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7강(렘5:7-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21. 15:44

예레미야 강해 27(5:7-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 6 17(주일)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하겠느냐? 선민의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선민사회의 가장 잘못은 무엇인가?(5:7-9)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전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에 빠지고 범신론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백성들과 나라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대한 것입니다. 말씀의 뜻을 먼저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를 버리고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서 육신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으며 또한 범신론적인 우상문화에 의지하여 방종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육신적인 욕심만을 쫓아서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육신이 되어버린 인간들을 떠나시고 그들을 처벌할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6장에서부터 선포가 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입니다.

(3)   셋째, 영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육신적인 욕심만을 추구하게 되면 음욕과 성욕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사회가 도래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5:7);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5:7a);

1)      창조주 여호와를 버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세상을 제멋대로 움직이고자 하게 되면 때에는 두가지 사조(思潮, 사상적인 조류) 빠질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는, 범신론적인 우상문화입니다. 그들의 차이에 대하여 먼저 살펴봅니다;

2)      첫째,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 넘는 이른바 ()이라고 하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고 하는 인식입니다. 만약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없으므로 세상은 어떠한 근원적인 에너지나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저절로 우연히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운영은 지상의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은 인류의 몫이라고 사고(思考)하는 것입니다.

3)      둘째, 범신론적인 입장은 창조주가 유일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체인 신들이 세상을 창조하고 또한 서로 분담하여 다스리고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의 성격에 따라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신에게 직접 제사를 드리고 간구를 하는 것이 소원성취의 첩경입니다. 물론 수많은 신들 사이에는 인간의 세상과 같은 위계질서와 갈등구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점을 이용하여 신들을 조정하면 자신의 소원도 이루고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4)      그러한 범신론적인 사고방식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은 그것이 바로 유일한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모독하는 것이며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든 신을 창조주처럼 섬기고 있는 일종의 우상문화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1:16, 5:7a).  사람들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무신론이나 범신론적인 우상문화에 젖어서 살게 되면 하나의 공통적인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육신적인 탐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만족시키고자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6:4-5). 그렇게 되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만드신 것을 한탄하시고 옛날 노아의 시대처럼 그들을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6:6-8, 5:7a).

(2)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5:7b);

1)      여호와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주시던 시절에는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따라 가정생활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 자신들의 손으로 배불리 먹고 살게 되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육신적인 탐욕과 쾌락의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5:7b).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들의 우상문화를 도입하여 산으로 올라가서 바알에게 제사를 드린 후에 여사제들과 간음을 합니다(25:1-3, 3:8). 그리고 간음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고 있습니다(3:9). 그것이 창기의 집을 가나안 땅에 건설한 것입니다(5:7b). 도대체 그러한 영적인 타락과 육체적인 향락과 퇴폐의 삶이 어째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8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관련내용을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2)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대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40년간 광야에서 율법교육을 시키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훈련을 시키셨습니다(16:4-5, 29-30). 그때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일용할 양식으로 제공하셨습니다(16:12-16). 양식을 먹으면서 매일 먹을 것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사람이 없는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여 주시는 은혜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피부로 느끼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13:21-22, 8:15-16).

3)      둘째,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을 차지하고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방종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유를 신명기에서 모세가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소와 양이 번성하여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풍부하게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8:11-14),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능력과 손의 힘으로 내가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8:17-18).

4)      셋째, 세상적인 성공에 도취가 되어 백성들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방종한 생활을 하게 되면 결과 어떠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까요? 모세가 알기 쉽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8:19-20).

둘째로,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5:8);  두가지의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치 발정한 짐승과 같이 힘으로 모든 여자를 성폭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영이신 여호와를 떠남으로써 육체적인 짐승과 같은 삶만이 선민들을 지배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벌써 예레미야 선지자가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길을 보라, 행한 바를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발정기에 만나리라”(2:23-24).

(2)   하나는 여호와께서 제정하신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monogamy) 아름다운 가정생활과 질서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2:20-25, 6:1-5). 그것은 창조주의 뜻을 어기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반역행위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하고 살인죄를 저지르는 자는 위대한 다윗대왕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처벌에 있어서 예외가 없습니다(삼하11:4, 14-17). 구체적으로, 남은 생애가 여호와의 징계로 후회와 눈물의 연속이며(6:1-8) 칼날 위의 불안한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삼하12:5-15).

셋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마음이 이런 나라 보복하지 않겠느냐?”(5:9);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5:9a);

1)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영적인 세계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들이 육신적인 삶만을 추구하게 되면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유물주의 사상과 우상에게 소원을 빌어서라도 쉽게 성공하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고 하는 범신론적인 우상문화가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성공만을 위하여 달려가게 되면 짐승과 같은 약육강식의 사회가 도래하고 마는 것입니다(6:1-5). 그렇게 육신이 되어버린 인간들을 여호와께서는 떠나 버리십니다(6:3).

2)      결과 무죄한 자의 피가 넘치고 우상을 섬기는 음란한 문화가 만연하고 있는 인간사회를 여호와께서는 처벌하지 아니하실 도리가 없게 되고 맙니다(6:11-13).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노아의 시대에 벌써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적용 효과는 오늘날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2)   마음이 이런 나라 보복하지 않겠느냐?”(5:9b);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같은 처벌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조국이 창세기 6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을 재현하였기에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5:9b). 그것은 100여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이방제국의 땅에 포로로 끌려간 전철을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같은 범죄를 여호와 앞에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밟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음란의 문화가 어떻게 발생하며 어떻게 사회에 만연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떠나서 백성들이 마음대로 살고자 하면  물질이나 육신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는 문화가 발생합니다. 그것이 유물론적인 사고이며 우상을 만들어 쉽게 육신적인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범신론적인 문화입니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게 되면 육신을 자신의 신으로 여기고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아실현이라고 믿고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풍조에 젖어 들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육신적인 탐욕을 정당화하고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사회를 당연한 경쟁사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결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타락  사치와 향락 그리고 퇴폐와 음란문화가 선민의 사회마저 지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합니다. 이제 주전 586년에는 동일한 범죄를 행하고 있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망하고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예언으로 전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부디 회개하고 여호와 앞에 돌아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역사섭리는 동일하십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옛날 선민의 나라처럼 현대교회와 믿는 자들의 사회가 동일한 잘못을 범하지 아니하도록 열심히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