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5강(렘4:29-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19. 16:59

예레미야 강해 제25(4:29-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615()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의 모습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4:29-31)

 

지상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조국인 유다 왕국은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 마지막 모습이 어떠할까요?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예언을 그가 동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①주전 586년 유다 왕국이 망하기 직전 전쟁론자(戰爭論者)인 매파의 모습, ②주전 597년 화전론자(和戰論者)인 비둘기파의 모습, ③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지막 절규 등입니다. 그 묘사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주전파(主戰派)인 유다 왕국 군대의 모습입니다; “기병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 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4:29);

1)    첫째,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생각보다 너무 강하고 빠릅니다. 제국의 기병들이 너무나 신속하게 유다 왕국의 성읍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들의 활은 강하고 예리합니다. 유다 왕국의 군부는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끝까지 성읍을 사수하려고 하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이 밤새 도망을 치고 맙니다.

2)    둘째,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군부의 지휘관들이 도저히 적병을 막아낼 엄두가 나지 않자 항전을 포기하고 제 목숨 하나 살리기 위하여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읍의 주민들이 전부 성을 버려 두고 산과 숲속으로 피난을 떠나고 맙니다.

(2)  둘째로, 화친론(和親論)을 주장하던 귀족들의 모습입니다.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4:30);

1)    첫째,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침입을 하였을 때에는 화친론을 주장한 귀족들의 뜻대로 많은 전리품을 챙긴 적군들이 철수를 한 바가 있습니다(왕하24:10-17). 그러나 유다의 왕과 귀족들의 모습은 비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온갖 정성을 다하였지만 그 결과가 참담하기 때문입니다.

2)    둘째, 그들은 적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화려하게 치장을 한 유다의 미인들을 데리고 갑니다(4:30). 그러나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유다의 왕과 귀족들을 수많은 전리품과 함께 끌고 갑니다(왕하24:13-16). 더구나 유다 왕국에는 친 바벨론 괴뢰정권을 세우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4:17).

(3)  셋째로, 거짓선지자의 유혹에 속아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4:31);

1)    첫째, 전국 방방곡곡이 적군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있는데 왕과 귀족들 그리고 유다 왕국의 정예병들은 모두 예루살렘 요새에 틀어박혀서 3년간 마지막 저항을 하게 됩니다(왕하25:1-2). 그러나 그 결과는 허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습니다. 원병도 없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운명이 끝장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3-7).   

2)    둘째,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살아 남은 백성들의 고통이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300만명 이상인 유다의 백성들이 거의 북송이 되어 신바벨론제국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8-12). 적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들의 신세가 마지막 숨을 들이 쉬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같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4:31b).

3)    셋째, 그들이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은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4:31a).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고 있는 산고에 해당합니다. 그동안 여호와신앙을 잊어버리고 세상적인 쾌락만을 추구한 선민 유대인들이기에 조국이 망하고 적의 포로로 끌려가는 그 심정은 후회가 막급한 것입니다.  

4)    넷째, 적의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들은 하나같이 차라리 더 이상의 수치와 치욕을 당하지 아니하고 곱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4:31c)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목숨과 같은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기병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 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4:29); 이 장면은 그 옛날 모세 시대와 정반대입니다;

(1)  주전1,406년경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기마병 12천명을 선발하여 미디안 5부족국가를 섬멸하도록 원정을 보냅니다(31:1-8). 이스라엘의 기병과 활 쏘는 자들이 200km를 남하하여 미디안 5부족국가를 쳐부숩니다. 그들의 수는 고작 12천명에 불과하지만 미디안 5부족국가의 20만명이 넘는 대군을 단숨에 궤멸하고 맙니다. 미디안의 병사들은 제대로 대항을 하지도 아니한 채 성읍을 버리고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디안 백성들이 살길을 찾아 수풀로 들어가고 일부는 높은 바위산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원정군은 미디안의 성읍을 초토화시키고 부녀자들을 포로로 삼아 의기양양하게 개선을 하고 있습니다(31:9-12).

(2)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옵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귀족들 그리고 군부의 지도자들은 청야전술(淸野戰術, 적이 쳐들어 오는 길목의 논밭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군수품 조달을 어렵게 만들어 스스로 물러가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여 전국의 성읍을 적에게 내어주고 오로지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만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지방의 성읍을 지키던 유다 왕국의 군사들이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도망을 치고 맙니다. 그에 따라 성읍의 백성들이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수풀과 바위산으로 피신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적의 기병들의 기동력과 강궁의 위력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의 시대에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서 전쟁에 임했기에 대승을 거두었지만 유다 왕국 말기에는 여호와의 뜻을 묻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전쟁의 방법만을 구사하였기에 그 희생이 말할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둘째로,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4:30); 두가지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유다 왕국에 쳐들어 옵니다. 여호야긴 왕과 귀족들은 도저히 적을 막아낼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화해를 청하며 항복을 하고 있습니다(왕하24:10-12). 그러자 적들은 전리품과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들을 취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유다의 왕과 귀족들을 용서하지 아니합니다(왕하24:13-14). 그에 따라 유다 왕 여호야긴과 귀족들은 신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4:15-16). 신바벨론의 황제는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삼으며 괴뢰정권을 수립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4:17).

(2)  또 하나는, 신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왕국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맞이하게 되는 비극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의 귀족의 여식들을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와 군부의 지도자들이 많이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들을 아름답게 치장을 시키고 자신들의 첩으로 삼고 있습니다. 망국의 백성들이기에 적들의 노리개감이 되며 말을 듣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비참한 미래가 전개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히스기야 왕에게 참혹한 미래를 다음과 같이 예언한 이사야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왕의 몸에서 난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왕하20:18).

셋째로,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4:3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初産, 처음 아기를 낳는 것)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4:31a);

1)    절묘한 표현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인들이 아기를 낳을 때 그 고통이 가장 심하다고 합니다. 그 고통에 대해서는 창세기 제3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3:16). 산고(産苦, 아기를 생산하는 고통) 가운데에서도 처음 아기를 낳게 되는 초산의 경우가 가장 그 고통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2)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향락과 사치 그리고 음란한 문화에 빠져들었기에 그들이 망국의 백성이 되며 그 고통이 극심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알기 쉬운 비유로, 그들 망국의 백성들의 고통은 마치 시온의 딸들이 산고를 치르며 가장 극심한 초산의 고통을 맛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4:31a).

(2)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4:31b);

1)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면서 자신에게 밀어 닥치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유월절 밤에 여호와께서 죽음의 천사를 거느리시고 애굽의 황제로부터 귀족들과 모든 애굽인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진멸하시던 때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12:29-30). 신위적인 그 거대한 재앙 앞에 애굽의 황제인 바로와 중신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2)    자신들의 장자들이 예외가 없이 마지막 고통에 찬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바로와 신하들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재앙이 내 집의 장자들에게 미치고 있으니 그 화를 피할 방법이 없구나.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면 애굽의 황제와 귀족들이 모두 한꺼번에 멸망을 당하고 말겠구나!”(4:31b의역). 그와 같은 참담한 심정이 유다 왕국 말기의 왕과 귀족들의 신세 한탄이 될 것이라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예언하시는 대목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합니다. 창조주의 권능으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고 계십니다. 피조물인 그릇은 자신을 어째서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감히 창조주에게 항변할 수가 없습니다(9:19-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주십니다(1:26-27, 30:19-20).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게 되면 형통함을 주시고 불순종하여 살아가면 본문에서와 같은 비극적인 말로(末路, 마지막 길)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다시 한번 여호와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올바로 실천하시는 복음의 일꾼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