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41강(요17:12-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3. 02:26

요한복음 강해 제141(17:1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5()

 

아버지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의 차이(16:23-24, 17:6, 12)

 

예수님의 이름은 제자나 성도들이 기도를 할 때, 그리고 그 응답을 받을 때에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16:23-24). 반면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은 창조주의 신분과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7:6, 12).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늙은 종을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해오도록 하란 땅으로 파견하고 있습니다(24:2-4). 그 때 아브라함은 그 일을 신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늙은 종에게 하늘의 하나님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를 하도록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24:3). 그 대목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역사를 하시고 땅에서도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하늘은 창조주의 세계이지만 땅은 창조함을 받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질서와 복은 모두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계획을 하시고 그 뜻을 땅에서 실현을 시키고 있습니다(6:10). 그런데 유한한 땅의 재화를 가지고서는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계도와 물자가 땅으로 공급이 되고 있습니다(16:4, 13, 25:1-9). 그 이유는 하늘의 모든 재화와 아이디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는 경우, 또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 속에서 살려내는 경우 등에 있어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탁을 하여서 그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6: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11:41-42).

어쨌든 하늘에서 내려 보낸 그 설계도와 물자를 가지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늘과 땅 사이에 교신(交信, communication)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교신의 암호가 여기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징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수님의 이름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실현이 될 수 있도록 그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암호가 정확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신뢰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정확한 기도의 응답을 받지를 못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 예수님의 기쁨, 아버지의 말씀의 위력(17:12-17)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보전하고 지키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17:12a). 그 결과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을 배신하여 대제사장에게 팔아 넘기고 그 일을 후회하여 자살을 택하게 되는 제자 가룟 유다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이 될까요? 성경을 응하게 하고자 멸망의 자식이 나타났는데 그 자가 바로 가룟 유다라는 예수님의 풀이입니다(17:12b). 창세기를 보면, 더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4-15). 사탄은 배신자인 가룟 유다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13:27). 유다는 군대와 산헤드린의 하속들을 데리고 와서 스승 예수를 체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18:3-5, 14:43-46). 그 결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19:16). 요컨대, 사탄의 화신에 의하여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 대가로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서 사탄의 핵심세력인 음부의 세력을 박멸해버립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게 됩니다(20:11-18). 한 마디로, 그것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제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가질 수가 있게 될까요?(17:13).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수님처럼 제자들을 지킬 수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려고 합니다(17:13a). 예수님 대신에 또 다른 보혜사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지켜줄 것입니다(16).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남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14:17, 17:12). 그리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항상 가지고 계셨던 충만한 기쁨을 제자들도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16:32-33).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위력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4-17). 풀이를 해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위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을 가진 자는 그 신분이 세상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곧 그리스도인이 됩니다(17:6). 둘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과 구별이 되는 거룩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17:14, 17). 셋째, 말씀은 성도를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여 줍니다(17:15). 그 결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이기고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16:33).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한 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를 당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고 있는 위의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 안에 기쁨으로 역사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이 또한 제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끝으로, 아버지의 말씀이신 독생자가 제자들에게 임재할 것입니다(1:1, 14). 결론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 안에 모시게 되는 제자들과 성도들은 모두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의 시대를 미리 내다보면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마지막 기도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8:1,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