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6. 7. 03:57

제목;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1:20-30, 16:19-31)

설교일; 주후 202261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67일 화요일 작성)

 

저는 수년전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급히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슴에 통증이 있고 손과 팔의 감각이 무디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빨리 피검사를 하고 X레이 촬영을 하였는데 그 결과를 보고서 전문의가 작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스탠스를 삽입하여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심장으로 가는 혈관의 건강상태와 혈류의 양을 점검한 결과 아직 스탠스를 설치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혈류의 양이 40%정도 줄어들어 있는 상태이므로 전문의는 저에게 처방전을 줄 것이니 항상 약을 복용하고 일상생활에 있어서 각별하게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지금까지 가슴에 통증이 조금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무척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는 사이에 저는 자연히 하나의 깊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저의 경험이 오늘의 주제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저의 생각의 일단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수명이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사실 전문의가 조심 또 조심을 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심장근육과 그곳의 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주로 자율신경과 관련되어 있는 분야가 아닌가?... ”.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원자력발전소의 폐쇄회로인 Primary System과 같아서 아예 전체 발전소를 Shut down했을 때에나 수리할 수가 있는 분야이다. 그것은 사람의 경우에는 죽음과 부활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개 피조물이며 사람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

깊은 사색의 결과 마지막으로 얻게 되는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인 것을 능력과 지혜가 없는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용을 쓰지 말고 겸손하게 주님에게 맡겨드리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나는 이제 남은 인생 동안에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

참고로,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그때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소위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16:19-31)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 요지는 일단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형제들을 구원하는 일에 더 이상 관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비유의 말미에 요약되어 있기에 차제에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시니라”(16:31).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 한국나이로 고희 70세를 약간 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남은 세월이 얼마인지 나아가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인지 확실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저의 질문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해답을 자신이 개척한 빌립보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보내고 있는 권면의 말씀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본문으로 선택하고 있는 빌립보서 제1장 제20-30절 말씀의 내용을 요지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20절 말씀부끄럽지 아니한 인생, 주님을 존귀하게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2)  21절 말씀복음전파의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야 한다.

(3)  22절 말씀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한이다.

(4)  23절과 24절 말씀고난과 고통 가운데 빨리 천국으로 데리고 가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하지만 그 대답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5)  25절 말씀우리 함께 신앙의 성숙과 믿음의 열매의 풍성함을 얻도록 하자.

(6)  26절 말씀나는 풍성한 말씀의 종, 믿음의 좋은 멘토로 여러분에게 기억이 되고 싶다.

(7)  27절 말씀복음을 전파하고 함께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도록 하라.

(8)  28절 말씀영적인 대적자를 물리치라. 그러면 믿음 안에서 구원과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9)  29절 말씀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10)    30절 말씀내가 주님을 본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귀중한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1:20-22);

(1)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일까요?(1:20a) 그 내용이 사실은 빌립보서 제3장 제10-11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3:10-11). 한마디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 그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주님이 얻으신 영생의 부활을 자신도 얻고 싶다는 것입니다;

(2)  영생의 부활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해보면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36개월간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살아갔는데 그 기간에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형이 되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상급이란 복음전파와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삶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8:17-18, 22:28-30).

(3)  그와 같은 영적인 원리를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기에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생사를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주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부끄럽지 아니한 종으로 한평생을 살아가고 싶다(20절 의역). 그렇게 결심하고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도에게 주님께서는 이미 영적으로 임재하여 동행하고 계신다. 영적으로 내주 역사하고 계시기에 내가 죽더라도 주님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21절 의역)”.

(4)  그런데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사도 바울은 서방선교에 전념하여 초대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서 주님의 제자로 양성하여 현지에서 선교일꾼으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5)  그와 같은 세상적인 유익이 있으므로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주님께서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사용하실 것임을 사도 바울이 믿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사도 바울이 필요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때 주님께서는 바울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제22절에서 알기 쉽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생명의 주인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자신의 생사를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맡기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열심히 복음의 열매를 얻는 것이 옳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둘째로,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1:23-2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

1)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고통과 영적 정신적 고난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이 세상보다는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만 복음사역을 열심히 하다가 빨리 그 상급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3a). 따라서 그는 이방인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주님께 얼른 자신의 사역을 끝내고 천국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자주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1:23b).

2)    그렇지만 주님의 답변은 아직 이 세상에서의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이 더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24). 구체적으로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의 서쪽지역 곧 이태리의 로마에서 스페인의 다시스에 이르는 서유럽지역에 복음을 들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바울의 서신을 받아서 읽기를 원하며 어떤 이는 사도 바울에게 직접 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3)    세상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유익을 주기 위하여서는 아직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24). 따라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얻은 주님의 답변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4).

(2)  25. 내가 살 것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1:25-26);

남은 인생 가운데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익함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곳을 방문하게 되면 다시 만나는 성도 간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1:25b). 둘째, 세계선교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경험담을 직접 듣게 되면 선교에 동참하고자 하는 믿음의 진보가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25a). 셋째,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가 무엇인지 빌립보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자세하게 배우게 되면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이 풍성하게 되어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26).

셋째로,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1:27-30);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1:27); 사도 바울은 이방인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1:27a);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마태복음 제5장 제43-48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여 그 영혼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에 있어서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며 마치 원수처럼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복음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믿음의 성숙을 이루고 복음전파의 사역에 모두가 협력해야 합니다(1:27b).   

(2)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1:28);

1)    성도들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악한 영들을 미워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1:28a). 그 점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벌써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2)    악한 영들은 계략을 사용하여 성도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원수로 여기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분열과 대립을 버려버리고 그 대신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며 하나가 되어 진짜 원수인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성도들이 사랑으로 합심하게 되면 악한 영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싸워서 능히 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3)    그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벌써 드러나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가 자세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칠십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10:17-20).

4)    서로 사랑으로 합심하여 악한 영과 싸워서 승리를 얻게 되면 그 경험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옵니다. 악한 영들이 아무리 음모와 계략으로 성도들을 쓰러뜨리고자 획책하고 있지만 성도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신앙생활에 협력하고 있으면 주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하게 그 도전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악한 영들은 멸망의 대상이고 성도들은 구원의 대상이라고 하는 확신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1:28c).

(3)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1:29-30);

1)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제8장에서 두가지 사실을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고난 다음에 천국에서의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8:18). 또 하나는,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감수하며 시험을 물리쳐야만 하나님나라에서 큰 상급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8:17). 그와 같은 진리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현장에서 너무나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2)    따라서 그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빌립보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제자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과정에 스승이 경험하신 그 고난을 제자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감수한다는 것입니다(29). 그 점을 익히 알고서 사도 바울 자신이 세계선교에 임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과정이 그러합니다(1:30b).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각자 자신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함으로써 이 세상의 고난과 영적인 시험을 이기고 반드시 천국에서 영생의 상급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1:30a, 22:28-30)”.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말씀 그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험을 계속 당하는 것보다는 빨리 복음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복락을 누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 사명이 끝나서 영생의 부활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지는 생명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비밀입니다(1:7). 그리고 일단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복음전파는 물론 성도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유익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복음적인 많은 유익을 주고 싶다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반추하시면서 아무쪼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이 세상에 복음적인 많은 유익을 끼치는 삶을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