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8강(렘3:22b-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12. 07:37

예레미야 강해 제18(3:22b-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68()

 

진실한 회개는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자복을 해야만 하는가?(3:22b-2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차례로 자신의 백성들을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가장 먼저 100년전에 망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이제는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3:6, 12-13).

그 뒤를 유다 왕 요시야가 서거한지 20여년 후에 멸망을 당하게 되는 남조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3:19-22). 훗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된 수많은 세상사람들이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얻고자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19:22-25).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깨달음을 얻고 나아와서 자신들의 죄를 어떻게 자복해야만 할까요? 그 점에 대하여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국난을 당하여 산 위의 제단에 올라가서 수호신과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부디 적들을 물리쳐 달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3:23a). 구원은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찾아가서 호소를 해야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3:22b, 23b).  

(2)  둘째로, 선민들은 적들을 물리쳐 주지도 못하고 조국에 대한 안전보장도 해주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수호신과 우상들에게 속아서 그들을 섬긴 세월이 참으로 후회가 됩니다. 거짓 신들인 그들에게 속아서 조상들 때부터 오랜 세월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긴 세월동안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우상들을 잘못 섬겨온 그 사실이 참으로 후회가 막심합니다(3:25). 

(3)  셋째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그 선택이 적들의 침략을 불러 들였으며 나라의 멸망을 재촉하였습니다(3:24). 손 쉬운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고 있는 세상적인 성공과 부귀영화를 얻는 줄 알고서  각종 수호신과 우상들을 섬겨왔는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선택입니다. 각종 우상들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이기적인 세상,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신앙을 떠난 백성들의 영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음란한 퇴폐문화가 만연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뼈 아픈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작은 산들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3:22b-2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3:22b); 선민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나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란 자신을 만든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인생을 의와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은 오로지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43:10-11, 44:24, 3:22b). 그와 같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던 이방인들의 수호신과 우상들이 환난의 때에 전혀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는 허무한 존재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이제부터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2)  작은 산들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3:23a);

1)    가나안 일대에서 원주민들이 주로 으뜸신으로 섬기고 있는 신이 농사와 풍요의 신인 바알입니다. 바알 신당은 주로 높은 산 위에 있으며 기타 일월성신과 우상들을 섬기는 산당은 작은 산 위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해 동쪽 모압의 땅에서는 높은 브올 산위에 바알 신을 섬기는 큰 제단이 있으므로 그 이름을 바알브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5:3).

2)    그런데 백성들이 높은 산에서 풍년을 기원하면서 바알 신에게 절을 하고 나서는 2부 순서로 축제를 벌이는데 그것이 음란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25:1-3). 신들의 세계에서는 인간들의 제사를 받고서 그들의 땅에 풍년을 주기 위하여 농사신인 바알이 미의 신인 아세라와 합방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풍성한 열매를 이 땅 위에 가지고 오기 위해서는 제사를 드린 여자들이 바알을 섬기는 여사제가 되고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씨를 뿌리는 육체적인 의식을 행하게 됩니다.

3)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음란한 행위입니다(25:3).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가정의 질서를 송두리째 혼음(混淫)으로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2:20-25, 6:1-3).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방의 수호신을 자신들의 신으로 받아 들인 선민들이 적의 침입을 받자 산 위에 올라가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수호신들은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머리와 손으로 만든 수호신들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의 환난을 진압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것들은 그 제작자인 사람보다 결코 그 능력이 뛰어나지를 못한 것입니다(44:9-11).

(3)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3:23b);

1)    이방인의 수호신이나 우상들이 국난을 극복하게 하지도 못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줄 수도 없다고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면 재빨리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늦어버리게 되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모두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3:23b).

2)    여기서 이스라엘의 의미는 다음 세가지를 모두 포괄한다고 하겠습니다; ①첫째,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10지파와 그들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②둘째,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구성원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③셋째,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지니고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자손들이 되고 있습니다(4:16).

3)    그러한 관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새 예루살렘성의 12성문이 여전히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각 성문의 초석에는 12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21:12-14). ②둘째, 새 예루살렘성의 성문으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의인의 수조차 12지파에 각각 12,000명으로 기록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7:4-8).

둘째로,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3:24-25a);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3:24);

1)    그 옛날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밀파한 적이 있습니다. 탐지를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그 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악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13:32). 농사꾼들의 노력에 비해서 소출이 풍성한 땅은 옥토이며 진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반면에 노력에 비해서 그 소출이 형편없는 땅은 박토이며 사람들을 죽이는 땅입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영적인 측면에서 그 땅의 백성들과 가축들을 죽이는 땅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의 백성들이 청년의 때부터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들의 땅이 생명을 삼켜버리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3:24b). 결국 약속의 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땅 자체가 아니라 백성들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도 우상과 귀신의 땅으로 바뀌게 되면 그것은 생명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여호와 앞에 수치스러운 그 우상을 백성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참으로 편리한 신인 줄 잘못 알고서 섬긴 결과 그들의 땅이 적군의 침략으로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3:24a). 생명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지 아니하시고 떠나 버리셨기에 세상적인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모두 적들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서 시작하여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거쳐서 그 주변의 이방민족들의 나라로 계속 퍼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25:29).

(2)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3:25a).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결과 어떠한 낭패를 당하고 있는지를 예레미야가 두가지 용어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수치치욕입니다(3:25a).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고자 당하게 되는 수치와 치욕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53:3-11, 22:63-65). 생명의 주인이시며 구원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사람의 욕심만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선택하여 섬겼으니 인재(人災)에 해당하는 전란(戰亂)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벧전2:20). 자신들의 죄 때문에 조국이 망하는 것이 수치입니다. 그리고 적들에게 붙들려 가서 종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 치욕의 역사인 것입니다.

셋째로,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3:25b); 조국이 망하는 수치와 적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치욕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 두가지 요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오래 전부터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타락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수호신까지 도입하여 그것을 주신(主神, main god)으로 섬긴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 나라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호와신앙을 사람들의 인위적인 종교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특히 그것은 여호와를 유일한 창조주로 섬기는 유일신론이 아니라 우상과 더불어 섬기는 범신론(汎神論, the theory of multi-god)적인 신앙생활을 말하고 있습니다(왕하17:31-33).

(2)  또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선지자의 소리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 율법생활을 영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생활이 아니라 역시 종교생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둘째, 창조주의 살아 계심과 그 역사하심이 계시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서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이 세상을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인식하고 사람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철학적인 사고의 기저(基底, 기초적인 바탕, foundation)도 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아무리 비옥하고 좋은 땅이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올바로 섬기지 아니하면 그 땅이 황폐화가 되고 백성들은 남의 나라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우상과 더불어 범신론적인 종교생활을 하거나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그 터전이 황폐화가 되고 그 민족이 수치와 치욕의 역사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끝까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겨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고 모두들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