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25강(창23:1-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2월 11일(목)
1. 이삭의 나이 17세쯤에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을 다녀왔다고 한다면(창22:1-3) 그때 사라의 나이는 107세임(창17:17, 21:5). 그때 여전히 브엘세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가족이(창22:19) 사라가 죽기 전에 헤브론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창23:1-2) 무엇으로 볼 수 있는가?
(1) 가나안 남부 네게브와 해안의 도시국가 블레셋의 평야지대 그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이 브엘세바임.
(2) 역사적으로 힘이 센 블레셋 족속들이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비옥한 해안가 5개 지역(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애그론, 가드)과 그랄 평야를 뺏어서 살고 있음.
1) 가나안 원주민들의 무력을 대표하고 있는 아모리 족속도 브엘세바를 되찾지 못하고 있음. 따라서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고서 그들의 세력하에 있는 브엘세바에서 계속 살고 있음(창21:31, 34, 22:19).
2) 과거 아브라함의 아성이 위치하고 있는 헤브론에는 북방으로부터 힛타이트 족의 한 갈래인 헷 족속이 쳐들어와서 이미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전부 차지하고서 살고 있음.
3) 따라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남부 헤브론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것임.
(3) 그러나 드디어 아브라함이 헤브론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임.
1) 새로운 가나안의 지배자 헷 족속들이 비옥한 그랄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블레셋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임.
2) 그 결과 아비멜렉이 국경에 가까운 브엘세바 지역을 헷 족속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임.
3)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구태여 헷 족속 치하에 들어가 있는 브엘세바에 계속 살고 있을 이유가 없어짐. 그는 가족을 이끌고 옛날 연고지 헤브론으로 북상한 것으로 보임.
(4) 또 하나의 가설은 사라가 자신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끌고 가서 번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남편 아브라함의 거사에 대하여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임;
1) 사라는 그 기억을 잊고자 브엘세바를 떠나고 싶어 했다는 것임. 이왕이면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 했다는 가설인 것임.
2) 그러나 그때 사라의 나이가 107세쯤으로 보이는데 죽기 전까지 20년이나 과연 헤브론에서 살고 있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음.
3) 그렇게 오랜 세월 헤브론에서 살고 있었으면 헷 족속과의 마찰이나 과거 유대관계가 있었던 아모리 호족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 법한데 전혀 그러한 기록이 없기 때문임.
2.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과 열국의 어미인 사라 가운데, 아내 사라의 향년이 127세(창23:1), 남편인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창25:7)라는 특이사항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으로 볼 수 있는가?
(1) 일반적으로 아내가 남편보다 더 장수를 하는 법임. 그러나 사라는 38년 먼저 남편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고 있음. 이에 따라 훗날 ①선민의 범위에 대한 논란, ②선산 마므레 굴에 대한 의미해석이 발생하며, ③여성으로서 특이하게 장례의 기록을 길게 남기고 있는 사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음.
(2) 열국의 어머니 사라이지만 그녀의 아들은 이삭뿐임.
1) 그러므로 사라는 이삭의 자손들이 이루고 있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임.
2) 그 가운데 모세는 선민들의 정통성을 약속의 아들 이삭의 뒤를 이어 영적인 장자가 되고 있는 야곱과 그의 후손 열두 지파에 두고 있음.
3) 그러나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사가들은 선민의 정통성을 더 좁게 생각하고 있음. 왜냐하면, 앗수르에 의하여 일찍 망하게 되는 북조 이스라엘 10지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임.
4) 따라서 그들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과 그 그늘에 살고 있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 지파(남쪽 잔류자 및 탈북자)만이 선민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
(3)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짐.
1)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을 포함하여 8명임.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그들 8명의 아들의 후손들이 모두 포함이 되고 있음.
2)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 후처 그두라의 아들 6명이(창25:1-4)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그들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임이 사실인 것임.
3) 그들의 후손들이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여 살았으며 그곳에서부터 훗날 회교가 일어나고 있으므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정통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아브라함의 정통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회교도 사이에 종교적인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형편임.
4)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독교의 입장은 다른 것임. 왜냐하면, 혈통적이거나 사람의 뜻으로 인한 구분이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임(요1:12-13).
5) 따라서 유대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혈통적인 분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으며 그들도 모두 인간적인 정통성시비에서 벗어나 구주 그리스도를 믿고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를 간구해야만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입장인 것임.
3.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막벨라 굴을 헷 족속으로부터 힘들게 구입하여 사라의 묘택으로 삼고 있다고 모세가 창세기 제23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모세오경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신앙의 핵심과 본질이 마므레 막벨라 굴에 안장되고 싶어하는 믿음의 열조들의 소망과 직결이 되고 있기 때문임.
1) 이를 히브리서 저자가 잘 요약하고 있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마므레 막벨라 굴에 함께 들어가서 이구동성으로)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2) 특히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으로 자손들을 이끌고 이민을 간 바 있는 야곱의 경우에는 그 소망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음;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창47:29-31).
(2) 천성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여 막벨라 굴에 안장되기를 그토록 소원하고 있는 야곱의 지극한 신앙을 아들 요셉이 본받고자 하고 있음.
1) 애굽의 실세 총리 요셉의 부친으로 화려하게 장사가 되고 애굽의 명당자리에 안장이 되는 것보다는 믿음의 열조 아브라함 부부와 이삭의 부부, 그리고 자신의 제1부인 레아가 잠들어 있는 그곳 막벨라 굴에 함께 안장이 되는 것이(창49:30-33) 더욱 소망이 있다고 믿고 있는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신앙고백임.
2) 부친 야곱의 하나님신앙을 보고서 요셉도 그 뒤를 따르고 싶어하고 있음;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애굽에서)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49:24-25).
(3) 훗날 모세도 비스가 산맥 느보 봉우리에 올라 약속의 땅을 내려다보고서 이제는 천성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임(신34:1-6).
1) 그래서 지상에서 그 무덤이 사라지고(신34:6) 그 시신을 천사장 미가엘이 하늘로 옮긴 것으로 전승이 되고 있음(유1:9).
2) 그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천국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신약에서 증거하고 있음(막9:2-4, 히11:26).
4. 훗날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는 3여인 사라, 리브가, 레아 가운데(창49:31) 유독 사라의 장례식만이 창세기 23장에서 모세가 대서특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1)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된 세 여인 가운데 유일하게 향년이 알려지고(창23:1) 또한 그 장례에 대하여 언급이 되고 있는 여인은 사라 뿐임(창23:19).
(2) 그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사라의 믿음생활이 가장 뛰어나서 본 받을 점이 더 많다는 의미로 보임;
1) 리브가의 경우에는 믿음이 뛰어난 아브라함과 이삭의 집안으로 시집을 오고 싶어했던 놀라운 믿음의 여인임(창24:58).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겠다고(창25:23) 무리하게 인간적인 사기행각으로 남편 이삭을 속인 죄가 있음(창27:8-14).
2) 그 저주를 혼자 짊어지고 살았기에(창27:12-13) 그 여생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없는 것임. 단지 유모 드보라에 대한 이야기와 리브가가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어 있다는 언급만이 나타나고 있음(창35:8, 49:31).
3) 레아의 경우에는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믿음의 성숙을 이룬 여인임(창29:35). 하지만 친동생 라헬과 경쟁하여 자신의 몸종 실바를 남편의 첩으로 주고 아들의 수를 늘리려고 한 시기심을 보이고 있음(창30:9).
4) 따라서 그 상세한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가 생략이 되고 있음. 단지 야곱이 레아를 막벨라 굴에 안장했다는 사실만을 전하고 있는 것임(창49:31).
5. 가나안 땅 헤브론의 이름이 ‘기럇 아르바’라고 달리 불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3:2)
(1) 헤브론의 본래 이름은 ‘마므레’인데 그것은 아모리 족속의 호족 ‘마므레’가 그곳에서 가장 큰 땅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임. 그래서 아브라함이 호족 마므레로부터 애초에 땅을 사서 자신의 아성을 그곳에 세운 것으로 보임(창13:18, 14:13, 24).
(2)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남부의 가뭄을 피하여 블레셋의 그랄 땅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헤브론 곧 ‘마므레’의 주인이 바뀌고 있음;
1) 소아시아의 힛타이트가 에게 해의 선진무기체계를 앞세워서 남하를 하였으며 그 가운데 한 줄기 헷 족속이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헤브론까지 점령하게 된 것으로 보임.
2) 이에 따라 그곳을 차지한 헷 족속의 영웅 ‘아르바’의 이름을 기리고자 아예 헤브론 곧 마므레는 새 이름 ‘기럇 아르바’(네 개의 성읍 또는 아르바의 성읍)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임(창23:2).
6. 아브라함이 자신의 옛날 아성이 자리를 잡고 있던 마므레 땅에 살고 있지만(창13:18, 14:13, 18:1) 그 땅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연고권을 헷 족속에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과 그 의미는 어떠한가?(창23:3-4)
(1)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임;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2) 아브라함은 일개 떠돌이 호족에 불과하며 이미 헤브론에서 자신의 땅이 하나도 없는 처지임. 그것은 과거 아모리 호족 마므레에게서 산 땅이 모두 헷 족속의 것으로 넘어가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
(3) 만약 아브라함이 마므레 막벨라 굴과 그 일대의 땅이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고 주장하게 되면 어찌될 것인가?
1) 아브라함의 연고권 주장은 이미 무력으로 그 땅을 차지한 헷 족속에게 아무런 호소력이 없을 것임.
2)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가족은 헤브론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
(4) 따라서 고대사회나 근대사회에서 전쟁을 통하여 점령한 땅에 대해서 패전한 나라의 백성이나 제3국의 이해관계자가 함부로 법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임.
1) 한 마디로, 전쟁의 승리가 기존의 법적인 소유권과 지배권을 모두 바꾸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법치가 전쟁의 뒷처리를 하는 것이지 전쟁이 법치의 뒷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님.
2) 이는 현실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유연성과 창의성을 가지는 정치가 앞서고 있으며 사회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법제도가 그 뒤를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가 아니한 것임.
7. 헷 족속들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3:5-6)
(1) 적어도 10년 정도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헷 족속과 함께 생활해온 것으로 보임. 따라서 그 땅의 새 주인이 된 헷 족속이 떠돌이 호족인 아브라함의 행실과 태도를 긴 세월 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것임.
(2) 그 결과 헷 족속들은 아브라함을 존경하기에 이르고 있는 것임.
1) 그 이유는 참으로 경건하며 거룩한 선지자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임.
2) 그래서 아브라함의 요청에 따라 장지를 살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고 있는 것임(창23:5-6).
8. 헷 족속으로부터 묘실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게 되자 아브라함이 왜 에브론의 땅을 사려고 시도하는가?(창23:7-9)
(1) 한 마디로, 과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마므레 땅과 막벨라 굴을(창13:18, 18:1) 헷 족속 에브론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임(창23:8).
(2) 이왕 돈을 주고 산다면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익숙한 그 땅을 일부 사서 막벨라 굴에 그녀를 안장을 하고 싶은 것임.
(3) 그래서 아브라함은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대금을 충분하게 지급하고서라도 그 땅을 사고 싶은 것임(창23:9).
9. 에브론이 성문에 들어온 모든 동족들 앞에서 막벨라 굴과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겠다고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3:10-11)
(1) 떠돌이 호족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별세한 것을 알고 있음(창23:9). 그러므로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임을 에브론이 직감하고 있는 것임(창23:10).
(2) 그래서 기분 좋게 아브라함에게 팔겠다고 동족들 앞에서 약속하고 있음(창23:11). 그 값을 말하기 전에 쾌히 아브라함의 요청을 받아 들이겠다고 먼저 돈이 안 드는 호의부터 보이고 있는 것임.
(3)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모든 부동산 거래는 동족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행하여 그 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관례임.
10.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포함하고 있는 밭을 사기 위하여 땅값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에브론이 부족들 앞에서 제시하고 있는 값 은 400세겔은 얼마나 비싼 값인가?(창23:13-15)
(1) 고대사회에서 대략 은 1세겔은 4데나리온이며 그것은 장정의 4일치 임금에 해당함(마20:2).
1) 장정인 종 한 사람의 몸값이 보통 은 30세겔임(출21:32, 마26:15, 27:9).
2) 17세의 청소년인 경우에는 은 20세겔임(창37:28).
3) 그러므로 밭 값인 은 400세겔이면 장정인 종을 13명이나 살 수 있는 큰 돈임.
(2) 은 400세겔은 1년 365일 가운데 대략 300일간 일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5년 이상 노동을 하여 한 푼도 쓰지 아니하고 모두 저축을 했을 때의 금액에 해당함.
1) 하루의 품삯을 오늘날 선진국 기준으로 100달라로 볼 경우, 은 400세겔은 도합 16만불에 해당되는 큰 돈임(창23:15).
2) 그것은 임야나 굴의 값이 아니라 거의 대지 값과 집값에 필적하고 있는 고가인 것임. 따라서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것임.
11. 비싸다는 말 한 마디 하지를 못하고 그 값 그대로 그 밭을 사고 있는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23:16)
(1) 반드시 자신의 옛 성이 있던 그 땅을 사야만 하는 절박함.
1) 묘지와 묘답의 가격이 비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은 사라의 장례가 급하기 때문임.
2)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묘실 만은 비싸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옛날 살았던 친숙한 그 지역의 굴로 정해주고 싶기 때문임.
(2) 이주민들에게 무조건 바가지를 씌워 자신들이 무력으로 뺏은 땅을 비싼 값에 팔고 있는 정복자들의 관행.
1) 그러므로 나중에 이민을 가게 되면 그만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음. 일명, ‘립 오프’(rip-off)인 것임.
2) 아브라함의 경우에 있어서는 애굽의 바로와 그랄의 아비멜렉에게서 얻은 뜻밖의 재물로(창12:16, 13:2, 20:16) 가장 의미 있는 투자를 하고 있는 셈임(눅16:4-9, 불의한 청지기가 오히려 칭찬을 받다).
3)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장지를 마련하고 후손들의 묘실을 마련하고 있는 것임. 그들 믿음의 열조들은 그곳에서 천성으로 가기를 소원하고 있음(요5:28-29, 히11:16).
12. 아브라함이 비싸게 산 그 땅과 굴에 대해서 헷 족속들이 그 권리를 인정을 해주고 있는 장면(창23:16-18)
(1) 성문 앞에는 지배족속의 장로들이 앉아서 공무를 보고 있음. 따라서 그들 앞에서 부족원들이 부동산 매매를 하고 그것을 공증을 받고 있는 것임.
(2) 헷 족속인 에브론과 떠돌이 호족 아브라함이 부동산을 매매하고 그 사실을 성문 앞에서 공증을 받고 있음(창23:18).
1) 그것은 헷 족속이 그 땅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계속 효력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임. 훗날 에서가 헷 족속의 딸 둘을 자신의 아내로 삼는 것을 보면(창26:34), 헷 족속의 가나안 남부 지배는 계속이 되고 있다고 하겠음.
2) 부족원들의 인정은 고대사회에서 일종의 부동산 등기와 같은 것임.
13. 등기사항을 자세하게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이유(창23:17, 20)
(1) 출애굽시킨 동족 이스라엘 자손을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음. 따라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함.
(2) 그 명분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심(창12:7, 13:15, 15:18-21).
2)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이삭이 승계를 하고(창26:3), 또 야곱이 승계를 하고 있음(창28:13, 35:12).
3) 헤브론의 선영을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 샀으며(창23:18-20, 49:29-32) 세겜 일대의 땅은 야곱이 무력으로 차지한 바가 있음(창48:21-22).
4) 이어서 모세는 출애굽기 제3장에서 여호와의 약속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음;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출3:8-9).
(3) 명분 쌓기에 이어서 모세는 등기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음;
1)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①그 밭과, ②거기에 속한 굴과, ③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④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 된지라”(창23:17-18).
2) 그것은 현세적인 재산의 획득과 그 축복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는 선민의 특징을 진작부터 말해주고 있는 대목임
14. 드디어 아브라함이 사라를 막벨라 굴에 처음으로 장례를 치르다(창23:19). 그 의미에 대한 히브리서 저자의 해석과(히11:13-16)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야곱(창47:29-31, 49:29)
(1)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믿음의 열조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 멀리서 보고 환영하고 있는”(히11:13) 자들임.
(2) 야곱은 요셉을 비롯한 열두 지파의 족장인 아들들에게 천성으로 들어가는 소망을 가지고 일평생 살다간 믿음의 열조들 곧 아브라함 부부와 이삭의 부부 그리고 그의 아내 레아가 모두 막벨라 굴에 들어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음(창49:31).
(3) 따라서 자신도 죽은 다음에 애굽에 안장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그 막벨라 굴에 들어가서 천성으로 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임(창47:29-31, 49:29-33).
(4) 그것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믿음의 본질임. 그것이 믿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히브리서 저자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음;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가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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