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6. 08:21

너와 나의 공화국4(손진길 소설)

 

1983816() 저녁에 서울 강남의 S음식점 별실에서 4인회 모임을 가진 정치부기자 이민욱은 보름 남짓 지나자 엄청난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91() 새벽 330분경 대한항공 007편 민항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바다에 격추가 되는 대참사가 발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하여 831() 10시경 앵커리지에서 급유를 받아 서울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는 그 민항기에는 무려 269명이라는 인원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만 소련군의 공격으로 모두 바다의 고혼이 되고 말았다. 그 엄청난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이민욱 기자는 그 사건이 초래할 정치적인 파장을 짚어보느라고 바쁘다.

우선 그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측면을 짚어보니 다음 4가지이다;  (1) 첫째가 우리 정부의 대응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2) 둘째,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대책이 무엇인가? (3) 셋째, 소련의 전투기가 미사일을 발포한 이유가 무엇인가? (4)넷째, 한국의 정치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취재를 진행하다가 보니 첫번째 항목에서부터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입장이 소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가 먼저 한국정부로서는 당장 한달 후에 있을 국제의회연맹 제70차 서울총회와 5년 후에 있을 88서울 올림픽 개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을 서울로 불러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이번의 사건을 가지고 계속 소련을 비난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과의 군축회담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KAL기 격추사건이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도록 그 비난의 수위를 계속 하향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유엔의 무대에서 소련의 만행에 대하여 강하게 비난하다가 슬그머니 국제적 이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들이 있어서 그런지 소련의 자체 설명이 도리어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소련의 일방적인 설명에 따르게 되면, 한국의 대한항공 007편이 비록 민항기라고는 하지만 소련의 영공을 침범한 것이 사실이고 소련전투기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사할린 쪽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기에 스파이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격추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의 초점은 어째서 본래의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의 영공으로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불분명하다;

 따라서 군사전문가가 아닌 이민욱 기자는 일단 그 미스터리를 제쳐 두고 한국의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10월초에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 국제의회연맹 IPU의 개최를 염두에 두고서 그 문제가 소련과 공산권의 참석에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도록 신중하게 대처하였지만 결과는 그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공산권의 참석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뒤늦은 감이 있지만 102()부터 13()까지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의 IPU총회에서는 자유진영의 국회의원들이 소련의 만행에 대하여 새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것을 개최국인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이제는 그만하자고 만류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민욱 기자는 한국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는 신군부 세력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재삼 생각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육사 제11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사조직 소위 하나회가 그들의 뿌리이다.

그것은 본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박대통령이 제발이 저려서 효과적으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군부에 심어 놓은 사적인 친위부대의 성격인 것이다. 박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경호실장을 통하여 정식 4년제 육사 졸업생인 11기 가운데 충성심이 강한 인물들을 물색하여 그들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박정권의 도움으로 진급에 있어서 선두주자가 된 그들은 후배들을 포섭하여 박대통령의 친위세력을 비밀리에 구축한 것이다. 그것이 이름하여 하나회인데 그들이 운이 좋아서 박대통령 사후에 무력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군부의 뿌리가 되고 있는 하나회는 그 구성원 대부분이 국방이라고 하는 군인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기 보다는 정치권력을 넘보고 탐하는 소위 정치군인의 성격을 크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민욱 기자의 생각은 서울 IPU기간중인 109() 한글날 미얀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테러사건을 취재하면서 더욱 굳어지고 있다. 그 옛날 버마라고 불린 미얀마는 독립투사인 아웅산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으로 제국주의 세력을 물리친 찬란한 건국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얀마를 공식방문하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행사장으로의 출발이 늦었다. 그것이 폭탄테러를 모면하게 된 행운을 가지고 온다. 그렇지만 먼저 행사장에 도착하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던 정부요인들이 폭탄테러로 인하여 대거 희생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던 쌍두마차 김재익 경제수석과 서석준 경제부총리를 비롯하여 애석하게도 한국의 각료와 정책실무자 그리고 수행기자 등 17명이 그 자리에서 순직하고 말았다. 전대통령은 급히 귀국하여 사후수습에 나서고 있다.

그 소식을 국민에게 전달하면서 언론인들은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그 이유가 미얀마 정부의 조사결과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그것이 아니다. 86년 아세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북한에 대하여 최대한의 인내를 보이자는 것이다.

그 대신에 거국적으로 순국한 인사들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민욱 기자는 권력 맛을 본 신군부의 인물들이 이제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소극적이며 비겁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무혈진압을 서슴지 아니했던 광주사태와 비교하면 정반대인 것이다.

그와 같은 자신의 소회를 비밀모임인 상록회에서 표출하였더니 앞자리에 앉아 있던 강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다음과 같이 그를 만류하고 있다; “민욱이 자네의 판단이 맞아. 정치학적으로도 그것은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지.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동족 간에 다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른 방법으로 북한정권을 변화시켜야만 해. 이제부터 그 방법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야… “.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만 그때부터 그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상록회 안에서 계속 토의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귀추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