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4강(렘1:16-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7. 22:02

예레미야 강해 제4(1:16-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52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의 이유가 무엇이며 그것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어떻게 외치라고 말씀하시는가?(1:16-19)

 

먼저 예레미야의 일생은 마치 모세의 경우처럼 다음과 같이 셋으로 갈라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그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선지자로 세움을 받기 전의 시절입니다. 예레미야가 베냐민의 지역 안에 있는 아나돗성읍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나서 20세가 될 때까지의 시기입니다(1:1-2);

1)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된 때는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입니다(1:2). 그때 예레미야는 약관의 나이 20세로 보입니다. 참고로, 요시야 왕의 부친인 아몬 왕은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립니다(왕하21:19). 그리고 아몬 왕의 선왕인 므낫세는 예루살렘에서 무려 55년간이나 통치를 합니다(왕하21:1).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므낫세 왕 50년에 베냐민의 땅에 있는 제사장들의 성읍 아나돗에서 힐기야의 아들로 출생한 것입니다(1:1).

2)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다윗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왕하21:9, 17). 그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보다 더 심하게 우상을 섬겼으며 가나안의 원주민이었던 아모리 족속보다 그 악행이 더 심했습니다(왕하21:11, 15:16). 무죄한 자의 피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유대 땅에 흘러 넘치는 것을 보시고(왕하21:16) 여호와께서는 그의 손자인 성군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지도상에서 없애 버리십니다(왕하21:12-15). 그러한 악한 왕 므낫세 왕의 통치 말기에 예레미야가 태어난 것입니다.

(2)  둘째,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되고 요시야 왕의 통치가 끝날 때까지 유다 왕국에서 살아간 19년의 세월입니다;

1)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전장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 도중에 죽게 될 때까지 31년 동안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잘 통치한 성군입니다(왕하22:1-2).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에 예레미야가 약관의 나이로 선지자가 되었지만 그가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주로 요시야 왕 이후의 유다 왕국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2)    한 마디로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 왕의 시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시야 왕이 통치 18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발견한 모세의 율법서인 신명기를 읽고서 그때부터 그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 때까지 13년간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22:3-23:25).

(3)  셋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왕성하게 한 시기가 바로 요시야 왕의 3아들과 1명의 손자가 유다 왕국을 다스린 시대 23년간입니다. 그리고 주전 586년에 조국이 망한 다음에는 애굽에서 열방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요시야 왕의 급서에 따라 왕위에 오른 두번째 왕자 여호아하스는 3달만에 바로 느고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애굽으로 사로잡혀갑니다(왕하23:31-34). 그 뒤를 요시야 왕의 장남인 엘리아김이 바로 느고에 의하여 여호야김으로 개명이 되고 유다의 왕이 됩니다(왕하23:34-35). 11년간 유다를 통치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새 왕이 됩니다(왕하23:36, 24:6).

2)    그런데 여호야긴 왕 즉위 3개월만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쳐들어옵니다(왕하24:8-10).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가고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인 맛다니야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그 이름이 시드기야로 개명이 되고 유다의 왕이 됩니다(왕하24:15-17). 그러나 11년 후에 바벨론을 반대하다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대군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왕하25:1-7).

3)    그와 같이 요시야 왕의 3아들과 1명의 손자가 다윗왕조 유다를 다스린 기간이 모두 23년간입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 활동은 그 시기에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조국이 망하자 예레미야는 남은 백성들에게 바벨론 왕을 겁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의 능력을 믿고서 부디 유다 땅을 떠나지 말라고 외칩니다(42:11, 19).

4)    그러나 남은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 끝까지 무시하고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끌고 갑니다(43:4-7).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시작이 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애굽을 비롯하여 모든 이방나라들에게 차례로 임할 것이라고 자신의 목숨이 다하도록 외치고 있습니다(42:15-22, 25:29). 그렇게 예레미야는 여러 이방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구체적으로 그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선민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이 북쪽에서 오는 군대와 민족들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마침내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1:14-15). 이어서 본문에서는 예레미야가 선민의 나라의 멸망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1)  첫째, 선민의 나라가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편리하게도 수호신과 소원성취의 신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1:16).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창조주 여호와를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하나님을 제 마음대로 조종하여 세상적인 이익만을 얻고자 하는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잘못된 종교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그 결과 회개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선민의 나라조차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러한 잘못을 회개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선민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강력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정직하게 동족들에게 전달하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정직하고도 담대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전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1:17-19). 그것이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1:16);

(1)  여호와는 사람들이 만든 신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이십니다(3:14). 피조물인 인간들은 창조주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판단하시고 스스로 결정하여 움직이십니다. 한 마디로, 피조세계는 창조주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운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1:26-27, 2:7) 그와 같은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3:1-6).

(2)  사람들은 교만하게도 이 세상에서 자신이 창조주이며 우주의 주인이라고 하는 무신론적인 사상과 자력 구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감히 영적인 분야까지 좌지우지하고자 획책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신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 섬기고 있는 신들이 바로 우상입니다(1:16a). 우상은 사람들의 종이며 일종의 도구입니다. 사람들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것이 우상들의 의무입니다.

(3)  그런데 사람들은 여호와도 그러한 우상과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발칙한 사상이 벌써 출애굽 당시에 맛사의 시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7: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아무리 자식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 가운데 강력하게 징계하시고 심판을 하십니다(1:16b). 설혹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한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여전히 십계명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것을 어기는 자에게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응징이 뒤따르고 있습니다(20:1-6, 32:33-35).

둘째로,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1:1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1:17a); 허리를 동이는 경우는 전투에 나서는 때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장정들의 의복은 마치 두루마기와 같아서 풍성합니다.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의복으로는 전투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허리띠를 사용하여 허리를 동이고 전투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백성들과 권력자들 앞에 나설 때에는 마치 전투에 나서는 군인과 같은 각오를 가지고 허리를 동이고 나아가라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1:17a).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1:17b);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전하게 되는 여호와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진노로 징계를 받으며 끝내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1:16). 그것을 좋아할 왕과 귀족 그리고 백성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을 전하는 선지자를 거짓선지자로 몰아 부치고 돌로 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제멋대로 변조하여 전할 수가 없습니다. 충직하게 그대로 모두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1:17b).

(3)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1:17c);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실한 종을 세상의 왕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의 분노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건져 주십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주십니다;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1:17c).

2)    피조세계보다 더 크신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이 선지자가 전하는 그 말씀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선지자가 정확하게 권력자들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이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윤색하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고쳐서 전하게 되면 그때에는 그러한 강력한 보호하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로,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유대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8-19); 역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유대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1:18); ‘그 온 땅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와 만민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1:18a). 그 가운데에서도 당장은 예레미야의 조국인 유다 왕국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왕과 귀족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게 골고루 전달해야만 합니다(1:18b).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만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개인적으로 보복을 하려고 나설 것입니다. 동족으로부터 위해(危害)를 당하게 되는 예레미야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호하시고 건져 주실까요? 그 내용을 매우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1:18c). 한 마디로, 마치 철옹성과 같이 두텁게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1:19a);

1)    세상사람들이 여호와의 종을 치게 되면 이길 수가 있을까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하는 진리를 여호와께서는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1:19a)라고 말씀하시면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그 말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의 지혜와 힘으로 어떻게 창조주 여호와의 일꾼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2)    그런데 역사 가운데 몇 번 이긴 것처럼 보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사 스데반의 순교(7:59-60), 사도 야고보의 순교(12:1-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 및 십자가 처형 등입니다(18:6-11, 19:12-16).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들보다 힘이 약해서 발생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섭리 가운데 그들은 당장 영생으로 들어가는 승리를 얻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사명을 순교로 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제자들에게 문을 열고 있습니다(22:28-30, 8:11-17, 고전15:20-23). 그리고 집사 스데반과 사도 야고보의 순교로 말미암아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지경을 벗어나 이방지역에서 왕성하게 개척이 되고 있습니다(11:19-21, 12:17, 24). 그와 같은 특별한 사명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인 성도들을 철옹성과 같이 강력하게 보호하시고 또한 모든 세상적인 위험에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1:19a, 16:33, 8:37).

(3)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9b);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도피성 제도와 히스기야 왕 때의 천군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합니다. 그 땅을 제비 뽑기를 퉁하여 각 지파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6개의 큰 성읍을 도피성으로 지정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관리하게 합니다(20:7-9). 요단 강 동쪽과 서쪽에 각각 3개씩 균등하게 배치가 되어 있는 도피성은 피의 보복자에게 쫓기고 있는 과실치사자의 목숨을 구원하는 장소입니다(35:22-34).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종의 직무를 선지자가 충실하게 이행을 하게 되면 세상사람들의 탄압과 박해로부터 여호와의 은혜로 보호하심과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께서 항상 신실한 종들의 도피성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2)    만약 세상사람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 때의 사건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침략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왕도인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히스기야 왕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앗수르 군대의 랍사게 장군이 예루살렘 성안의 백성들에게 항복을 하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8:19-35). 그런데 그 내용이 창조주 여호와를 한갓 힘이 약한 나라의 수호신 정도로 폄하하면서 자국의 백성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라고 모욕하고 있습니다.

3)    항복을 권유하는 랍사게의 모욕적인 문서를 손에 들고서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성전을 찾아가서 여호와께 호소합니다(왕하19:10-19).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날 밤에 천사를 보내어 산헤립의 원정군 185천명을 몰살시키고 맙니다(왕하19:34-35).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가 내포가 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9b)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4:24). 따라서 그 약속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 이곳에서도 그대로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600년 후에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그 내용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권력자들과 백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진노로 북방 왕국들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여러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도 똑 같은 여호와의 예언을 전하게 됩니다.

세상나라의 권력자들은 자국의 멸망에 관한 그와 같은 선지자의 예언을 환영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만한 선지자를 협박하고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조금도 걱정을 하지 말고 담대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꼭 그대로 전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실한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아브라함의 선지자 활동을 보호하신 것과 같습니다(12:3, 20:7). 마치 철옹성과 같이 그리고 도피성과 같이 여호와께서 안위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기에 선지자는 안심을 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예언활동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시며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그 보호하심과 구원의 약속을 믿고서 땅끝까지 나아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