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31. 07:34

제목;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2:5-11)(참조구절; 1:14-18, 3:10-16)

설교일; 주후 20226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31일 화요일 작성)

 

사도 바울은 제2차 세계선교에 나서서 오늘날의 터키 곧 소아시아에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과 주님의 영은 자꾸만 바울과 실라에게 서쪽에 있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강권하십니다(16:6-7).

사도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소아시아 지역에서 계속 선교활동을 하고 싶지만 그 길이 영적으로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일단 소아시아의 가장 서쪽에 있는 작은 항구 드로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16:8).

그곳에서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이제는 유럽으로 건너가야 하는지를 주님께 기도로 묻고 있습니다. 그때 그는 주님의 섭리로 하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케도니아 사람이 자신을 유럽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16:9-10).

바울은 확실하게 주님의 뜻을 파악하고서 용감하게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의 항구 네압볼리로 건너가게 됩니다(16:9-11);

 그리고 인근에 있는 요새지 곧 산성 도시 빌립보를 방문하고 있습니다(16:12).

유럽의 첫번째 도시인 빌립보에는 당시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로마식 건물이 즐비합니다. 그곳은 생활 수준이 높아서 그런지 유대인 교포들의 수가 매우 적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 장정이 10명만 있어도 회당을 지을 수가 있는데 그 조건마저 충족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토요일 안식일이 되자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유대인 여인들이 함께 모여서 안식일에 조용하게 기도하고 있는 성문 밖 강가입니다(16:13).

그 기도모임에서 바울과 실라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16:13). 그때 적극적으로 복음을 영접한 인물이 바로 거상 루디아입니다(16:14). 그녀는 고향인 소아시아 두아디라를 떠나 과감하게 빌립보로 건너와서 로마인 부자들에게 자주색 옷감을 팔고 있습니다.

당시 루디아가 팔고 있는 자주색 옷감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고대사회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자신의 귀한 신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비싼 자주색 옷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는 바다 소라의 체액에서 채취한 염료를 사용하여 자주색 옷감을 만들고 있기에 그 값이 고가인 것입니다.

둘째, 소아시아 두아디라 사람들이 바다 소라가 아니라 식물 꼭두서니에서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 결과 두아디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자주색 옷감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루디아가 로마인이 많이 살고 있는 빌립보로 건너와서 그들에게 자주색 옷감을 팔아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자신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권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게 되고 드디어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교회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16:15);

자주색 옷감장수인 루디아가 열심히 섬기고 있는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 일행이 유럽에서 얻은 첫 열매입니다. 더구나 그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일행의 세계선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고마움을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빌립보서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1:3-6).

그래서 그런지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면서 특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고 있는 서신에서 가장 귀중한 이야기 두가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오늘 강해설교의 본문으로 선택하고 있는 제2장 제5-11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빌립보서 제3장 제10-16절 말씀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두가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려봅니다;

첫째로, 빌립보서 제2장에 기록되고 있는 전자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독생자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사람들에게 완전계시하기 위하여 직접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친히 하나님의 종이 되어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를 살아가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그 겸손과 헌신을 본받아 한평생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2:5-11의역).

둘째로, 빌립보서 제3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자신의 푯대에 관한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던 랍비 사울이 어째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복음전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와 목표를 그 대목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이 이방인 선교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다메섹 도상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고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나사렛 예수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한 것입니다(9:3-19).

그때부터 랍비 사울은 자신의 전력을 내려놓고 이제는 이방인 사도인 바울이 되어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주님이 얻으신 그것을 자신도 얻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상급 곧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영생의 천국인 것입니다(3:10-14).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그 상급을 자신에게도 주실 것임을 사도 바울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도 자신과 같이 그 푯대를 향하여 함께 달려가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3:16);

오늘은 위의 두가지 권면의 말씀 가운데 첫번째의 것 곧 빌립보서 제2장 제5-11절 말씀에 대하여 강해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그 제목을 제5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영생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창조주에 해당하는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비천한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복음의 말씀으로 직접 선포하시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영생구원의 길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가는 자들에게 부활과 승천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그 인생의 끝자락에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생구원의 놀라운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한평생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모든 불이익을 자신에게 주어진 제자의 사명이며 고난으로 알고서 그것을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란하게 먼저 설명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복음서 제1장 제14-18절의 내용과는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그를 바라보니 독생자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달리 사도 바울은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본받아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부활과 영생의 상급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을 먼저 감수해야만 한다는 귀한 진리를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22:28-30, 8:17-18).

그와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서 이제부터 오늘의 본문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 가운데 깨달은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2:5-7);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본받아 주님의 제자 답게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의 진면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육신을 감수하고 있는 독생자의 마음 바로 그것입니다(6-7). 독생자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의미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성육신이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는 굴욕과 수모를 말하고 있습니다(6-7).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으로는 감히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전부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2)  예수님의 공생애는 36개월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 행하신 일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피조세계의 전부가 사용이 되고도 부족할 따름이라고 사도 요한이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말년의 사도 요한이 정확하게 깨닫고서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는 피조물인 인자가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로고스 곧 하나님 말씀의 주관자이신 독생자이시기 때문입니다(1:1-13, 2:6, 11:27).

(3)  그런데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그 분이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온세상에 복음으로 선포하시기 위한 것입니다(3:16). 그리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하나님의 진심이라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곧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시는 것을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8:31, 16:6-7, 19-20).

(4)  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이 세상 구원의 역사섭리가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도맡아서 액면 그대로 실행해야만 하는 독생자의 입장에서는 심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의 영광을 내려놓고 피조물인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하는 비천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2:7a). 그것은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어 상전을 모시고 그 뜻을 받들어 한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구원에 이르도록 그들을 섬기는 소위 복음에 매인 종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4-8);

(5)  비록 부자지간이라고 하더라도 종이 된다고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이 비참한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궂은 일은 종의 신세가 된 아들이 도맡아서 처리해야 합니다(17:8-10). 그 결과 아버지는 마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16:19-20)에 등장하고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부자처럼 한평생 호의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스스로 그와 같은 불공평함을 자의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함께 영생의 복을 누리도록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53:10-12, 3:14-16).

(6)  그 점을 사도 바울이 그의 교리서인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16-21).

둘째로,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8-9);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2:8a); 독생자가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30세쯤이 되자 그때부터 복음전파를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게 됩니다. 피조물의 찬양과 경배를 받아 마땅한 독생자 하나님이 인자가 되어 사람들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전파를 위하여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8b);

1)    복음선포를 위한 공생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생애의 끝에는 십자가 처형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민의 죄를 아버지 하나님께 속죄하기 위해서는 독생자가 스스로 속죄양이 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속의 방법이 결단코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패역한 죄악이 심히 무거운 것입니다. 어떤 불교계의 고승은 그것이 자신의 죄업이 수미산보다도 더 높고 크다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2)    육신을 입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살이 찢기는 십자가 처형의 고통을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매일같이 조용한 장소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다른 쉬운 방법으로 대신하여 달라고 간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처형 하루 전에 비로소 모든 일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26:42).

(3)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9);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험이 없으면 천국에서의 영광과 합격의 기쁨도 없다는 것입니다.

1)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복음전파를 위한 공생애를 살았으며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까지 스스로 지게 됩니다. 그 결과 자동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상급이 그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무덤이 열리고 3일만에 부활하여 40일 후에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어린양 그리스도로 좌정하시게 됩니다;

2)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부탁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고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의 부활의 영과 더불어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내주하여 그 앞길을 인도하십니다(14:1-3, 16-20, 23, 1:8, 16:6-7). 그 결과 이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간 성도들이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0-11);

(1)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독생자에게 주실 수 있는 이유가 다음 세가지입니다; 첫째가, 성육신입니다. 그것은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스스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 세상 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피조물인 인간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창조주가 비천한 피조물 인간이 되는 수치를 감수하셨다는 지극한 겸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성도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2:5).

(2)  둘째가, 36개월간의 공생애입니다. 그것은 제자들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면서 그들을 섬긴 것입니다. 창조주인 독생자가 피조물인 인간을 섬기면서 그들을 복음의 용사로 양성한 것입니다. 셋째가, 대속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신 것입니다. 그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엄청난 사람들을 죄를 하나님 앞에서 속죄할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세가지의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부활승천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 쪽 보좌에 앉아 대속의 어린양으로서 모든 피조물들의 주인이 되고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5:9-14, 21:23, 22:1). 그 점을 사도 바울이 알기 쉽게 여기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10-11);

(4)  참고로, 10절의 내용은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주인으로 영접하고 동시에 독생자를 구세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대상인 생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 지표면의 인간과 동물과 식물, 땅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총망라가 되고 있으며 그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독생자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아들이 되는 수모를 감수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그 과정은 고난과 시험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통과하심으로써 부활과 영생이라는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함께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모시고 겸손하게 헌신하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신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여 온세상에 파송하게 되면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얻은 바 무덤 속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생의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확신 가운데 끝까지 신실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