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브라함이 많은 돈을 주고 구태여 마므레 막벨라 굴을 다시 산 이유”(창23:1-20)
설교일; 주후 2022년 5월 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월 2일 월요일 작성)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문명이 일찍 꽃을 피운 지역이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입니다. 두개의 큰 강 유프라테스와 티크리스가 서로만나 넓은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가장 먼저 주전 25세기에 고대문명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더구나 메소포타미아 고대문명의 중심지역인 바벨과 우르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셈족 가운데 그 신앙심이 남다른 아르박삿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창9:26, 10:24-25, 11:10-31). 그들 가운데 한 집안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주전 21세기에 서쪽의 변방 가나안 지역에 메소포타미아의 발달된 문명과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당시 서방 선교단을 이끌고 있는 족장이 데라이며 그의 장남 아브람과 장손 롯이 그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창11:31-32). 그런데 유프라테스 강 상류 북부 시리아지역에 들어서자 족장 데라가 그만 행진을 멈추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강유역에서 좋은 땅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개척지인 그 땅을 개발하고 도시를 형성하게 되면 굉장한 수익을 얻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평소 돈벌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여신상까지 제조하여 예술품으로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장사꾼 중의 장사꾼이 데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땅의 지명을 고향에서 먼저 죽은 3남 하란의 이름으로 명명하고서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창11:28, 31-32).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크나큰 축복의 언약을 주시면서 선교지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창12:1-3);
그 약속을 믿고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남하한 인물이 아브람과 그의 아내인 사래 그리고 장조카인 롯입니다(창12:4).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서쪽의 문명지역 애굽제국에 이주를 하였다가 그들은 큰 재물을 얻어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창12:16-20). 그 이유는 아름다운 히브리 여인 사래를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가 후궁으로 취했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말미암아 낭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사래를 후궁으로 취하면서 친정 오라비라고 알고 있었던 아브람에게 큰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물을 되돌려 받지 못하고 그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고자 그들을 전부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고 만 것입니다.
가나안 중부 벧엘 지역으로 되돌아온 아브람은 장조카 롯에게 많은 재물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창13:1-6). 자식이 없는 그들 부부는 장조카 롯을 아들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재물을 얻게 된 롯의 생각은 다릅니다.
막상 부자가 되고 나니 이제는 사치와 향락이 있는 도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세상의 낙을 누리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창13:10). 따라서 롯은 자신에게 재물을 나누어 준 아브람 부부를 가나안에 남겨두고 많은 가축 떼를 몰고서 그만 사해 주변의 부유한 도시국가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버리고 맙니다(창13:11-13);
이방 땅에 홀로 남겨진 아브람 부부가 여호와께 외로움과 절망 가운데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에게 놀라운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창13:14-18). 그 내용이 적어도 다음 3가지입니다;
(1) 첫째, 가나안 남부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아모리 족속이 떠돌이 히브리인 아브람 부부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헤브론에 안착하여 살 수 있도록 그 지역 마므레 땅을 아브람 부부에게 매도한 것입니다(창13:18).
(2) 둘째, 헤브론 일대에 살고 있는 아모리 호족들 곧 에스골, 아넬, 그리고 마므레가 아브람을 자신들과 같은 호족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서로 교제하면서 지역방어를 위하여 군사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창14:13).
(3) 셋째, 아브람이 자신의 사병은 물론 아모리 동맹군을 이끌고 전투에 나서서 여호와의 도움심으로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됩니다(창14:14-16). 메소포타미아에서 쳐들어온 다국적군이 가나안 일대의 여러 족속을 치고 특히 염해 주변의 부유한 도시국가를 약탈하여 회군하고 있을 때에 그 행렬을 쳐서 모든 재물과 포로를 되찾아온 것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포로로 북송 중에 있던 장조카 롯의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일약 구국의 영웅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헤브론 마므레 아성에서 잘 지내고 있는 동안 아브람은 서장자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삼고서 여생을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창17:18, 15:2-3).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대하십니다(창17:19, 15:4-6).
그 이유는 이방 출신 애굽 여인 하갈이 키우고 있는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지 못하고 오로지 여호와신앙을 가진 사라가 낳아 기르게 되는 아들 이삭이 약속의 아들이며 영적인 장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헤브론 아성에 편하게 안주하고 있는 아브라함 부부를 이제는 블레셋 땅으로 보내어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원주민들에게 보여주도록 그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한 변화가 먼 곳에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사해 주변의 도시국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에 대한 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있게 되자 롯의 가족은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되고 백리나 떨어져 있는 헤브론 지역까지 그 불기운으로 말미암아 가뭄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창19:27-29). 그 때문에 아브라함 가족은 블레셋의 곡창지대 그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창20:1).
그랄 땅의 원주민인 블레셋 족속의 횡포로 떠돌이 부자 아브라함 일행은 소중한 우물을 빼앗기면서 동쪽 변경으로 자꾸만 밀려나고 있습니다. 마침내 국경지대 브엘세바까지 밀려나게 되자 그때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 만을 대동한 채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있습니다(창21:22).
그 이유는 여호와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이 자신을 괴롭힌 원주민들을 심판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 블레셋 땅에 재앙이 발생할 것임을 아비멜렉이 눈치를 채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그 재앙을 미연에 예방하고자 아브라함에게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자고 찾아온 것입니다(창21:23);
차제에 아브라함은 섭섭한 일을 말하면서 그 조약을 통하여 블레셋의 연맹왕인 아비멜렉으로부터 신분과 안전의 보장을 약속 받고 있습니다(창21:24-32). 더구나 그랄에서 태어난 약속의 아들 이삭이(창21:1-7) 그곳 브엘세바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과 함께 30년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긴 세월동안 어째서 아브라함 부부가 옛날 그들의 아성이 있던 가나안 남부의 도시 헤브론의 마므레로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북쪽의 힛타이트 족의 한 갈래인 헷족속이 남하하여 그 지역을 전부 정복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헤브론의 지명조차 그곳을 정복한 헷족속 영웅 아르바의 이름을 기념하여 ‘기럇 아르바’로 바뀌어 있습니다(창23:2);
그 때문에 아모리 호족 마므레에게서 산 아브라함의 땅이 이제는 새로운 정복민 헷족속에게 그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곳에 들어가서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그는 목숨이 위험해지고 말 것입니다. 전쟁의 승자는 패자의 법체계와 전통을 모조리 백지화하며 특히 땅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자는 반란의 주모자로 처단하고 마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들 이삭이 20대의 어엿한 청년이 되자 안방마님 사라는 그 옛날 영화를 누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곳 마므레로 돌아가서 말년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사라를 사랑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다시 떠돌이 호족이 되어 헤브론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떠돌이 이주민이지만 부자였기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헷족속에게서 환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남의 땅을 빌려서 살고 있는 동안에 그만 아내 사라가 127세를 향년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창23:1-2). 이제 아브라함은 급히 장사를 지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장지가 필요합니다(창21:3-4).
따라서 그는 자신이 과거 소유하고 있던 마므레의 땅 일부를 다시 많은 돈을 주고서 정복민 헷족속에게서 사들이고 있습니다(창23:16-18). 그와 같은 내용이 오늘 살펴볼 성경본문 창세기 제23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본문을 한 구절 씩 간략하게 풀이하면서 중요한 대목을 다음과 같이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창23:1-6);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23:1-4);
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17세의 청소년이 되었을 때 곧 주전 2,049년경에 브엘세바에서 부친을 따라 75km 북쪽에 있는 모리아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창22:4-6).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그곳에서 번제로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진정한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창22:1-6, 삼상2:30);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안방마님 사라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브엘세바를 떠나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영화를 누렸던 헤브론으로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창21:31, 14:13-16). 그에 따라 주전 2,040년경에 아브라함 가정이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런데 사라가 헤브론에서 오래 살지를 못하고 주전2,029년 곧 이삭의 나이 37세, 남편 아브라함의 나이 137세에 그녀는 향년 127세로 그곳에서 별세합니다(창23:1-2a). 아브라함은 평생 안방마님 사라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우직한 남편입니다. 따라서 평생의 반려자를 잃어버린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아내 사라를 위하여 종일 통곡한 것으로 보입니다(창23:2b);
그 다음에 그가 제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마냥 슬픔에 빠져 있을 수가 없습니다. 헤브론은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곳에는 자신의 땅이 없기 때문입니다. 빨리 헷족속에게서 묘실로 사용할 수 있는 굴을 사야만 합니다. 그래야 죽은 아내의 장례를 치루고 그 시신을 굴에 안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지배자인 헷족속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일개 떠돌이 호족에 불과합니다(3절).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재물이 많으므로 그에게 헤브론에서 살 수 있도록 거주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창23:4a). 그렇지만 떠돌이 호족에게 땅을 팔지는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그곳에서 장사 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지를 마련하여야 합니다(창23:4b). 성중에 살고 있는 지배족속의 회의장소가 일반적으로 성문 앞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달려간 곳이 바로 그곳 성문 앞인 것입니다.
(2) “5.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창23:5-6); 아브라함의 청원에 대하여 지배자인 헷족속이 호의적입니다(5절).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좋은 행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3:6b).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있다는 점이 “내 주여 들으소서”(창23:6a)라는 대목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헷족속의 의결사항은 떠돌이 호족인 아브라함에게 부족의 땅을 묘실로 파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입니다(창23:6c).
둘째로,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족속 중에서 앉아 있더니, 그가 헷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창23:7-13); 역시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창23:7-9);
1) 아브라함은 헷족속이 지배하고 있는 헤브론 땅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겨우 거주권을 얻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자세는 낮은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그들에게 잘 보여서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낼 수 있는 묘택을 사야만 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몸을 헷족속을 향하여 크게 굽히고 있는 것입니다(7절);
2)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장지를 매매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이미 말했습니다(5-6절). 따라서 아브라함이 용기를 내어 그 옛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마므레의 땅 가운데 장지로 가장 적합한 막벨라 굴을 헷족속 에브론에게서 사겠다고 제안합니다(8절). 그리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에브론에게서 살 것이니 거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부디 그 매매를 헷족속의 회의체에서 승인하여 달라는 청원입니다(9절).
(2) “10. 에브론이 헷족속 중에서 앉아 있더니, 그가 헷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창23:10-11); 아브라함이 헷족속들이 보는 앞에서 장지의 소유주 에브론에게 말하고 있는 매매대상물은 막벨라 굴입니다(9절). 그런데 에브론은 차제에 굴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밭을 한꺼번에 비싼 값으로 팔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10-11절). 에브론이 동족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밭과 굴을 한꺼번에 사가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하고 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비싸게 값을 치르고 그 모든 것을 억지로 사야만 하는 궁색한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창23:12-13); 그 옛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헤브론 마므레 땅을 다시 돈을 주고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에게서 사야만 하는 것도 서러운데 막벨라 굴의 소유주인 젊은 에브론이 돈을 너무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젊은이라는 사실은 ‘소할의 아들 에브론’(8절)이라는 대목에서 벌써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당장 필요한 그 땅을 사겠다고 헷족속의 회의장소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13절). 그것도 연신 몸을 굽히면서 상당히 겸손하게 그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합니다(12절).
셋째로,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값은 은 400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데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창23:14-20); 다음과 같이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값은 은 400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창23:14-15);
1)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젊은 에브론이 아브라함의 요청에 의하여 자신의 땅을 어쩔 수 없이 판다는 식으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땅값은 은 400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5절)라는 구절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은 400세겔에 막벨라 굴과 주변의 밭을 한꺼번에 팔 것이니 시급한 장례를 잘 치루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2) 당시 은 1세겔은 11.4g이며 그것은 4데나리온 곧 4일치 장정의 품삯에 해당합니다(마20:2). 그러므로 오늘날의 임금으로 1세겔을 400불로 계산하면 은 400세겔은 16만불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밭 값이 아니라 주택 값에 상당하는 큰 금액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에브론이 아브라함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여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데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창23:16-18); 아브라함이 깨끗하게 거래를 끝내고 있습니다. 당장 은 400세겔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울에 달아서 보인 다음에 그것을 에브론에게 주고 있습니다(16절);
성문 회의장에 모여 있던 헷족속들이 거래가 원만하게 끝났음을 선포하고 이제부터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은 히브리인 아브라함의 소유라고 확정하고 있습니다(17-18절). 그 대목을 저자 모세가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의도는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그 옛날 아브라함의 아성이 있던 그곳 마므레 땅 일부를 지금 아브라함이 많은 돈을 주고서 헷족속에게서 다시 사고 있는 것은 당장은 아내 사라를 그곳에 장사 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마므레 장막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과 두 천사의 현신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창18:1-2). 그러므로 그곳에서 긴 잠을 자고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소망을 믿음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히11:16);
2) 둘째, 동일한 소망을 아브라함 부부의 아들인 약속의 아들 이삭의 부부 그리고 영적인 장자로 그 뒤를 잇고 있는 야곱의 부부가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이 노년에 아들 요셉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출애굽시켜서 막벨라 굴에 안장하여 달라는 것입니다(창47:29-31, 49:29-33);
그곳에서 믿음의 열조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 야곱 곧 이스라엘은 애굽의 총리를 지낸 아들 요셉의 확답을 듣고 나서는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마지막 경배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창47:31).
3) 셋째, 창세기를 위시한 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상급을 얻게 된다고 신명기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신30:19-20). 그 점을 훗날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3) “19. 그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창23:19-20); 모세는 마므레가 바로 헤브론임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습니다(19절). 그의 의도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아브라함 가족이 블레셋으로 이주하여 그랄의 변방 브엘세바에서 오래 살고 있는 동안에 그의 아성이 있던 헤브론 마므레 땅의 소유주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헷족속이 남진하여 아모리 족속에게서 가나안 땅을 빼앗았기에 헤브론에 대한 아브라함의 연고권과 소유권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헤브론에 들어간 아브라함이 그 옛날 자신의 땅의 일부를 다시 많은 돈을 주고서 에브론에게서 구입하여 그곳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사 지낸 것입니다.
2) 둘째, 천국입성을 소망하면서 헤브론 마므레 막벨라 굴에 믿음의 선조들이 잠들어 있습니다(창49:30-32). 따라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목표가 아니라 사실은 조상들의 그 믿음을 계승하는 것이 여호와신앙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훗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어떠한 억울한 형편을 당하더라도 성도들이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푯대이며 지상 목표입니다(눅22:28-30, 빌3:10-14);
결론적으로, 안방마님 사라가 말년에 헤브론으로 되돌아가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옛날 그곳 마므레 아성에서 영화를 누리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살다가 향년 127세로 별세합니다. 아들 이삭의 나이 37세, 남편 아브라함의 나이 137세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옛날 자신의 소유였던 마므레 땅의 일부를 새로운 주인 헷족속 에브론에게서 비싼 값으로 사고 있습니다. 그곳 막벨라 굴에 아내 사라를 안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훗날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더불어 긴 잠을 자다가 그리스도를 만나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을 누리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창21:33).
그와 같은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살아간 아브라함의 뒤를 약속의 아들 이삭과 영적인 장자 이스라엘이 계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굽에 이주한 야곱은 자신의 시신을 운구하여 열조들이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그 막벨라 굴에 장사지내 달라고 아들 요셉에게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창47:29-31).
아무쪼록 그와 같은 천국입성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거듭난 인생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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