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23강(창21: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1월 28일(목)
1. 89세의 할머니 사라를 잉태시키고 이듬해에 아들을 낳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시고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창21:1-2)
(1) 사라를 돌보심(the Lord visited Sarah as he had said, KJV, 창21:1a)
1) 하나님께서 사라를 방문하여 생명의 기운을 크게 불어넣어주신 것으로 풀이가 됨(창2:7, 겔37:10).
2) 강력한 생기는 사라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젊은 몸으로 회복을 시켜주고 가임(可姙)여성으로 회춘을 시켜준 것으로 보임.
3) 그 결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89세의 할머니(창17:17) 사라의 미모에 반하여 후궁으로 데리고 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임(창20:2)
(2) 사라에게 행하심(the Lord did unto Sarah as he had spoken, KJV, 창21:1b)
1) 아브라함의 몸도 회춘시켜서 사라와 합방을 함으로써 아기가 생산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
2)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아기가 10달간 모태에서 잘 자라게 하고 사라 90세에 순산이 되도록 한 것임(창21:2).
3)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여인의 태를 닫기도 하고 여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이미 그랄 땅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임(창20:17-18).
2. 사라가 아들을 낳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가?(창21:3-4)
(1)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함(창21:3)……”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17:19)
(2)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함(창21:4)……”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17:12).
3. 아들 이삭의 탄생으로 아브라함 부부는 어떠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가?(창21:5-7)
(1)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기억하게 됨.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2) “여호와께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2) 반드시 언약대로 신실하게 행하시는 ‘헤세드’하나님으로 기억하게 됨.
1)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17:19).
2)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3) 인간의 비웃음을 믿음의 웃음으로 그것도 행복한 웃음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으로 기억하게 됨(창21:5-7);
1) 아브라함 나이 100세에 적장자가 태어나다(창21:5).
2) 불임여성 사라가 나이 90세에 아들을 낳고 모유까지 먹이게 되다(창21:7).
3) 하나님의 예언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비웃던 자들이(창17:17, 18:11-12) 이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창조의 능력을 보고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다.
4)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가져다 주다(창21:6).
4. 적장자 이삭과 서장자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표출이 되고 있는가?(창21:8-9)
(1) 청소년 이스마엘이 겨우 젖을 뗀 이복아우 이삭을 놀리는 사건이 발생함(창21:8-9).
1) 종의 아들이 안방마님의 아들을 놀리는 것은 불경에 해당함.
2) 특히 나이차이가 14살이나 되므로 이스마엘이 완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이삭이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음.
(2) 고대 가부장족장사회에서는 적서의 구별이 엄격함.
1) 따라서 적자인 이삭이 차기 족장이 되며 모든 재산을 상속하게 됨.
2) 이에 서장자인 이스마엘의 불만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임.
5.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는 사라의 요구와 아브라함의 고민(창21:10-11)
(1) 사라의 요구
1)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쫓으라(창21:10a).
2) 이스마엘에게 돌아갈 상속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라(창21:10b).
(2) 아브라함의 고민(창21:11)
1) 자신의 핏줄을 집에서 내어쫓는 일이 사람으로서는 할 일이 못됨.
2) 그렇다고 같이 데리고 있자니 이삭에게 위해가 미칠 것만 같아서 보통 고민이 아닌 것임.
3) 그러므로 해결책은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방법뿐임.
6. 아브라함은 두 아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가?(창21:12-13)
(1) 아브라함은 86세에 첩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은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함(창16:16).
(2) 나이 100세에 사라에게서 적자 이삭을 얻은 것은 더 큰 기적임(창21:5).
(3) 기적의 두 아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고 생각함.
1)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들이므로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시고(히11:18-19) 그들 사이의 갈등의 문제를 처리하시고 모두를 살려달라고 매어 달린 것으로 보임(창21:11-13).
2) 아들들뿐만 아니라 민족들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여호와가 그 구원의 책임을 지실 것이라는 뜻이 이사야 제19장에서 선포가 되고 있음;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
7. 하나님의 처결의 내용이 무엇이며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고 하갈 모자(母子, 어머니와 아들)를 광야로 내보내고 있는가?(창21:12-14)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무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임(창21:12a). 사라의 요구는 이스마엘에게 기업을 주지 않고 하갈과 함께 집에서 내어쫓는 것을 말하고 있음(창21:10).
(2) 그것은 야속하기 그지 없는 처사임. 도대체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무정한 결정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1) 기본적으로, 기업은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임……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애굽에서(창12:16, 13:2), 이삭의 경우에는 블레셋 그랄 땅에서(창26:12-14), 야곱의 경우에는 하란 땅에서(창30:43-31:1), 요셉의 경우에는 애굽에서(창41:39-47) 각각 자수성가를 하고 기업을 얻도록 섭리하시고 있음.
2) 장차 이삭의 집에 대한 영적인 축복(창21:12b) 그리고 이스마엘의 집에 대한 세상적인 축복을(창21:13) 일찍부터 분리하고 있는 것임.
3) 뒷감당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보장임. 따라서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걱정을 접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있는 것임(창21:14).
(3) 하나님께서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는지를 앞으로 성경이 기록으로 보여줄 것임(창21:17-21, 바란광야에서 주몽과 같은 존재로 이스마엘을 양육해주시는 하나님, 참고로 바란광야는 가나안 남부 국경의 오아시스 성읍 가데스바네아에서 시나이반도에 이르는 광야임, 창25:12-18, 훗날 아라비아에서 열두 족속으로 번창하게 되는 이스마엘의 후손들).
8. 브엘세바 광야에서 마실 물이 떨어져 절망 가운데 울고 있는 하갈 모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창21:15-17)
(1) 당시 아브라함 가족이 살고 있는 장소는 브엘세바임.
1) 아브라함은 99세에 소돔과 고모라 성의 불 심판으로 말미암아 헤브론 일대에 발생하고 있는(창19:27-28) 가뭄을 피하여 그랄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
2) 그랄 땅 중심에서 아내 사라를 그랄 왕 아비멜렉의 후궁으로 빼앗길 뻔했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되찾게 됨(창20:2-3, 14).
3) 아브라함은 가나안 남부지역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본거지 헤브론으로 되돌아가지를 못한 채 브엘세바에서 살게 됨. 당시 브엘세바는 블레셋의 동쪽 국경지역이며 북동쪽으로 55km 올라가면 헤브론에 이르게 됨.
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15년 이상 오래 살게 됨. 왜냐하면, 그곳에서 이삭을 낳고(창21:5)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내고(창21:14) 또한 청소년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모리아산(창22:2, 대하3:1, 훗날 예루살렘 성전의 터)까지 올라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임.
(2) 달랑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가지고 브엘세바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인생 하갈과 이스마엘이 의미하고 있는 것(창21:14);
1) 인간이 이 세상에서 안전하고 강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 깊이 있게 따지고 보면 하갈 모자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음.
2) 그 이유는 불치의 병과 장애, 그리고 각종 사고의 위험, 통제할 수 없는 전쟁과 천재지변의 위험 가운데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기 때문임.
3)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존의 위기라는 절망의 자리에서 부르짖고 있는 마치 하갈 모자와 같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서 관심을 가지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기에 아직도 인류가 지상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임(창21:15-18).
(3) 요컨대, 1960년대 말에 미소 양 진영이 개발하여 보유하게 된 원자탄 등 핵분열 폭탄과 수소폭탄 등 핵융합 폭탄의 수를 모두 합하면 지구를 7번 이상 불태워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핵 단추를 누르는 손을 지금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어하고 계시기에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임.
9. 하갈과 이스마엘의 생명을 살리시고 축복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창21:18-21)
(1) 이스마엘의 우는 소리를 먼저 들으시는 하나님(창21:17);
1)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어미 하갈이 큰 목소리로 통곡을 하고 있음(창21:15-16).
2)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하갈보다는 이스마엘의 통곡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시는 것임.
3)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이스마엘의 장래에 대한 언약 때문임;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아브라함의)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창21:13).
4)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예언을 얻지 못한 자가 가장 서글프고 살아가기가 막막한 인생이라고 하겠음.
(2) 예언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이스마엘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창21:18-21);
1) 가장 먼저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의 예언을 하갈에게 상기시켜주고 계심(창21:18,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창21:3, 역시 아브라함의 씨이므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창16:10, 이스마엘의 후손을 크게 번성하게 해주겠다).
2) 하갈의 눈을 밝혀주어 샘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줌(창21:19). 광야에서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출17:6, 반석에서 물이 나오다, 왕상19:3, 6, 역시 브엘세바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물을 주시는 하나님).
3)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게 함께 계셔서 그를 마치 고구려의 창건자 주몽처럼 바란광야의 지배자로 키우심(창21:20-21).
4) 참고로, 바란광야는 브엘세바에서 남서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 오아시스 국경도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작하여 시나이 반도 쪽으로 펼쳐져 있는 광야임(민13:26).
5)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바란광야에서 발흥하여 훗날 동쪽 아라비아 반도로 진출함(창25:18).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삭의 후손들과 대항하면서 사라센과 회교의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긴 세월을 살아오고 있는 것임(창16:12, 21:12).
10. 그랄 왕 아비멜렉이 왜 군대장관 비골만을 데리고 변경지역 브엘세바까지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있는가?(창21:22-23)
(1) 블레셋 연맹의 왕중왕인 그랄 왕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임;
1) 아비멜렉은 비밀리에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솔직하게 실토를 하고 있음……”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21:22).
2) 하나님의 선지자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을 채 국경지대 브엘세바를 떠나서 가뭄이 끝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나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그랄 땅에 임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
(2) 장차 예상이 되고 있는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사전에 아브라함과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자 함;
1)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창21:23).
2) 일찍이 하란 땅을 떠나올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음(창12:2). 그 약속이 여기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임.
3) 일개 떠돌이 히브리인 족장인 아브라함이 전체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과 일대일로 평화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임.
11.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기 전에 아브라함이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사항은 무엇인가?(창21:24-27)
(1)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하여 감히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있음(창21:25);
1) 그랄 땅 들판에서 아브라함이 종들을 시켜 새로 우물을 파기만 하면 마치 먼 훗날 그의 아들 이삭의 때처럼 풍부한 샘물이 터져 나오고 있음(창26:15, 18).
2) 그러나 아비멜렉의 신하들과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연고권을 내세워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빼앗아 간 것임(창21:25).
3) 우물을 빼앗긴 아브라함은 가축을 몰고서 계속 동쪽 국경지대 브엘세바까지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창21:31). 그와 같은 현상은 그의 아들 이삭의 때에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임(창26:14-23).
(2)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 들판을 떠나고 나면 그의 우물물이 모두 말라버리고 있는 것임.
1) 그래서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흙으로 메어버렸다고 훗날의 기록이 증거해주고 있음(창26:15, 18).
2) 사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를 통하여 이방족속에게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임. 그런데 선지자를 박해하고 그 지경에서 쫓아내게 되면 그 복이 말라버리는 것임을 알게 해주고 있는 대목임(창12:3,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마10:14-15, 영접하지 아니하는 곳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말씀).
3) 그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현명한 왕중왕 아비멜렉이 시치미를 떼면서 아브라함과의 평화조약 체결을 서두르고 있음(창21:26-27).
12.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암양 새끼 7마리를 주고 브엘세바에서 판 우물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1:28-30)
(1) 브엘세바가 당시 블레셋의 국경 안에 속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아브라함;
1) 그래서 아브라함은 차제에 블레셋의 황제에 해당하는 아비멜렉으로부터 브엘세바에서 그가 파고 있는 우물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음(창21:30).
2) 브엘세바는 그랄 땅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지역이므로 아비멜렉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동의를 해주고 있음(창21:31).
3) 그 결과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대등한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이 체결이 된 것임. 그 모든 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동행하고 계셨기에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사건임(창21:22).
4) 한 마디로, 그날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준 날임(창12:2).
(2) 브엘세바 조약의 효과
1) 장차 여호와 하나님의 예상되는 진노와 재앙을 피하게 된 아비멜렉(왕중왕의 칭호)과 비골(군대장관의 칭호)은 행복하게 그들의 왕도로 되돌아감(창21:32).
2) 그때부터 그곳 광야의 정식지명이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로 불리게 됨(창21:31, 26:33, 약 80년후 이삭 때에 그 지명이 되살아나게 됨).
3) 아브라함은 3살짜리 아들 이삭이 청소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블레셋의 세력권 안에 있는 국경지역 브엘세바에서 안전하게 목축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됨(창21:34).
4) 아브라함이 인류최초로 ‘영생하시는 하나님’(the name of the Lord, the eternal God)을 발견하고 자신의 영생을 소망하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브엘세바로 기록이 되고 있음(창21:33).
13. 아브라함이 맹세의 우물이 있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 장소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창21:31-33)
(1) 에셀나무(a tamarisk tree)의 특징
1) 반(半, semi-) 사막(沙漠, desert)성 기후에 속하고 있는 가나안 남부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사철수가 에셀나무임.
2) 비록 침엽수이지만 사철 푸른 빛을 띠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뿌리에 있음.
3) 크게 9m까지 자랄 수 있는 에셀나무(tamarisk tree)는 그 뿌리가 나무 높이의 3배나 됨. 그래서 매우 깊이 땅을 파고들어가서 생명의 물을 빨아올려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는 것임.
4) 따라서 일반적으로 네게브 지역에서 유일한 기념수로 사용이 되고 있음.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그 나무를 심고서 아비멜렉과의 조약을 기념하며 동시에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음.
(2) 에셀나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하나님의 은혜
1) 에셀나무가 뿌리를 깊이 뻗어서 생수를 빨아 올리듯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생의 생명수를 구하고 있는 자에게 그 생명수가 주어지고 있는 것임.
2)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롬8:1-15).
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은 말씀의 육신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처럼 생활화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주어진다는 약속입니다.
4)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6-7); 거듭난 성도는 남은 인생을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영생의 샘물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는 권세가 주어지게 됩니다.
(3)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처럼 성도들이 말씀충만과 성령충만으로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신앙의 뿌리를 에셀나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대속의 삶에 깊이 박아서 영적인 생명수를 빨아올려야만 합니다. 그 생명수로 지체를 움직여나가야만 합니다(빌1:22-24, 4:12-13).
2) 그것이 죽은 다음이 아니라 당장 이 땅에서도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살면서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방법론입니다(빌1:19-21).
14.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는데 모세는 왜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는가?(창21:33-34, 26:22-25)
(1) 당시 가나안 땅의 지배족속인 아모리 족속은 그 힘이 약하여 서쪽 국경지역 브엘세바 광야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보임. 따라서 아브라함이 블레셋의 영토에 속하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된 것임(창21:34).
(2) 그러나 10여년 후에 선진무기체계를 자랑하고 있는 힛타이트 족속의 한 갈래인 헷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자 사정이 달라지게 됨;
1) 헷 족속이 가나안의 지배족속인 아모리 족속을 쳐부수고 헤브론을 차지하게 됨(창23:2, 헤브론이 ‘기럇 아르바’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음. 그것은 헷 족속의 영웅인 거인 아르바가 새로 차지한 땅이라는 의미임).
2) 이에 따라 아브라함이 과거 아모리 족속 마므레에게서(창13:18, 14:13, 24) 산 땅을 다시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막대한 돈을 주고 사서 아내 사라의 묘지로 삼고 있음(창23:4, 16-20).
3) 헷 족속은 계속 남하를 하여 무력으로 블레셋을 밀어냄으로써 국경지역 브엘세바를 차지한 것으로 보임.
4) 그 결과 80년 후 이삭의 때에는 브엘세바가 가나안 지경에 속하고 있어 블레셋의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주 조심스럽게 이삭에게 다녀가고 있음을 볼 수 있음(창26:31, 이삭이 그들을 새벽에 안전하게 경호하여 보내주매 그들이 평안히 돌아가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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