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8. 13:31

너와 나의 공화국5(손진길 소설)

 

198312월 초순이 되자 벌써 연말 분위기가 시작되고 있다. 여의도 국회도 내년도 예산안이 122일에 무사히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가결되어서 그런지 직원들이 점점 연말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특히 직접 회의장에 들어가서 종사하는 직원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망년회를 겸하여 연말에 친구들을 만날 약속을 미리 잡느라고 바쁘다;

강훈은 여전히 입법조사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직무는 직접 회의장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보좌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는 과거 상임위원회에 근무하던 때와는 달리 12월이 되자 느긋하게 연말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그러한 시기에 느닷없이 친구 이상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의 전화를 받으면서 강훈은 참으로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묘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고 있다. 그 이유는 강훈이 이상하와 친구사이가 된 것이 상당히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 1학년 때 공릉동 하숙집에서 만난 사이인 것이다.

당시 교양과정부에 다니고 있던 시절이라 공대생 강훈과 문리대생 이상하가 같은 하숙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었다. 더구나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두사람은 많이 친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1학년이 끝나자 이상하는 문리대가 있는 동숭동으로 떠나가고 말았다. 그후 간간이 만나는 친구사이가 되고 만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자 우연히 그들의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재작년에 강훈이 경제관계 위원회가 여럿 자리잡고 있는 의사당 건물 4층에서 한 층 내려와 재무위원회가 있는 3층의 복도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를 부르는 생소한 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 이거 강훈이 아니냐? 네가 강훈이 맞지?... “;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10년전에 같은 하숙방에서 생활하던 이상하의 얼굴이 보인다. 반갑기도 하고 또한 기이한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다가가서 얼른 물어본다; “이거 이상하가 아닌가? 네가 이곳 의사당 복도에 서있다니 어쩐 일인가?... “.

여의도 국회라고 하는 곳이 일반인에게는 그렇게 친숙한 곳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자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라고 알려지고 있지만 막상 유권자인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만나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이상하는 신사복을 입고 있는데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아니하게 서류보따리를 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얼른 강훈이 속으로 짐작한다; “이상하가 공무원인 모양이구나. 경제관계 위원회에 출석하여 답변하는 장 차관급 정무직을 보좌하는 행정부직원의 신분인 것이야!... “.

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교양과정부 때 만나고 십년의 세월이 지나서 다시 우연히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그날 두사람은 간략하지만 서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강훈이 짐작한 그대로 이상하는 행정부 공무원이 되어 있다. 국세청에서 주사로 일하고 있는데 고참이 되자 실무경력을 인정받아 이제는 국회에 출석하는 청장을 보좌하는 실무진이 된 것이다.

문리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가 어떻게 국세청에 들어간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딱히 그 점을 강훈이 물어보기가 어려워서 그의 입만 쳐다보자 이상하가 먼저 말한다; “, 강훈아 너는 어떻게 공대출신이 입법부의 사무관이 되어 있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사정이 안 좋아져서 빨리 취직을 하느라고 국세청이 실시하는 7급 공무원시험을 보았어… “;

그 말을 듣자 강훈이 고개를 끄떡인다. 역사학을 계속 공부하여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고 교양과정부 시절에 자신의 장래계획을 말하던 이상하이다. 그렇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과정을 모두 공부하자면 긴 세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상하가 집안형편상 그 길을 포기하고 얼른 공무원이 된 것이리라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상하이다. 따라서 계속 설명을 한다; “나는  근무 도중에 1년간 고향에서 방위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벌써 7년째 국세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제는 호봉이 높아서 주사생활도 괜찮아. 나중에 진급시험을 보아 사무관이 되면 좋겠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 “.

그때부터 이상하는 국회에 들리게 되면 시간이 나는 대로 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 강훈을 찾고 있다. 역시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하이다. 그래서 그는 본래 역사학을 전공한 것이리라     

19831210일 토요일 저녁에 강훈이 마포에 있는 돼지갈비 식당에서 이상하와 만나고 있다. 강남에 살고 있는 강훈과 강북에 살고 있는 이상하가 서로 만나기 편한 중간지점을 선택하다가 보니 마포로 결정이 된 것이다.

두사람은 고향이 경북에 있는 소도시이다. 강훈의 고향은 바다가 가깝고 이상하의 고향은 내륙이다;

 그런데 신군부 시절 제11대 국회에서 두사람이 다시 만났기에 자연히 대화의 한자락을 신군부의 리더인 전대통령과 그의 절친인 노장관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때 강훈이 이상하에게서 참으로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상하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 것이다; “훈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고향이 성주이다. 그런데 우리 이웃에는 유명한 장군 집안이 살고 있어. 이규동, 이규승, 이규광이라는 3형제인데 그 가운데 첫째와 셋째가 전부 장군 출신이지… “.

그 말을 듣자 입법관료인 강훈이 눈을 반짝이면서 급히 묻는다; “그 사람들은 전대통령의 장인과 처삼촌들이 아닌가? 처가가 성주 이씨라고 하더니 상하 너의 고향 이웃사람이 그들인 모양이지… “.

그 말에 이상하가 기분 좋게 취했는지 고개를 끄떡이면서 호기스럽게 대답한다; “그렇지. 그들 3형제는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진작에 육사로 들어갔어. 그런데 묘하게도 장자인 이규동 장군의 부관인 당시 전두환 중위가 이장군의 딸 이순자와 결혼하게 된 것이지.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말이야… “;

무엇이 놀라운 일일까?궁금하여 강훈이 이상하의 말을 경청한다. 그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61년에 5.16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이틀 후에 돌연 800여명의 육사생도들이 동대문에서 시청 앞까지 시가행진을 하면서 쿠데타 지지를 한 특이한 일이 발생했어. 그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쿠데타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고 해… “;

갑자기 말을 끊고서 이상하가 강훈의 얼굴을 바라본다. 강훈의 표정이 상당히 궁금해 하는 것을 보고서 그가 개구장이처럼 말을 이어간다; “당시 쿠데타 주역인 박소장이 궁금하여 그 시가행진이 누구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한번 알아 보라고 지시했다고 해. 그 결과 서울 문리대에서 ROTC교관으로 있는 육사11기 출신 전두환 대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 강훈은 깊은 생각에 빠지고 있다; “분명 처음의 인연은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박대통령이 군부의 동향을 여과없이 파악하기 위하여 사조직을 만드는데 있어서 충성심이 강한 전두환을 사용한 것이겠지. 그는 육사시절 축구부 주장을 하면서 나름대로 지도력이 있는 인물이었거든… “;

그날 강훈이 이상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바로 그 이야기이다. 그런데 강훈은 어떻게 그 이상의 많은 비화를 당시에 알고 있는 것일까? 정치부기자인 그의 친구 이민욱도 그 점을 못내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