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46강(창43: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7월 7일(목)
1. “그(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고”(창43:1)의 의미가 무엇인가?
(1) 애굽 제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전부 연속흉년이 함께 들고 있다는 것임.
1) 고대의 애굽 제국의 영역은 상당히 넓다고 볼 수 있음. 오늘날의 이집트, 수단, 이디오피아. 그리고 서쪽으로 리비아와 튀니지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넓은 제국인 것임.
2) 그 모든 영토에서 연속흉년이 들고 있으며 기타 주변국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는 것임. 특히 애굽의 국경 너머 동쪽에는 반(半) 사막성 기후를 지니고 있는 가나안 남부의 네게브 땅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흉년이 더욱 심각한 것임.
3) 네게브가 시작되는 헤브론에 야곱이 살고 있으며 그의 목축지가 펼쳐져 있는 가나안 중부지역에도 가뭄이 심각한 것임. 중동의 식량창고인 애굽의 나일강유역에서도 두 해째 흉년이 들고 있는 실정임. 그러므로 박토에 속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는 기아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는 것임.
(2)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곡식을 구하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임.
1) 막내 아들 베냐민을 너무나 애지중지하고 있는 야곱은 그를 애굽에 보내지 아니하고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고 있음.
2) 그 방법은 애굽 제국이 아닌 곳 가나안 땅이나 다른 주변국에서 곡식을 사오는 방법인데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임. 그 이유는 주변국 모두가 연속흉년으로 고통을 함께 당하고 있기 때문임.
3) 결국, 동서남북 어디를 쳐다보아도 애굽을 제외하고는 양식을 쌓아두고 있는 지방이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야곱은 다시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것임(사43:1-2).
2.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고 식구들이 굶주리게 되자 야곱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아들들에게 어떤 지시를 하고 있는가?(창43:2-5)
(1) 베냐민을 데려가지 말고 애굽으로 다시 가서 양식을 사오라는 것임;
1)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창43:2).
2) 마치 남에게 양식을 맡겨놓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야곱임. 그러나 그것은 억지스러운지 알면서도 하도 답답해서 그렇게 당부하고 있는 야곱의 말인 것임.
3) 굶고 있는 식솔들의 참상을 보지 못하여 족장인 야곱이 마치 하나님께 간구하듯이 자식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그 말이 현실화되면 참으로 좋을 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러하지를 못함. 아들들은 도저히 빈손으로 애굽을 찾아가서 총리 요셉 앞에 다시 설 수가 없는 것임.
(2)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아들들의 반응과 유다의 답변의 내용;
1)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창43:3-5);
2) 야곱은 하도 답답하여 애굽에서 양식을 구해온 경험이 있는 9명의 아들들에게 전부 지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유독 4남 유다의 이야기만을 적고 있음. 그 이유는 유다의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어느 사이엔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대변인이 되고 있기 때문임.
3) 그것은 장남 르우벤이 족장인 아버지 이스라엘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는 집안의 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임. 예를 들면, 그 전에 장남 르우벤이 자신의 두 아들을 아버지 야곱에게 담보로 맡기고 막내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빨리 애굽에 다녀오겠다고 제의를 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한 바가 있기 때문임(창42:37-38).
4) 너희의 가장 작은 막내아우를 데리고 오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결코 볼 수 없다고 두 번 강조하고 있는 대목은(창43:3, 5) 이 세상에서 작은 형제 곧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는 자를 돌보지 아니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면 결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의 기준과 그대로 닮아 있는 말씀임(마25:34-46).
3. 베냐민을 희생시키지 아니하면 양식을 구할 수가 없어서 식구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된다고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야곱의 고통은 무엇과 비슷한가?(창43:4-8)
(1) 잃어버린 요셉 이후 야곱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일한 아들 베냐민;
1)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그의 이복 형들에게 전령으로 보냈다가 죽게 되는 비극을 경험한 바가 있는 야곱임(창37:13-14, 32-34).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요셉의 이복 형들을 불신하게 된 것으로 보임.
2)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는 이스라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들로서는 베냐민이 유일한 아들임. 그는 마치 이스라엘의 집에서는 독생자와 같음.
(2) 독생자와 같은 베냐민을 희생하지 아니하면 식구들을 아사의 위험에서 구할 수 없게 된 야곱의 형편;
1) 요셉이 죽고 난 이후 이제는 막내아들 베냐민이 자신의 유일한 아들과 같으므로 야곱은 그를 애굽에 보냈다가 죽게 되면 자신은 더 이상 살 수가 없다고 하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자식들에게 토로하고 있음(창42:38).
2) 그렇지만 양식이 떨어져서 계속 굶게 되는 처자식과 자손들을 바라보고 있는 야곱의 심정은 타 들어가고 있음. 유일한 대안은 베냐민을 내주고 애굽에서 양식을 다시 사오는 방법인데 그것은 잘못되면 자신의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큰 모험인 것임.
3) 애굽의 총리에게 집안이야기를 괜히 하여 그와 같은 분란을 일으킨 자식들의 잘못을 탓하기도 해보았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같은 것임(창43:6-7).
4) 바로 그와 같은 시점에 아버지 이스라엘의 결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유다의 설득이 있게 되는 것임(창43:8-10). 그것은 모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있다는 복음적인 내용을 벌써 말해주고 있는 대목임(창43:8).
4. 형제들을 대표하고 있는 유다의 아버지 야곱에 대한 마지막 설득의 내용과 그 복음적인 의미가 무엇인가?(창43:8-10)
(1) 모두가 살고 죽지 아니하는 유일한 방법이 막내아우를 내주는 것이라는 말임(창43:8);
1) 이스라엘이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어주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책이 마련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를 내어주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가능해진다는 것임(눅3:22).
2) 막내아우와 같은 작은 자를 돌보고 살려서 함께 심판대 앞에 가게 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임(마25:34-40).
(2) 막내아우를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지 아니하면 자신이 영원히 죄를 지겠다고 하는 유다의 말임(창43:9);
1)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창43:9).
2) 생명구원의 담보가 되는 방법은 영원한 대속의 짐을 지는 각오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 그와 같은 각오로 이 세상에 와서 생명을 구원해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모습을 그린 듯이 미리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음.
(3) 그 결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임(창43:10);
1)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창43:10).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아들들이지만, 복음적인 의미로서는 ‘성도들’이라고 하겠음.
2) 왜냐하면, 유다와 같은 각오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들이기 때문임. 그렇게 성도가 되고 공생애에 나서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겠음. 그 이유는 더 많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구해서 더 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임(요10:10).
5. 대 족장인 이스라엘이 모든 식구들을 살리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와 함께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자 결단하고 있는가?(창43:11-13)
(1) 양식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준 애굽 총리에게 주는 감사의 예물들(창43:11);
1) 구체적으로, 유향, 꿀, 향품, 몰약, 유향나무 열매, 감복숭아(향료로 사용이 되고 있는 금빛 복숭아 모양인 도금양이며 ‘하닷사’로 부르고 있음, 에2:7) 등 귀하고 비싼 예물들이 언급이 되고 있음(창43:11).
2) 흔히 고대사회에서는 왕이나 선지자를 만날 때에 예물을 준비하고 있음. 여기서는 그러한 의미보다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양식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는 성격이 강한 예물임.
(2) 정확한 회계를 하기 위한 갑절의 돈(창43:12);
1) 애굽 총리인 요셉이 이복 형들의 자루 속에 곡식 값을 도로 은밀하게 넣어주도록 조치한 바가 있음(창42:25).
2) 그것을 돌려주고 새로 양식을 살 돈까지 마련하여 야곱이 아들들에게 맡기고 있음(창43:12). 회계는 정확하게 해야만 한다는 것임.
(3) 사랑하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데리고 가도록 내어줌(창43:13);
1) 애굽 총리를 만날 수 있는 관건이 되고 있는 베냐민임.
2) 가장 큰 예물은 비싼 선물이나 돈이 아니라 역시 사람임. 그것이 형제관계에 상처를 입은 요셉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예물임.
3) 야곱이 이스라엘 자손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내어준 것이 가장 큰 희생인 것임.
6.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편애의 대상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있는 이스라엘의 결심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43:13-14)
(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애굽 총리의 마음을 우호적으로 움직여주시기를 기도함;
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애굽 총리)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시므온)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43:14a);
2) 야곱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음.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애굽 총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시므온과 베냐민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인 것임.
(2) 베냐민의 생사를 하나님 손에 완전히 맡긴다는 것임;
1)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43:14b).
2) 생사의 주권은 오로지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야곱의 신앙임.
3) 그와 같은 믿음의 선례를 훗날 다윗과 에스더가 뒤따르고 있음(삼하12:23, 에4:16).
7. 막내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창43:15-17)
(1) 애굽 총리의 관저에서 거행이 되는 오찬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는 것임;
1) 야곱의 10아들이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기 위하여 총리 요셉을 예방하고 있음(창43:15).
2) 예물과 돈과 베냐민 가운데 애굽 총리 요셉이 보고 있는 것은 베냐민임(창43:16a).
3) 요셉은 자기의 청지기에서 관저오찬을 준비하고 그들을 모두 초청하라고 지시하고 있음(창43:16b).
(2)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치가 베냐민으로 말미암아 열리고 있는 것임;
1) 가축을 잡고 성대하게 오찬을 준비하고 있음. 더구나 애굽의 실세인 총리 요셉이 직접 참석하는 잔치자리인 것임(창43:16).
2) 총리의 청지기가 나와서 야곱의 아들들을 으리으리한 관저로 맞아 들이고 있는 것임(창43:17).
3) 그러한 성대한 잔치는 베냐민을 총리 요셉 앞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에 열리고 있는 것임(창43:16).
4)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함께 데리고 들어간다면 큰 잔치자리에 초청을 받게 될 것임(사66:20, 마22:11-12, 막14:25).
8. “도둑이 제 발이 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애굽 총리가 주최하는 관저의 오찬에 초청을 받게 된 이복 형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창43:16-19)
(1) 두려워하며 불안해하고 있음;
1) 전번에 자신들을 가나안에서 온 정탐꾼으로 몰아 부치던 애굽의 총리가 갑자기 호의를 베풀고 오찬에 초대까지 하자 어리둥절해하고 있음.
2) 그 다음에는 그 진의를 몰라서 두려워하고 있음. 그 결과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음; ①자루에 들어 있던 돈에 대하여 문책하고자 하는가? ②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재물을 빼앗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③자신들을 노예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등의 억측을 하고 있음(창43:18).
(2) 애굽 총리의 진의를 알려고 청지기에게 문의하고 있음;
1) 온갖 억측에 시달리고 불안하게 된 이복 형들이 애굽 총리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하여 열심임.
2) 총리의 관저 앞에서 애굽 총리의 청지기에게 용기를 내어 사정설명을 하고 진의파악에 나서게 됨(창43:19).
9.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이복 형들의 말에 대하여 요셉의 집 청지기가 어떠한 답변을 해주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을 닮아 있는가?(창43:19-23)
(1)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야곱의 아들들;
1) 첫째, 자루 속에서 돈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그대로 도로 가지고 왔다는 것임(창43:21).
2) 둘째, 금번에 양식을 살 돈도 가지고 왔다는 것임(창43:22a).
3) 셋째, 자신들의 자루에 돈을 넣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임(창43:22b).
(2) 상상을 뛰어넘고 있는 청지기의 답변;
1) 첫째, 첫 마디가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임(창43:23a).
2) 둘째, 그 다음에는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 속에 넣어주신 것이라는 설명임(창43:23b).
3) 셋째, 너희들이 반환한 돈은 내가 이미 받았다고 확인해줌(창43:23c). 그것으로 돈 문제는 일단락이 된 것이니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임(창43:23a).
4) 넷째, 시므온을 석방하여 형제들에게 돌려주고 있음(창43:23d).
(3) 청지기의 말은 무엇과 닮아 있는가?
1)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닮아 있음(요20:19).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기도 하시고 또한 거두어가기도 하신다는 욥의 신앙과 닮아 있음(욥1:21).
3) 하나님께 바친 이삭을 아브라함의 품에 되돌려주시는 역사와 닮아 있음(창22:12-14, 히11:19).
10. 형제 시므온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서 안심을 한 요셉의 이복 형들은 애굽 총리를 맞이하기 위하여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창43:23-26)
(1) 시므온이 풀려나자 안심을 하고 있음;
1) 인질을 풀어주는 그것이 상호신뢰의 디딤돌이 되고 있는 것임.
2) 자유를 되찾은 형제 시므온을 보게 되자(창43:23) 야곱의 아들들이 안심을 하고 애굽 총리를 기다릴 수 있게 됨(창43:25).
(2) 발을 씻고 예물을 준비하여 양식을 사기 위하여 애굽 총리를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
1) 발을 씻을 물을 요셉의 집에서 주고 있음(창43:24). 그것은 물세례 및 성령세례와 닮아 있음.
2) 예물은 이복 형들이 준비한 것임(창43:25). 전도 및 양육의 열매가 예물과 같으며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간 인생이 예복과 같음.
3) 그렇게 준비를 하고 애굽 총리를 만나고 경배를 하여야(창43:26) 비로소 생명과 같은 양식을 살 수가 있는 것임. 그것은 영생의 양식을 구하는 방법임.
11.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먼저 아버지 이스라엘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자신의 친동생 베냐민을 환영하다(창43:27-29)
(1) 아버지 이스라엘의 안부를 먼저 묻고 있는 애굽 총리 요셉;
1)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창43:27).
2) 아버지의 안부가 가장 궁금한 요셉이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므로 기술적으로 이복 형들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슬쩍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임.
3) 요셉의 정체를 조금도 눈치 채지를 못하고 이복 형들이 공손하게 애굽 총리에게 답변하고 있음;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창43:28).
(2) 친동생 베냐민을 환영하고 있는 요셉;
1) 요셉이 이제는 25세의 청년으로 성장해 있는 친동생 베냐민을 알아보고 있음(창43:29a). 그러나 겉으로는 모르는 체하면서 이복 형들에게 묻고 있음;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창43:29b).
2) 이복 형들이 그러하다고 제스처를 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이 베냐민을 축복하고 있음;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창43:29c).
12. 동생 베냐민을 22년만에 상봉한 요셉의 심정이 어떠한가?(창43:30-31)
(1) 3살배기 아기 때보고 헤어진 후 22년이 지나서 친동생을 본 요셉의 심정;
1) 세겜 사건이 발생하고(창34:25-31) 벧엘로 피신하여 하나님을 만난 때는 장남 르우벤의 나이 약관 20세로 보임. 그때는 6살 아래 요셉이 14살임.
2) 그 해 벧엘에서 베들레헴 길로 향하여 가다가 모친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산고 끝에 객사를 하게 됨(창35:16-19). 그러므로 요셉과 베냐민은 14살 차이임.
3) 요셉이 17세에 아버지 집을 떠나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것임(창37:2, 28, 36). 이제 30세에(창41:46) 애굽의 총리가 된지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 연속 흉년을 맞이하고 있는 때임(창42:1, 45:6). 따라서 요셉의 나이 39세임.
4) 따라서 요셉은 3살 때의 친동생 베냐민을 보고 22년이 지나서 다시 보고 있는 것임(창43:29). 그 심정이 애정에 북받쳐서 그만 자제를 하지 못하고 있음(창43:30a). 급히 안방으로 들어가서 혼자서 울게 됨(창43:30b).
(2) 그 정을 억제하고 있는 애굽의 총리 요셉;
1) 무서운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애굽의 총리 요셉임. 지난 9년 동안 애굽의 수석총리로서 전국을 시찰하면서 정치를 하고 냉정한 정책결정을 해온 요셉인지라 상황판단이 빠르고 감정조절이 탁월한 것임.
2) 따라서 금방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엄숙하게 음식을 차리라고 청지기와 종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임(창43:31).
3) 그것은 지난 22년의 세월을 종살이, 옥살이, 그리고 바늘방석과 같은 총리생활을 계속해온 요셉이 이루고 있는 범할 수 없는 풍모이며 세파에 시달린 노련미라고 하겠음.
13.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한 차별하고 있는가?(창43:32)
(1)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는 이유;
1) “그들이(청지기와 종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창43:32). 주인과 종 사이의 구별, 주인과 손님 사이의 구별 외에도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 사이의 구별이 나타나고 있음. 한 상에서 식사를 하면 부정이 탄다는 관념임.
2) 고대사회 중근동 지역에는 두 개의 문명권이 대치를 하고 있음. 메소포타미아의 제국과 애굽의 제국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두 개의 큰 강이 만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문명이 먼저 발생하고 있으며 고대사회 최고의 문명을 지니고 있음.
3) 그러나 바벨탑 붕괴와 니므롯 제국의 멸망으로 그 피지배 백성들 곧 셈족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지고 있음(창11:8-9). 그 결과 나중에는 데라와 아브라함처럼 서쪽으로 이동하여 가나안과 애굽으로 이주하고 있는 셈족들이 발생하고 있음(창11:31-12:5).
4) 그들을 가나안과 애굽에서는 두 개의 강 유역에서 서쪽으로 이주해온 나그네라는 의미로 ‘히브리인’이라고 부르고 있음. 인종적으로, 가나안과 애굽에서는 그 원주민들이 함족이므로 자연히 이주해온 셈족에 대하여 차별을 하며 부정을 탄다고 말하고 있음.
5)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셈족의 종교 및 문화가 범신론과 유물론에 젖어 있는 함족의 종교 및 문화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부정이 탄다고 하면서 차별하고 가급적이면, 멀리하고 있는 실정임.
(2) 훗날 선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등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있는 이유;
1) 훗날 애굽에서 출애굽을 하게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도록 여호와로부터 선택을 받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게 됨(출19:5-6).
2) 특히 출애굽과정에서 함족 애굽 사람들에게 보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 때문에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들을 멸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출12:29-30, 14:26-30, 사19:1-17).
3)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두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
4) 그와 같은 삐뚤어진 선민사상을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니게 됨으로써 그들은 국제적으로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임.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을 배척하게 되는 것임.
14. 이복 형들에 대하여 요셉이 나이 순서대로 앉게 하고 친동생 베냐민에게는 5곱의 음식을 차려주고 있는데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복 형들은 어째서 애굽의 총리가 동생 요셉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가?
(1) 요셉이 청지기에게 준 좌석의 배치가 정확하게 손님들을 나이순서로 앉히고 있는 것임;
1)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창43:33).
2) 이상하게 여겼지만 단지 우연의 일치로 보아 넘기고 있음. 그 이유는 노예로 팔려간 동생 요셉이 22년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를 진작에 뛰어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임.
3)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은 사람의 이성과 논리로 따질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하고 있는 영적인 차원의 것이며 훗날 사람들이 전혀 새로운 창조의 현실로 직면하게 되는 것임.
(2) 요셉이 베냐민에게 5곱의 음식을 주고 있는 것을 그저 막내를 귀여워하는 것쯤으로 그의 형들이 치부하고 있음;
1)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5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창43:34).
2) 모두에게 풍족한 음식과 술을 주고 있으므로 베냐민에게 5곱을 주더라도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 없으며 크게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없음. 만약 충분한 음식이 각자에게 제공이 되지 아니했더라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임.
3) 그들은 언어가 다르지만 크게 즐거워하고 있음.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끝까지 애굽 말을 사용했으며 이복 형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임. 그렇지만 좋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서로 즐거워한다는 것은 언어의 차원을 진작에 뛰어넘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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