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45강(창42:1-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6월 30일(목)
1. ‘그때에’는 언제를 말하고 있는가?(창42:1)
(1) 2년 계속하여 흉년이 들고 있는 때임(창42:1);
1) 그 동안 7년 연속풍년이 있었으므로 한해 흉년이 들더라도 먹고 살 수가 있음. 왜냐하면 연이은 풍년으로 비축해둔 잉여 양식이 상당히 남아 있기 때문임.
2) 그렇지만 2년 연속흉년이 들게 되면 상황이 달라짐. 저장해둔 양식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는 것임. 설마 2년 연속흉년이 들까 하고서 방심하였으므로 그 고통이 심각해지는 것임.
3) 따라서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모두가 나서게 됨. 주변국 가운데 흉년이 들지 아니한 나라나 잉여 농산물을 비축하고 있는 나라를 찾아나서는 것임.
(2) 각국 백성이 애굽에서 양식을 구입하여 기근을 면하고 있는 때임(창41:57);
1)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웃 강대국 애굽에서 7년 연속풍년 때의 농산물을 대대적으로 비축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고 있음.
2) 따라서 주변국의 백성들이 돈을 준비하여 앞다투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오고 있음. 그들은 모두 애굽 총리인 요셉에게 와서 양식을 사고 있음.
3) 가나안 사람들이 애굽에서 양식을 사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서 야곱이 아들들에게 그렇게 조치를 하라고 독촉을 하고 있음(창42:1).
2. 야곱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서 애굽의 곡식을 사오라고 아들들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그 표현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42:1-2)
(1)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창42:1)가 먼저임;
1) 야곱이 직접 애굽에 가서 창고에 비축되어 있는 양식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 그는 사람들이 애굽에 가서 사오고 있는 양식을 보고서 그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임.
2)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직접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다가 이 세상에 와서 다시 살고 있는 것이 아님.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것을 보고서 믿고 있는 것임.
(2) 그 다음에 “내가 들은즉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창42:2)가 나타나고 있음;
1)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무덤 속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성도들이 부활과 영생을 믿게 됨.
2) 그리고 자신들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그 제자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활과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임.
3) 그것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자기 집도 그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가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야곱의 행동과 같은 것임(창42:2).
3. 야곱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이복 형 10명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지 아니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창42:3-4)
(1) 요셉에 이어 다시 베냐민을 편애하고 있는 야곱;
1) 창조주는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공의가 가능하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진리를 이스라엘이 말해주고 있음.
2) 야곱은 2처2첩이 있지만 유일하게 사랑하고 있는 아내는 라헬 뿐임. 그러한 편애가 사람들의 인간관계의 특징이라고 창세기가 밝히고 있는 것임.
3) 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훗날 선민이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러함. 동족인 선민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의 대상이고 이방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선민사상으로 살고 있음. 그것이 유대교의 특징임.
4) 일찍이 라헬을 편애하던 야곱이 그녀가 베냐민을 낳고 객사를 하게 되자(창35:18-19) 그때부터 라헬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 만을 편애한 것임.
5) 요셉이 사라진 이후 야곱의 관심사는 오로지 베냐민이며 그를 끝까지 돌보기 위하여 자신의 후계체제조차 구축하지 아니하고 있는 실정임.
(2) 먼 곳으로 보냈다가 요셉처럼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
1) “요셉의 형 10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창42:3-4).
2) 두 가지로 해석이 되는 문장임; ①첫째, 그 옛날 요셉이 멀리 이복 형들을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한 적이 있으므로(창37:13-14, 33-34) 야곱은 베냐민을 이복 형들과 함께 멀리 보내고자 아니하고 있는 것임. 즉, 이복 형들과 멀리 떠나게 되면 요셉처럼 베냐민도 죽을 수가 있다고 하는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고 있는 야곱임. 그것은 10아들이 살인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직감인 것임.
3) 둘째, 야곱은 베냐민을 자신의 품에 두고서 끝까지 보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강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임.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자식을 보호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완전한 것이 아님. 유일하게 완벽한 보호하심은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완전한 보호하심을 제공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이심.
4) 따라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이 가장 아끼며 사랑하고 있는 그 대상의 장래를 온전히 맡길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신뢰한다는 하나님신앙의 핵심이 될 것임(창22:10-14, 히11:18-19).
4.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이 애굽 총리가 되어 있는 동생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창42:5-8)
(1) 애굽의 곡식을 사기 위해서는 누구나 애굽의 총리인 요셉의 허락을 받아야 함(창41:55);
1) 2년 전에 부황이 죽자 즉위를 한 세누스레트3세는 나이도 어리지만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살림을 전부 총신 요셉에게 맡기고 있음(창45:8). 따라서 애굽의 곡식을 구휼미로 풀고 주변국에 파는 모든 권한을 총리 요셉에게 벌써 일임하고 있는 것임(창41:55).
2) 이에 따라 주변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요셉 총리를 배알하고 부디 곡식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읍소를 하고 있음(창41:57, 42:5-6).
(2) 총리 요셉 앞에 절을 하고 있는 이복 형들이 전혀 동생임을 눈치채지를 못함(창42:8);
1)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창42:7). 형들을 금방 알아보고 있는 요셉임. 그 이유는 그가 상상하고 있던 모습과 별로 달라져 있지 아니하기 때문임. 가나안에서 넓은 목축지를 나누어 가지고 형들이 각각 족장으로 성장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의 판단 그대로인 것임.
2) 그러나 요셉은 이복 형들에 대하여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아니하고 있음. 그 이유는 아직 알아보아야 할 사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임. 예를 들면, 그간의 아버지 야곱의 집안의 사정과 이복 형들의 회개의 여부인 것임.
3)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창42:8). 동생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단에 노예로 팔아 치우면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요셉이 애굽에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아 보았자 평생 노예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4) 그러므로 자신들의 절을 받고 있는 애굽의 총리는 그들의 판단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임. 그 동안 긴 세월 22년이 지나갔고 요셉은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여 그 모습이 변하였으며 더구나 이제는 완벽하게 애굽인이며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애굽의 수석총리인 것임. 그와 같은 요셉 총리의 모습을 그 옛날 철부지 동생 요셉과 견준다고 하는 것은 상상의 한계를 진작에 뛰어넘고 있는 변화인 것임.
(3)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실제로 사람의 인생 가운데 그와 같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러한 미래를 직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하여 창세기는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인생에 대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 답을 해주고 있는 것임. 그것이 창조주를 믿는 하나님신앙의 특징인 것임.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한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모든 사람들의 주님이 되고 있으며 그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기도 하는 것임. 그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현실화가 된다는 사실을 창세기가 여기서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음.
5. 요셉은 이복 형들의 처분을 하나님이 자신의 손에 붙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며 그 처분권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는가?(창42:9-15)
(1) 22년 전에 꾼 꿈이 이제 현실화되었음을 요셉이 알아채고 있음(창42:9);
1)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42:9).
2) 요셉이 17세의 청소년일 때 그는 가나안 땅 헤브론의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신기한 꿈을 두 번 꾼 적이 있음. 그 내용은 동일한 것임. 이복 형들이 그 다음에는 부모님까지 자신에게 절을 하게 된다는 것임(창37:6-11).
3) 그 꿈 이야기를 하면서 요셉은 장차 자신이 가나안 땅의 대 족장인 아버지 야곱을 능가하는 가나안 땅의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됨.
4) 하지만 그 꿈은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22년의 세월이 지나서 애굽의 제국에서 현실화가 되고 있는 것임(창42:6-9).
(2) 자신들은 총리 요셉 앞에 종의 신분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이복 형들의 진술(창42:10-13);
1) 요셉은 자신의 꿈이 현실인지 아닌지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하고 있음. 따라서 22년만에 만난 이복 형들을 거듭 애굽 땅의 양식을 훔치기 위하여 미리 가나안 땅에서 정탐조로 침입한 자들이라고 누명을 씌우면서 실토하라고 몰아붙이고 있음(창42:9, 12, 14).
2) 요셉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형들은 하도 답답하여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 그것이 세 번 몸을 굽혀서 자신들을 애굽 총리인 요셉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임(창42:10, 11, 13). 그리고 자신들은 순수하게 곡물을 사러 온 가나안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듭 해명하고 있는 것임.
3) 급기야는 자신들의 신분과 정체가 가나안 땅의 한 사람의 아들들이며 막내아들은 현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에 있고 또 한 형제는 과거에 실종이 된 집안이라는 사실까지 진술하고 있음(창42:13). 그 말은 사람을 보내어 가나안 땅 헤브론의 대 족장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면 자신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임.
4) 그렇지만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그렇게 조치할 필요가 없음. 그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임. 그렇지만 자신이 그 없어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코 밝히지 아니하고 있음(창42:13-14).
5) 그 이유는 22년전에 하도 끔찍한 피해를 그들로부터 당했기 때문임(창37:23-24, 28). 따라서 그 후 자신의 10명의 이복 형들이 어느 정도로 회개를 하고서 변화를 받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똑똑하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임.
(3) 요셉이 내리고 있는 처분의 내용(창42:14-15);
1)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창42:15).
2) 요셉은 이복 형들에게 다짜고짜 자신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는 막내아우를 자기 앞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임. 그러면 믿어 주겠다는 것임.
3) 그것은 참으로 교묘한 제안임. 왜냐하면, 요셉은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친동생을 볼 수 있게 될 것이기 대문임.
4) 하지만, 이복 형들의 입장에서는 죽을 지경임. 왜냐하면, 아버지 야곱이 얼마나 막내아들 베냐민을 끼고 살면서 절대로 바깥으로 내어놓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임(창42:4).
6. 막내 아우를 데려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해방과 구원의 관건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과 닮아 있는가?(창42:15-16, 마25:40)
(1) 요셉이 이복 형들에게 내걸고 있는 조건;
1) 자신의 막내아우인 베냐민을 자기 앞으로 데리고 오면 이복 형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어주겠다는 것임(창42:15).
2) 반대로, 막내아우인 베냐민을 그들이 애굽의 총리인 자신 앞으로 데려오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정탐꾼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임(창42:16).
(2)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내걸고 있는 조건;
1)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2)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말씀에 따르게 되면,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곧 소외되고 생존의 위험에 처해있는 자를 돌보고 그 생명을 살려주는 행위가 바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관건이 된다고 하는 것임(마25:34-40, 45-46).
3) 그 작은 소자가 여기 창세기에서는 야곱의 막내아들인 베냐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음.
4)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을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돌보라고 하는 뜻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성도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7. 3일후 요셉이 또 다른 시험을 추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창42:16-20)
(1) 처음의 조치;
1) 10명 가운데 1명만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어 막내아우를 데리고 오도록 하는 것임(창42:16a).
2) 나머지 9명은 막내아우와 함께 그 형제가 돌아올 때까지 가두어 두는 것임(창42:16b).
(2) 두 번째의 조치와 그 의미;
1) 일단 10명의 이복 형들을 모두 3일간 감금하고 있음(창42:17).
2) 3일후에 석방을 하면서 새로운 조건을 애굽 총리인 요셉이 제시하고 있음(창42:18ac).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관용이라는 것임(창42:18b).
3) 그 내용은 1사람만 인질로 삼을 터이니 양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식솔들의 생명을 살리라는 것임(창42:19). 그렇게 자신의 원한과 복수보다도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라고 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인 것임(마5:43-48).
4) 인질로 잡혀 있는 형제를 구하고 동시에 애굽의 양식을 더 사고 싶으면 반드시 막내아우를 자신 앞에 데리고 와서 자신들의 무죄함을 밝혀야만 한다는 것임(창42:20).
8. 위 두 가지 시험에 직면하게 되자 요셉의 이복 형들은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창42:21-23)
(1) 형제 중 작은 자 하나의 존재가 전체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관건이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깨닫지를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감임;
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요셉)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42:21).
2) 그 옛날 미운 짓만 골라서 하던 이복동생 요셉을(창37:2-3, 7, 9) 하나같이 미워하여(창37:4, 8, 11) 서로 공모하여 죽이고자 했음(창37:20). 당시 17세의 요셉이 부디 살려달라고 이복 형들에게 애걸복걸했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말았던 그들임. 이제는 때늦은 자책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는 것임(창42:21).
3) 그때 회개하는 요셉을 살려주었더라면 하나님이 이 같은 시험을 주지 아니했을 것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임.
(2) 다시 한 형제를 희생시키고 모두가 양식을 얻어 살아난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때늦은 각성임;
1)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창42:22).
2) 다시 형제 1사람을 애굽의 총리에게 인질로 삼아 사지(死地, 죽을 만큼 위험한 곳)에 남겨두고서 자신들만 양식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그 식솔들 앞에 염치도 없고 사람으로서 할 일이 못 되는 일이라고 모두가 느끼고 있음.
3) 그러한 차 중에 장남 르우벤이 자신의 진심은 당시 요셉을 살려주자는 것이었다고 강변하면서 이제는 그때의 핏값을 자신들이 치르게 되고 있는 것이라고 발언을 하고 있음(창42:22).
4) 하지만, 르우벤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심하게 호도하고 있는 것임. 당시 그의 속셈은 아버지 야곱이 편애하고 있는 요셉을 자신이 은밀하게 한밤중에 구출하여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임. 그렇게 되면, 르우벤 자신은 실추한 장자의 명예를(창35:22) 회복하는 한편, 나머지 동생들은 모두 아버지의 진노 아래 들어가게 되는 것임.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르우벤의 음모라고 하겠음.
5) 어쨌든 당시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단에게 노예로 팔아 넘긴 그 파렴치한 일에 대하여(창37:28) 논죄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임.
9. 요셉이 어째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았으며 또한 곡물대금을 은밀히 돌려주고 있는가?(창42:24-25)
(1) 요셉이 시므온을 인질로 잡은 이유;
1) 10명의 이복 형들 가운데 누구를 인질로 잡을 것인가? 애굽 총리인 요셉의 결정은 심히 간단함. 당시 자신을 앞장서서 해치자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을 인질로 삼으면 되기 때문임.
2) 그 자가 바로 시므온임. 참고로, 맏형인 르우벤은 엉큼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음. 그는 밤중에 요셉을 살려서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다 줌으로써 자신이 차기 족장이 되는 기회를 잡고자 한 것으로 보임.
3) 따라서 평소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가 앞장을 선 것으로 보임(창34:25-26). 그 가운데 요셉은 둘째 형인 시므온을 구속해두고자 작심하고 있음(창42:24). 그 이유는 시므온과 친한 레위가 형제들을 설득하여 막내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임.
(2) 곡물대금을 양식과 함께 은밀하게 돌려주고 있는 이유;
1)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 치운 과거지사를 후회하고 있는 이복 형들의 말을 듣게 됨(창42:21-23).
2) 그래서 혼자서 내실에 들어가서 한바탕 울고 나온 요셉임(창42:24). 그것은 형들을 얼마간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다는 표현인 것임.
3) 그러므로 양식을 담은 자루 속에 은밀하게 그 대금을 도로 집어넣으라고 종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임(창42:25a).
4) 더구나 먼 길을 가는 동안 먹을 수 있도록 길 양식까지 보너스로 넉넉하게 챙겨주고 있는 참으로 착한 성품의 요셉인 것임(창42:25b).
10. 길가는 도중에 자루에서 돈을 발견한 형들이 어째서 도로 돌아가서 그 돈을 요셉에게 돌려주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 아비 집에 이르고 있는가?(창42:26-29)
(1) 가나안 땅에서 굶고 있을 식구들을 우선적으로 살려야만 하는 것임;
1) 아무것도 모른 채 시므온을 제외한 9명의 이복 형들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음(창42:26).
2) 도중에 숙박하고 있는 여관에서 한 사람이 곡식자루를 점검하다가 깜짝 놀라고 있음. 양식을 산 대금이 그대로 자루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임(창42:27). 형제들에게 말한즉 모두가 놀라고 있음(창42:28ab).
3) 모두의 자루 속에 곡물대금을 다시 넣어놓은 것은 그들을 시험하고 있는 애굽 총리의 의도로 보임(창42:28c).
4) 그렇지만 되돌아가서 애굽 총리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들의 무죄함을 납득시키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임. 당장은 빨리 가나안 집으로 돌아가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식구들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임. 따라서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임(창42:29).
(2) 빨리 가나안에 가서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야만 함;
1) 아버지 야곱을 빨리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만 당장 그곳에 인질이 되어 있는 형제 시므온을 구할 수가 있는 것임(창42:19-20, 33-34).
2) 그리고 다시 더 필요한 양식을 사올 수가 있는 것임(창42:34). 하지만 아버지 야곱의 완강한 고집으로 말미암아 가나안에서 그들의 일은 자꾸만 늦어지게 됨(창42:36, 38).
11. 그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어떻게 경과보고를 하고 있는가?(창42:30-35)
(1) 애굽 총리가 자신들을 억울하게 정탐꾼으로 몰아부친 사실부터 아버지 야곱에게 자세하게 보고함(창42:29-31).
(2) 혐의를 벗기 위하여 자신들의 가정사 곧 아버지와 12아들의 이야기를 모두 했다고 보고함;
1) 고대사회에서 개인은 그 신분이 가문의 일인으로 간주가 되고 있음. 따라서 그 가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게 되는 것임.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자신들의 무죄함을 밝히기 위하여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르우벤 등 9명의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설명을 하고 있음(창42:31-32).
(3) 인질로 잡힌 시므온, 그리고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곡식대금;
1) 그 애굽 총리가 이상하게도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고서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혐의를 벗으라고 요구했다는 것임(창42:33-34).
2) 더 이상한 것은 자루 속에 곡식을 산 돈이 고스란히 다시 들어 있는 것임(창42:35). 그러므로 하루속히 애굽으로 가서 그 돈을 돌려주어야만 한다는 것임(창42:37).
(4) 막내아우를 데리고 애굽에 오면 정탐꾼의 혐의를 풀어줄 것이라는 것임;
1) 당장 정탐꾼이라는 오해를 풀 수 있다는 것임(창42:34a).
2) 인질도 풀어줄 것이라는 것임(창42:34b).
3) 계속 애굽의 양식을 사갈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임(창42:34c).
4) 위 세 가지는 마치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세 가지의 은총과 같은 것임; ①첫째, 이제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으로 간주가 됨. ②둘째,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됨. ③셋째, 생명의 양식을 계속 얻어서 영적인 삶을 살게 됨.
12. 야곱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창42:35-36)
(1) 돈뭉치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
1)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창42:35).
2)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애굽 총리의 속셈을 알 수가 없는 것임.
3) 험한 인생 130년을 살아온 야곱의 입장에서도(창47:9) 그 일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따라서 다가올 미래가 마냥 두려운 것임.
(2) 더 두려운 일은 베냐민을 애굽으로 떠나 보내는 것임;
1) 그렇게 두려운 상대인 애굽의 총리 앞으로 자신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보낸다고 하는 것이 야곱으로서는 죽을 맛임(창43:6).
2) 더구나 형들에게 그 옛날 요셉을 전령으로 보냈다가(창37:13-14) 도중에 횡액을 당한 일을 상기하자(창37:32-34) 야곱은 차라리 굶어 죽더라도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결심을 굳히고 있는 것임(창42:38).
3) 야곱은 이미 요셉을 떠나 보내고, 시므온도 애굽에 인질로 잡혀 있고, 이제는 베냐민마저 먼 애굽으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임(창42:36). 그러므로 베냐민마저 잘못되게 되면, 자신은 더 이상 살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아들들에게 밝히고 있음(창42:38).
13. 르우벤이 아버지로부터 막내 동생 베냐민을 얻어서 시므온을 구하기 위하여 어떠한 약속을 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어떠한가?(창42:37-38)
(1) 장남 르우벤의 아버지 야곱에 대한 설득;
1) “(45세인)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베냐민)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베냐민)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 오리이다”(창42:37).
2) 르우벤은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을 다녀오겠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임.
(2) 그 효과에 대한 모세의 기술;
1) 과거 형들에게 요셉을 보내었다가 도중에 횡액을 당하고 말았다는 좋지 아니한 경험이 야곱의 발목을 여전히 잡고 있음(창42:38a).
2) 따라서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떠나 보내게 되면 도중에서 변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임(창42:38b).
3) 그렇게 되면 야곱은 살 자신이 없어진다고 하는 처절한 고백인 것임(창42:38c).
4) 그러한 아버지 야곱의 말을 들은 아들들은 더 이상 설득할 말이 없음. 자신들이 요셉을 해쳤기 때문에 이제 그 보응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고 판단이 되고 있는 것임(창42:2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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