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0강(렘4:5-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6월 10일(주일)
히스기야 왕 때에는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쳐죽이신 여호와께서 주전 586년에는 어째서 신바벨론 군대를 물리쳐 주시지 아니하시는가?
본문의 예레미야 예언은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의 종말에 관한 것인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큰 주제는 요시야 왕의 증조부인 히스기야 왕 때 예루살렘 성밖에서 나타난 신위적인 여호와의 그 큰 도우심이 어째서 요시야 왕의 아들들과 손자가 통치하고 있는 다윗왕조의 말기에는 전혀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죽이나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실망을 크게 하였으면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조차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이 속았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슬프다고 하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있겠습니까?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렘4:10).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먼저 망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는 자신들의 여호와신앙이 크게 다르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쪽에서는 단과 벧엘 두 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말하면서 일방인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왕국이 망할 때까지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왕상12:28-33, 왕하17:22-23).
그것은 그 옛날 출애굽 당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조상들의 죄악과 비교할 때 무려 갑절의 잘못을 여호와께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비추어 당연하다고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왕하17:5-6).
그들은 스스로 북쪽과 다르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섬기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전 701년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몰고서 쳐들어왔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간구를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적군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모두 진멸하시고 완전히 외세를 물리쳐 주셨습니다(왕하19:35).
산헤립 황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자기 나라로 도망을 쳤다가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왕자들의 반란으로 죽고 말았습니다(왕하19:36-37a). 훗날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이 왕이 되어 군사력을 강화하고 애굽까지 상당부분 정복하게 됩니다(왕하19:37b).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의 다윗왕조를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위력에 겁을 먹고서 결코 유다 왕국을 침범하지 아니합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히스기야 왕 때에 있었기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선민 유대인들은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지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 곧 유다 왕국의 말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자신만만합니다. 비록 서남쪽의 애굽과 동쪽의 신바벨론이 다윗왕조를 허수아비로 취급하고 있지만(왕하23:33-35, 24:10-17)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그들 외세는 모두 물러가고 말 것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왕하24:20).
따라서 그들은 국난을 당하게 되면 백성들에게 안심을 하고 여호와의 구원을 믿고서 모두 예루살렘성 안으로 피신을 하라고 다음과 같이 나팔을 불면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렘4:5-6).
그러나 이번에는 여호와의 결정이 다릅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멸망을 당하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렘4:7-9).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100년 전 히스기야 왕 때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로부터 구원해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문화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때 요시야 왕이 죽기 살기로 우상을 파괴하고 유월절 행사를 되살리는 등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했지만(왕하22:11, 23:3-23) 그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자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모를 지경입니다(왕하23:25-32). 애굽의 괴뢰정권이 아니면 신바벨론의 괴뢰정권만이 존재하면서 우상문화를 청산하지를 않습니다. 그 마음이 완전히 여호와께 돌아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침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시드기야 왕이 잠시 예레미야를 방문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국난을 면할 수가 있는지 그 방법까지 들었지만 국가정책에 전혀 반영을 하지 아니하고 맙니다(렘38:14-28). 강경한 매파의 주장과 무조건 여호와께서 외적을 물리쳐 주신다고 강조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주장에 현혹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지를 아니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호와의 신위적인 도움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렘4: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렘4:5);
1)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부는 경우에 대한 율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나팔 두개를 한꺼번에 불게 되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성막 앞으로 나아오게 되는 소집령입니다(민10:3). ②둘째, 하나만 불게 되면 이스라엘 군대의 천부장들만 나아오게 됩니다(민10:4). ③셋째, 나팔을 크게 부는 경우는 행진과 출발을 위한 것이며 조용하게 불 때에는 회중의 소집을 위한 것입니다(민10:6-7). ④넷째, 전투를 개시할 때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크게 불게 되면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며 승리를 주십니다(민10:9, 31:6). ⑤다섯째, 각종 절기의 제사와 월삭제사를 위하여 나팔을 불고 기쁜 날에도 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백성들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나팔의 소리입니다(민10:10).
2) 그와 같은 5종류의 나팔 가운데 여기에 기록된 것은 가장 처음의 나팔소리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모든 백성들을 황급하게 예루살렘성으로 모으기 위한 나팔이기 때문입니다(렘4;5). 예루살렘성에는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성막과 성전이 있습니다(대상15:29, 왕상8:6, 대하3: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적의 침략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가장 견고한 성입니다. 선민 유다 왕국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강한 외적이 침입하였으므로 우선 유다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을 유다의 땅에서 소개하여 모두 견고한 요새 예루살렘성으로 대피를 시키고자 하는 조치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청야전략’(淸野戰略, 백성들을 소개하고 들판의 농작물을 모두 태워 버림으로써 침략군에게 군량미를 전혀 제공하지 아니하여 스스로 물러가게 만드는 전쟁의 방법)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 때에는 그러한 모험을 감행한 결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막강한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적도 있습니다(왕하19:34-36).
(2)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렘4:6);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예언으로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북방에서부터 막강한 적군이 쳐내려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렘4:6b). 적병의 앞길을 다른 성읍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방법이 시온산성이 있는 예루살렘에 본진의 깃발을 세우고 정예병을 모아서 ‘수성작전’(守城作戰, 무조건 성을 지키는 병법을 말함)을 전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수용 가능한 만큼 전부 지체없이 예루살렘성으로 피신을 시키는 것입니다(렘4:6a). 요컨대, 예루살렘성을 둘러싸고서 사방 골짜기에서 포위하는 적병들이 지쳐서 소득 없이 물러가기를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작전이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과연 통하게 될까요?
둘째로,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 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렘4:7-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 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렘4:7);
1)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하려고 북방에서 사자와 같이 강력한 적군을 불러 들이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순조롭게 출정을 하고 있으며 장차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할 것입니다(렘4:7a).
2) 그 결과 유다 왕국의 방방곡곡은 성읍들이 초토화가 될 것이며 백성들은 피난을 가버리고 텅텅 비게 되는 것입니다(렘4:7b).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고지대의 요새에서 끝까지 저항하게 되는 유다 왕국의 정예병들과 전투를 벌일 것인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그 점을 이제 예레미야가 예언하고자 합니다.
(2)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렘4:8);
1) 유다 왕국의 선지자인 예레미야 역시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도자 모세처럼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출32:11-14). 그러나 우상문화를 청산하지 아니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죄가 너무나 큽니다.
2) 더구나 여호와마저 마치 우상처럼 여기고 자신들의 편리한 종으로 부리려고 하는 교만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부디 자신과 함께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용서를 바라는 석고대죄(席藁待罪, 거적을 깔고 엎드려 처벌을 청하며 동시에 용서를 바라는 것)를 하자고 제의하고 있습니다(렘4:8a). 그러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다윗왕조를 없애 버리시겠다고 하시는 그 결심을 돌이키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렘4:8b).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렘4:9);
1) 여호와의 말씀을 먼저 듣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이 무겁기 그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제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버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렘4:9a). 따라서 예레미야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렘4:9b). 그는 주전 627년에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후부터 무려 41년 동안 조국인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멸망을 당할 때까지 여호와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여전히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습니다(렘28:1-17). 선민들은 자신들의 우상문화와 죄악된 사회를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하는 의지가 없습니다. 요시야 왕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18년 동안 우상을 철폐하고 전국적으로 유월절 행사를 부활시키는 등 엄청난 개혁을 했지만 그가 죽고 나자 전부 헛수고가 되고 만 것입니다(왕하23:28-32).
3) 한 마디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여호와신앙의 회복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결국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할 것이며 그때가서야 유다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모두 경악을 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렘4:9).
셋째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렘4:10);
(1) 여호와 하나님의 확고하신 결정사항을 알게 된 선지자 예레미야는 통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말이 “슬프도소이다”입니다(렘4:10a). 그 다음에는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넉두리가 여호와께 가납이 되지 아니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답답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렘4:10b).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개인적으로 회심을 하고서 여호와신앙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구원과 평강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나라와 함께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너무한 처사입니다. 더구나 도매금으로 모두 적병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있는 불공정한 조치에 해당합니다.
2)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 주민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창18:23). 그러한 측면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지막 간청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래서 그런지 절망에 빠진 선지자 예레미야가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있는 그 말에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당장은 유다 왕국의 멸망을 철회하지 아니하시겠지만 그 후속조치를 두가지로 마련하십니다;
1) 하나는 신바벨론제국에서의 종살이를 70년으로 짧게 예정하십니다(렘25:12). 그 막강한 신바벨론제국이 주전 539년에 메대와 바사의 동맹군의 기습공격에 그들의 수도인 바벨론성이 갑자기 점령을 당하고 맙니다(단5:30-31).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가 전개되면서 초대 황제인 고레스가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는 고토로 둘아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라고 특혜를 주는 것입니다(스1:1-4).
2)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 훗날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셔서 복음사역을 통하여 대속의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국 유다 왕국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하면서 크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구원과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조국 다윗왕조의 멸망은 막을 수가 없었지만 예레미야의 마지막 간청에 대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긍정적인 역사가 있게 됩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유배생활이 70년으로 짧게 끝나고 먼 훗날에는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영생의 구원을 얻는 새 언약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렘31:33-34).
그와 같은 깊은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아무쪼록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끝까지 공부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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