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1강(렘4: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6월 11일(월)
마지막 멸망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가?(렘4:11-14)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조국의 동포들에게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자신의 딸들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렘4:11). 그런데 예루살렘의 딸들이 교만하여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음행과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있다는 것입니다;
1) 예레미야보다 약100년 정도 앞선 역시 유다 왕국의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사3:16-17).
2) 그들의 음란한 마음이 여호와의 징벌을 초래하고 있음을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렘4:11-12).
(2) 둘째로, 동쪽 광야에서 밀려오는 적군의 기동성과 용맹함은 도저히 선민 예루살렘의 유다 왕국이 자신의 힘으로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렘4:13a). 그러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마지막 신정국가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자신들의 군사력에 의존하게 되면 이방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렘4:13b). 그 임박한 멸망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천하면 될까요? 그 방법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동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4:14).
(3) 셋째로, 사람이 자신의 마음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악을 온전히 제거할 수가 있을까요? 모든 악한 생각이 그 심령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존재로부터 비롯되고 있는데 그것을 육신을 가진 인간의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구체적으로, 대속자 그리스도가 그들의 역사 가운데 오셔야 하며,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가 전개되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근본적인 치유의 방법이 아직 예레미야의 시대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우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죄악을 말끔히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이라는 역사적인 심판을 피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4) 넷째로,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한 존재에 의하여 지은 자신의 죄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게 되는 역사는 언제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요?
1)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한 가닥 소망 가운데 간구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복음의 시대가 그들의 땅에 빨리 찾아오고 후손들이 그 시대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0년 전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주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사11:1-7, 14:12-15). 그리고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게 되면 성령께서 그 심령 속에 임재를 하시고 악한 영이 사람에게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눅11:20).
2) 그 점에 대한 사도 바울의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7:21-8: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렘4:11-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렘4:11a);
1) 여기서 ‘헐벗은 산’은 두가지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실제로 요단 강 동편에는 민둥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모압 평지의 경우 브올 산과 같은 높은 산에서 바알브올에게 제사를 드리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기고 있습니다(민25:1-3). 그러한 우상문화가 유다 왕국에도 도입이 되어 우상문화와 음란한 문화가 산 위에서 만연이 되고 있습니다(렘3:6-10). 그것을 여호와께서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산을 수치스러운 헐벗은 민둥산으로 묘사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렘3:2).
2) 뜨거운 전쟁의 바람이 광야를 통과하여 여호와께서 마치 딸처럼 예쁘게 여기고 있는 선민 유다 왕국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렘4:11a). 실제로 100년 전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도 그러합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39:5-7).
(2)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함도 아니며”(렘4:11b);
1)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서 실제로 가을에 땅에서 소출이 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하여 내륙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이용하여 키질을 하고 또한 말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여기서의 열풍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가을에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아니라 전쟁의 바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렘4:11b).
2) 그 시기가 구체적으로,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만 11년간 통치를 하고 있는 그해 4월과 5월입니다(렘1:3, 왕하25:2-4). 태양력으로는 아직도 여름인 7월과 8월입니다. 그때 신바바벨론제국의 침략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고 시드기야 왕이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5:7)
(3)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렘4:12);
1) 내륙에서 불어 오는 전쟁의 바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①첫째,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적군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 하는 예언입니다. ②둘째, 여호와께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군사들이라는 것입니다. ③셋째, 그러므로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유다 왕국이 도저히 그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선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볼 수가 있을까요? 그 점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렘4:14a). 예레미야의 시대에는 백성들의 마음의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영원한 대속의 방법이 없습니다.
3) 율법에 따라 가축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보아야 일시적인 효과 뿐입니다(히9:25). 그러므로 완전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도록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를 하라는 것입니다(히7:27-28, 9:11-15). 마치 욥처럼 죽어서라도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욥19:23-27, 요5:24-29, 히11:13-16, 26).
둘째로,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렘4: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렘4:13a);
1) 구름과 돌풍과 독수리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가지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대 땅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①첫째, 구름은 서쪽 지중해에서 언덕을 넘어 오기도 하고 때로는 동쪽 내륙에서 산맥을 넘어 유대 땅으로 몰려오기도 합니다. ②둘째, 회오리 바람은 요단 강 주변에서 발생하고 때로는 갈릴리호수에서도 일어납니다. 따라서 선지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을 하고 있으며(왕하2:11) 예수님께서 돌풍이 불고 있는 갈릴리호수를 잠재우고 계십니다(막4:39). ③셋째, 독수리는 애굽과 가나안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왔다고 말씀하십니다(출19:4).
2)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는 구름이 밀려오는 곳이 두 방향입니다; ①하나는 서쪽인 지중해입니다. ②또 하나는 동쪽인 내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동쪽에서 밀려오는 구름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름이 적의 침입을 의미하고 있는데 그 적들이 타고 오는 것이 선박이 아니라 병거와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전투용 마차인 병거는 말이 끌고 있는 수레입니다. 그 속도는 바퀴의 회전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바퀴입니다. 왜냐하면, 회오리바람처럼 그 바퀴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고 예레미야가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투마들도 상당히 개량이 된 종자입니다. 그 빠르기가 마치 독수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묘사를 참조하면 적들은 정복전쟁에 경험이 많은 제국입니다. 구체적으로, 앗수르제국에 이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신바벨론제국의 원정군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께서 환상으로 그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그렇게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렘4:13b);
1) 유다 왕국의 군사력으로는 몰려오는 막강한 제국의 군대를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때까지 중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성했던 제국은 앗수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동지역은 물론 애굽까지 침략하여 항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군사력이 강한 앗수르제국이 그 작은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결코 복속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단숨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켜 버리시는 사건이 히스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 성밖에서 발생을 했기 때문입니다(왕하19:34-35, 사37:35-36). 괜히 작은 나라 유다 왕국을 건드렸다가 그들의 대군이 다시 몰살을 당하게 되면 제국이 무너질 판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무리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앗수르보다 더 강력한 신바벨론제국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들 침략군의 모습을 예레미야가 환상 가운데 보니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아니하시면 도저히 그들을 물리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히스기야 때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호와께서 적들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물리쳐 주실까요? 그 답변은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쳐 주시면서 여호와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분명하게 “다윗을 위하여”라고 언급을 하셨기 때문입니다(왕하19:34, 사37:35). 그 뜻은 한번 용서를 해주시면 다시는 똑같은 죄를 여호와 앞에 짓지 아니하고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내하겠다고 하는 다윗의 회개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삼하12:5-15). 그런데 히스기야 때로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노력을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성군 요시야 왕의 시절에는 13년 동안 그러한 개혁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선민의 나라가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4: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렘4:14a);
1) 사람이 자신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한 영들을 자신의 힘과 의지로 제거할 수가 있을까요?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되었든지 악한 영이 되었든지 그들은 모두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를 왕래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창조주보다는 하위계급이지만 피조물인 인간보다는 상위의 계급입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에 갇혀서 제한된 시간을 살게 되는 마치 그 옛날 ‘에노스’와 같은 그러한 연약한 육신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도저히 악한 영들의 상대가 되지를 못합니다(창4:26, 히2:7).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예루살렘의 동족들에게 부디 마음의 악을 깨끗하게 씻어버리고 여호와의 구원을 얻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렘4:14a). 마음의 악을 씻는다고 하는 것은 심령 속의 악한 영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제거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주를 보내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보내어 주시는 것일까요?
3)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기 전일까요? 아닙니다. 그 훨씬 후에 구원주이시며 대속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제사와 부활로 말미암아 비로소 회개하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시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대신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새 언약의 시대가 찾아오게 됩니다(렘31:33-34). 그러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가 빨리 오기를 참으로 소망 가운데 간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라고 하겠습니다.
(2)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4:14b); 성도가 하나님의 영을 성령님으로 모시고 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 심령이 악한 영에게 지배를 당하여 살게 되면 악한 생각이 끊임없이 육신의 정욕과 탐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이제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악한 생각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이 퇴치를 당하고 맙니다. 비로소 악한 생각이 성도들에게 오래 머물지를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성도들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입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시대 곧 예레미야의 시대에는 백성들의 마음의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영원한 대속의 방법이 없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가축을 제물로 삼아 속죄의 제사를 드려보아야 길어야 일년이며 일시적인 효과 뿐입니다(레16:29-34, 히9:25).
그러므로 완전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도록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를 하는 것이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히7:27-28, 9:11-15). 마치 욥처럼 죽어서라도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망을 가지고 여호와께 간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욥19:23-27, 요5:24-29, 히11:13-16, 26).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선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요컨대, 새 언약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얼마나 복이 많은 자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가 된 구원입니다. 이제는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특권을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눅22:28-30).
그러므로 아무쪼록 복음사역에 힘쓰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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