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1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20. 08:17

너와 나의 공화국17(손진길 소설)

 

정치부기자 이민욱은 본래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외교학과 출신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대학 출신이 아닌 기자들은 지레짐작으로 이민욱이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실 서울대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정치외교학과가 아니라 두개의 학과 곧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로 갈라져서 존재하고 있다. 다른 대학교의 경우에는 거의가 정치외교학과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학과로 되어 있는데 어째서 서울대학교는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일까?

197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진학하고자 입학원서를 작성하면서 이민욱은 그 점이 궁금하여 서울대 정치학과와 외교학과에 먼저 진학하여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답변이 이상하다; “1950년대 말엽에 둘로 갈라졌다고 해. 그런데 그 이유가 말이지… “;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지 다음과 같이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유학하여 그 방면의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한 인물들이 많았던 모양이야. 그들이 모두 이왕이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에서 교수가 되기를 희망한 것이지. 그렇지만 교수자리가 부족한 것이야. 따라서… “.

그 다음의 설명은 황당하여 이해하기가 어렵다; “1950년대 말엽에 정치와 외교에 뛰어난 쟁쟁한 인물들이 많아서 그들이 서울대에서 전공을 둘로 쪼개고 교수자리를 두배로 만든 것이 아니겠어. 한마디로, ‘위인설관’(爲人設官, 사람이 많으니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더 만든다는 것)인 셈이지, 하하하… “.

그와 다른 진지한 의견도 일부 있다; “정부에서 외무고시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그에 응시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외교학과로 진학하고, 기타 정계에 입문하거나 정치부기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정치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둘로 갈라진 것이 아닐까?... “.

과연 그러한 것일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것이 이민욱의 성격이다. 그래서 그는 고3말에 벌써 외무부에 근무하고 있는 집안 어른에게 전화로 그 점을 문의하였다. 그 결과 이민욱이 파악한 사실이 다음과 같다;

(1)  1948년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이듬해부터 정부관료를 선발하기 위하여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가 시행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가공무원 5급인 사무관에 해당하는 당시의 3공무원이 되고자 하면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2)  그런데 현대국가에 있어서 행정의 분화와 비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행정고시를 직렬별로 쪼개고 있다. 그것이 1968년부터 시행된 직렬별 행정고시 선발이다. 즉 행정고시 안에 외무직렬이 있으며 나름대로 고시과목이 약간 다른 것이다.

(3)  1973년 법개정에 따라 외무직렬이 행정고시에서 완전히 분리가 된다. 그에 따라 1974년부터는 행정고등고시와는 달리 외무고등고시가 독자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답변을 듣고 보니 이민욱은 비로소 알 것만 같다. 서울대에서 정치외교학과가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로 갈라진 것이 1950년대 말엽이다. 그런데 외무공무원을 별도의 과목으로 선발하기 시작한 것이 1968년이고 오늘날의 외무고시라는 모습을 완전히 갖춘 것이 1974년이다.

그렇다고 하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서로 학문적으로 어느 부분에 더 치중하는가에 따라서 논쟁이 생기고 나중에는 아예 학과를 분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따라서 이민욱은 정치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자신은 외무고시가 목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정치부기자가 되고 나중에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민욱이 동아일보 정치부기자가 되어 1980년대 초기에 입법회의와 제11대 국회에 취재를 나섰을 때에는 정치학과 출신이 아니라 외교학과 출신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당장 입법회의 시절 신군부의 실세인 전두환의 경제관계 가정교사라고 알려지고 있는 김재익 경제수석이 그러하다. 그리고 청와대의 전대통령에게 대미외교에 관하여 가르쳐주었다고 하는 한승주 교수가 그러하다. 그들은 사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에는 외교학과 전공이 되어 있는 선배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에 한미안보협약에 관하여 취재를 할 때에는 외교학과 출신인 국방대학원 정준호 교수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민욱 기자가 정치학과 출신이지만 같은 뿌리의 동문으로 여기고 잘 대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둘로 분리되기 이전에 졸업한 정치학과 출신 대선배들이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1981년에 제11대 국회가 시작이 되었을 때에 이민욱은 국회기자실을 출입했다. 그때마다 의장실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 그 이유는 채문식 의장이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국회사무총장실에서도 자신을 찾고 있다. 일찍이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고 국회사무총장 자리로 옮겨온 우병규 총장이 또한 정치학과 선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정치학과 대선배인 박준규 의원이 무려 세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내고 있다;

박의장의 도움을 이민욱 기자가 많이 받고 있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경력이 풍부한 박준규 의장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들을 수 있는 정계의 이야기가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의장은 의원외교와 국제회의에도 밝아 이민욱의 시야를 엄청나게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민욱은 인맥이 넓고 정치적 안목이 탁월한 기자이다. 따라서 출신 대학의 선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를 뛰어난 기자로 키우고자 하는 대선배들이 더러 있다. 그 가운데 한사람이 1990년대초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내고 있는 김중배 선배기자이다.

그는 전남대 법대 출신으로 일찍이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 다음에 동아일보로 옮겨와서 승승장구하여 편집국장에 이르고 있다. 그가 정치부기자로서 정론에 충실한 이민욱의 기질을 알아본 것이다.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출신인 이만섭 의원의 뒤를 이을 만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

따라서 김중배 국장이 19908월초에 이민욱 기자를 편집국장실로 불러 올리고 있다. 자리에 앉자 김국장이 이민욱 차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이차장이 이번에 서독과 동독에 들어가서 특별히 취재를 해줄 일이 하나 있어. 그것은… “.

이민욱이 정치부기자생활을 오래 하다가 보니 이제는 차장의 자리에 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유럽으로 가서 취재할 일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무엇일까? 엔간한 것이면 특파원으로 나가 있는 기자가 바로 취재하면 될 일인데의아하여 김중배 국장을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국장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지금 동서독이 통일을 앞두고 있어. 그러므로 이번에 비중 있게 그 이슈를 다루어 보았으면 해. 유럽특파원도 자료를 보내어오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 나는 자네가 그곳에 가서 특파원과 함께 이번에는 서독 뿐만 아니라 동독까지 들어가서 취재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어. 자네의 정치적인 견해가 필요한 것이야… “.

그제서야 이민욱이 속으로 생각한다; “동서독의 통일은 한반도의 통일과 직결이 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것이 장차 한국정계의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니 국내 정치인들과 많이 접촉하고 있는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국장은 그 점에 있어서 나의 견해가 필요한 것이야… “;

그러한 판단이 서자 이민욱 차장이 기꺼이 수락을 한다. 그 결과 그는 810일에 벌써 서독으로 들어가고 있다. 특파원 이상재와 만나 함께 서독의 인물들은 물론 동독의 인물까지 만나서 통독의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취재하고자 한다. 과연 그가 무엇을 현지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