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9강(요16:32-17: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1. 02:28

요한복음 강해 제139(16:32-17: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3()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16:32-33)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열매를 미리 내다보는 안목입니다(11:1). 미래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며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시간의 차원입니다. 그 차원을 미리 내다보기 위해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나아가서 자신이 소망하고 있는 그 미래를 장차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믿음으로 결단을 하고 영적인 삶에 매진하여야만 합니다(8:5-17, 12:1-2). 그와 같은 히브리서와 로마서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본문말씀을 다시 들여다보면 다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곧 부활하고 승천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영광스러운 사실까지 믿게 된 제자들이지만, 막상 예수님이 체포를 당하고 처형을 받기에 이르게 되면, 모두 각각 제 살길을 찾아서 흩어진다는 것입니다”(16:30-32). 그들이 아무리 엄청난 믿음과 확신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써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며 두려움입니다.

  예를 들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시대에 선을 보였던 선지자 엘리야가 그러합니다(왕상18:36-46); 하나님의 이적이 끝난 후에 엘리야는 자신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이세벨 왕비의 낯을 피하여 정신 없이 남쪽으로 피신을 하고 있습니다(왕상19:2-4). 얼마 전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제단 위에 불이 떨어지게 하고 긴 가뭄 끝에 큰비가 쏟아지게 했던 당당한 믿음의 용사 엘리야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5:17-18). 한 마디로,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그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그 점을 사람으로 태어나서 33년 동안 인간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 예수님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놀라운 비결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2-33). 아무리 현실이 겁나고 두렵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면 두려움이 가실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인생을 살게 되면 환난 가운데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과 그 성전에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임재하여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서 인생을 살아갈 때 비로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가르침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17:1-2-5)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편한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서 생노병사(生老病死,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시달리면서 백 년 안팎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인생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소풍을 왔다고 합니다. 누구는 즐기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조금 의식이 있는 자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소수이지만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자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아주 극소수이지만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는 자는 신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2-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통 사람과 똑 같은 인생을 사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3:16-17, 6:39-40, 17:2-4). 영생을 얻는 방법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17:3); 첫째,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그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면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는지 그 이치를 알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영생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는 주장을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이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하고 있습니다(17:2)

결론을 도출해보자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예수님의 생애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모두 이 세상에서 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17:4). 그러므로 자신을 천국에서 그 영생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7:1). 또한 독생자가 지니고 있는 창조주로서의 신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예수님의 간구하심이 더불어 나타나고 있습니다(17:5).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17:1, 4-5)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감히 창조주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방법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17:1). 그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17:4). 그 일은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사람들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17:2, 24:44-49). 세상사람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왔다는 사실은 더 모르고 있습니다. 설혹 그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믿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더 만만한 신을 이미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불이익이 찾아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이 한갓 피조물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형편이 없는 경지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떳떳합니다. 그리하여야 성취감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한번 태어났으면 누구나 세상적으로 출세를 하고 싶고, 많이 소유하고서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창조주를 자신의 위에 인생의 주인으로 두게 되면 그와 같은 야망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 대신에 창조주의 종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둘째, 창조주는 절대로 만만한 신이 아닙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한번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모시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저 적당하게 비위를 맞추어 주고 제사를 지내주는 것으로 우상은 만족을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용도에 맞도록 편리하게 그리고 실용주의 정신으로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것이 우상인데 창조주 하나님은 그렇게 어떻게 해볼 수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 스스로 자신이 주권을 행사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모두 행하는 존재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참 불편합니다(3:14, 55:8-9).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독생자를 이 땅에 성육신을 시키고 그리스도로 세우고 있습니다(3:16-17, 3:10).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생을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2-13).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구원을 얻고 영생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아니한 노릇입니다(16:24-25). 그렇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을 하는 자에게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17:15, 20-24). 이제는 그 약속을 믿고서 신앙생활에 정진을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속하게도 예수님이 방금 제자들에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기본개념을 정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규정은 이제 다른 방법으로는 영생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