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24강(창22:1-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2월 4일(목)
1.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하시는가?(창22:1-2)
(1)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신앙적으로 잘 키우고 있기 때문임(창21:33-3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이 진심인지 아니면 형식적인 것인지를 알고 싶어하신 것으로 보임.
(2) 참고로, 창세기는 에노스의 시대부터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음(창4:26);
1) 여기서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mortal body)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임. 그러므로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인간이 비로소 영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고 있는 것임.
2) 그 간구의 내용은 유한한 인생,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자신에게 부디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창조를 해달라고 하는 것임.
3) 그러한 간구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 아담의 형상을 대물림하고 있는 셋의 가계이며(창5:3) 이른 바 ‘의인의 족보’(창5:4-32)라고 불리고 있음.
(3) 족장 데라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창11:31-32)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신앙의 모습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데 그의 아들 아브라함을 통하여 과연 의인의 믿음이 다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깨달음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 깨달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고자 하시는 것임.
2) 그 시험방법이 유일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믿고서 그 명령 따라 번제물로 바칠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임(창22:1-2).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에서 85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모리아 산으로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창22:2, 4, 대하3:1)
(1) 모리아 산에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건설이 되고 있기 때문임(대하3:1);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바친 장소가 모리아 산임.
2) 그곳에 훗날 솔로몬의 성전이 들어서고 있으므로 그 의미는 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② 그 말씀에 따라 가장 귀한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맹세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임.
(2) 또한 장차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가 드려지기 때문임(마27:33);
1)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선민들도 이제는 그리스도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것임.
2) 누구나 그리스도처럼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공생애를 살아가라는 것임.
3.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슬픈 명령인데 어째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부터 그 명령을 준수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는가?(창22:2-3)
(1) 부지런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
1) 창세기 제2장을 보면, 에덴동산을 경작하도록 아담을 그곳에 두신 하나님이심(창2:7-8, 15).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의 머슴과 같음.
2) 머슴은 아침 일찍 기상하여 논밭으로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임.
(2) 신실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
1) 창조주께서 아담에게 주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성실하게 하라고 주신 것임. 그러므로 그것의 주인은 따지고 보면, 아담이 아니고 하나님이심.
2)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나이 100세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는데 그 아들도 따지고 보면, 그 주인이 아버지 하나님이심.
3) 하나님이 종 아브라함에게 맡기신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므로(창22:2) 아브라함의 신앙양심으로는 그를 생명의 주인이며 진짜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 수밖에 없는 것임(창22:3).
4. 제3일에 85km 떨어진 곳에 도착하고 있으므로 행진의 속도는 얼마인가?(창22:4)
(1) 장정이 길을 따라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40km 곧 백리임.
1)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하루 생활권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에서 백리 바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음.
2) 예를 들면, 왕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백리 바깥으로 보내어지고 죽어서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조치하고 있음. 예를 들면 수원 화성에 있는 사도 세자의 능이 그러함.
(2) 그런데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모리아 산)까지 이르는 길은 험한 지형이므로 그 만큼 빨리 걷지를 못했을 것임. 따라서 85km를 걷는데 3일이 소요가 되고 있는 것임(창22:4).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780m고지에 있는 모리아 산까지 올라가고 있는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들은 무엇인가?(창22:5-6)
(1) 하나님의 산에 오르는데 편하게 나귀에 제물을 싣고 종들과 함께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임.
1) 하나님의 산 호렙이나 시내 산에 오르고 있는 모세의 경우에도 그러함(출3:3, 19:3).
2) 예수님의 경우에도 그러하심; 예를 들면, 겟세마네 동산 기도처소 가까이에는 최소인원(베드로와 야고보 형제)만을 데리고 들어가시는 것임(마26:37)
(2) 아브라함과 약속의 아들만이 하나님의 산으로 단출하게 올라가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임.
1) 여기서, 번제의 제사를 대신하여 ‘예배’(禮拜, worship)라는 용어가 사용이 되고 있음.
2) 그 개념이 사도 바울에게까지 이르고 있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6.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불과 칼만이 있고 제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삭이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가?(창22:6-7)
(1)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고 있는 질문,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의 의미;
1) 제물이 없이 번제를 드리려고 가고 있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상한 것임.
2)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평소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도 이삭과 함께 번제를 드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창21:33). 그 선례는 창세기 제15장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음(창15:9-10).
3) 그리고 그 정도 이치를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삭의 나이가 청소년으로서 17세 정도로 보임. 특히 이삭이 장작을 짊어지고 해발 780미터나 되는 가파른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고 있으므로 힘이 제법 센 청소년인 것임(창22:6).
(2) 만약 오늘날 성도가 그 질문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한다면,
1) 첫째, 번제할 어린양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고 답변하실 것임(요1:29, 36).
2) 둘째,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되는 성도들 자신의 인생살이라고 말씀하실 것임.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성도들은 평생 동안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롬12:1-2).
7. 아브라함의 답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는 말씀에 대한 히브리서 저자의 풀이(히11:17-19)와 하나님의 응답(창22:13-14, 요1:29)
(1) 히브리서 저자의 풀이는 다음과 같음;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1)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은 ‘영생의 하나님’을(창21:33) 믿고 있다는 것임.
2) 하나님께 드리면 다시 살려서 약속을 성취하는데 사용하신다는 것임. 그것은 ‘부활의 신앙’을 이미 선보여주고 있는 것임.
(2)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대속의 어린양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
1)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고자 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대속의 어린양이 나타나고 있음(창22:13)
2) 참고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목적에 사용해달라고 바치는 경우에는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가 주(인)님이 되어 제자의 인생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것임(마11:27-30, 요14:17-19, 행16:7).
8. 번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한 가장 원형적인 기술과 이를 급히 저지하시는 하나님(창22:9-12)
(1) 번제는 제물의 각을 뜨고 깨끗이 씻어서 제단에 올리는 것임(레1:6-7). 그 다음에 완전히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사임(레1:8-9).
(2) 그러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본문의 기록이 다음과 같음;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창22:9-10).
1) 여기서 이삭이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 왜 반항을 하지 아니했을까?
2) 과연 이삭의 신앙의 특징이 무엇인지 창세기가 계속 이야기할 것임(창24:63, 묵상하다가, 창25:20-21, 26, 태를 여시는 하나님을 믿고서 20년 동안 기도함. 창26:2, 갈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는 이삭).
9. 결국 하나님은 ‘인신제사’(人身祭祀, 사람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것)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시고 있는가?(창22:12-14, 사1:11-17)
(1) 아브라함은 이른바 인신제사에 물들어 있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음;
1) 사자를 보내어 급히 아브라함의 행동을 제지하심(창22:11-12a).
2) 인신제사를 원한 것이 아니고 단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히심(창22:12b).
3) 아브라함의 하나님경외의 마음을 확인하고서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의 축복을 주심(창22:13-14).
4) 그러므로 반대해석을 해보면, 하나님경외의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주신 ‘여호와 이레’의 축복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임.
5) 요컨대, 경외의 마음이 먼저이며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역사를 하는 것임.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만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임.
(2) 그와 관련하여, 훗날 이사야 선지자의 기록이 다음과 같음;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1-12),
2)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6-9).
10. 인류최초로 ‘하나님 경외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어지고 있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창22:12-14, 롬4:16-24).
(1) 대속의 어린양이 가장 먼저 아브라함과 이삭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임(창22:12-14).
1) 인류 최초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 경외자’로 불리게 되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임(창22:12, 롬4:16-18).
2) 그리고 번제물이 되어도 묵묵히 순종하고 있는 이삭이 믿음의 조상의 뒤를 잇는 약속의 아들임(창17:19, 22:9-10). 그 말은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 언약의 상대방이 되고 있다는 것임.
3) 그들 앞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대속물이 나타나고 있는 것임(창22:13). 그것이 이삭의 목숨을 대신하고 있음.
(2) 그 다음에는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굽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임(출12:21-24). 그것이 선민의 역사임.
(3) 그리고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대속의 어린양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심(요1:29, 36).
11.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는 약속의 아들로 대를 이어가면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천하만민에게 복을 받게 할 수가 있다는 말씀에 대한 이해(창22:15-18);
(1)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축복의 내용
1) 첫째, 자손의 번성(창22:17a)
2) 둘째, 아브라함 자손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임(창22:17b)
3) 셋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임(창22:18a).
(2) 축복내용에 대한 분석;
1) 아브라함처럼 가장 귀한 것을 바친 경우에는 자손의 번성과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임(창22:16-17).
2)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에게는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에게 복이 돌아간다는 것임(창22:18).
3) 여기서 자손의 번성의 약속은 이미 여러 차례 주어진 것임(창12:2, 13:16, 17:6, 20).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전쟁에서의 승리와 천하만민에게 복이 주어진다는 약속은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임.
4) 그와 같이 다양한 축복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시험통과를 너무나 기뻐하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음.
12. 제사를 드리고 하산하여 종들을 만난 아브라함 부자는 어째서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가고 있는가?(창22:19)
(1) 아브라함 일행이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으로 오는 도중에 가나안 남부지역의 형편을 두루 살핀 것으로 보임.
1) 그 지역의 지배자가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힛타이트 계통의 헷 족속으로 바뀐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됨(창13:18, 14:13, 23:2-4).
2) 아브라함은 이미 헷 족속에게 넘어간 헤브론의 자신의 땅을 되찾을 수 있는 방도가 사라진 것으로 보임(창23:16, 유일한 방도가 돈을 주고 다시 땅을 사는 것임).
(2) 한 마디로, 새로운 땅 주인 앞에 자신의 연고권을 주장할 수가 없게 된 것임.
1) 따라서 아브라함은 일단 헷 족속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브엘세바에서 오래 살려고 작심하고 있음(창22:19).
2) 그러나 과거 헤브론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라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내가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헤브론으로 다시 들어온 것으로 보임(창23:1-4).
13.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동생 나홀의 집안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11:31-32, 22:20)
(1) 북쪽 시리아 하란에 살고 있는 아버지 데라의 안부를 장자인 아브라함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음.
1) 따라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을 가능성이 있음.
2) 데라의 향년이 205세이므로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5세임(창11:26, 32). 그리고 사라가 죽기 2년 전임.
3) 그런데 아버지 데라의 장례식에 장남인 아브라함이 참석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임. 그 이유는 동생 나홀이 그 동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으며 그 막대한 재산을 모두 상속했기 때문임.
4) 참고로, 동생 나홀은 자신의 아성을 그곳에 마련하였는데 그것이 하란에 있는 ‘나홀의 성’임(창24:10).
(2) 이상과 같이 따지고 보면, 하란에서 브엘세바로 오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동생 나홀의 근황을 물어보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음(창22:20).
14.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브라함이 하란 땅 ‘나홀의 성’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2:21-24, 24:10)
(1)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하나님신앙을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게 대물림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음.
1) 그 방법이 하나님신앙을 가진 며느리를 맞이하는 것임(창22:20, 24:3-4).
2) 하란에 살고 있는 동생 나홀의 집안에 대하여 조사할 필요성이 생긴 것임.
(2) 또한 아브라함은 시나이 반도 바란 광야로 떠난 아들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는 것으로 보임.
1) 이스마엘이 그곳에서 번성하고 있으나 하나님신앙이 사라지고 있음.
2) 그 이유는 하갈이 애굽 여인이며 그 집 며느리가 전부 이방인들이기 때문임(창16:1-2, 21:21).
3) 그러므로 이삭의 아내만은 믿음이 있는 집안에서 얻고 싶은 것임(창24:3-4).
15. 나홀 족보의 특징과 훗날 이삭 및 야곱과의 관계(창22:20-24)
(1) 나홀의 아내는 동생 하란의 맏딸인 밀가임(창11:29, 22:20).
1) 그들 부부의 아들은 8명임(창22:23). 그 이름은 우스, 부스,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등임(창22:21-22).
2) 그 가운데 3남 그므엘의 아들이 아람이라고 특기하고 있음. 그 이름은 셈의 5남인 아람과 동일함.
3) 그리고 막내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훗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고 있음(창22:23, 24:67).
4) 그리고 브두엘의 아들인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이 훗날 야곱의 두 아내가 됨(창29:23, 30).
(2) 나홀이 부자이므로 첩 르우마로부터 4명의 아들을 얻고 있음(창22:24).
1) 그 이름이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 등임.
2) 그 가운데 마아가는 훗날 마아가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있음(수12:5, 삼하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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