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4. 02:43

너와 나의 공화국2(손진길 소설)

 

강훈은 1960년대 후반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에 4인회 멤버들을 만났다. 경북지역 작은 도시의 중학교를 졸업한 강훈은 청운의 꿈을 품고 과감하게 대구에 있는 명문 K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입학원서를 제출하였다. 입학시험을 잘 보았는지 합격이었다. 집안에서는 큰 경사가 났다고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셨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에 향우회에 참석하였다가 거기서 세 친구를 만난 것이다. 이민욱, 나아문, 조영백이 그들인데 모두가 고향에서는 진작에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친구들이다.

그들 가운데 강훈이 특별히 친한 친구는 사실 조영백이다. 왜냐하면, 두사람은 고향에서 같은 중학교를 다닌 동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훈과 조영백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서로 차지하고자 선의의 경쟁을 한 사이이다. 그리고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두사람은 참으로 좋은 동무로 지냈다. 그 이유는 강훈이 볼 때에 조영백의 심성이 매우 착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내의 향우회 모임에서 강훈과 조영백은 고향에 있는 다른 중학교 출신인 이민욱과 나아문을 만났다. 그들 두사람의 소문은 고향에서 진작부터 듣고 있었다. 그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의 자리를 두고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두 학생이 바로 이민욱과 나아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 4명이 대구에서 최고의 명문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K고등학교에서 서로 만난 것이다. 당시 그들은 의기투합을 했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 동향인 4명이 만났으니 열심히 공부하여 함께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자. 그것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울러 고향의 명예를 빛내는 길이다”.

시골 소도시 출신인지라 대구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4친구가 열심히 공부에 매진을 했다. 그 결과 그 어렵다고 하는 서울대학교에 전원 합격을 하여 고향에서는 큰 경사가 났다고 야단이었다. 1970년대가 시작이 되자 그러한 경사가 났으니 모두들 엄청 좋아한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은 녹록하지가 아니했다. 그들은 모두들 집안형편을 생각하여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여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릉동에 있는 서울대학 교양과정부에서 공부하면서 저녁에는 과외선생으로 나섰다. 다행히 서울대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과외알선을 해주고 있어서 생활비까지 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강훈이 친구인 조영백의 선량함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대학 1학년 때에 경험하게 된다. 공릉동에서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2학기가 시작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 조영백이 식사자리에서 강훈에게 자신의 뼈아픈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 것이다; “강훈아, 나는 1학기 동안에 열심히 과외를 하여 돈을 모았다. 그것으로 2학기 등록금을 내었지.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고향에서 아버지가 또 내 등록금을 대학교 본부에 납부하고 말았어. 이중으로 납부가 된 것을 알고서 내가 급히 대학본부 경리실에 찾아가서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반환이 불가능했어행정절차상 구제방법이 없다고 하네… “;

깜짝 놀란 강훈이 급히 물었다; “어째서 그것이 불가능하지. 이중납부가 된 것을 확인하게 되면 당연히 반환해 주어야 되는 것이 맞는 것인데그 이유가 진짜 무엇이야?”. 조영백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몇 천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등록금 전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더구만. 그러니 내가 단념을 하고 말아야지 어쩔 도리가 없어… “.

그 일이 있고나서 조영백은 하숙집을 떠나 입주과외에 들어가고 말았다. 서울의 변두리 공릉동을 벗어나서 시내 성북동 부잣집으로 가정교사가 되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2학년이 되자 강훈은 공대 응용물리학과에 다녀야 하기에 공릉동 공대 캠퍼스에 남고 조영백은 문리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기에 동숭동 캠퍼스에 다니게 되어 서로가 더욱 떨어지게 되었다.

강훈은 간혹 서울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에는 조영백에게 연락하여 그를 만나곤 했다. 그렇지만 3학년이 되자 그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철학도인 조영백이 다른 선택을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다음과 같이 절친 강훈에게 말했다; “훈아, 나는 철학도 좋지만 이제부터는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면 내가 검사가 되어야 하겠어. 그러니 앞으로 3-4년 동안은 나를 만나기 힘들 것이야. 강훈, 그렇게 알고 부디 내 앞길을 빌어 주게나… “.

그날 헤어지면서 악수를 하다가 강훈은 조영백을 한번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3, 4년이 아니라 5, 6년이라도 기다려 주마. 부디 사법고시에 합격해라. 이중으로 납부가 된 대학등록금을 돌려받지 못하여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너이니 장차 검사가 된다면 그런 것도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조영백이 정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50명 합격자 가운데 당당하게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으며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좋아서 검사가 된 것이다. 고향에서는 그 낭보에 부모님이 잔치까지 열었다;

하지만 검사생활을 3년간 하고서 조영백이 갑자기 법복을 벗었다.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면서 큰 결심을 하고서 변호사생활을 새로이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조영백에게 있어서 작년에 발생한 큰 변화이다.

그것을 보고서 절친 강훈이 내심 생각하고 있다; “검사가 되어도 사회정의를 바로잡기가 힘든 모양이군. 역시 철학도 다운 선택이야!... “. 그렇게 짐작한 강훈은 변호사가 된 조영백에게 더욱 인간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4인회 모임이 있는 날이면 강훈은 절친 영백이를 만나고자 언제나 달려나가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고등학교 동문이면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출신인 이민욱이 자주 강훈의 사무실을 찾아오고 있으며 어느 사이에 두사람은 절친이 되고 있다. 사실은 두사람의 관심사항이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공대 응물과 출신인 강훈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도중에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서 입법고시에 합격하여 여의도 국회에서 입법관료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공대 출신이 한국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현장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속내용을 살피고 있으니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부기자인 이민욱이 국회를 출입하면서 동향인이며 고교와 대학 동기인 강훈을 자주 찾고 있다. 물론 이민욱이 강훈을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속내가 그의 뛰어난 정치적인 견해 때문이기도 하다;

입법관료인 강훈의 정치적인 식견이 정치부에서 이름난 기자인 이민욱과 비교하여 별로 뒤떨어지지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강훈은 색다른 견해를 피력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신군부의 깊은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슬며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어디에서 그러한 고급정보를 얻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