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20강(창18:1-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1월 7일(목)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 둘을 데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헤브론의 아브라함 장막 앞에 현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창18:1, 17)
(1) 아브라함을 만나고자 현신하신 것임
1) 여호와 하나님께서 혼자 현신하여 아브라함을 만나신 경우가(창17:1) 있으나 본문에서와 같이 천사 둘을 대동하고 직접 아브라함을 만나러 오신 경우는(창18:1) 처음이심.
2) 사람이 천사들과 함께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는 대부분 선지자로 세움을 받게 되는 경우임(사6:1-8, 겔1:24-2:4).
3) 아브라함을 만나서 내년 이맘때에 그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다시 예언을 해주심(창18:10).
4) ‘창17:19’ 절(적장자 ‘이삭’의 탄생예언)에 이어 두 번째로 동일한 예언을 해주신 것이므로 그것은 완전히 확정된 사실임을 알 수 있음.
(2) 아브라함의 의견을 듣고자 하신 것임.
1) 천사 둘을 먼저 소돔으로 보내시고(창18:16) 여호와 하나님 혼자 남아 아브라함과 대화하심(창18:17).
2) 첫 번째 내용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게 되면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것임(창18:18-19).
3) 두 번째 내용은 천사 둘이 먼저 소돔을 현지 시찰하여(창18:22, 19:1) 그 주민들의 죄악상을 확인하게 되면 하나님도 거듭 소돔과 고모라(창18:20, 19:24)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신29:23) 등지의 현황을 직접 확인하시고(창18:21) 그들을 멸망시킬 계획이시라는 것임(창18:20-21, 19:24).
4) 여기서 천사 둘이 현장 방문하는 곳은 소돔 성임. 그러나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등지를 모두 한꺼번에 살피신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음. 그와 같이 하나님의 시찰능력은 포괄적이며 최종적인 것임.
5) 그 계획을 듣고서 아브라함이 소돔 성에 살고 있는 장조카 롯의 가족을 생각하고서 부디 그 성을 살려달라고 매어 달리게 됨(창18:23-25). 그것이 선지자가 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시작인 것임(창18:1-9, 20:7).
2.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강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 어째서 천하만민에게 복이 되는가?(창18:18-19, 23-32)
(1)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창18:18) 그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게 되면(창18:19) 천하만민에게 복이 돌아간다는 뜻임.
(2)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를 “여호와의 도(道)를 지켜 의(義)와 공도(公道)를 행하게 하는 것”(창18:19)으로 표현하고 있음.
1) 창조주 여호와는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것임.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마5:44-48, 요3:16, 6:39) 번성의 축복임(창1:11-12, 22, 28).
2)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도록 선택을 받은 민족이 바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인 선민인 것임(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3) 그러므로 그 일을 아브라함 가문이 대를 이어서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임.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방 땅 가나안으로 향했기에 천하만민에게 그 복이 주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임(창12:2-4, 아브라함, 26:4, 이삭, 28:14, 야곱, 50:20, 요셉).
2)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며 도와주시는 것임(창12:2-3).
3) 아울러 약속의 아들을 낳도록 해주시고 대대로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임(창18:18-19).
4) 훗날에는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제사장나라로 만들고 계시는 것임(출19:5-6).
5) 그러므로 선민의 나라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를 행해야만 하는 것임. 그것이 선민나라의 사명인데 그 사명을 저버리게 되면 존재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임. 즉, 므낫세 왕의 경우와 같이 보호받을 실익(實益)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선민의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됨(왕하21:11-13).
3. 아브라함은 어째서 장조카 롯의 가족의 구원만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 그리고 소알 등 모든 성읍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
(1) 장조카 롯의 가족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알고 있기 때문임.
(2) 위대하신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이 서있는 것임. 그 의미는 창조주의 눈으로 모든 피조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임.
(3) 예를 들면, 욥이 그가 소원하던 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직접 서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임(욥42:5-6).
1) 지금까지 자신의 자녀만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욥1:5)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잘못임을 알게 됨.
2)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됨.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은 의인과 죄인 모두를 사랑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마5:45).
3)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임. 그 공의의 정신으로 욥이 자신을 대적하던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신원이 회복이 되고 있는 것임(욥42:10).
4) 그것이 한 마디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회복인 것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패한 그 사명을 그리스도가 성취하고 있음.
5) 또한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시고 세상으로 파송하고 계시는 것임(마28:18-20).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것임(눅24:44-49, 행1:8, 엡1:21-23, 빌2:5-11).
4. 그 현신의 모습을 보고 아브라함이 금방 ‘내 주’라고 부르면서 몸을 굽히고 있는 광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18:2-3)
(1) 한 마디로, 아브라함이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과 천사들이 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평소 하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임.
(2) 영적으로 예민하기에 하나님과 천사의 존재를 알아 챌 수 있으며 하나님을 창조주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임.
(3) 여기서 ‘하나님신앙이 무엇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음.
1) ‘하나님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는 것임. 그것이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임(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마7:1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2)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주인의 뜻을 쫓아 사용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임.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인생을 살아간 것처럼 그 제자들인 성도들이 주님을 본받아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마28:18-20,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3)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은 창조주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막12:30)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것임. 그것이 이웃사랑의 뜻임(막12:31).
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을 대접하는 절차는 어떠한가?(창18:2-5)
(1)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종에게 주셨으므로 그것 가운데 좋은 것으로 주인을 대접하고자 하는 것임.
(2) 더구나, 창조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피조물인 자신을 찾아오신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서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것임.
(3) 따라서 그 절차가 다음과 같이 묘사가 되고 있음;
1) 첫째,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종의 집에 머물다 가시라고 간청함(창18:2-3).
2) 둘째, 물을 가져다 발을 씻게 하시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쉬시게 함(창18:4).
3) 셋째, 음식대접을 할 터이니 부디 상쾌하게 드시고 다시 출발하시라고 권하고 하나님의 허락을 얻는 것임(창18:5).
4) 넷째, 허락을 얻게 되면 지극정성으로 충분한 양의 떡, 맛있는 송아지 고기요리, 마실 우유와 요구르트 등을 준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하는 것임(창18:6-8).
5) 다섯째, 그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브라함은 나무그늘아래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종의 의무를 다하는 것임(창18:8).
6) 참고로, 그것이 종의 의무임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8-10).
6.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를 대접하기 위하여 마련하고 있는 식사는 어떠한가?(창18:6-8)
(1) 첫째, 인색하지가 않고 충분한 양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음.
1) 1인당 1스아(seah, 고체의 측정단위이며 약 7.3리터임)의 고운 가루를 준비함(창18:6). 여기서 1스아는 3-4인 가족의 하루치 양식에 해당함. 참고로 어른 1사람의 하루치 양식이 ‘한 되’(보리 한 묶음을 의미하는 ‘omer’이며 2.2리터), 열흘 치가 ‘한 에바’(한 바구니 ‘ephah’이며 22리터), 백일 치가 ‘한 호멜’(당나귀 한 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이며 ‘homer’인 230리터)임.
2) 연하고 맛있는 최고품질의 쇠고기, 곧 송아지 고기를 사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음. 그것도 아예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서 푸짐하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있는 것임(창18:7).
3) 음료수로 맛있는 우유를 제공하고 사려 깊게도 손님들의 소화를 돕기 위하여 엉긴 젖 곧 요구르트까지 대접하고 있음(창18:8).
(2) 둘째, 시원한 곳에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상수리 나무 아래에 상을 차리고 있음(창18:8a).
(3) 셋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그 옆에 모셔 서서 시중을 들고 있음(창18:8b).
7. 하나님이 갑자기 아브라함에게서 사라를 찾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창18:9-10)
(1) 사라에게 전할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찾고 계시는 것임. 그것도 하나님이 직접 사라를 불러서 그녀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사라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임(창18:9).
(2) 고대 가부장 족장사회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사라에게 전해주도록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내년 이맘때 다시 방문할 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임(창18:10).
(3) 그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해주신 말씀임(창17:15-16). 그때 아브라함이 불가능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비웃은 바가 있음(창17:17-18). 그러므로 이번에는 사라의 믿음의 분량을 보고자 하시는 것임(창18:10).
8.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째서 사라가 반신반의하고 있는가?(창18:10-12)
(1) 장막 문 뒤에서 그 말씀을 듣게 된 사라가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창18:11-12).
1) 내외가 모두 늙고 사라 자신은 생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그들 부부가 아들을 생산할 수 있겠느냐는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임.
2) 더구나 평소 불임여성이었으므로(창11:30) 전혀 아들을 낳을 확률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라임.
(2)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문제점
1) 자기도 모르게 세상적인 지식과 상식에 물들어 있음.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들의 과학적인 지식과 능력의 한계 내에서 사유하고 있는 것임.
2)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하는 사실을 깜박하고 있음. 그것은 주인을 깔보고 있는 종의 교만한 신앙의 자세임. 그래서 하나님의 지적이 따갑게 나타나고 있음;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18:13).
3)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평소 자연의 흐름 및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존중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새로운 창조까지 행하시는 능력의 소유자이심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임(창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9.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전능성을 언급하시자 두려워서 떨고 있는 사라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들(창17:19, 18:15)
(1) 그 옛날 하와처럼(창3:13) 발뺌을 하고 있음. 웃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창18:15).
(2) 그 말에 속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 그러므로 자신이 낳은 아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불신앙을 되돌아보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하나님께서 일찍이 작명해주신 것임(창17:17-19, 21:3-7).
10. 천사 둘을 소돔 땅으로 보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창18:16-22)
(1) 첫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공의를 잘 행할 때에 천하만민이 큰 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심(창18:19-19).
(2) 둘째, 소돔과 고모라의 범죄를 고발하는 무죄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도를 넘어서고 있으므로 실태파악을 하여 심판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심(창18:16-17, 20-21).
1) 소돔 현지를 방문하여 실태를 파악하라고 천사 둘을 먼저 파견하신 사실도 아브라함에게 말씀해주심(창18:16, 22).
2) 그 말을 듣게 된 아브라함은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급해짐. 왜냐하면, 그의 장조카 롯의 가족이 소돔성에 살고 있기 때문임(창13:12, 19:1).
11.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천사 둘을 현장에 파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창18:20-21)
(1) 무죄한 자의 고발과 고소가 있다고 하여 무조건 당장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 아님. 하나님께서는 신중하게 현지사정을 직접 파악한 후에 판결을 내리시는 것임.
1) 그 이유는 원고, 피고, 기타 관계인 등 모든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것임.
2) 창조주 하나님의 판결이 있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사례를 처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의 원칙은 동일한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됨.
3) 따라서 그 모든 시공간적인 당사자들의 형편을 고려하여 판결을 내려야만 하기에 통시적이며 신중에 신중을 더할 수밖에 없는 것임.
(2) 더욱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천사가 파악을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직접 파악을 하여 대조를 하시는 것임(창18:21-22).
1) 천사 둘의 소돔 행과 시찰(창18:16, 22, 19:1).
2) 하나님의 직접 시찰(창18:21, 19:24-25, 신29:23).
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숨김없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계획을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살고 있는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가?(창18:22-25)
(1) 롯의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성 및 같은 심판을 받게 될 운명에 처하고 있는 성읍들 모두에 대하여 재고를 해달라고 하나님께 직접 요청하고 있음(창18:23-25).
(2) 롯의 가족의 구원만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중보기도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음(롬4:11-12).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인 것임.
(3) 구체적으로, 다음 두 가지를 요청하고 있음;
1) 첫째, 심판 가운데에서도 의인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임(창18:23).
2) 둘째, 의인 50인만 있어도 그 성읍을 용서해달라는 것임(창18:24).
13.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하여 몇 번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고 있는가?(창18:25-32)
(1) 총 7번 중보기도를 하고 있음. 첫 번째 기도는 심판 가운데에서도 의인을 구원해달라는 것임(창18:23).
(2) 그 다음 6번의 중보기도는 의인의 수를 계속 줄여가면서 그 정도의 의인의 존재만 확인하더라도 부디 그 성읍의 심판을 철회해달라는 것임(창18:24-32);
1) 의인 50인이 존재할 경우(창18:24-26).
2) 의인 45명(창18:27-28), 40인(창18:29), 30인(창18:30), 20인(창18:31), 10인(창18:32) 등임.
14. 모세가 그토록 자세하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그만큼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
(2) 의인의 수를 가지고 6차례나 구원의 기회를 더 얻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구체적이고도 타협적인 중보기도의 특징은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재음미하게 해주고 있음.
1) 십자가 외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되신 예수님(마26:39).
2) 그 다음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더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되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달라고 매일 기도했을 것으로 유추가 됨.
3) 보통사람의 경우 십자가 처형이 되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길게는 일주일, 평균 3-4일이 걸린다고 함.
4) 예수님의 경우는 오전 9시부터 당일 오후 3시까지 단 6시간이 걸리고 있음(막15:25, 34-37). 그러므로 ①3일, ②2일, ③하루, ④12시간, ⑤6시간 등으로 고통의 시간이 단축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했을 것으로 보이는 것임.
5) 그와 같은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심;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0-22). 그러므로 고통을 줄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15. 아브라함은 왜 자신을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비하하고 있는가?(창18:27)
(1)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하잘 것이 없는 죄인이며 피조물인가를 즉시 깨닫게 되기 때문임(창18:27, 31, 눅5:8). 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욥42:5-6)
(2) 사실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티끌이나 재보다도 더 미약한 존재가 사람임. 왜냐하면 부피 계산을 해보면 다음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임;
1) 티끌과 같은 모래의 수를 10의 23승 하면 지구의 부피가 나온다고 함.
2)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의 수가 역시 10의 23승 개 정도 존재하고 있다고 함.
3)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에서 지구가 티끌이나 모래와 같은 비중에 불과한데 사람의 존재감이 지구만 하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인 것임.
4)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조주 앞에서 인간의 물질적인 존재감은 ZERO라고 하는 것이 정답임.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보자면, 아브라함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비유한 것은 굉장히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16. 결국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임무는 무엇인가?(창23-33)
(1)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고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임.
(2) 그것은 전통적인 선민들의 자신들만의 구원을 위한 제사장 직분이 아닌 것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하기를 원하는 중보기도자이며 진정한 제사장나라의 일원인 것임.
(3) 그 선례가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적혀 있는 본문임.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선민만의 구원을 바라고 가나안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된 것이 구약의 내용임.
(4)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옛날 유대인들의 선민구원 및 현세적인 구복사상이 어째서 천국의 도래와 만민구원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되고 그들이 마침내 메시아를 죽이게 되는 비극을 연출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임. 그것이 현대교회를 새롭게 하고 성도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바로 잡는 방법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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