버린 선민들의 책임을 먼저 물으십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께 반역하고 배신한 선민들을 다음과 같이 먼저 처벌하시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을 처벌하시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5:29).
결론적으로, 과학이 매우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생각과 삶이 황폐합니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 가운데 정신적인 빈곤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다윗왕조가 망하기 직전의 예레미야 시대 선민사회의 비극과 같은 것입니다.
창조주를 버려 버린 피조물의 영적인 타락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고자 하는 생각이 선민사회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선민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진심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며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이방인들을 영적으로 주님의 제자로 바로 세우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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