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4. 13:27

제목;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14:23, 1:9-18)

설교일; 주후 20225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24일 화요일 작성)

 

주후 90년대초에 마지막 사도로 알려지고 있는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자신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기록하여 세상에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4복음서로 불리고 있는 요한복음입니다;

그것은 크게 보아 기존의 공관복음과는 다른 3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그 작성의 시기가 크게 다릅니다. 공관복음 곧 마가, 마태, 누가가 작성한 복음서는 주후 60년대에 작성되어 그때부터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그보다 30년이나 늦게 작성이 되어 초대교회에서 공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기적으로 가장 나중에 사도 요한에 의하여 작성이 된 것입니다. , 마지막 복음서인 것입니다.

둘째, 작성지역과 독자가 다릅니다. 기존의 3개의 복음서는 주후 70년에 가나안 땅의 유대인 사회가 로마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기 이전에 유대 땅에서 작성이 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당시 선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유대교리와는 전혀 다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부르짖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하나님의 복음으로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흔히 3권의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요한복음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이방인의 땅 소아시아 에베소로 이주하여 벌써 2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낸 사도 요한이 헬라인과 로마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그들이 알기 쉽도록 재구성하여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이름을 공관복음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하는 의미에서 흔히 제4복음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셋째,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내용상 기존의 복음서를 크게 보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후 90년대초 사도 요한은 이미 80대의 노인입니다. 당시 그는 가장 오래 생존하고 있는 사도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는 젊은 시절 곧 주후 30년을 전후하여 36개월간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한 제자입니다. 이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옛날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정확하게 후세에 전해줄 수 있는 사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 가운데 기존 공관복음에서 빠져 있는 것들을 추려서 우선적으로 수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대한 엄청난 보완이라고 하는 큰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가 이상과 같은 특징만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제13장에서 마지막 장인 제21장에 이르는 기록을 살펴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지내시면서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 밤이 제자들과 함께 살아 생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그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중요한 교훈을 집대성하여 한꺼번에 수록하고 있는데 그것이 제14장에서 제1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2)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오늘 강해설교의 본문의 하나인 제14장 제23절에 들어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14:23).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영생의 구원에 들어가자면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와 같이 주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복음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내주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3)  그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계십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십니다. 그후 제자들을 다시 만나 40일간 재교육을 실시하십니다. 그 다음에 감람산에서 그대로 승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모습을 바라본 성도들이 그때부터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바쳐서 오로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4)  그 기간 동안에 말씀하신 주요내용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제20장 후반부와 제21장에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는 이제부터 진리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올바로 깨닫고 그것을 온세상에 전파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목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컨대,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방법론 곧 성도의 삶이 되고 있습니다.

(5)  특히, 요한복음의 결론 곧 제21장 후반부의 내용을 살펴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목자로 발령하시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은 세번이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너의 인생의 주인으로 알고)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때 부족한 베드로의 믿음을 강화하여 주는 하나님의 방법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첫째,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먼저 2차례 물었지만 베드로의 대답이 어정쩡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21:15-16).

2)    둘째, 마지막 세번째에는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있는 필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능하다고 사도 베드로가 힘있게 대답하자 주님께서는 다시금 내 양을 치라고 그를 최종적으로 목자로 발령하시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덧붙이고 계십니다(21:17-19).

3)    그것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이 각별하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제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뒤집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선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영생의 부활이라고 하는 인생의 승리를 얻으신 근거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그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치를 깊이 묵상하면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이치를 기록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요한복음 제1장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요한복음 제1장 제9-18절 말씀을 그와 같은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9-11);

(1)  사도 요한이 이 세상에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가 있는 진리의 빛이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9)라는 구절입니다.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이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인식이 되지 아니하고 있는 많은 빛들이 우주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이 세상에 도달한 빛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현상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에게 삶의 교훈과 모범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그것이 사도 요한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참 빛인 것입니다(9).

(2)  그런데  창조주가 이 세상에 와서 진리의 빛을 비추고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었지만 피조물인 사람들이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10-11).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1)    그것은 자신이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면 자신은 창조주의 종이 되어 한평생 살아가야 하기에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2)    제멋대로 자신의 뜻대로 한평생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자아성취의 욕구이며 자기실현의 야망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창조주의 뜻 만을 실천하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12. 영접하는 자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2-14);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12. 영접하는 자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1)    여기서 영접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보다 중요하고 우월한 존재를 사랑하여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옛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그러합니다(12:1-5, 15:6).

2)    비록 자신이 경험한 내용과 세상적인 판단으로는 그러하지가 아니하지만 자신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그 분이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인생과 사람들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시기에 기꺼이 그 분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15:6).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12. 영접하는 자그 이름을 믿는 자들의 의미입니다.

3)    달리 말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께서는 자신을 존중하는 자신의 종에게 상급을 주십니다(삼상2:30). 그것을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  

(2)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3);

1)    나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그 이름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의 뜻을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보다 우선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는 참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성도가 영생의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2)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복음은 만민구원을 위한 것이므로 피조물인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결코 선민 유대인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공평하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첫째,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1:13a). 여기서 혈통이라고 하는 것은 결혼에 의하여 대를 이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정이라고 하는 것은 혼외 자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입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세상적인 방법으로 대를 이어가는 제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방법에 의하여 씨족과 부족 나아가서 민족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4)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으므로 자칭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도 사실은 그러한 세상적인 틀에 갇히어 있습니다. 비록 그들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만 그와 같은 유대인들의 집단 이기적인 한계 때문에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복음과 함께 십자가 처형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5)    둘째,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3b).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짜 선지자는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말씀만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복음선포의 도구입니다;

6)    그와 달리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만든 말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을 구원할 수가 있다고 잘못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는 피조물인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있으므로 그 말에 창조주의 능력이 깃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자력 구원이란 근본적으로 원인 무효이며 그 자체 불능이라고 하겠습니다.  

(3)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1)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 바깥 천국에 보좌를 두시고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하여 외치게 하였지만 거짓선지자들의 방해로 그 열매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21:33-36). 따라서 마지막 방법으로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한 독생자를 구세주로 파송하고 계십니다. 그 방법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말씀의 성육신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a)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이 천국에서 수행한 업무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관장하는 업무가 바로 독생자 그리스도의 임무입니다.

3)    그러므로 올바른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계시를 주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라고 하겠습니다.

4)    사실 독생자’(獨生子, 피조됨이 없이 홀로 존재하는 자)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출애굽기 제3장 제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1:14b). 그렇지만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독생자가 이 세상에 모태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신분의 변화로 말미암아 구세주 그리스도가 이제는 창조주인 독생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1:5-6).

5)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겸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종으로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공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1:14c).

6)    여기서 은혜라고 하는 것은 종에게 주인이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종인 선지자에게 위탁한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진리로 알고서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15. (세례)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나타내셨느니라”(1:15-18);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15. (세례)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15);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태초에 온 세상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1-2:1). 그러므로 그 특징을 알기 쉽게 말하자면 온 세상 만물보다 먼저 계신 자라는 의미에서 선재성’(先在性)입니다. 그 점을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으로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2)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6-17);

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신 독생자를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독생자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그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제16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 곧 구원의 진리라는 사실을 믿고서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2)    구약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를 운영하는 율법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생활이 결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구원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나타내셨느니라”(1:18); 창조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4:24). 그러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시며 육신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도록 위탁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가 나타나고 또한 인간인 선지자의 주관적인 왜곡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계시자로 천국에서 창조주의 말씀을 주관하시던 독생자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여기서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나타내셨느니라”(1:18)고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세주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하여 누구나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로지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40일 후에 승천하여 천국으로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한평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영생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 점을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14:23). 그 깊은 의미를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오늘은 특별히 요한복음 제1장 제9-18절 말씀을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말씀을 여러 번 읽으시면서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파악하여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신실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시고 마침내 영생의 천국에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입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