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8. 23:47

너와 나의 공화국6(손진길 소설)

 

198312 17일 토요일은 겨울이지만 날씨가 화창하다. 주말이라 국회사무처에서 오전근무를 끝낸 강훈이 모처럼 술 한 병을 사서 들고 인근 여의도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친척집을 방문하고 있다. 연말이라 집안 숙부인 강하삼이 일찍 회사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 있다가 일가 조카뻘인 강훈의 방문을 반긴다;

강훈은 2달만에 찾아 뵙고 있는 집안의 어른이신지라 넙죽 강하삼 내외에게 절부터 올린다. 큰절을 받고 나자 숙모가 얼른 부엌으로 나가서 마실 것과 안주거리를 챙겨서 소반에 담아 내온다.  

먼저 강훈이 20살이나 연장자인 숙부 강하삼의 잔에 조심스럽게 술을 부어드린다. 그러자 강하삼이 술 주전자를 넘겨받아 집안 조카인 강훈의 잔에 술을 붓는다. 그리고 술잔을 들고서 말한다; “강훈아, 이렇게 적적한 우리 내외를 찾아주니 고맙다. 이 술잔을 비우면서 다사다난했던 금년 1983년이 잘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꾸나. 한해동안 수고 많이 했다… “. 

그 말씀을 듣고서 강훈이 약간 얼굴을 돌리고서 잔을 비운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숙부가 적적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미국 하와이에 유학을 떠나 있는 아들 내외가 보고싶으신 모양이시구나. 박사과정이라 여러 해가 걸릴 것인데… “;

강하삼의 아들 강지만은 강훈보다 4살 연하이다. 그는 명문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다음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모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한 다음 결혼을 하고서 작년에 부부가 훌쩍 하와이 주립대학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떠난 것이다;

강지만이 정치학을 전공한 것은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찍이 서울법대를 졸업한 부친 강하삼이 의원비서관을 지내다가 젊은 나이에 고향에서 출마하여 그만 낙선을 했기 때문이다. 강훈도 고향에서 중학생 시절에 일가 숙부 강하삼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한 것을 보았다;

그 후 강하삼은 정당에서 전문위원으로 오래 활동을 하다가 수년 전에 그만두고서 지금은 조그만 오퍼상을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보다 괜찮은 수익을 내고 있어서 과감하게 아들 내외를 하와이로 보내어 박사학위를 하도록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훈이 숙부 강하삼의 빈 잔에 술을 채워드리면서 말한다; “저는 일찍이 숙부께서 국회사무관시험을 한번 보도록 해보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덕분에 국회직원이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숙부님의 지도편달의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자 강하삼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내가 해준 것이라고는 그저 국회사무처에서 간헐적으로 일반직 공무원으로 사무관을 뽑는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고 알려준 것 뿐이야. 그런데 그 말을 기억했다가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은 순전히 강훈 네가 잘 나서인 것이지, 하하하… “.

개인적으로 강하삼은 강훈의 9촌 숙부이다. 그는 머리가 총명하여 고향에서 중학을 졸업한 다음 대구의 명문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다음에는 재수를 하여 서울법대에 합격을 한 인물이다. 지방 소도시인 고향에서는 이제 판검사가 한사람 나게 되었다고 입들을 모았다.

그런데 그는 사법고시에 몇 번 낙방을 하더니 그만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정당에 들어가서 의원비서관생활을 한 다음 젊은 나이에 고향에서 출마하였는데 두번이나 낙선을 하고 만다. 그래도 정치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정당에서 전문위원으로 지내다가 종래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친구로부터 오퍼상의 일을 배워서 독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수년간 착실하게 경영한 결과 오퍼상의 수익성이 좋다. 이제는 여의도에 아파트도 장만하고 아들내외도 결혼을 시켜서 미국 하와이에 유학까지 보내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면 그 정도의 경력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다. 강하삼은 그 정치적인 인맥이 참으로 화려한 것이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신군부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줄이 닿아 있는 정계와 관계의 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그것은 순전히 강하삼의 출신 고향, 학력, 그리고 정치경력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강훈은 본래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1970년대 중반에 국영기업체에 들어가서 회사원생활을 했다. 그는 서울공대만 졸업하면 좋은 대우를 받고 회사원이 되어도 미래가 창창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다니던 국영기업체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관료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인사부와 재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공대출신은 설혹 명문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장기판의 졸의 신세이다. 그것을 보고서 외유내강의 성품을 지닌 강훈이 견디지를 못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만다.

그는 군대도 방위병으로 일찍 다녀왔기에 당시 젊은 객기에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행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앞뒤를 크게 따지지 아니하고 밀어붙이는 강훈이므로 그가 그 옛날 청운의 꿈을 키우던 고교시절을 생각하면서 다시 대구로 가서 공부를 시작한다.

강훈은 사시, 행시, 외시 등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생들이 주로 공부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의 고시반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후배들과 함께 고시준비에 전념한다;

 그러한 시기에 우연히 명절날 고향에 들렀다가 고향방문을 한 일가 숙부 강하삼을 만난 것이다.

강하삼이 집안 조카인 강훈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국회에서 전문위원을 지내고 있는 서울법대 동창생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요즈음 국회사무처에서는 일반직 사무관시험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 시험에 합격하면 훗날 국회전문위원이 될 수가 있다고 해. 그건 참으로 좋은 차관보 자리인데… “.

그 말을 듣자 강훈이 질문한다; “숙부님, 그런데 그 입법부의 고시를 치르자면 무슨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요?”. 강하삼이 즉시 답변한다; “나도 관심이 있어서 물어보았지. 그랬더니 행정고시와 비슷한데 다만 정치학과목이 더 들어간다고 하더라. 그러니 행시를 준비한다면 입법부 고시도 한번 도전해볼 만 하겠더라… ”.

참으로 좋은 정보이다. 따라서 강훈은 그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정치학공부도 했다. 그래보아야 대구 동인동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 정치학 전공서적을 한권 구하여 여러 번 읽어본 것이다;

그런데 고등고시라고 하는 것이 사람에게 인연이 있어야 합격이 되는 것이다. 강훈이 경험한 것은 분명히 그러하다. 그는 고시공부를 시작한지 단 4년만에 입법고시에 합격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강훈이 공대공부보다는 정치학이나 행정학 공부를 더 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적성과 장기가 그것인데 그는 그것도 모르고 학창시절에 이과공부와 공대공부를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따라서 입법관료로서 강훈은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나름대로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일가 숙부 강하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