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5강(렘3: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8. 21:06

예레미야 강해 제15(3: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65()

 

역사적인 처벌 다음에 찾아오고 있는 여호와의 긍휼과 구원의 은혜는 무엇인가?(3:11-15) 그에 대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150년 전의 선지자 호세아 및 100년 전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닮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1:1-11, 11:10-12)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미 100년 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遺民)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3:11-15). 그 내용은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의 땅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의 자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긍휼하게 여기시고 구원을 주기 위하여 다시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언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기 전의 선지자 호세아와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크게 활약한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벌써 선포가 된 내용입니다(1:1-11, 11:10-12). 그러므로 여기서는 먼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북조 이스라엘 유민들에게 전하고 있는 시점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 옛날 선지자 호세아 및 이사야의 예언과 닮아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한 지 100년 정도가 지나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그 자손들에게 이제는 긍휼을 베풀 터이니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와서 구원을 얻으라고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3:12-14);

1)    여호와께서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일반백성들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이방 신과 우상을 과도하게 섬기며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육신적으로 퇴폐와 향락에 젖어서 살고 있기에 주전 722년에 이방인의 제국 앗수르에 의하여 그들이 멸망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왕하17:5-6, 21-23). 그것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이 된 선민들을 떠나 버리셨기에 발생한 역사적인 심판입니다(6:3-7).

2)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실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10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긍휼과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이제는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신앙으로 다시 나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때는 주전 722년이며 유다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시점은 주전 627년에서 주전 609년 사이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에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으며(1:2-3) 본 예언은 그가 요시야 왕 통치기간에 선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3:6).

(2)  둘째로,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가 그들의 죄악 때문에 망했는데 그들의 자손들에 대해서는 다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1)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제1장을 참조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다스리도록 위임을 하셨습니다(1:26-31). 그러므로 사람들은 being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doing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2)    그 정체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라고 하는 영적인 신분입니다(1:10). 그러나 그들이 이 세상에서 수행을 해야만 하는 일은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서의 직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제멋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선민의 나라를 처벌하시고 멸망을 당하도록 징계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3)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창조주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자녀로서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영벌로 심판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께서는 죄를 범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회개를 통하여 다시 구원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도록 대속자를 보내어 주십니다(19:25, 11:1-12, 3:13-17).

4)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영적인 타락에서부터 구원하여 영원한 심판을 면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5:27-29, 6:39). 그와 같은 사실을 벌써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당하기 전에 선지자 호세아가 예언하고 있으며(1:10, 2:1) 그리고 그 직후에는 예루살렘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1:1-12).

5)    그런데 그 두 선지자의 예언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훗날 그들의 자손을 돌이키시는 여호와의 역사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 역시 망하며 그들의 자손들 역시 구원의 대상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오심과 선민의 두 왕국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1:10-2:1, 11:1-12).

6)    참고로, 두 선지자의 글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게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고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11:10-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1:9-2: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3:11-12a);

1)    그 옛날 히브리성경을 한국어로 가장 먼저 번역하신 선교사님이 참으로 영감이 뛰어나십니다. 그 이유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해서는 여호와를 배역하였다고 말하고 남조 유다 왕국에 대해서는 여호와를 반역하였다고 달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다같이 ‘unfaithful’ 또는 ‘faithless’라는 동일한 의미이지만 배역’(背逆, 배신과 반역)반역’(反逆)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2)    반역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넘보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배역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크신 은혜를 저버리고 반역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배신행위에 반역의 죄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배역이라고 하는 죄질(罪質)반역보다는 더 나쁜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은혜를 배신하고 또한 그 자리를 이방 신들에게 넘기고자 반역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반역만 하고 있는 남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보다는 더 죄악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유다 백성들보다 더 의롭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3:11). 예를 들면, 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북조 이스라엘 영토의 북쪽 과 남쪽 벧엘에 각각 금송아지 우상을 설치하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섬기라고 강요했습니다(왕상12:26-33). 그 정책을 모든 이스라엘의 왕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7:22). 그토록 악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4)    이스라엘의 왕들은 아론 자손도 레위인도 아닌 자들을 제멋대로 제사장으로 발령하고 있습니다(왕상12:31). 그와 같은 우상숭배와 왕의 전횡이 바로 이스라엘의 배역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인들이며 선민들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니 먼저 이방의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남조 유다 왕국의 선지자인 예레미야에게 북쪽 사마리아의 백성들에게 그러한 여호와의 말씀을 먼저 선포하라고 하십니다(3:12a).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3:12b);

1)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긍휼과 사랑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를 본문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옛날 시내 산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영광은 천사들이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9).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이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혜긍휼입니다. 먼저 창조주이시기에 여호와께서는 선인 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본문과 관련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인 긍휼은 그 의미가 비록 죄악을 범한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영원히 징벌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긍휼은 사람이 주는 용서와 동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호와의 긍휼은 반드시 구원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임을 진심으로 여호와 앞에 돌아와서 고백을 한다면 그 신원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로서의 신분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한 지 100년이 지나자 여호와께서는 남조 유다 왕국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통하여 사마리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여호와 앞으로 이제는 돌아오라고 선포를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3:12b). 더 자세한 설명이 다음 구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3)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c);

1)    여호와를 배신하고 우상을 여호와의 자리에 세우고 섬긴 자들이 바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는 여호와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이방민족의 노예로 살도록 오래 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다시 회개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3:12ca).

2)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c)고 강조함으로써 다른 의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들인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그와 같은 여호와의 긍휼과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창조주 여호와 앞에서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것이 별로 실익이 없습니다. 그 모두가 여호와 앞에 배역한 종족들인데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여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한 맥락에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시대가 벌써 예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선 선지자들인 이사야와 호세아의 외침이 모두(冒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

(1)  은혜긍휼은 다른 것입니다.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모두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땅과 기후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해를 똑같이 비추어주시고 비를 동일하게 내려주시는 것입니다(5:45).

(2)  그러나 긍휼은 다른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여호와의 계명과 율법을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탐욕과 정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죄인됨을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정직하게 고백을 하고 도와 주시기를 간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3:13a)고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복하는 내용은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산으로 올라가서 바알 신을 섬기고 음란한 축제에 참석한 내용까지 눈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3:13b). 그와 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긍휼하심과 구원하심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3:13)이며 약속입니다.

(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비참한 사람의 형편을 눈 여겨 보십니다. 따라서 긍휼히 여기시고 이제는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물론 그 전에 대속의 그리스도를 만나 속죄의 은혜를 덧입도록 조치를 해주십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은혜가 회개한 죄인에게 개인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언약의 내용입니다(31:33-34).

셋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3:14-1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3:14a);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10지파나  참여하고 있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여호와의 은혜를 배신하고 우상을 심하게 섬기다가 끝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사실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이제 100년의 세월이 지났으므로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을 여러 이방나라에서 다시 불러 모아 여호와를 섬기며 살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의 보호자가 본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다시 기억하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3:14a).

2)    이미 중동 땅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혼혈이 되고 세상의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인들과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국이 그 옛날 여호와 앞에 범한 배역의 역사가 이방나라의 죄악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에게 다시 긍휼을 베푸시고 자신들의 잘못을 자복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겠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은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그리스도 구원의 새 언약이라고 하겠습니다.

(2)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3:14b); 비유와 상징의 수법이 대단합니다. 그 의미를 모두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풀이를 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수도가 사마리아입니다. 그곳에는 비록 혼혈이 되고 우상을 두루 섬기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북조 이스라엘의 후손들이라고 여기고 있는 성읍의 사람들이 있습니다(3:14ba). 그들이 이제는 여호와의 긍휼과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과 그 동네주민들에게 전폭적으로 복음전파를 하십니다(4:5-42).

2)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래 12지파입니다. 그들은 주전 930년경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으로 분리가 되고 맙니다. 그 이후 그들은 두개의 왕국을 가진 두개의 족속으로 변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장래에 두개의 족속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과 유다 왕국의 후손들을 돌이켜 시온 산으로 데리고 와서 다시 여호와를 섬기도록 만들겠다고 하십니다(3:14bb).

3)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두개의 족속으로 구별이 됩니다; ①하나는 선민 이스라엘이고 ②또 하나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들 모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며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의 시대를 미리 말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3:15); 구약의 시대를 넘어서서 벌써 선지자 예레미야가 신약의 시대를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일만에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십니다(20:1-18, 1:3-8, 28:18-20). 그 내용은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제자를 양육하는 목자의 삶들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긍휼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보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복음사역과 제자양성에 전력투구하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항상 영적으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와 같은 말씀을 명심하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임재를 영적으로 늘 체험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항상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