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43강(창40: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6월 16일(목)
1. 첫 글자 ‘그 후에’의 의미는 무엇인가?(창40:1a)
(1) ‘그 후에’에 있어서 ‘그’의 의미;
1) 청년 요셉의 종살이가 끝나고 옥살이가 시작되었을 때가 여기서 ‘그’의 의미임.
2) 그러므로 ‘그 후에’(창40:1a)는 청년 요셉이 한창 옥살이를 하면서 실무를 익히고 있을 때에 발생한 사건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
(2) 그때의 애굽의 황제인 바로는 누구인가?
1) 당시의 바로는 노회한 세누스레트2세(재위 bc1,897-1,878)임. 그는 애굽 제12왕조의 4번째 바로임.
2) 애굽의 제11-12왕조는 상이집트 누비아(수단)인들과 구스(이디오피아)인들이 연합하여 하이집트 애굽인들을 정복하여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던 통일 중왕국의 시대임.
3) 그러므로 그들의 수도는 테베이며 제12왕조(bc1,991-1,782)의 8명의 바로들은 209년간 절대황권을 행사하다가 통일왕조가 무너지게 된 것임.
4) 30세의 히브리 청년 요셉을 주전 1,885년에 파격적으로 총리로 발탁한 세누스레트2세는 강력한 황권을 행사하다가 7년 풍년 끝에 죽게 되는데 그때 자신의 어린 황자를 바로로 세우면서 지혜가 뛰어난 총리 요셉에게 후견을 맡긴 것임. 따라서 훗날 요셉이 그와 같은 사정을 형제들에게 설명하고 있음(창45:7-8).
5) 참고로, 가나안 땅의 연이은 흉년을 피하여 요셉 총리의 초청으로 이민을 온 야곱의 일행이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의 바로는 즉위한지 2년이 되는 어린 황제 세누스레트3세인 것임(창47:7-10). 그가 늙은 야곱의 예방을 받으면서 그 나이에 관심을 가지고 물은 것임.
2.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지위와 영향력은 어떠한가?(창40:1b, 4)
(1) 권력자의 가까이 어느 정도까지 접근할 수 있는가?
1) 권력은 영향력인데 그것은 최고권력자에게 어느 정도로 접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음.
2) 권력자와 부부관계이면 고대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큼. 그것이 내명부의 위력이며 소위 ‘베갯머리 송사’가 이루어지는 것임.
3) ‘로얄 패밀리’인 가족을 제외하면, 행정적으로는 정승이나 총리가 1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들임.
4) 그 아래에 각 부처의 장관들이 서열대로 위치하고 있음.
(2) 환관의 존재와 그 영향력
1) 최고권력자의 비서와 경호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자들이 때로는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
2) 그들은 최고권력자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소위 ‘가신(家臣)그룹’에 속하고 있음.
3) 환관장이 되면 최고권력자의 음식과 음료수 그리고 탕약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음. 그들이 배신하면 최고권력자는 독살이 되고 마는 것임. 여기서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그러한 자들임(창40:2). 참고로,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느헤미야가 그러한 지위에 있음(느1:11).
4) 시위대장은 최고권력자의 밀착호위를 맡고 있으므로 역시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최측근인 것임. 그는 자신과 운명이 비슷한 환관장에게 호의를 지니고 있음. 따라서 요셉에게 옥중에서 시중을 잘 들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임(창40:4).
3. 바로가 범죄한 그들을 내금위 옥사에 가둔 이유는 무엇인가?(창40:1c-3)
(1) 황제의 최측근에 대해서는 즉결처분이 아니면 내금위 감옥에 가두는 것임;
1) 최측근의 반역은 당장 황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처분이 엄격함. 따라서 즉결처분이 상례임. 좋은 예가 페르시아의 재상 하만의 경우임(에7:7-10).
2) 그러하지 아니하고 그 목숨을 살려서 일단 은밀한 내금위 감옥에 가두도록 하는 것은 왕의 눈앞에 상당기간 띄지 아니하도록 조치한 것임. 그것은 죽음을 당할 정도로 큰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는 것임(창40:2-3).
(2) 황제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심사에 어긋난 것이므로 복직의 가능성이 큼;
1) ‘심리경호’라는 말이 있듯이 최고권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가신들의 잘못이 되는 것임.
2) 보통사람에게 대한 것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신으로 섬김을 받고 있는 황제에 대한 문제라면 그것은 중벌을 면하기 어려움.
3) 황제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바로의 노함을 받고 급기야 내금위 옥사에 갇히고 있음(창40:2-3).
4) 그들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점에 대하여 가장 눈치가 빠른 바로의 최측근이 여기서 시위대장 보디발임. 그가 그 두 사람에게 그들이 어려울 때 잘 보이고자 요셉에게 시중을 들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창40:4) 두 관원장은 복직의 가능성이 큰 것임.
5) 문제는 언제 바로가 기분이 무지하게 좋아서 그들을 다시 최측근의 자리로 불러주느냐 하는 것임.
4. 친위대장 보디발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요셉에게 그들의 수발을 들도록 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창40:4)
(1) 첫째, 이미 설명한 그대로 그들의 복직가능성을 미리 내다보고서 그들이 어려울 때에 도와주고 미리 잘 보이고자 하는 것임.
(2) 둘째, 그토록 중요한 일에 요셉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은 보디발이 아직도 요셉을 신임하고 있다는 표현인 것임;
1) 비록 아내의 무고에 가까운 호소를 잠재우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요셉을 내금위 옥사에 감금하고 있지만 보디발은 아내의 평소 행실로 미루어 보아 벌써 요셉의 무죄함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임.
2) 끝까지 보디발이 요셉을 의심하고 요셉에게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면, 결코 요셉으로 하여금 장차 복직이 가능한 환관장들을 수발 들도록 하지는 아니했을 것임(창40:4).
5. 옥에 갇힌 두 중신이 꿈에서라도 그 해답을 얻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앞으로 죽을지 살지 그것이 가장 궁금한 것임;
1) 황제인 바로는 그 기분에 따라 최측근이라고 하더라도 그 목숨을 하루살이처럼 거두어버릴 수 있는 절대권력자임.
2) 지금 당장은 바로가 즉결처분을 하지 아니하고 내금위 옥사에 가두도록 조치하고 있지만 언제 그 기분이 더 나빠져서 목숨을 거둘지 모르는 것임.
3) 자신들의 목숨이 오로지 사람인 바로의 기분에 달려있으므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죽느냐 사느냐 그 생사의 문제가 가장 걱정이며 관심거리임.
(2) 언제 그 일이 발생할지 그것이 궁금한 것임;
1) 바로가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려고 한다면 그때가 언제가 될 것인가? 마치 사형수가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일 것임.
2) 바로가 기쁜 일을 만나 자신들을 용서하고 복직을 시켜준다면 언제 그러한 좋은 일이 발생할 것인가? 미래를 점칠 수가 없어서 심히 초조한 것임.
3) 그래서 기적과 같이 꿈에서라도 그 해답을 얻고자 기대를 하고 있는 환관장들이라고 하겠음.
6. 그 두 사람이 동시에 꾸고 있는 꿈의 내용이 무엇인가?(창40:9-11, 16-17)
(1)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의 내용;
1) 자기 앞에 포도나무가 있다는 것임(창40:9).
2) 그 나무에는 3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는 것임(창40:10).
3) 자신의 손에 바로의 잔이 있다는 것임(창40:11a).
4) 그래서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바로의 손에 그 잔을 올려드렸다는 것임(창40:11b).
(2) 떡 굽는 관원장이 꾼 꿈의 내용;
1) 흰떡 3광주리가 자기 머리에 있다는 것임(창40:16).
2) 맨 위의 광주리에는 바로에게 바치고자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다는 것임(창40:17a).
3) 그런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만 바로에게 바칠 광주리의 음식을 먹어 치우고 있다는 것임(창40:17b).
7. 그 두 꿈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무엇인가?
(1) 두 사람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내용의 꿈을 동시에 꾸고 있는 것임;
1)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창40:5).
2)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로는 그들의 꿈의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직과 관련이 되어 있는 비슷한 꿈의 내용으로 보임(창40:9-11, 16-17).
(2)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자를 옆에 두고 있는 것임;
1)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이미 옆에서 그들의 시중을 들고 있음(창40:4).
2)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 요셉이 그들의 꿈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창40:6-8).
(3) 그들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1)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는 그 관심사가 언제 석방이 되는가 하는 것임.
2) 두 환관장의 경우에는 전직이 회복이 되느냐? 아니면 죽임을 당하느냐? 그 갈림길에 서있는 것임.
3) 그것과 관련이 있는 꿈의 내용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꿈이 아닌 것임.
8. 그러나 그 꿈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창40:5-8)
(1) 시선을 달리 유도하고 있음;
1) 그들의 관심사는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것임. 그리고 언제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 하는 것임.
2) 그런데 사느냐 죽느냐 또는 날짜에 대한 꿈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떡 광주리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어 헷갈리고 있는 것임;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창40:6),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창40:8a).
3) 꿈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궁극적인 당사자의 관심사를 직설적으로 보여주지 아니하고 은유와 상징으로 조작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임. 따라서 당사자의 시선을 달리 유도하고 있는데 그러한 특징이 여기서 잘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음.
4) 따라서 포도나무와 포도즙 그리고 떡 광주리와 새만을 자꾸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궁극적인 관심사와 그 꿈이 어떻게 연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더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것임. 그것이 올바른 해석의 방향임.
(2) 감추고 있는 그 부분에 대한 증거포착이 어려운 법임;
1)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꿈의 계시자를 쳐다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영 어려운 것임.
2) 그 계시자는 절대자이며 멀리 있는 분이기에 사람의 안목과 지혜로 함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님; “요셉이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40:8b).
3) 유일한 방법은 그 절대자께서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스스로 계시해주시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로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그 계시를 풀이해주어야만 하는 것임(창40:8, 12-13, 18-19).
9.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일을 꿈 이야기로 풀어주고 있는 요셉의 지혜는 어디서 온 것인가?(창40:8, 12-13, 18-19)
(1)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요셉의 풀이;
1) 3가지는 3일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임(창40:12).
2) 술 맡은 관원장은 3일 안에 전직을 회복하고 바로의 잔을 황제의 손에 올려드리게 된다는 것임(창40:13).
(2) 떡 굽는 관원장의 꿈에 대한 요셉의 풀이;
1) 3광주리는 3일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임(창40:18).
2) 떡 굽는 관원장은 3일 안에 바로에 의하여 처형이 되며 나무에 달린 그 시신을 새들이 뜯어먹게 된다는 것임(창40:19).
(3)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푸는 것임(창40:8, 41:16, 단2:19-24, 27-28);
1) 요셉의 고백;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40:8),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
2) 다니엘의 고백;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단2:27-28).
10.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40:14-15)
(1) 자신을 옥살이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것임;
1) 조건부적인 부탁임; 요셉 자신의 꿈 풀이 그대로 전직이 회복이 되시면 그때 자신의 부탁을 들어 달라는 것임(창40:14a).
2) 요셉의 사정을 황제인 바로에게 아뢰어 부디 석방을 시켜달라는 것임(창40:14b).
3) 그런데 황제의 최측근으로 다시 복직이 되는 환관장이 과연 히브리 종이며 죄수의 신분인 하찮은 청년 요셉을 위하여 황제에게 부탁의 말씀을 올려줄지는 의문스러운 것임. 그것은 현실가능성이 없는 부탁으로 보임.
(2) 자신이 무죄임을 알아달라는 것임;
1) 히브리 땅에서 애매하게 그냥 끌리어온 종이라는 것임(창40:15a). 이것은 애굽에서 증명하기 어려운 대목임.
2) 애굽에서 옥살이를 할만한 잘못을 범한 적이 없다는 것임(창40:15b). 이것은 비록 환관장이 복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감히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 집안의 비리에 대하여 수사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조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임.
(3) 요셉의 부탁에 대한 평가;
1) 요셉의 부탁과 하소연은 처음부터 성사가 되거나 입증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음. 워낙 답답하여 요셉이 환관장에게 읍소하고 있는 내용에 불과한 것임.
3)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훗날 요셉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애굽 땅에 더 크게 임하게 됨.
4) 그러므로 성도가 믿고 의지할 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그 권력자까지 움직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능력인 것임.
11. 제3일에 발생하고 있는 바로의 판결과 그 의미(창40:20-22)
(1) 바로의 생일날에 발생하고 있는 일;
1) 제3일이 바로의 생일날임(창40:20a). 그날 바로가 생일잔치를 베풀면서 그 자리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고 있음(창40:20b).
2) 따라서 두 관원장은 내금위 옥사에서 일단 풀려나서 의관을 갖추고 그 연회석상에 참석하고 있는 것임.
3) 그 즐거운 연회석상에서 술 맡은 관원장은 신원이 회복이 되고, 반면에 떡 굽는 관원장에게는 사형이 선고가 되고 그 목이 나무에 매달리게 됨(창40:21-22a). 그 내용은 요셉이 이미 꿈 풀이를 해준 내용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임(창40:22b).
4) 여기서 두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음; ①하나는 왜 바로가 생일잔치자리에서 그러한 무시무시한 판결을 하고 있는가? ②또 하나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다는 의미가 훗날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임.
(2) 생일날 중신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바로의 성품과 그의 절대권력(창40:20-22);
1) 당시의 바로는 제12왕조 4번째 황제인 세누스레트2세임. 그는 강력한 통치자이며 정치단수가 높은 바로였음.
2) 역사적으로, 애굽의 제11왕조에 이어 제12왕조는 통일시대 중왕국의 왕조들임. 따라서 당시의 바로들은 절대황권은 물론 신과 같은 권위를 지니고서 천하를 통치하고 있었음.
3) 그들은 상이집트 왕조들이므로 그 수도가 테베이며 하이집트 애굽인들에 대하여 강력한 지배를 행하고 있음.
4) 바로는 신하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하여 생일잔치석상에서 그와 같은 생사의 판결을 행한 것으로 보임(창40:20-22).
(3)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과 닮아 있음;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0-42).
12.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 관한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40:23)
(1) 감옥에서 우연히 만난 하찮은 노예출신 죄수 요셉임;
1) 황제 바로의 술 시중을 들어야만 하는 높은 관원장의 입장에서 우연히 감옥에서 만난 하찮은 노예출신 죄수의 부탁을 구태여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임(창40:4, 14).
2) 다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회복하였으므로 상약(尙藥, 황제나 왕에게 술, 탕약, 음료수 등을 안전하게 올려드리는 환관장) 어른은 지나간 고난의 세월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아니한 것임.
3) 설혹 청년 요셉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창40:8, 12-13) 그것을 깊이 명심하고 갚아 주고자 보은(報恩, 은혜에 보답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이 인지상정임.
(2) 요셉을 구해줄 자는 권력자가 아니고 여호와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
1) 권력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신앙일 수는 없음. 물론 부탁은 할 수 있으나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명심해야만 함.
2) 하나님신앙이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관계자들의 마음을 돌이켜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며 전적으로 맡겨드리는 것임.
3)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가장 적합한 시간(‘카이로스’)에 그 일을 해결해주시는 것임(창41:9-14).
(사진은 고대 애굽의 지도임)
'창세기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강의 골자 제45강(창42:1-3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5.16 |
---|---|
창세기 강의 골자 제44강(창41:1-5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5.15 |
창세기 강의 골자 제42강(창39: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5.12 |
창세기 강의 골자 제41강(창38:1-30)(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5.11 |
창세기 강의 골자 제40강(창37:1-3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