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3강(렘1: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7. 00:17

예레미야 강해 제3(1: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524()

 

두가지 환상 곧 살구나무 가지 환상과 끓는 가마 환상의 의미가 각각 무엇인가?(1:11-15)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제사장 집안의 아들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시는 여호와의 모습이 그 옛날 호렙 산에서 80세의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일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겸양의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10, 13, 1:6).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창세 전에 벌써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동시에 그 구원의 일꾼까지 예정하고 계시는 그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생각할 때에 별로 쓸모가 없는 걱정에 불과합니다(4:11-12, 1:5).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나 복음의 일꾼의 자격은 자신이 여호와의 종이며 그 맡기신 사명을 정직하게 결사의 각오로 수행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1:7). 그렇게 일하는 정직하고도 신실한 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듯이 그렇게 강력하게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12:3, 1:8).

그렇다면 선지자가 된 예레미야가 그의 조국과 이웃 여러 나라에 외쳐야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내용일까요? 그 총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비유와 환상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위 살구나무 가지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비유입니다(1:11-15).

환상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그 두가지 물건은 다음과 같이 사실은 성소에 있는 성물에 새겨져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막의 뜰 구석에 배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성소에는 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있는데 그곳에 살구가지와 살구꽃이 새겨져 있습니다(25:33-36). 그 위에 7개의 등잔이 있는데 그 등잔에서는 가장 좋은 감람유를 사용하여 마치 이 세상을 환히 밝히듯이 그렇게 성소 안을 밝히고 있습니다(25:37, 27:20-21).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주관하면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영원한 등불이 되고 있다고 하는 영적인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2)  둘째, 성막의 뜰 구석에 있는 그 솥의 가마에서는 물을 끓이고 있습니다. 그 가마 안에서 제사장들이 번제단 앞에서 거제와 요제로 사용한 제물의 고기를 삶아 식용으로 사용합니다(29:26, 31-34).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행하게 되면 그렇게 여호와께서 주시는 제물로 제사장들이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제사장나라답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마치 그 가마의 물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쏟아버리듯이 그렇게 그 땅에서 먹고 살 수가 없도록 만들어버리고 마시겠다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19:4-6, 25: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1:11-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1:11a); “여호와의 말씀이 들려왔다는 것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셨다고 하는 말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1)    첫째, 전자는 아무런 형체도 보이지 아니하는 가운데 그저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 왔다는 것입니다. 후자는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내게 다가와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는 그저 음성에 불과한 것이지만 후자는 대화의 상대가 인격적으로 내게 나타났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2)    둘째, 그러한 의미에서 전자는 메시지의 전달에 블과한 것이지만 후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신격을 가진 존재로 인간에게 현신하게 하여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훗날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께서(11:27)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복음사역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1:12-14, 5:19-24).

3)    셋째, 여기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신격을 가지고 예레미야에게 현신하여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십니다(1:11a). 이미 본문 앞에서는 젊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유다 왕국은 물론 이방 여러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10). 이제 본문에서는 어떠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2)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1:11b-12a);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그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이제는 한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환상 가운데 무엇을 보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1:11b). 여러 가지 환상 가운데 예레미야가 인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살구나무 가지입니다(1:11c). 마치 돌잔치에 참석한 아기가 무엇을 하나 집은 것처럼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다고 답변을 했더니 여호와께서는 잘 보았다고 칭찬을 하십니다(1:12a). 어째서 살구나무 가지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하는 답변이 그러한 칭찬을 얻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이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3)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1:12b); 두가지로 풀이가 가능합니다;

1)    첫째, ‘살구나무라는 히브리어는 쉐케드’(sheked)인데 그것은 아몬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흔들어서 깨운다는 것과 지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구나무의 가지를 보고 있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서 여호와께서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계신다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언가 어색합니다. 그저 언어적인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두번째 풀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둘째, 여호와께 임재하시는 성막에서 살구나무 가지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성물이 있습니다. 성소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금 등잔대가 7개의 등잔을 지탱하고 있는데 그 전체 세트에 살구나무 가지의 모습을 새기고 있습니다(25:33-40).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성소의 금 등잔대의 문양을 유심히 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11c). 성소를 밝히고 있는 그 금 등잔대는 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는 성물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서 깨우고있습니다. 환언하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언약과 예언의 말씀을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1:12b). 그 주 내용은 이 세상의 멸망을 앞서 여호와의 말씀을 자신의 인생의 등불로 삼고 있는 성도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1:13-1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1:13a);

1)    가마솥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환상 가운데 그 끓는 가마가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재하셔서 다시 네가 무엇을 보느냐? 고 질문을 했을 때에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1:13a)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레미야가 그 끓는 가마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았을까요? 모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것은 두가지의 의미로 풀이가 됩니다;

2)    첫째, 성막의 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큰 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을 끓여서 고기를 삼고 있는 가마솥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 있어서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몫으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고기를 거제나 요제로 먼저 바친 후에 그것을 그 가마솥에 삶아서 먹습니다.

3)    둘째, 여호와의 분노가 가마솥에서 끓는 물과 같이 이 세상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노아의 시대에는 홍수로 세상에 코로 호흡을 하는 생물을 모두 심판하셨지만 이제는 펄펄 끓고 있는 물로 불과 같은 심판을 하고자 하십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느 방향으로 여호와의 진노가 흘러 넘치게 되는 것일까요?

(2)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1:13b-14);

1)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가마솥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윗부분이 북이 높고 남이 낮습니다(1:13b). 그러므로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뜨거운 물이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물이 닿게 되면 크게 데이고 어떤 것은 녹아 내리게 됩니다(벧후3:12). 그것은 여호와의 분노가 역사적인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운명이 그러합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게 된 때는 성군인 요시야의 통치 13년경입니다(1:2). 그때가 주전 627년입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게 되면 주전 609년에 요시야 왕이 북진하는 애굽의 황제 바로 느고의 군대를 므깃도에서 제지하다가 그만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죽고 맙니다(왕하23:29-30). 그때부터 북에서 남하하는 적들에게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계속 유린을 당하고 맙니다.

2)    주전 609년이 되면 북진한 애굽의 황제인 바로 느고의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군사도시 갈그미스를 점령하고 시리아를 차지한 후에 남하를 합니다(왕하23:28-33). 바로 느고는 유다 왕국의 왕을 폐위하고 새 왕을 세워서 친 애굽 정권을 수립합니다(왕하23:33-35). 주전 597년에는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와서 유다의 왕을 사로잡아 가면서 허수아비 왕을 세우게 됩니다(왕하24:15-17). 그리고 주전 586년에는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북쪽에서 남하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리고 맙니다(왕하25:1-7).

3)    어째서 지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그렇게 세상의 제국에 의하여 유린을 당하고 끝내 멸망하고 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 끓고 있는 가마의 의미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분깃을 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는 거룩한 직분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변의 나라의 백성들과 이방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나라로서 살아가게 되면(19:4-6) 그들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거제물과 요제물을 그 끓은 가마에 삶아서 배불리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29:27-34).

4)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1:1-3, 12:39-41). 자신들만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주변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은 전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는 것이 심히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들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저버리고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더 이상 보호하실 필요가 없어지신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분노로 끓는 가마의 물이 넘쳐와서 데임을 받듯이 그렇게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1:14).

셋째로,내가 북방 왕국들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5);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북방 왕국들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1:15a);

1)    예레미야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침입한 나라들은 북방 왕국들이 아닙니다. 동쪽의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이거나 아니면 서남부에 있는 애굽제국의 군대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먼 훗날 선민의 사회를 유린하게 되는 북방의 왕국들과 족속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헬라제국과 로마제국 등입니다.

2)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하고 맙니다(왕하25:1-7). 그렇지만 신바벨론제국이 오래가지를 못하고 주전 539년에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와 그 근방에서 발흥한 동쪽의 제국들입니다. 페르시아의 창건자인 고레스 황제는 대선지서 이사야의 예언을 믿고서 천하통일을 한 자입니다(44:28, 45:1-6, 1:1-2). 따라서 주전 538년경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인질로 끌려온 유다의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예루살렘과 유대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귀환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합니다(1:3-4). 더구나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황실에서 보조를 하고자 합니다.

3)    그 덕분에 30만명 가까이 되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주전 516년에 완공합니다(6:13-18). 그 규모는 옛날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4분의 1입니다. 그런데 주전 330년경부터 이른바 세세동점’(西勢東占)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먼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페르시아제국이 망하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도 헬라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전 142년경부터 약80년 동안 레위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예루살렘에서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면 그 다음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로마제국에 의하여 역시 속국으로 살게 되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선민들입니다. 그와 같은 훗날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1:15a).   

(2)  여호와의 말이니라”(1:15b);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첨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의 특권만을 내세우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아니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방세계의 나라와 족속들처럼 똑같이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주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그 옛날의 선민들처럼 그렇게 이기적인 여호와신앙만을 지니고서 살아가게 되면 앞으로도 똑 같은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예레미야가 본 첫번째 환상은 살구나무의 가지가 수놓아져 있는 금 등잔대입니다. 그 불빛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성소를 밝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만민에게 주어지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세상에 전파하는 여호와의 말씀은 그렇게 만민을 구원하는 등불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진 끓는 가마솥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분노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과정과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지 아니하고 자신들만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의 복을 자신들만 누리고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을 멸망시키고자 획책한 선민들은 여호와의 섭리로 자신들부터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25:29).

여러 차례 북쪽에서 오는 군대를 가지고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끝내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주후 70년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선민들이 전부 이방인들의 땅으로 쫓겨나서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선민의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그대로 성도들에게도 장차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게을리하게 되면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끝까지 신실하게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