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8강(요16:25-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9. 22:01

요한복음 강해 제138(16:25-3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2()

 

제자들이 밝히 깨달은 믿음 두 가지(16:25-31)

 

예수님은 여자가 아기를 해산하는 과정의 고통, 나아가서 옥동자를 분만하게 되면 그 기쁨 때문에 도중의 고통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가지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고통과 무덤 속 부활의 기쁨을 비유하고 있습니다(16:19-22). 그리고 그 날이 되면 예수님께 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6:23). 그 이유는 그 날이 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 직접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16:23-24). 구체적으로,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여 제자들에게 임재할 것입니다. 장차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내주하시게 되는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가르치고 진리의 삶으로 그들을 인도할 것입니다(16:13).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13-14, 16:23b-24a).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서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1:1, 10:30, 14:10-12, 16:26-28). 사도 바울의 용어를 사용하면, 창조주의 본체와 합하여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2:5-11).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기도를 듣고서 그 옛날 사람으로 살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체휼하신 바가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면 사람의 입장에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피고자 하실 것입니다”. 요컨대, 본문은 그와 같은 사실들을 추론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상당히 제공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6:23-28).

그와 같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친히 언급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16:25-30).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랑하는 영적인 교제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16:27). 둘째,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감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일체가 됩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모든 것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류가 될 것입니다(16:26, 28). 셋째, 그 날이 되면 하나님과 직접 영적으로 교통을 하고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16:12-13, 25, 30).

그 결과 제자들이 두 가지의 사실을 밝히 깨닫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나오셔서 이제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서는 메시아의 역할을 담당하셨지만 천국에 가시면 다시 창조주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면 그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즉시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님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분명한 사실로 진리를 깨닫게 되자 그 기쁨이 믿음으로 밝아져 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16:30).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진리, 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16:3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제자들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것이다(16:31-33)

 

제자들이 참으로 대단한 믿음을 마지막 순간에 얻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디어 믿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믿게 되는 첫 관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둘째, 장차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응답 받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야속하게도 예수님이 축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제자들은 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끝까지 인간을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란 것이 본래 그 의도와 능력이 형편이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23-25). 예를 들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이익을 쫓아 움직이며 배은망덕하고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혹시 착한 마음을 잠시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좋은 의도를 관철시킬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를 못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인간을 믿고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맡기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을 신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하고 있습니다(16:23-24). 하나님은 제물로서도 사람을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22:13-14, 1:29). 그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인간이 만민의 생명을 한꺼번에 대속하고자 십자가의 극형을 감당할 것으로도 믿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입니다(16:32).

 

따라서 그리스도가 승천을 하고 나면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 직접 강림을 하실 것입니다(24:44-53). 십자가 대속의 피 값으로 산 성도들의 몸에 성전을 마련하고 내주하여 역사하시기를 시작할 것입니다(고전6:19-20). 성도들의 속사람이 겉사람을 이기고 진리의 말씀이 세상의 비진리를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할 것입니다(7:22-8:17).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성도들에게 공급할 것입니다(1:8). 그 능력의 크기는 믿음의 성숙의 정도에 비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생활화하며 실천하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이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성화되어가는 만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 영적인 좋은 영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도 그렇게 전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말씀을 예수님이 하고 있는 시점은 아직 성령님의 강림이 이루어지지를 못하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을 하셔야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령님의 능력을 얻지를 못한 상태에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모두 바쳐서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창조주의 능력이 영적으로 함께 한다면 어느 정도의 역사가 이 땅에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경우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십자가의 처형을 감당할 수가 있게 됩니다(16:32). 그 능력이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하심으로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하는 기적을 선보이게 됩니다(3:1-10).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환난과 죽음의 세력과 육체의 욕심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자들과 성도들도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아버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으로 예수님이 세상의 환난에서 승리하고 마음 속 평안을 유지했습니다. 그 비결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들도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그 능력으로 평안을 회복하고 세상의 환난을 이기라는 권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사는 자, 그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의 유혹도 이기고 목숨의 위협도 이기며 죽음의 세력까지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1:12-13,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