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2강(렘2:34-3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6월 2일(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하여(렘2:34-37);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역사적인 사실 몇가지를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렘2:34-37). 참고로, 그 가운데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는 이유와 그들의 마지막 외교가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이유까지 들어 있습니다;
(1) 첫째로, 민수기 제15장을 살펴보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그들이 입는 두루마기 옷단 귀에 술을 만들어 달고 청색 끈으로 연결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민15:38);
1) 첫째,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 (옷단의)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15:39). 그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본문에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상기를 시키고 있습니다(렘2:34a).
2) 둘째, 예레미야는 무죄하고 가난한 자의 피를 그 옷단에 묻히면서 선민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렘2:34b). 예레미야가 피해자들은 모두 무죄하고 가난한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밤중에 남의 담을 넘어 도둑질을 하다가 정당방위에 의하여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출22:2-3) 본문 앞에서 거론하고 있는 여러가지의 선민들의 죄악 때문에 희생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렘2:34c).
3) 셋째, 예레미야가 지적한 바를 앞절에서(렘2:30-33)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무죄하게 살해가 된 것입니다. ②사치와 향락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과정에서 약한 자들이 희생이 된 것입니다. ③이성문제를 가지고 다투다가 힘이 약한 자가 희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민수기의 율법적인 설명을 참조하면,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민15:39) 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2) 둘째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하여 크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긍휼하게 보시고 오래 참으신다고 하는 사실을 알지를 못합니다(롬9:22-24). 따라서 자신들은 무죄하며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들이며 선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렘2:35a, 눅18:11-12). 그와 같은 오해와 착각으로 인한 선민들의 교만한 죄악이 참으로 심각합니다(막7:6-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렘2:35b)고 선언하십니다.
(3) 셋째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국난을 당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웃나라를 우방으로 여기고서 원군을 요청하기에 급급합니다;
1) 예를 들면,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그 북쪽의 아람 왕국이 연합하여 남쪽으로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침략하였을 때에 유다 왕 아하스가 멀리 동쪽의 신흥 강대국 앗수르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왕하16:5-8). 그것은 한 마디로, 이리를 쫓아내려고 어리석게도 호랑이를 끌어들인 꼴입니다. 앗수르는 차제에 아람왕국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차례로 정복하고 맙니다(왕하16:9, 17:3-6). 그 다음에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왕하18:13).
2) 유다 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에 갇힌 채 죽기 살기로 항전을 하지만 도저히 앗수르의 대군을 막아낼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의 원군이 전술에 능한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대패를 하고 물러가고 맙니다(왕하19:8-9). 세상적인 모든 방법이 사라진 히스기야 왕은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서 그곳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께 눈물로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4-19).
3) 그 기도마저 들으시고 신위적인 방법으로 다윗의 성을 딱 한번 구원하여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왕하19:34-37). 그러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제멋대로 세상자랑을 하면서 우상을 섬기고 살아가게 되는 유다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입니다(렘2:36-37, 왕하20:12-21:11). 그 때문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1:12-16, 23:25-27). 그와 같이 가슴이 아픈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렘2:3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렘2:34a);
1) 모두(冒頭, 앞머리의 설명)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선민들은 두루마기의 끝자락에 구멍을 뚫고 청색 실로 술을 달도록 되어 있습니다(민15:38).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옷단의)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15:37-39).
2) 그런데 그러한 여호와의 명령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늠름하게 어기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나라의 백성들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난하여 힘이 약하고 죄가 없는 백성들이 선민들이 만든 ‘약육강식’(弱肉强食, 힘이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것)의 사회에서 희생이 되고 있으며 그들의 피가 선민들의 옷자락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렘2:34a). 그러한 사회현상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선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렘2:34b);
1)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이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가난하고 무죄한 자를 짓밟고 그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율법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인을 하더라도 죄가 없는 경우는 율법적으로 다음과 같이 세가지의 경우에 한정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①첫째, 밤중에 도둑이 담을 뚫고 침입을 한 경우입니다(렘2:34ba). 구체적으로, 주거를 침입한 자가 단지 절도만을 할 것인지 아니면 주인을 해치고 강도를 할 것인지 어두워서 전혀 알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도둑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가 율법적으로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출22:2). 그렇지만 그것도 날이 밝아와서 주거 침입자의 의도가 절도인지 아니면 강도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이 되지를 못합니다(출22:3).
3) ②둘째, 고의로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에 대하여 그 피살자의 가족들에게는 피를 보복할 수 있는 권리를 율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민35:21, 27-28). ③셋째,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전투에 참여한 경우입니다(민31:1-8). 그때에도 병사들은 일주일간 백성들의 진영 바깥에서 율법에 따른 정결의식을 거쳐야만 합니다(민31:19-20). 그 다음에 비로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민31:24).
4) 위와 같은 정당방위가 율법적으로 성립이 되지가 아니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선민들이 단지 상대방이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하여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있습니다(렘2:34bab). 과연 그러한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일까요? 먼저 본문의 앞 구절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고 있는 선지자들을 그 말씀이 듣기가 싫다고 하여 아예 죽여버린 것입니다(렘2:30). ②둘째, 이성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연적(戀敵)을 죽여버린 것입니다(렘2:33).
5) 다음으로 민수기 제15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그러한 악행을 자행한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십계명을 어기고 힘이 약한 상대방을 자신의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마음대로 죽인 경우입니다(민15:39a). ②둘째, 방종한 욕정에 사로잡혀서 사회적으로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민15:39b). 오늘날 한국사회의 소위 ‘미투(me too) 운동’도 그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는 그에 따른 피해자들이 자신의 인권을 되찾자고 하는 운동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렘2:35);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렘2:35a);
1) 앞절에서 예레미야가 지적하고 있는 선민들의 죄가 참으로 큽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그들의 사회에 임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렘2:35a). 예를 들면, 주전 722년에 같은 선민의 나라이지만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하고 있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제국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했습니다(왕하17:1-6). 그것을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의 죄악을 여호와께서 앗수르제국을 동원하여 심판하신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앗수르의 침입을 물리치고서 건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적군 18만 5천명을 몰살하시고 예루살렘성을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왕하19:34-36).
2)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 이후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의인으로 보시고 구원하여 주셨으며 지금도 의인들이므로 선민의 사회를 보호하여 주신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죄를 적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렘2:34).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심각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를 얼마나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사65:2, 롬9:22-24). 그만큼 영적으로 어둡고 세상적인 죄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윗왕조의 유다 백성들이라고 하겠습니다.
(2)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렘2:35b);
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여호와 앞에서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과 지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렘2:30-31). 자신들은 이방인들과 다른 선민들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이라고 온세상에 자랑만 하고 있습니다(렘2:35ba). 마음으로는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지 아니하면서 무늬만 선민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이 선민들의 관행과 전통에 의지하여 스스로 의인이며 구원을 받은 자라고 강조하고 있는 인위적인 종교생활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더 이상 두고 보시지 않으시겠다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를 하십니다(렘2:35bb). 요컨대, 여호와 앞으로 돌아 와서 신실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렘2:36-3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렘2:36a);
1) 세상에는 잘살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서 그저 세상적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부지런한 인간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정확하게 알고서 열심히 그 목적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여호와의 일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말씀 안에서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서 그 목적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렘2:36a)고 지적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부귀영화를 얻기 위하여 또는 입신양명을 도모하기 위하여 또는 가족들을 잘 부양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3) 약육강식의 사회 그것도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자면 남보다 더 부지런히 일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게 되면 세상에서 뒤쳐진 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남을 살리고자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으니 어떻게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직전의 사회적인 모습이라고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렘2:36b);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국인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외교적인 노력을 엄청나게 하겠지만 그 결과가 허무하며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은 벌써 역사적으로 두 차례 외국 강대국들에게 구원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①앗수르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②또 하나는, 애굽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다시 되풀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첫째, 앗수르에게 유다 왕국이 구원을 요청한 때는 아하스 왕의 통치 기간입니다. 그 당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아람 왕국이 연합하여 유다 왕국을 침입했습니다. 아하스 왕은 그들을 상대할 힘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는 강대국 앗수르에게 많은 보화를 주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왕하16:7-8). 그 결과 앗수르는 서진(西進, 서쪽으로 진출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신나게 아람왕국을 정복하고 이어서 이스라엘 왕국까지 정벌하고 맙니다(왕하16:9, 17:6). 그 정도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는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고 있는 유다 왕국을 침입한 것입니다(왕하18:13).
3) 둘째, 동방의 앗수르제국을 상대할 수 있는 나라는 서남쪽의 애굽제국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헤립의 군대의 내침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유다 왕 히스기야는 급하게 애굽으로 구원병을 보내어 달라고 사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산헤립 황제의 적수가 되지를 못합니다. 립나 전투에서 복병에 걸려서 대패를 하고 애굽으로 물러가고 맙니다(왕하19:8-9).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앗수르의 말발굽에 짓밟힌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은 왕도이며 철옹성인 예루살렘성에 갇혀서 결사항쟁을 하면서 마지막 방법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눈물로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4-19).
4) 그때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의 성을 한번 구원해주기로 결정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시고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앗수르의 원정군 18만 5천명을 몰살시키십니다(왕하19:32-36). 그런데 항상 구원을 얻은 그 다음의 선민들의 행동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인들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치시고 구원해주신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5)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여호와신앙을 본받으라고 구원해 주셨는데(왕하19:34) 선민들이 사무엘하 제1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윗의 눈물 어린 회개를 전혀 돌아보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삼하12:7-23). 잘못을 범한 다윗, 그러나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댣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선민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서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선민의 나라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3) “네가 두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렘2:37);
1) 세상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하게 되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방법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여호와 앞에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돌아오지 아니하며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구원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으므로 그 결과가 허망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여호와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회개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결과 선민들의 모든 군사적 외교적인 노력이 형통하지를 못하게 됩니다(렘2:37).
2) 아무리 왕과 신하들이 머리를 싸매고 살 궁리를 해보아도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이제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항복의 장소로 나아갈 따름입니다. 그곳에서 승전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은 잔인하게도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왕자들을 죽입니다(왕하25:7a). 그리고 포로가 된 다윗왕조의 중신들을 모두 처형합니다(렘52:10). 마지막으로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고서 바벨론으로 끌고가고 맙니다(왕하25:7b, 렘52:11).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승리를 얻으려고 부지런히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처참한 인생의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는 여호와의 엄중한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선민과 성도들의 첫번째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의 눈앞에서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신실한 신앙생활을 끝까지 영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시의 선민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서 제마음대로 약육강식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선민들이 이방인들처럼 이기적인 소원의 성취를 위하여 과도하게 우상을 섬기고 음란하고도 향락적인 호화사치에 빠져 있다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질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그들이 몸부림을 치더라도 세상적으로는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호와 앞으로 돌아와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서 그 옛날 다윗대왕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게 되면 왕국이 망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적장들 앞에 끌려 갈 따름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비극이 21세기의 조국과 한국교회에 다가오지 아니하도록 아무쪼록 나라를 구원하는 7,000명의 의인들이 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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