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3. 07:54

너와 나의 공화국1(손진길 소설)

 

1.    그들 4인회 친목모임 상록회의 성격

 

때는 신군부가 집권하고 있던 1983년 서울의 여름이다. 무성한 가로수 잎 사이에 모습을 숨긴 채 매미가 무엇이 짜증스러운지 목청껏 울어 대고 있는 한낮이다. 그 날카로운 매미소리 때문에 여름날씨가 더 무더운 것만 같다;

여의도 국회 입법조사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관료인 강훈은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높은 창문을 통하여 국회 의사당 뜰 안의 푸르른 나무들과 윤중로의 무성한 가로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벌써 국회 사무관으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훈은 경제관계 상임위에서 입법조사관으로 지난 3년간 바쁘게 지내다가 작년에 입법조사국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순환보직인사이다;

요직으로 손꼽히고 있는 상임위원회 직원으로 근무하기를 입법관료들이 선호하고 있으므로 일정기간이 되면 위원회 직원을 입법조사국으로 전보발령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입법조사국의 업무가 한직에 속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슈를 먼저 파악하여 관련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레포트를 작성하여 정기적으로 입법관련정보지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직무가 상당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강훈의 경우에는 경제관계 상임위에서 입법조사관으로 벌써 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기에 나름대로 경제관계 이슈를 잘 다루고 있는 편이다. 오늘도 사무관인 강훈은 한참 자료를 찾아서 정리를 하다가 졸음이 올 듯하여 창문가로 걸어가서 바깥 풍경을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그때 그의 데스크에서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다. 강훈은 천천히 걸어가서 전화기를 집어 든다. 반갑게도 수화기 너머에서 고향친구이자 절친인 이민욱 기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 강훈아, 잘 지내고 있냐?”.

동아일보 정치부기자인 이민욱은 국회출입기자로 벌써 여러 해 일하고 있다. 그는 업무상 의사당 내에 있는 출입기자실에 정기적으로 들리고 있다. 그때마다 틈만 나면 사무실로 강훈을 직접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만큼 친한 사이이다.

지난 주초에도 강훈의 방에 들린 바 있는 이민욱이 새삼스럽게 안부를 묻고 있다. 그것이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퍼 보이지만 그래도 이민욱의 매력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엘리트 정치부기자인 그가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 영락없이 시골뜨기이다. 게다가 그의 외모도 별로 세련되어 보이지가 않는다.

더구나 그의 덩치가 제법 크다. 손도 두툼하다. 한마디로 곰과 같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이민욱 기자가 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쓴다. 특히 한국의 정치상황을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는 그의 글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그는 머리가 좋은 것이다.

경상도 시골 출신인 그가 서울대학에 합격하여 정치학을 전공한 것을 보면 한마디로 수재이다. 이민욱은 대학을 마치자 군을 다녀온 후에 곧바로 신문사에 들어가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정치판의 정보수집과 분석에 뛰어난 것을 보고서 신문사에서는 진작에 그를 국회에 출입하는 정치부기자로 발령한 것이다;

신군부 정권이 출범한지 3년째이므로 모든 정치적인 정보가 보안사와 안기부를 거쳐서 언론기관에 넘겨지고 있는 시절이다. 그러한 시기에 이민욱 기자가 나름대로 정보수집과 분석에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요인들과 안면을 트고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하여 그의 고향 친구이며 절친인 사무관 강훈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요컨대, 이민욱이 지니고 있는 시골뜨기와 같은 외모 그리고 뚝배기처럼 구수한 인간미와 화술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이민욱의 첫마디가 변함없이 , 강훈아, 잘 지내고 있냐?”이다. 그래서 강훈도 반가운 김에 죽마고우를 대하듯이 꾸밈없이 대답한다; “민욱이구나. 이 더운 날씨에 너는 잘 지내고 있냐?”. 그 말에 이민욱이 빠르게 말한다; “우리 4인회 멤버들이 또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 영백이 하고 아문이는 다음주 화요일 저녁이 좋겠다고 하는데 너는 어떠냐?”

강훈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꾸한다; “그래, 나도 다른 일정이 아직 없다. 그러니 찬성이다. 그런데 장소는 어디로 생각하고 있냐?”. 이민욱이 금방 대답한다; “, 전번에 만났던 그곳으로 하자꾸나. 그곳이 조용하고 나름대로 보안이 잘 되고 있는 곳이거든… “.

강훈의 생각도 긍정적이다. 따라서 급히 동의를 한다; “좋다. 그러면 총무인 네가 이번에도 좀 수고를 해라. 벌써 한달이 되었으니 그곳에서 다시 정기모임을 가지면 되겠구나. 그런데 영백이와 아문이는 잘 지내고 있지?... “.

그 말을 듣자 이민욱의 반응이 빠르다; “그럼 내가 유선으로 벌써 파악을 했다. 모두들 별다른 일이 없더라. 그러면 그날 보자꾸나. 저녁 7시로 알고 오너라. 안녕, 이 형님이 너의 건투를 빈다. 하하하… “.

같은 나이이지만 석달이 빠르다고 하여 또 한번 형님이라고 으스대고 있다. 하는 짓이 꼭 동네개구장이 같다. 하지만 그것이 별로 싫지가 않은 것을 보면 강훈은 이민욱하고 상당히 친한 벗임이 틀림없다.  

고향도 출신 고등학교도 대학도 모두가 같은 인물이 기자인 이민욱, 입법관료인 강훈, 그리고 검사인 나아문과 검사 출신인 변호사 조영백이다. 그들 4사람이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친목모임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고급정보가 통제되고 있던 시절이라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매달 만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적인 발전과 국가의 공공적인 이익을 증대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개인적인 영달과 출세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끼리끼리 모색하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