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1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16. 00:25

너와 나의 공화국12(손진길 소설)

 

  1987년 봄에 조영백이 강훈과 논의한 결과를 가지고 4월 하순과 5월 하순에 두차례나 4인이 참여하는 일명 상록회 모임이 저녁 늦은 시간 조영백의 사무실에서 열리고 있다. 그날 5월 하순에 가장 늦게 참석하고 있는 친구가 정치부기자인 이민욱이다.

그런데 강훈, 조영백, 나아문 등 3인은 이민욱이 올 때까지 중요한 논의를 미루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어째서 그들은 기자인 이민욱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최근에 정치적 기류가 엄청나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빠르게 취재하고 있는 이민욱 기자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다;

 당시 커다란 이슈만 손꼽아보아도 대충 다음과 같다;

첫째, 작년말 곧 19861224일 신민당 이민우 총재가 연말기자 회견에서 소위 이민우 구상을 전격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는 현실정치에 바탕을 두고서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철회하는 대신에 완전한 정치민주화와 내각제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직선제 선거에 의하여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민주화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양 김씨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둘째, 양 김씨 곧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민우 구상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자 제1야당인 신한민주당이 분열의 위기에 들어간다. 이민우 총재는 분당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자신의 구상을 수차례 수정하고 종래 구상을 철회하지만 그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이듬해 곧 19873월에 당에서 제명을 당하게 된다. 양 김씨는 차제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있다. 47일에 신당창당 선언을 하고 413일에는 통일민주당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려고 한다;

 

셋째, 1야당의 극심한 분열상을 보고서 전두환 대통령은 그것을 호기로 여기고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소위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전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의 근거는 다분히 안기부장인 장세동의 정세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장부장은 양 김씨의 새로운 정당에 30명 정도의 국회의원이 합세할 것이며 신민당은 최소한 40명의 의석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제1야당 신민당의 편을 들어주고 제2야당이 되는 신당을 분열주의자로 몰아 부치면 된다는 것이다.  

넷째, 안기부장의 분석이 빗나가고 있다. 무려 67명의 현직의원이 신민당을 떠나 신당인 통일민주당에 합세하고 마는 것이다;

 지난 1987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수습하고자 내무부장관직을 맡게 된 육사 11기 출신 정호용은 후배인 육사 16기 출신 안기부장 장세동의 정세판단이 너무 안이한 것이라고 동창인 전대통령에게 말했지만 묵살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예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장부장은 전세를 만회하고자 5월에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기 위하여 정치폭력배를 동원하는 소위 용팔이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대학생의 과격한 시위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다섯째, 87년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내보낼 여당후보를 은밀하게 결정하는 과정에서 육사 11기 정호용과 16기 장세동이 격돌하고 있다. 정호용은 하나회를 이끌고 있는 육사 11기의 모임 북극성회에서 내세운 노태우를 후보로 밀고 있으며 안기부장 장세동은 16기인 자신이 후보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980년에 집권한 전두환으로서는 8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으므로 후배인 16기 장세동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것이 순리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동창들의 비밀모임인 북극성회가 정호용을 앞장세워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장세동은 선배들의 물리적인 제재를 당하여 물러나고 전두환의 동지인 11기 출신 노태우가 후계자로 확정이 되고 만다.

여섯째, 노태우를 비롯한 11기 모임 북극성회에서 19875월과 6월초의 한국정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보니 도저히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지 아니하고서는 향후 정국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면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크게 모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야당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을 여당의 대통령 후보 노태우의 대결단이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직선제 개헌에 의하여 1987년말에 대통령선거를 치루게 되는데 틀림없이 양 김씨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끝까지 나설 것이다;

 양 김씨가 똑같이 대통령 병에 걸려 있어 끝까지 양보하지 아니하고 경쟁할 것으로 보고서 판단하면 12’의 치열한 3파전에서 여당후보 노태우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은 여권을 지지하는 국민의 수가 최소한 3분의 1이 넘는다고 하는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치적 판단인 것이다;

 그와 같은 냉철한 정세분석을 전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서 내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날 19875월 하순에 열린 상록회모임에서 정치부기자인 이민우가 그동안 발로 뛰면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3사람 곧 강훈, 조영백, 나아문은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렇지만 강훈과 조영백이 다음과 같이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전대통령의 정치스타일로 볼 때 그와 같이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는 대변신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과연 그러한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될까?... “.

그 말을 듣자 이민욱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그러한 변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어. 왜냐하면, 8년 동안 왕과 같은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만 하거든. 전직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이란 참으로 작은 것에 불과해. 왜냐하면… “.

이민욱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아무리 전대통령이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기업의 총수가 누리고 있는 권력보다 훨씬 작은 것에 불과해. 그러므로 역사적인 단죄를 면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야… “;

이민욱의 말을 듣고 있던 공안검사 나아문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나는 민욱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내가 검사생활을 계속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어. 그것은… “.

대담한 성격의 나아문이 그 답지 아니하게 주위를 한번 살핀 다음에 천천히 말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던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물러나고 나면 취조과정에서 그 위세가 형편이 없다는 것이야. 그야말로 검사의 먹이감에 불과해. 그러니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전직이 되고 나면 별 수가 없어지는 것이지. 민욱이의 판단이 현실적으로 맞는 것이야… “.

그 말을 듣자 강훈과 조영백은 마음속으로 일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고 있다; “검찰이 헌법으로부터 부여 받고 있는 지위와 권력이 그 정도라고 하면 장차 성공한 정치인과 경제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앞에 불려가게 되면 마치 장기판의 졸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겠구나!... “.

그들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안기부나 보안사에 끌려간 운동권 학생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겠구나. 참으로 두려운 또 하나의 권력이야. 이거 앞으로 이리를 피하려다 범에게 물리는 형국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

그것이 괜한 걱정일까? 기우에 불과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아니할 경우에는 건국한 이후 경찰국가, 군부통치, 그 뒤를 이어 문민정부 하에서 새로운 제3의 권력기관이 또다시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