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6강(렘2:4-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5월 27일(주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신앙을 떠난 선민들의 잘못에 대하여 질책하다(렘2:4-8).
이스라엘 12지파와 그 후손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은 선민들의 역사에 그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히브리정경은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과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자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으로 끝날 것입니다(렘2:4).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세계이며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역사가 섭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국가나 민족 심지어 그 어떤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주의 역사섭리에서 자유스럽지가 못합니다. 요컨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모르고서는 피조물이 영적인 의미에서 그 생을 유지하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2) 또 하나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역사가 창조주의 역사섭리를 쉽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교재로 사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한 점에서 히브리정경이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어떻게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고 어떠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가장 쉽게 배울 수가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될 때에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게 되는 성도들에 대해서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으로 부르고 계십니다(계7:7:4-10, 21:12-1324-27).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돌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싫은 것입니다. 선민인 그들조차 자신들의 이익과 구원만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약육강식의 현장이며 살기다툼의 장소라고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문화에 빠져들고 있습니다(렘2:5).
(2) 둘째,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어떠한 일을 행하여 살길을 마련하여 주었는지를 세월이 지나자 그 후손들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렘2:6). 여호와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그들을 해방시켜주었으며, 홍해사건을 통하여 애굽의 추격군을 완전히 수장하였으며, 사람이 생존할 수가 없는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습니다.
(3)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주어 영원한 이 땅의 기업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안전한 정착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땅이 좋으면 무엇 합니까? 그때부터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은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이 모두 자신들이 잘나서 그리고 열심히 일하여 얻은 당연한 결과라고만 여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자기들 좋은대로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보기 싫은 이방인의 모습에 불과합니다(렘2:7).
(4) 넷째, 여호와신앙을 유지하는 4개의 기둥이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재판관, 그리고 율법선생들이 모두 여호와의 뜻을 버리고 사람들의 뜻대로 히브리정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렘2:8). 예를 들면, ①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제단 앞에 선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제사를 드리는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②선지자들이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③재판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가 아니라 세상적인 지혜를 쫓아서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④율법선생들이 하나님말씀에 들어 있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모르고 이기적이고 현세적으로 말씀을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렘2:4-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렘2:4-5a); 먼저 ‘야곱’과 ‘이스라엘’의 용어의 차이를 알아본 다음에 모든 족속에게 들으라고 선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야곱’은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입니다(창25:25-26). 쌍둥이 형인 에서의 동생입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그들 두 형제는 성격이 판이합니다. 장자인 에서는 사내답고 야인(野人, 들사람)입니다(창25:27a). 무력을 숭상하며 모든 문제를 칼로써 해결하고자 합니다. 야곱은 그 반대입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여호와를 경배하고 있는 그 장막을 좋아합니다(창25:27b). 어머니와 함께 여호와를 경배하며 자신의 소원을 창조의 신 여호와께서 이루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무신론자와 같고 야곱은 유신론자와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와 같이 ‘에서’가 아니면 ‘야곱’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서와 야곱이 상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 ‘야곱’의 소원은 하나입니다. 쌍둥이이지만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한 그 순간부터 고대 가부장 장자상속의 사회에서 그 신분적인 차별이 극심합니다. 부친인 족장 이삭의 모든 상속을 장남인 에서가 받게 됩니다. 야곱은 그저 훗날 에서를 족장으로 섬기는 신하가 되며 그의 아들들은 족장이 다스리는 씨족사회에서 그 종이 될 따름입니다. 따라서 야곱은 운명의 창조신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신에게도 족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지를 못하고 형 에서에게 부친 이삭의 상속이 축복의 기도로써 이루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고 맙니다(창27:1-4). 모친 리브가는 들사람이며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모르는 에서보다는 여호와신앙을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야곱을 더 좋아합니다(창25:28). 그래서 눈이 멀어 있는 노년의 족장 이삭을 속이고 모자간에 공모하여 장자에 대한 족장의 축복의 기도를 가로채게 된 것입니다.
3) 둘째, 분노한 형 에서로 말미암아 야곱은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2처 2첩을 얻고 11명의 아들을 얻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산을 일구었으나 장인 라반과 처남들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 따라서 야반도주를 합니다(창31:20). 장인이 가병들을 이끌고 추격에 나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야곱가족을 보호하십니다. 그 결과 라반의 위협도, 형 에서의 위협도 모두 물리치고 가나안에 들어와서 세겜 지역에서 호사를 누리며 떠돌이 족장으로 살게 됩니다(창33:16-20).
4) 그러나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원하시는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을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이긴 믿음의 대 족장 ‘이스라엘’로 가나안 땅에 우뚝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창32:27-30).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보고서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을 믿고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좋은 본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겜 사건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을 그 옛날 그가 여호와께 서원한 곳 벧엘로 부르시고(창34:25-35:1, 28:16-22) 그에게 새로운 ‘이스라엘’의 칭호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창35:10-13).
5) 셋째,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구절들이,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입니다; ①세상사람들은 유신론자이든지 무신론자이든지 상관 없이 모두 피조물들이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의 의미는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고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들이 되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③그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과 그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역사의 섭리가 동시에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그대로 준용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렘2:5b);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살게 되면서 주변의 이방인들과 사이가 좋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스스로 창조주 여호와가 선택한 유일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를 모르고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진노의 백성이며 마침내 여호와의 분노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원수같이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강대국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의 기도에 긍정적인 응답을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민 이스라엘이 원하고 있는 그러한 편파적인 하나님이 아니시고 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긍휼하게 여기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생활을 통하여 율법교육을 시키신 뜻은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의 뜻을 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들의 죄사함과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선지자의 나라 그리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출19:6).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선민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정의’(正義, justice)라는 이름으로 구현하려고 합니다.
3)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아니하시는 여호와라고 하면서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자신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이익과 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소원성취의 신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한심한 선민들의 작태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렘2:5b).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의 다윗왕조 유다 왕국 백성들의 여호와신앙의 타락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주전 14세기초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어서 12지파가 생활을 한 그때부터 주전 6세기초에 이르기까지 800년 동안 그러한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인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렘2:6);
(1)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자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본문에서 그 비결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주전 15세기에 애굽의 압제로부터 신위적인 능력으로 해방과 구원을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돌아보는 것입니다.
2) 둘째, 그후 40년 동안 사람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광야와 사막에서 먹을 것을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여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3)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여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 땅의 원주민들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배정하여 주신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2) 그러한 3박자의 은혜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를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생의 주인으로 다시 맞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타락된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생의 하나님 앞에 다시 의미가 있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비결입니다.
셋째로,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렘2:7);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매일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려서 부디 구원을 베푸시고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때이며(출2:23-24) 또한 광야에서 헤매고 있던 시절입니다(출14:30-31, 19:7-8, 33:7-10). 고난과 고생의 한 가운데에서 매일같이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사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후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2) 기름진 윤택한 삶이 오히려 그들의 여호와신앙을 쇠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 매달리거나 애타게 간구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한해 농사를 지으면 일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왕과 군대가 주변의 적군을 물리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경우에만 여호와께 절기와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그리하면 마치 자신들의 소원을 쉽게 성취하게 해주는 우상처럼 자신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힘까지 빌리지 아니하여도 되는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그쪽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빌게 되면 간단하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도 마치 우상처럼 섬기는 있는 자들이 바로 타락한 선민들입니다.
(3)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강력하게 질책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렘2:7). 그 옛날 가나안 원주민들과 아모리 자손들처럼 똑같이 그 땅을 더럽히고 여호와께서 보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공정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행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 땅에서 쫓아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왕하21:11-13, 23:25-27).
넷째로,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2:8);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지탱하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제사장, 율법학자, 재판관,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렘2:8a);
1) 제사장들이 율법에 규정된 대로 그저 형식적으로 각종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속죄의 제사, 화목의 제사 등을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제물이 깨끗한 것인지 아니면 흠이 있는 것인지 일체 돌아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저 제사를 드려주고 거제물과 요제물 가운데 제사장들 자신의 몫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2) 그것은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며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제례의식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제사장의 본래의 직무에서 멀어진 직업적인 행태에 불과합니다. 그와 같은 잘못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렘2:8a)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한 마디로, 제사장들이 제례의식에 깃들어 있는 여호와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지도 아니하고 또한 여호와께서 보시는 그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2)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렘2:8b);
1)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땅에서 골고루 48개의 성읍을 얻어서 분산하여 살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수21:3, 41-42).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공부하여 각 지파의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율법선생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공부를 한 율법선생이 나중에는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율법학자가 되고 있습니다.
2)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안 왕조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직분을 감당하기 전에 벌써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그러한 율법선생과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 율법 속에 깃들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뜬 소경이 눈이 어두운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마15:14). 그것은 함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비극입니다.
(3)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렘2:8c);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관료제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제18장에서 모세를 돕기 위하여 백성들의 소송을 율법에 비추어서 처리하도록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고 하는 관료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출18:24-26). 그들이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보좌하는 관리들입니다.
2) 그런데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가 지나고 사사시대에 들어오게 되면 그들 관리들 가운데 백성들의 신망을 얻는 자가 지파의 재판을 총괄하는 사사가 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영토를 얻은 각 지파를 하나의 부족국가처럼 율법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12지파를 거느린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닙니다. 율법을 일종의 세속적인 부족국가의 법률로 사용하면서 백성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조직하고 엄격하게 다스리고 있는 세상적인 국가의 모습인 것입니다(삿21:25).
(4)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2:8d);
1) 첫째, 민수기의 내용 가운데 아람의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민22-24장). 당시 모압의 왕인 발락은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대군을 거느리고 진을 치고 있는 모세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통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아람의 선지자 발람을 초빙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세번 모두 실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 모압 왕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간구할 때마다 여호와의 신탁은 이스라엘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발람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선지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2) 둘째, 고향 브돌로 돌아갔다가 다시 남하하여 미디안 왕들을 찾아간 발람은 그 행태가 달라지고 소위 거짓선지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묘한 계책을 미디안의 왕들에게 팔아 치우고 있습니다(민31:16). 그 비책은 일종의 미인계입니다. 구체적으로, 미디안 땅에서 재색을 겸비한 여인들을 훈련시켜서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젊은 수령들에게 밀파합니다. 미인계로 유혹하여 그들 젊은 족장들을 성적인 노예로 만듭니다(민25:14-15). 그렇게 이스라엘 12지파의 젊은 지도자들을 손아귀에 넣은 후에는(민25:4) 모압 평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모압의 여인들을 대대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밀파하여 젊은 장정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민25:1-3, 16-18).
3) 셋째, 선지자 발람이 이스라엘을 타락시켜 영적으로 우상인 바알 신을 섬기게 만들고 또한 육체적인 타락을 하도록 도모합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본문에서는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2:8d)고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거짓선지자 발람은 모압의 여인들이 모압 평지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유혹하여 10리 남쪽에 있는 바알의 성지인 브올산으로 데리고 가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혼음을 즐기게 만들고 있습니다(민25:1-3). 모압 여인들이 바알 신을 섬기는 여사제가 되어 육체적인 향연을 벌이게 되면 이스라엘 장정들은 모두 여호와의 진노로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민25:5). 마치 사탄의 꾀와 같은 그러한 계책을 세우고 미디안 왕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치운 거짓선지자가 발람입니다. 그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원정군에게 잡혀서 미디안 5왕과 함께 처형이 되고 맙니다(민31:8).
결론적으로, 피조물인 모든 사람들 곧 오늘날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법칙을 알고 그 속에 내포가 되어 있는 여호와의 의도와 능력을 쉽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선택하여 그들과 동행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정경에 대하여 선민들에게 한정하여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기록이라고 제한을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능력에 의하여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본문의 내용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시는 제사장, 선지자, 성경선생, 또는 올바른 재판관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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