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1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19. 03:19

너와 나의 공화국16(손진길 소설)

 

1989년 봄 강훈이 수색에 있는 국방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하루는 친구 이민욱 기자가 정준호 교수를 만나고자 방문하고 있다. 우연히 교정에서 이민욱 기자를 발견하자 강훈이 반가워서 그에게 다가가면서 먼저 큰소리로 말한다; “민욱아, 네가 이곳에 어쩐 일이냐?... ;

정치부기자 이민욱이 먼발치에서 강훈의 목소리를 듣고서 반가운 김에 그에게 마주 접근하면서 얼른 대답한다; “잘 지냈냐? 나는 오늘 정준호 선배를 좀 만나고자 이곳에 왔다”.

그 말을 듣자 강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 서울 문리대 정치외교학과 선후배 사이가 되겠구나. 무슨 용무인지 몰라도 잘 마치고 가기 바란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모임에서 들으면 되겠구먼. 그때 보자구… “.  

한달 후 5월 하순 상록회 정기모임에서 강훈이 기자 이민욱을 만나자 잊지 아니하고 묻고 있다; “그래 그날 국방대학원에서 정준호 교수를 잘 만난 것이냐? 무슨 용무로 서울 시내에서 변두리 수색까지 그 선배를 찾아왔는지 모르겠구나?… “.

궁금해하는 강훈에게 이민욱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가 한미간 안보관계에 관하여 기사를 하나 작성하고 있는데 그 방면의 전문가인 정선배의 의견을 듣고 싶은 대목이 있어서 그날 미리 약속을 하고서 방문한 것이야“;

그제서야 강훈이 새삼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바쁜 민욱이 네가 일부러 수색까지 방문한 것을 보니, 정준호 교수가 정말 한미간 안보조약에 있어서는 대단한 전문가인 모양이다“. 그 말에 이민욱이 간단하게 답한다; “물론 그렇지, 그 선배는 모교에서 그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니까“.  

그때로부터 3년반의 세월이 지나자 19921218일에 양 김씨의 한사람인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한다. 그리고 이듬해 1993225일 오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취임식을 가지고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의 직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뜻밖에도 관료경험은 물론 정치경력조차 전무한 국방대학원 민간인 교수 정준호를 국방차관으로 임명한다. 그 뉴스를 접하고 강훈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리고 그 특이한 인사의 의미를 강훈이 나름대로 따져보고 있다; “장군 출신이 아니라 순수 민간인 출신을 국방차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니 김대통령은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야. 그리고 미국과의 군사관계 협력에도 이제는 민간인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만… “;

그와 같이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강화하려고 시도한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치하에서도 굽히지 아니하고 김대중 씨와 함께 그는 민주화 투쟁을 계속한 정치인이므로 그 의지가 확고한 것이다.

한편 강훈은 1988년과 1989 2년간 국방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특이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군장교들을 학우로 만나고 있다. 공군의 비행기 조종사가 있고 군법무관도 있다. 그리고 정보사 출신들도 있으며 멀리 외딴섬 백령도에서 근무를 했다는 해병장교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는 인물들이 만났으니 서로 친교에 힘을 쓰고 있다. 그 가운데 앞장을 서고 있는 장교가 박광서 소령이다. 그는 남경호 대위와 함께 서울 시내 분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주말 저녁에 그의 사무실에 학우들을 초청하여 트럼프를 하면서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박소령은 뼈대가 튼튼하고 강한 군인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존경하고 있다는 그는 조국이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박소령은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그런지 골프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한 것 같은데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다;

특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는지 학우들이 모두 술에 취해서 비틀거려도 그는 일체 술에 취하는 법이 없다. 그러한 박광서가 1988년 여름방학에 무척 바쁘다. 노태우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북방외교에 그가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에 학기가 시작되어 강훈이 그를 다시 수색에서 만났을 때에 박소령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강훈, 나는 이번 여름에 한 건을 했다. 소련의 문화 및 예술계 인사들과 접촉하여 발레단을 한국에 보내는 것으로 일단 실무적으로 합의를 했거든. 우리 회사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하하하… “;

그의 말이 맞다.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이 그해 9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공연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노태우 정권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게 하려고 열심이다. 따라서 1988917일에 개막된 서울올림픽은 IOC회원국 대부분 160개국이 참여하는 명실공히 동서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다음해 1989년이 되어서도 박광서 소령은 방학이 되면 북방외교에 동원되어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방문하느라고 바쁘다. 겉으로 보면 그는 무역회사의 간부이다. 하지만 그 실은 공식적인 외교의 길을 미리 개척하고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안보의 일꾼인 것이다.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광서를 크게 이해하고 좋은 친구가 되고 있는 인물이 서울법대 출신의 군법무관인 박웅서이다. 이름자가 비슷하기에 강훈이 한번은 박웅서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두사람은 일가인가?... “. 그 말에 그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아니한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강훈은 지금도 그 두사람이 친척인지 아닌지 모르고 있다. 다만 두사람은 군에서 만나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돕고자 하는 좋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국가의 발전을 다양한 방법으로 추구하고 있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2년간 국방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다. 군장교들은 민간인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들어서 이해를 하고 반대로 일반직 공무원은 전방에서 뛰고 있는 군장교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2년간 공부하는 동안 세월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아끼고 싶다면 자신이 흥미를 지니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국방대학원을 1989년말에 졸업하고 있는 강훈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는 국회의 입법조사국에서 다시 일하고 있으면서도 1990년 여름부터 정치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알아보고 있다. 다행히 그가 근무하고 있는 입법부는 직원들이 국내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국회의 간부들이 법학,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얻게 되면 국회의원들을 더욱 전문적으로 보좌할 수가 있으니 그것이 권장사항인 것이다. 그렇지만 전적으로 공부하는 일에 매어 달릴 수는 없다. 자신이 맡은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월을 아끼면서 바쁘게 사는 고달픈 방법이다. 하지만 그 성취와 열매는 평생을 두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강훈에게 묻는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상록회원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번 알아볼 차례이다. 과연 이민욱 기자, 조영백 변호사, 그리고 나아문 검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발전과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어떠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