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1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15. 09:39

너와 나의 공화국11(손진길 소설)

 

1987년 봄에 인권변호사 조영백이 국회간부인 강훈에게 전화를 내고 있다. 급히 상의할 내용이 있으니 오늘 일과후에 좀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는 신중하게도 조용히 만나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장소로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거론하고 있다.

그날 일과후에 강훈이 대림동에 자리잡고 있는 조영백의 사무실에 들린다. 저녁 6시반에 만나자고 말하면서 조영백은 자기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같이 먹자고 전화로 벌써 제안을 했다. 강훈은 조영백 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일찍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벌써 직원들이 퇴근을 했는지 별실인 그의 방에는 조영백이 혼자서 서류를 보고 있다. 강훈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 재빨리 조영백이 전화로 인근 중화요리점에 배달을 부탁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서비스가 빠르다.

두사람이 인사를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20분도 되지 아니하여 자장면 2그릇이 배달되고 있는 것이다;

 조영백은 자장과 면을 전부 골고루 섞은 다음에 먹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강훈은 그것이 아니다.

자장 조금과 면 조금을 먼저 섞은 다음에 그것을 먹고서 그 다음에 다시 같은 방법으로 조금씩 먹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조영백이 한마디를 한다; “아직도 훈이 너는 한꺼번에 뒤섞어서 먹지 않는구나. 그것 참 특이하다… “.

그 말을 듣자 강훈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 조금씩 섞어 먹어야 자장의 양에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길 수가 있지. 한꺼번에 그렇게 모두 뒤섞어 놓으면 맛이 한가지 뿐이거든. 그것은 상당히 무식한 방법이야. 한마디로, 음식 맛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지, 하하하… “.

그 말에 조영백은 전혀 동요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그것도 일리가 있구만. 그런데도 먹는 속도가 나랑 비슷한 것을 보면 훈이 너도 성격이 급한 편이야. 하여튼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지 너도, 하하하… “.

강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건 그렇지. 영백이 너와는 중학교 때부터 서로 1등을 양보할 수가 없는 치열한 경쟁 관계였지. 그 덕분에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에 무난히 합격한 것이 아니겠어... 어쨌든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사회발전의 초석이 아니겠어? 하하하… “.

얼른 식사가 끝나자 조영백이 심각한 얼굴로 말문을 연다; “훈아, 나는 요즈음 한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곳 대림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있는 것은 주로 구로동이나 신림동 쪽에서 발생하고 있는 근로자와 대학생들의 인권문제를 변호하기 위한 거야. 그런데… “;

그 말을 듣자 강훈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짝 귀를 기울인다. 영백의 말이 이어진다; “그들을 변호하다가 보니 요즘 운동권의 성격이 상당히 우리 때와는 달라. 그래서 너와 은밀하게 상의를 좀 하고 싶어서 오늘 일과 후에 조용히 내 사무실로 부른 거야… “.

강훈이 얼른 자신의 의견을 보태어 질문을 한다; “어떻게 다른데? 독재를 끝내라고 하는 민주화구호는 우리 때 유신시대와 비슷한데하기야 요즘 대학생들이 훨씬 과격하기는 하지. 분신자살을 서슴지 아니하고 있거든. 그 밖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

조영백이 한번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운동권 일부 대학생들이 공산주의 영향과 북한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서 두가지로 노선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야.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을 가지고 한국의 통치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세력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아예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지고 한국의 정권을 타도하자고 하는 것이지… “.

강훈이 경청하는 것을 보고서 조영백이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그 둘이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최근에 주사파가 이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 이유가 말이지, 상당히 위험한 요소가 그 속에 들어 있어왜냐하면… “;

갑자기 조영백이 잠시 뜸을 들이고 있다. 그것이 강훈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따라서 강훈이 눈짓으로 설명을 재촉하자 그의 설명이 들려온다; “주사파는 순수한 공산주의이론보다는 북한이 독자적인 주체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무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혁명세력이 그 무력을 가져야 한국사회도 변혁을 시킬 수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 물론 그러한 극단적인 투쟁노선이 모든 대학생의 뜻은 아니겠지만… “.     

친구 조영백의 설명을 들으면서 강훈은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는 1970년대초에 대학가 학생운동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 그 시대는 유신독재와 맞서기 위하여 데모를 많이 벌이기는 했지만 공산주의이론이나 북한의 주체사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와 검찰 공안에서는 민청학련의 경우처럼 북한과 연결한 간첩단으로 학생운동을 선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1980년대의 대학가 운동권은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1960년대 선배들의 소위 낭만적인 민주화시위도 아니고 1970년대 유신에 맞서는 대학가의 순수한 민주화요구도 아니다. 신군부의 통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공산주의 사상이나 북한의 주체사상까지 연구하고 그것을 혁명의 방법론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 위험성을 감지한 조영백이나 이제 그 심각성을 알게 된 강훈이 그날 머리를 맞대고 나름대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다. 그 결과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그 방법이 다음과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이 바라고 있는 민주화를 정부여당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충체육관에서 간선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직선제를 위한 개헌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김대중을 사면 복권하는 등 민주인사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풀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만들 수가 있을 것인가?... “;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그러한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을 전대통령에게 훈수하고 대안을 마련해줄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두사람이 그 점에 관심을 가지고 향후의 정국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1987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두사람의 눈에 그러한 움직임이 은밀하게 포착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