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OBS교재(손진길 작성)

창세기 제46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0. 9. 24. 01:22

창세기 제 46 (33:12-34:7) <OBS1-46>(손진길 작성)

 

[Q1] 길잡이를 자청하고 나선 에서(33:12)의 친절을 완곡하지만 굳이 거절하는 야곱(33:13)에게서 알 수 있는 두 사람의 생각과 성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 에서는 하루 속히 자신이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는 에돔 들 세일 산으로 야곱 일행을 안내하여 먼저 떠들썩하게 환영잔치를 베풀고 자신의 위세를 마음껏 드러내는 한편 그 동안 오랜 세월 자신의 가슴을 억눌러오던 야곱의 그림자(자신 위에 군림할지도 모르는 장자의 축복을 받은 자, 27:37)를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임. 어쨌든 호탕하고 적극적인 에서의 성격임.

- 에서의 입장과는 달리 야곱은 아직 자식들이 어리고 자신을 지키는 호위 무장세력도 약했음. 따라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야곱이 에서의 세력에 흡수되거나 종속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었음. 그 점을 미리 내다보면서 야곱은 형의 제안이 비록 호의적이라고 하더라도 발을 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음

- 여기서 알 수 있는 야곱의 성격은 조심성 많고 사람을 푹 믿지 아니하는 신중한 성격(경험상, 29:25, 31:7)이라고 하겠음.

 

[Q2] 다시금 길잡이 겸 호위역할을 할 수 있는 자신의 군대라도 붙여 줄려는 에서(33:15)와 그것마저 거절하는 야곱에게서 엿볼 수 있는 두 사람의 가는 길의 차이와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는 무엇인가?

- 에서는 야성적인 들 사람들이 마음껏 웅지를 펼칠 수 있는 소위 야생적인 광야와 기적의 오아시스가 살아 숨쉬는 땅 세일 산으로 직행함(33:16).

- 그 반면에 야곱의 마음속에는 요단 강 건너 가나안 땅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벧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야만 하는 인생길이 이미 정해져 있음(12:8, 28:19-21, 31:3,13, 35:1-15).

- 하나님과 상관없이 칼을 믿고 생활하는 에서는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한 거칠 것이 없고 항상 자신만만하며 세월의 흐름과 인생의 허무함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깊이 묵상하지 아니함. 그렇지만 야곱의 생각은, 당장은 극적인 형제상봉에 사로잡힌 에서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반가운 마음이 사라지고 실리계산과 흡수통합의 야심이 움틀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음

- 따라서, 야곱은 극구 에서의 세력을 떨쳐버리는 한편 가는 길도 요단 강 남쪽 광야가 아니라 보다 안전한 서편 가나안 거주민지역 길로 향하고 있음(33:18). 요컨대, 야곱은 세월의 흐름 속에 바뀌는 인간의 마음을 직시하면서 오로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안식처를 찾아 나머지 인생 길을 떠나고 있는 것임(31:1-3, 35:3).

 

[Q3] 그렇지만, 에서의 위협을 완전히 떨쳐버린 야곱이 보여주는 다음 행동은 무엇인가?

- 벧엘로 직행하지 아니하고 숙곳과 세겜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야곱임(33:17-20).

- 얍복 나루터에서 요단 강에 이르기 전에 풀이 무성한 숙곳 들판이 자리잡고 있는데 야곱은 그곳에서 가축을 키우고자 당장 가족이 살 집과 가축이 머물 우리간까지 짓고 있음(33:17). 집과 축사를 마련했다는 표현은 여러 해 머물렀다는 뜻임

- 더 오랜 세월 머문 곳은 요단 강 건너 서편 가나안 땅 중심지인 세겜 성임. 그 이유는 완전히 그곳에 정착하려고 밭까지 사서 장막을 치고(33:18,19) 제단까지 쌓은 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곳에 모시고 있기 때문임(엘엘로헤이스라엘, 33:20, “하나님 하나님,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임).

- 야곱은 그가 서원한 장소 벧엘로 가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한 것이 아님. 그리고 헤브론에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만난 것도 아님.  오로지 재산을 불리고 도시 세겜에서 안락함과 향락을 맛보기를 원하고 있음. 그리고 벧엘의 하나님을 세겜 자신의 집에 편법으로 모시고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고자 하고 있음. 그것이 훗날 세겜 사건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음(28:22, 31:13).

- 그 동안 흘러간 세월이 최소한 7년으로 계산됨. 왜냐하면, 처가살이 14년에 태어난 요셉(30:25) 6살 때쯤 야곱이 에서를 만났는데(31:38) 그때, 시므온과 레위는 11, 10살쯤이었음(처가살이 9, 10년쯤 출생, 29:20,25,33,34). 시므온과 레위가 칼로 세겜 추장을 죽인 때는 18세 이상 청년으로 추정되기 때문임(34:25,26).

 

[Q4] 벧엘 성전 대신 세겜 제단을 쌓고 벧엘 하나님을 모신 야곱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 생명의 위협(32:11), 장자의 권리와 족장의 권세(25:31, 27:19) 때문에 하나님께 매어 달린 야곱이 소원성취하자 더 이상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 않기 시작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

-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30:43, 31:7-13) 자수성가하고 족장이 된 것과 벧엘에서의 서원(28:18-22)이 마음에 걸리므로 이를 쉽게 처리하고자 벧엘 아닌 세겜 땅에 단을 쌓고 벧엘 하나님을 모신 것임. 그러므로 그것은 편법이며 인간의 약은 수법인 것임. 진심으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뜻을 따라서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 것임.

 

[Q5] 야곱의 착각과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무엇이며, 세겜을 떠나게 하는 채찍은 무엇인가?

- 야곱의 착각은 다음 3가지임; ① 자기 마음대로 지은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줄 착각함(왕상8:27, 66:1). ② 재물을 자신의 복으로 얻은 줄로 착각함(8:14,17). ③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약속의 상대방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함으로써(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는 일) 천하만민이 복을 얻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까지 망각하고서 벌써 축복을 다 받은 줄 착각함.

- 그런데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여호와의 안식과 기업으로 표현되고 있음(12:9).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기업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아니하는 것이므로 변하는 세상 것들과는 다른 것임. 예를 들면, 세상적 성공, 부와 권세, 승리의 쾌감 등은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하는 만물과 인간의 마음의 소산일 뿐이므로 변하지 않는 안식과 기업이 아닌 것임.

- 변하지 않는 약속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스스로 하늘 문을 여시고 인간을 만나시며 인생의 길을 하나님의 전으로 인도하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평생 기억하면서 그곳으로 끊임없이 찾아가는 믿음의 자세(야곱의 사다리)라고 할 수 있음(28:17, 12:5-9, 11-14).

-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러 가도록 세겜에서 하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고 계시는데 그것이 바로 히위 족속과의 불화인 것임(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