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36강(창33:1-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4월 28일(목)
1. 야곱은 2처 2첩과 그들의 소생에 대하여 어떠한 차별을 하고 있는가?(창33:1-2)
(1) 첩과 본처를 구분하고 차별함;
1) 두 첩과 그들의 소생을 앞세움(창33:2a). 에서의 공격이 있게 되면 가장 먼저 희생을 당하게 될 것임.
2) 두 처와 그들의 소생을 뒤에 세움. 그만큼 피신할 시간을 벌게 되는 것임.
(2) 레아와 라헬을 차별함;
1) 레아와 그녀의 소생을 그 다음에 배치하고 있음(창33:2b).
2) 마지막으로 라헬과 그녀의 아들인 요셉을 배치하고 있음(창33:2c).
2. 야곱이 처자식의 앞으로 나아가서 에서에게 7번 큰 절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창33:3)
(1) 야곱이 처자식의 앞으로 나아가서 에서를 막아서는 이유(창33:3a);
1) 야곱이 자신의 희생으로 처자식을 살리고 싶은 것임.
2) 또한 그것이 족장이 행해야만 하는 본분임.
(2) 에서에게 7번 땅에서 큰 절을 올리고 있는 이유(창33:3b);
1) 적장에게 완전 항복을 할 때에 군주가 7배를 올리게 됨. 참고로, 17세기에 조선국왕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의 군주에게 항복하면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3번 큰 절을 올리고 9번 머리를 땅에 박는 항복의 의식, 이는 여진족이 중국의 황제를 배알할 때에 행하던 의식과 같은 것임) 의식을 치른 바가 있음.
2) 크게 잘못을 범한 야곱이 족장인 에서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며 동시에 그를 군주로 모시겠다고 하는 충성서약인 것임.
3.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기적처럼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창33:4)
(1)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4);
1) 20년전에 야곱이 아버지 집을 떠나올 때에는 분명히 형 에서가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음(창27:41).
2) 그런데 갑자기 에서가 야곱 자신과 혈육의 정을 진하게 나누고 있으니 그것이 기적인 것임. 그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작품임(창32:29-30).
(2) 참고로, 형제를 화해시키고 원한을 녹이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훗날 야곱의 아들 요셉과 그의 이복 형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창44:30-45:7).
4. 극적인 화해 다음에 야곱이 그의 처자식을 형 에서에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 순서가 어떠한가?(창33:5-7)
(1) 첩실 다음에 본부인의 순서임;
1) 에서가 야곱과 함께하고 있는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서 누구냐고 야곱에게 묻고 있음(창33:5a).
2) 야곱은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입니다”(창33:5b)라고 답변하고 있음.
3) 그 답변은 두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 ①첫째, 야곱은 자신을 여전히 주 에서의 종이라고 지칭하고 있음. ②둘째, 처첩보다는 자식을 소개하고 있음.
4) 가족소개에 있어서 야곱은 첩실을 먼저 소개하고 그 다음에 본부인을 소개하고 있음(창33:6-7).
(2) 서자 다음에 적자의 순서임;
1) 이에 따라 자연히 첩실의 소생인 서자들이 먼저 소개가 되고 그 다음에 본부인의 소생인 적자의 순서임(창33:6-7).
2) 본부인 가운데 레아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라헬임. 이는 위험한 인물로 여기고 있는 형 에서에게 소개하는 것이므로 만약의 경우, 앞선 순서가 위험성이 더 크고 나중 순서는 대처할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임.
3) 따라서 야곱의 처자식에 대한 애정의 순서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는 것임; ①애처 라헬과 그 소생 요셉이 1순위임. ②본부인 레아와 그 소생들이 2순위임. ③첩과 서자들이 3순위인 것임.
5. 에서가 야곱의 가족을 소개받은 다음에 야곱이 그에게 바치고자 하는 예물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는데 야곱의 답변과 에서의 태도는 어떠한가?(창33:8-9)
(1) 에서의 질문과 야곱의 답변;
1) 세 떼로 나누어 시간차로 선을 보이고 있는 예물에 대하여(창32:16) 에서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음. 따라서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엇이냐?”(창33:8a)고 야곱에게 묻고 있음.
2) 야곱은 그것이 자신의 과거 잘못에 대하여 형 에서의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예물이라고 답변하고 있음;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창33:8b).
(2) 예물을 사양하는 에서;
1) 자신의 재산도 풍족하므로 구태여 동생의 재물을 얻을 까닭이 없다고 사양하고 있음(창33:9).
2) 그 내면의 동기는 예물을 받을 필요도 없이 벌써 동생 야곱을 에서가 용서해주고 있다는 것임. 그만큼 야인 에서는 마음이 넓은 지도자임.
6. 그런데 어째서 야곱은 반드시 형 에서에게 예물을 주고자 강권하고 있는가?(창33:10-11)
(1) 하나님의 역사와 형 에서의 통 큰 용서의 마음을 야곱이 이해를 못하고 있음.
1) 야곱의 마음이 에서에 비해서 넓지 못함을 알 수 있는 대목임.
2) 그렇게 속이 좁은 야곱이지만 에서 대신에 그를 하나님의 족장으로 세우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에서는 들로 나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야곱은 장막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길다고 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임(창25:27-28).
(2) 따라서 예물을 주고서 형 에서로부터 확실히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는 증표로 삼고자 하는 것임;
1) “내가 형님의 눈 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창33:10a).
2)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b).
3) 하나님의 선지자를 예방할 때에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바치겠다고 하므로 에서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받게 됨(창33:10-11).
4) 그렇지만 야곱의 계산으로는 이미 예물까지 받았으므로 이제는 과거의 은원이 모두 청산이 되었다고 간주하게 됨. 이제부터는 그의 자유로운 행보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임(창33:13-14).
7.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33:10)라는 야곱의 말속에 담겨 있는 영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1) 피조물의 얼굴을 창조주 하나님의 얼굴과 맞비교하고 있는 야곱의 불경함;
1) 여호와 하나님을 피조물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맞비교해서는 안됨;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겨서도 안되며 피조물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임”(출20:3-5).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단번에 용서를 받은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갑자기 엄청난 아부를 하고 있음; “형의 얼굴을 보니 마치 하나님 얼굴처럼 자비롭다는 것임”(창33:10).
3) 그것은 자기가 살기 위한 아부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에서 크게 벗어난 것임.
(2) 어떻게 하면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법도를 지키게 할 수 있는가?
1) 앞으로 상당한 연단의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임(롬5:3-4).
2) 실제로, 그 앞길에 세겜 사건, 요셉 실종사건, 연속 흉년, 애굽으로의 이주 등 허다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음.
3) 그 결과 믿음의 성숙을 얻게 되는 야곱의 고백이 다음과 같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8. 많은 예물을 동생으로부터 받은 에서가 야곱에게 베풀고자 하는 순수한 호의가 무엇인가?(창33:12, 15)
(1) 야곱이 가나안 남부 아버지 이삭의 집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동행해주고자 하는 것임(창33:12);
1)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위험함. 특히 야곱과 같이 많은 가축을 이끌고 들어가는 경우에는 도적의 위험이 있음.
2) 그러므로 에서는 자신이 사병을 이끌고 안전하게 야곱을 가나안 남부 아버지 이삭의 집까지 동행해주고자 하는 것임. 그러나 야곱이 이를 완곡하게 극구 사양하고 있음(창33:13-14).
(2) 에서는 자신의 사병 몇 사람이라도 야곱의 곁에 두고서 호위를 해주고자 하는 것임(창33:15);
1) 에서 자신의 동행을 야곱이 계속 원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에서는 자신의 사병 몇 사람이라도 야곱의 곁에 있도록 조치해주고자 함.
2) 그 이유는 야곱 일행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어하기 때문임. 그러나 야곱을 그 호의마저도 거절하고 있음(창33:15).
9. 형 에서의 호의를 철저하게 우회적으로 사양하고 있는 야곱의 속셈은 무엇인가(창33:13-15)
(1) 형 에서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임;
1) 당장은 20년 만에 서로 만나서 혈육의 정을 나누고 반갑기 그지 없음(창33:4).
2) 그러나 제 정신이 들어오게 되면, 형 에서는 20년전 야곱의 사기행각을 다시 회상할 것임(창27:35-36). 그때는 죽음의 위기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있음(창27:41).
3) 따라서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위험의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고자 하는 것임. 그 방법은 곧바로 에서와 좋게 헤어지는 것임(창33:13-15).
(2) 야곱은 곧 바로 아버지 이삭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님;
1) 20년전 야곱이 가출할 때에 아버지 이삭의 집은 브엘세바였음(창28:10).
2) 그런데 7-8년 후에 야곱이 실제로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헤브론임(창35:27). 참고로, 브엘세바는 예루살렘 남서쪽 85km이며 헤브론은 30km지점임.
3) 그런데 야곱은 요단 강을 건넌 후에 남하를 하지 아니하고 정반대로 북상을 하고 있음. 그는 대도시 세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임(창33:18).
4) 즉,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바로 가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음; ①첫째, 형 에서가 아버지 집에 내왕을 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두려운 것임. ②둘째, 아직 목축을 하여 재산을 더 불리고(창33:17) 대도시 세겜에서 향락을 누리고 싶은 것임(창34:1).
10. 사병 400명을 이끌고 세일로 돌아가는 에서를 야곱이 다시 만나게 되는 때는 언제 어디서이며(창35:27-29), 야곱은 그의 말대로 세일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창33:14, 16, 36:6-8)
(1) 야곱이 에서를 다시 만난 때에 대한 기록;
1) 에서와 헤어진 야곱은 마치 호랑이 굴에서 살아나온 것과 같은 기분임. 따라서 다시는 에서와 상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음.
2) 따라서 야곱은 얍복 시내 하류인 숙곳에서 오래 목축을 했으며 요단 강을 건너가서도 아버지의 집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지 아니하고 거꾸로 북상을 하여 대도시 세겜에서 오래 살게 됨.
3) 세겜 사건을 만난 후에(창34:1-30) 하나님의 명령으로 살 길을 찾아 벧엘로 찾아감(창35:1-7). 그 다음에 드디어 가나안 남부 헤브론으로 아버지 이삭을 찾아가게 됨(창35:27).
4) 세겜 사건의 당사자인 시므온과 레위 등이 칼을 차고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을 보면(창34:25-26) 그들이 17-20세 사이의 청년으로 보임. 그렇다면 야곱이 처가살이 8년차에 태어난 장남 르우벤이 20세 정도로 추정이 됨.
5) 처가살이 20년을 하고 야곱이 라반을 떠났으므로 그때 르우벤은 12살임. 그러므로 야곱은 숙곳과 세겜에 도합 8년 정도 머문 것으로 계산이 됨.
6) 따라서 야곱은 얍복 시냇가에서 형 에서와 헤어진 후 8년 동안 외지를 떠돌다가 비로소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 집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형 에서를 다시 상봉한 것으로 보임(창35:27).
7) 참고로, 아버지 이삭을 다시 만났을 때 야곱의 나이는 105세이며(계산방법은 77세에 가출, 97세에 라반을 떠남, 8년간 외지생활임), 에서도 105세이고, 아버지 이삭은 165세임. 장남 르우벤이 20세이고 요셉은 6년 아래이므로 14세임.
(2) 야곱이 세일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음;
1)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집에 있은 지 15년이 지나자 부친 이삭이 180세를 향년으로 소천하게 됨(창35:28-29a). 이에 에서와 야곱이 부친을 막벨라 굴에 장사를 지내게 됨(창35:29b, 49:31).
2) 그 후 에서는 자신의 가족과 소유를 모두 이끌고 처가동네 세일 산으로 아예 이주를 하였으며 야곱은 계속 헤브론에 머물게 됨(창36:6-8).
3) 따라서 야곱이 위험천만한 곳 세일 산과 에돔 들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음. 그만큼 용의주도한 처세술의 야곱인 것임.
11. 야곱이 요단 강을 건너가지 아니하고 얍복 시내의 하류 ‘숙곳’에 오래 머무른 까닭이 무엇인가?(창33:17)
(1) 먼 길을 쉬지 아니하고 가축을 몰고 왔기 때문임;
1) 북부 시리아 땅 하란에서 요단 강 동편 얍복 시내까지는 약 580km의 먼 길임.
2) 그 먼 길을 야곱 일행은 별로 쉬지도 못하고 가축을 몰고 왔음. 그 이유는 라반의 추격 및 숙적 에서와의 상봉 등으로 그 동안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임.
3) 이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되자 정상적으로 목축을 할 여유가 생기게 됨.
(2) 목초가 풍성한 ‘숙곳’에서 가축을 번성시키기 위함임;
1) 마침 얍복 시내가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역에 물이 풍부하여 좋은 목초지가 형성이 되어 있음. 그곳 지명이 ‘숙곳’임(창33:17).
2) 그곳에서 야곱은 일행과 함께 목축을 하기 시작함.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고 머물 집까지 마련함(창33:17).
3) 상당히 많은 가축을 형 에서에게 화해의 선물로 준 까닭에(창32:13-15, 33:11) 벌충을 하자면 몇 년 동안 목축을 착실히 해야만 하는 것임.
12.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야곱이 남하하여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정반대로 북진하여 대도시 세겜으로 간 이유가 무엇인가?(창33:18-19)
(1) 대 도시 세겜의 문제점;
1) 주전 2,091년경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당시 가장 큰 중심도시 세겜에 도착함(창12:6).
2) 가나안의 중심인 세겜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선포하심. 따라서 아브라함은 얼른 세겜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크게 부름으로써 그 언약을 확실히 자신의 가문의 것으로 만들고자 함(창12:7).
3) 그러나 아브람의 시도는 불발에 그침. 그 이유는 대도시 세겜의 원주민들이 히브리인 아브람 가족이 큰 소리로 여호와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임.
4) 그 결과 급히 남으로 피신한 아브람 일행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됨(창12:8). 참고로,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 65km이며 벧엘은 19km지점임.
5) 결론적으로, 대도시 세겜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우상문화가 극심한 지역이며 야곱 일행이 하나님신앙을 보전하기에는 애로가 많은 지역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세겜으로 간 이유;
1) 속곳에서 다시 목축을 하여 야곱은 더 큰 부자가 됨.
2) 그 동안 하란과 길르앗 산 그리고 얍복 시냇가 등지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였으므로 이제는 좀 멋지고 화려하게 살아보고 싶어함.
3) 그 대상지로는 가나안 땅의 유행의 중심도시 세겜이 적격이라고 하겠음. 그래서 야곱은 세겜의 교외지역에 장막을 칠 땅을 백 크시타(참고로, 크시타는 은전으로서 일부 학자들은 어린양의 값으로 보고 있음)에 사고서 아예 오래 머물고자 함(창33:18-19).
4) 그러한 야곱의 심정은 딸 디나와 야곱의 여인들이 세겜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장신구를 구경하고자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닌 것으로 잘 표현이 되고 있음(창34:1).
13. 야곱이 세겜의 자기 집에 벧엘의 하나님을 편법으로 모시고 있는데(창33:20) 그것은 어떠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인가?(창28:17-22, 31:3, 35:1, 7)
(1) 세겜에 주저앉고 있는 야곱의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
1) 그것은 벧엘의 하나님과 약속한 야곱 자신의 서원인 것임. 그 주 내용은 가나안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벧엘에 들러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생활을 착실하게 하겠다고 맹세한 것임(창28:16-22).
2) 야곱이 영적으로는 그 서원의 부담감 때문에 벧엘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함. 대도시 세겜에서 좀 편히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살아보고 싶은 것임.
3) 97세에 하란을 떠나온 야곱이 숙곳을 거쳐오는 동안에 좀 세월이 흘러 이제 100세 정도가 된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그 나이 때에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 이제 완전 노인이 되고 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임.
4)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벧엘의 하나님을 달리 모시고 야곱 자신의 서원을 준수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인 것임.
(2) 야곱이 고안한 인간적인 묘수의 문제점;
1) 야곱이 찾아낸 묘수가 참으로 흥미로움; “거기(세겜)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33:20).
2) 그 뜻은 “야곱 자신의 새 이름 하나님의 대 족장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여기 세겜에 모신다”는 것임.
3) 야곱이었을 때의 여호와 하나님이 ‘벧엘의 하나님’이시라면 야곱이 이제 대 족장 이스라엘로 거듭났으므로 여호와 하나님도 이곳 대도시 세겜에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셔야만 한다는 것임.
4) 그런데 그러한 주장은 야곱의 억지주장임. 왜냐하면, ‘벧엘의 하나님’은 여전히 야곱이 제 정신을 차리고 벧엘로 찾아와서 자신의 서원을 이행하기를 그곳 벧엘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임(창35:1-7). 그래서 훗날 벧엘로 찾아오는 야곱을 만나시고 그를 ‘이스라엘’로 정식으로 세워주시는 것임(창35:10).
5) 그만큼 하나님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첫 사랑과 처음의 맹세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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