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강(렘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4. 22:13

예레미야 강해 제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519()

 

선지자 예레미야의 출신이 레위인이며 제사장 집안이라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으며 그의 선지자 활동의 시기가 말하고 있는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비극은 무엇인가?(1:1-3)

 

대선지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은 서로 그 특징이 다음과 같이 조금씩 다릅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700년을 전후하여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패권국 앗수르의 원정군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던가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그들의 족보와 더불어 여호와신앙이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왕하17:6-33). 그렇지만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중동 땅에서 유일하게 앗수르 제국에게 정복을 당하지 아니하고 살아남게 되는 기적이 연출이 되고 있음을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37:33-38). 역사서에 있는 이야기를(왕하19:32-37) 이사야가 다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 내용이 여호와의 개입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여호와신앙을 굳건히 하여 주변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39:3-8).

(2)  둘째로, 주전 600년을 전후하여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 출신인 3사람의 선지자 곧 예레미야와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은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진정한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선민의 나라와 함께 멸망을 당하는 시대를 살아간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러한 비극의 와중에서도 후세를 위하여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물려주고자 몸부림을 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의 상대적인 차이를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신바벨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 왕국에서 똑똑한 귀족의 자제들을 신바벨론제국에 인질로 제공합니다. 주전 605년의 일입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3친구가 인질이 됩니다(1:1-6). 그들은 적국인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에서도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이방인 권력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1:11-17). 특히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이 된 선지자 다니엘은 제국의 재상이 되고 동방의 지혜자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2:27-49). 그러나 조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멸망을 당하는 것만은 막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온세상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위대하신 여호와의 능력을 깨닫고 그 사실을 여호와신앙으로 후세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훗날 메시아에 의하여 성도들의 나라가 건설이 된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7:13-22).

2)    둘째, 다니엘보다 조금 늦게 유다 왕국에서 신바벨론제국으로 제2차 인질이 끌려가게 됩니다. 주전 597년의 일입니다. 그 가운데 폐위가 된 여호야긴 왕이 있으며 제사장 집안의 후손인 에스겔이 있습니다(1:1-2). 에스겔은 포로생활을 하던 중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선지자가 됩니다(1:3, 2:1-3). 그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11년 후에 망하겠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나라를 장차 건설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수도에 나타나는 새로운 예루살렘성전은 선민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성전이 아닙니다.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것이며 그것은 모든 열방과 민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45:1-7). 이방인을 구원하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새로운 예루살렘성으로 그리고 그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45:8). 그러한 개념의 확장에 의하여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 제21장의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9-27).

3)    셋째, 예레미야는 주전 627년경 약관의 나이에 선지자가 된 인물입니다(1:1-2). 그는 신바벨론제국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11년에 조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완전하게 멸망을 당하는 비극을 직접 예루살렘에서 체험한 선지자입니다(39:1-14). 그는 요시야 왕처럼 여호와신앙을 시급하게 회복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고 만다고 요시야의 아들 왕들에게 외쳤지만 그러한 종교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지 말고 화친을 하여 선민의 나라의 멸망만은 막으라고 외쳤지만 그것도 시드기야 왕과 거짓선지자들에 의하여 봉쇄가 되고 맙니다(38:17-28). 조국이 망하자 예레미야는 일부 동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선지자활동을 계속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43:4-7, 44:1-30).

(3)  셋째로, 특히 대선지서 예레미야를 한국의 성도들이 많이 읽고 있는 이유는 당시의 남조 유다 왕국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국내외적으로 오늘날의 한국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1)    첫째,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그 북쪽에 형제국인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있으며 그 위에는 시리아인 아람 왕국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동쪽에는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패권을 장악한 앗수르가 주전 732년에 다메섹을 점령하고 아람 왕국을 멸망시킵니다(왕하16:9).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마저 멸망시키고 맙니다(왕하17:5-6). 유다 왕국의 동쪽에 있던 주변국들도 모두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맙니다. 유일하게 약소국으로서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만이 외롭게 생존하고 있으며 그 서남쪽에는 애굽제국이 남아 있습니다(왕하19:35-37). 

2)    둘째, 참으로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앗수르제국의 패권이 깨어집니다. 신바벨론제국의 등장입니다. 그 틈을 타고서 서남쪽의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 느고가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까지 진출하여 요새지 갈그미스를 점령하고 시리아를 차지합니다(왕하23:29a). 그때가 주전 609년입니다. 므깃도에서 애굽 군대의 북상을 막고 있던 유다 왕국의 현군인 요시야가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그만 서거를 하고 맙니다(왕하23:29b). 예루살렘에서는 똑똑한 두번째 왕자인 여호아하스를 신왕으로 추대하고 바로 느고에게 대항할 준비를 하지만 3개월만에 갈그미스 전투를 마치고 남하한 바로에 의하여 여호아하스 정권이 무너지고 맙니다(왕하23:30-34).

3)    셋째, 바로 느고는 요시야의 장남인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어 유다 왕국에 괴뢰정권을 수립합니다(왕하23:34-35). 그런데 신바벨론제국이 앗수르를 완전하게 평정하고 주전 605년에는 시리아마저 차지하고 맙니다. 그때 친 애굽 여호야김 정권은 애굽을 버리고 친 바벨론 정책을 추진합니다(왕하24:1a). 화친의 담보로 귀족의 자제들을 인질로 보냅니다. 그때 다니엘과 3친구가 신바벨론 황궁으로 가게 됩니다(1:1-4). 하지만 주전 601년에 애굽으로 쳐들어오는 신바벨론의 군대를 애굽이 막아내고 무승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때 여호야김 왕은 다시 신바벨론을 버리고 외교노선을 애굽 쪽으로 선회합니다(왕하24:1b). 그것을 보고서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옵니다(왕하24:2-6).

4)    넷째, 여호야김 왕은 운이 좋게도 몇 달 전에 편히 죽고 그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즉위하여 강력한 신바벨론의 군대와 전투를 하게 됩니다(왕하24:6-7, 10-11). 그러나 역부족입니다. 패전을 하고 귀족들과 함께 인질이 되고 맙니다(왕하24:12-16).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를 새 왕으로 만들고 친 바벨론 괴뢰정권을 세웁니다(왕하24:17, 대상3:15). ‘여호야긴왕은 폐위를 당하고 본래의 이름 여고냐로 불리며 신바벨론 제국의 수도롤 끌려 갑니다(왕하24:15, 대상3:16-17). 그때 선지자 에스겔도 함께 끌려간 것입니다(1:1-3). 그러나 37년 후에는 여호야긴 왕이 감옥에서 석방이 되고 신바벨론에서 유다의 왕족으로 후대를 받게 됩니다(왕하25:27-30, 52:31-34). 한편, 주전 586년에 시드기야 왕의 유다 왕국은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이 득세하여 신바벨론 제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다가 완전하게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왕하25-1-7). 그것이 선민들의 나라 다윗왕조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4)  넷째로, 그러한 모든 역사적인 변화를 예루살렘에서 직접 지켜보고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왕과 귀족 그리고 백성들에게 외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의 역사적인 기록을 읽으면서 한국의 성도들은 동쪽의 제국과 서쪽의 제국 사이에서 어떻게 다윗왕조의 선민의 나라가 생존을 할 수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도저히 인간적인 노력과 외교 그리고 국방력으로써는 안전보장과 번영이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침 그대로 길은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①하나는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천군의 도움을 받아 외적을 물리치고 성민의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그러한 신앙회복에 실패를 하고 있다면 예레미야의 주장처럼 강력한 적과 전쟁을 하지 말고 친선외교를 전개하여 적극적으로 화친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 줄타기가 심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체적인 안보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마지막 방법이 그것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1:1);

(1)  선지자 예레미야의 출신성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아론의 후손이며 제사장 가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바로 그들이 베냐민의 땅에 살고 있는 제사장 가문이라는 것입니다(1:1). 그 옛날 여호수아가 12지파와 레위인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12지파와 레위인들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줍니다. 그때 이스라엘 12지파는 자신들이 얻은 영토 가운데 평균 4개씩의 성읍을 떼어서 레위인들의 것으로 내어주고 있습니다(35:1-8).

(2)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땅에 골고루 흩어져서 살도록 조치가 되고 있습니다(21:1-3). 그 이유는 그들의 사명이 두가지이기 때문입니다; ①하나는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입니다(8:10-15). ②또 하나는 12지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대상6:31, 42, 44-50, 73-85, 87-88).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성막이나 성전 가까이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레위인들은 멀리 떨어져서 살더라도 전부 12지파에 골고루 흩어져서 살아야야 하는 것입니다.

(3)  구체적으로, 12개 지파에서 평균 4개씩의 성읍을 레위인들에게 할당을 합니다. 48개의 성읍 가운데 6개가 도피성으로 사용이 됩니다(35:6, 20:7-9).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로 제비를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성전이 자리를 잡게 되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지파의 성읍 13군데에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이 살게 됩니다(21:4). 그 가운데 베냐민 지파가 내어 놓은 성읍 아나돗이 있으며(21:18) 그곳에서 예레미야의 제사장 집안이 대를 이어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1:1).

(4)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성읍은 유다 지파, 시므온 지파,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21:4). 훗날 남북조 시대에 그 땅들이 모두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에 속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사장 집안은 영원히 유다 지파 및 베냐민 지파와 함께 다윗왕조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제사장 가문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과 그 운명을 같이하고 있으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도 유다 왕국의 운명과 깊이 관련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지 13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1:2);

(1)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아론의 후손인 장정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게 되는 나이는 30세입니다(4:23). 나중에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꾼으로 봉사하는 기타 레위인들은 그 나이가 30세에서 25세로 하향조정이 되고 있습니다(4:23, 35, 43, 47, 8:24). 그러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연령의 하향조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면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세의 연령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훗날 세례 요한의 공생애가 30세에 시작이 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도 30세쯤이라고 하겠습니다(3:23). 

(2)  그런데 선지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30세라는 기준이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제사장으로 불리지 아니하고 있는 예레미야가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에 약관의 나이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선지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2). 자신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처음에 선지자의 직분을 사양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1:6).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강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1:6-7).

(3)  요시야 왕 13년에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인 예레미야가 자신을 스스로 아이’(child)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를 선지자로 발령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 예레미야가 정말 열 몇 살에 불과한 아이일까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가 30대였으면 스스로 아이라고 말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10대였으면 어린아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입니다. 그런데 그의 사역이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부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되는 주전 586년까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입니다. 고대사회에서 60세의 노인은 드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된 나이를 20세 약관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4)  참고로, 요시야 왕은 31년 동안 통치를 하다가 주전 609년에 므깃도 전투에서 서거를 하게 됩니다(왕하22:1, 23:29-30). 그러므로 역산(逆算)을 하게 되면 요시야 왕 13년은 주전 627년에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성전에서 모세오경 중의 하나인 율법서 신명기를 발견하게 된 것은 그의 재위 18년입니다(왕하22:3-10). 그는 신명기의 내용을 읽고서 충격을 받습니다(왕하22:11-13). 그의 조부인 므낫세 왕 때부터 신명기의 율법을 알지 못하고 심하게 우상을 섬겨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종교개혁을 강력하게 실시합니다.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아니하게 되면 선민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곧 멸망을 당하고 만다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왕하22:16-20) 그에 따라 최초로 전국적으로 유월절 규례를 철저하게 지키게 됩니다(왕하23:21-23). 그러나 그가 13년후 불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의 아들들이 차례로 왕이 되면서 여호와의 신앙은 다시 사라지게 됩니다. 그 결과 그의 서거 23년 후에 선민의 나라가 완전히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을 약간 늦추기는 하였지만 그 멸망을 방지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왕하23:25-27). 그것은 요시야의 조부인 므낫세의 우상숭배와 학정이 너무나 여호와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21:10-16).

셋째로,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아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11년 말까지 5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1:3);

(1)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누란(累卵, 달걀 위에 달걀을 쌓고 있는 것처럼 위태한 모습)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때는 성군 요시야 왕이 죽고 난 다음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실제적인 예언활동이 주로 요시야의 아들들이 차례로 유다의 왕이 된 그 시절입니다(1:3a). 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요시야 왕이 불귀(不歸, 한번 가면 결코 돌아오지를 못함)의 객이 되자 신하들은 똑똑한 둘째 왕자 여호아하스를 예루살렘에서 신왕으로 옹립을 하고 애굽의 황제인 느고의 침략에 대비를 서두르게 됩니다(왕하23:29-30).

(2)  하지만 바로 느고의 군대가 너무 빨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고 맙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3개월 만에 애굽의 바로에 의하여 폐위가 되고 애굽으로 끌려가서 죽고 맙니다(왕하23:31,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장남의 이름을 바꾸어 여호야김왕으로 삼고 친() 애굽 괴뢰정권을 수립합니다(왕하23:34-35).  여호야김의 우왕좌왕하는 통치가 11년 계속되다가 그가 죽고 맙니다. 그때 공교롭게도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유다로 쳐들어옵니다(왕하23:36-24:7). 왕이 된 지 몇 달 되지도 아니하는 후계자 여호야긴왕이 적을 막아내고자 총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입니다(왕하24:8-16).

(3)  여호야긴왕은 바벨론 포로가 되고 요시야의 셋째아들인 맛다니아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그 이름이 시드기야로 바뀌어 유다 왕이 되고 11년 동안 통치하게 됩니다(왕하24:17-18). 그러나 반란을 도모하다가 결국 주전 586년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조종(弔鐘, 별세의 종소리)을 울리고 맙니다(왕하24:20-25:7). 유다 왕국의 멸망은 정확하게 시드기야왕이 죽위한지 만 11년이며 유대인들의 달력으로는 5월달입니다(1:3b). 그때까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활동이 지속이 되었다고 본문에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1:3c).

결론적으로, 제사장 가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 시기는 국가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1)  첫째,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 왕 통치 13년인 주전 627년에 약관의 나이로 선지자가 됩니다. 5년후부터 요시야 왕은 예루살렘성전에서 발견한 모세의 율법서인 신명기의 내용에 따라 종교개혁을 실시합니다. 우상문화를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몰아내고 여호와를 섬기는 유월절 행사를 전국적으로 시행합니다. 그렇게 13년 동안 애를 쓰다가 그만 애석하게도 죽고 맙니다. 주전 609년 애굽의 황제 바로 느고의 군대를 막다가 므깃도에서 부상을 입어 전사를 한 것입니다.

(2)  둘째, 그때부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할 때까지 23년 동안은 슬픔의 역사입니다. 다시는 종교개혁도 나타나지 아니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도 못합니다. 애굽의 황제인 느고가 세운 유다 왕 여호야김이 11년 통치를 하고 또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세운 유다 왕 시드기야가 11년을 통치합니다. 결국 바벨론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하다가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전력으로 예루살렘에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전한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도 선지자활동을 계속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선민의 나라의 부활을 꿈꾸고 있지 않습니다. 유다 왕국의 뒤를 이어 세상나라들이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5:29).

그 대신에 그는 여호와께서는 선민과 이방인 구별을 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의지하여 믿음생활을 하는 자들을 모두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한다는 새로운 언약을 깨닫고 있습니다(31:13-34).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관점에서 대선지서 예레미야를 끝까지 읽고 묵상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앗수르, 바벨론, 그리고 애굽과 유다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