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의 골자 제18강(창16:1-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2. 04:10

창세기 강의 골자 제18(16:1-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51210()

 

1.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있는 사래의 위대한 선택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15:4, 16:1-2)

(1)  아브람 부부는 다음과 같은 엄청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헤브론에서 듣게 됨; “여호와의 말씀이 그(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다메섹 엘리에셀)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아브람)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15:4).

1)    그 시점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10년쯤 지난 때임(16:3). 아브람 85, 사래 75세로 보임(그들 부부는 10살 차이임, 17:17). 왜냐하면, 아브람 75세에 가나안에 들어왔으며(12:4), 그는 86세에 이스마엘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임(16:16).

2)    처음 예언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 부부는 어리둥절했음. 왜냐하면, 85세 노인인 아브람이 아들을 낳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으며 더구나 그의 아내 사래는 평생 불임인 여성이었기 때문임(11:30).

3)    여자인 사래가 마치 그 옛날 하와처럼 우직한 아브람보다 더 머리회전이 빠름(3:1-6). 따라서 하나님의 복을 자신들의 가문에 얻기 위하여 당시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고 있는 가장 세상적인 방법 하나를 찾아내고 있음.

(2)  인간적으로 사래는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위대한 결심을 하게 됨.

1)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있음. 평생 일편단심 조강지처 사래만을 사랑하고 있는 남편에게 씨받이 첩을 얻어주고자 결심한 것임(16:1-2).

2)    상식적으로, 젊은 첩을 남편에게 얻어주고 더구나 첩의 아들을 얻어서 남편의 상속자로 삼는다고 하는 것은 여자인 안방마님의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며 치욕인 것임.

3)    그러나 사래는 남편 아브람을 매우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바래서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서 결단을 내리고 있는 것임.

(3)  하지만 다음과 같은 신앙상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음;

1)    첫째, “(아브람) 몸에서 날 자”(15:4)가 단순하게 아브람의 핏줄이라는 예언인지 아니면 사래까지 포함하고 있는 예언인지 불명확한 것임(1:12-13). 따라서 가부장 족장사회의 전통에만 억매여 함부로 자신의 판단을 밀어 부치지 말고 사래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타진해야만 했던 것임.

2)    둘째, 이방인 애굽 출신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았기에 아브람의 가계에 장차 우상문화와 이방신의 영향이 들어오게 되는 것임. 예를 들면, 솔로몬의 아내인 수 많은 이방여인들의 이방 신 숭배의 영향(왕상11:1-3), 그리고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회교권의 등장이 그러한 것임.

 

2.    인위적인 위대한 결정이 아니라 신위적인 거룩한 결정을 얻자면 사래가 어찌하여야 하는가?(16:1-2, 17:15-19, 3:5)

(1)  인간적인 그리고 세상적인 선입견을 일단 모두 내려놓고 창조주 하나님의 폭넓은 견해를 여쭈어보아야만 하는 것임. 그것은 마치 모세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적인 세상의 신발을 벗는 것과 같은 것임(3:5).

(2)  그리고 아무리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시공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 보는 눈과 생각하는 것이 무지하게 좁다고 하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만 하는 것임. 따라서 모두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대안을 여쭈어보아야만 하는 것임.

(3)  여기서 역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모두를 살리고자 하시는 것임. 구체적으로, 아브람 뿐만 아니라 사래 역시 살리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 예언의 특징임.

1)    하나님의 뜻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 “아브람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7:18-19). 그런데 사래가 지레짐작을 하고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기에 큰 실수를 인간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임.

2)    흔히 어줍잖게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을 흉내 내다가 엄청난 신앙상의 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선결문제 곧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을 정확하게 묻지를 아니하고 스스로 결정한 경우임.

3)    더구나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서 위대한 결심을 하는 경우가 그러함.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으로 위대한 결정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묻고서 자신의 계획을 버리는 거룩한 결정은 아닌 것임.

4)   예를 들면,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광신도 피터의 선전선동사건이 그러한 것임. 그는 무장도 되어 있지 아니한 평민 수만 명을 그의 맹신적인 웅변술로 모집하여 무조건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다가 대부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됨.

 

3.    참고로,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엘리야에게서 엿볼 수 있는 인간판단의 한계(왕상18:40, 19:2-3).

(1)  한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5:17) 우상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을 모두 토벌한 바 있는 용감한 선지자였음(왕상18:19, 40).

(2)  그러나 막상 바알 신을 섬기는 왕후 이세벨의 군사에게 쫓기게 되자 너무나 낙담하게 됨(왕상19:1-2). 조국 이스라엘 왕국에서 자신을 숨겨줄 백성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여 그것을 원망하면서(왕상19:4, 10) 부득이 남조 유다 왕국으로 도망을 치고 있음(왕상19:3)

(3)  그러나 호렙 산에서 그를 만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에서 의인 7천명을 남기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음(왕상19:18).

 

4.    참고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바로 세우고 계시는가?(왕상19:6-18)

(1)  우선 탈진한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공급해주심(왕상19:5-7).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제자를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임;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21: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21:12-13).

(2)  다음은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서 여호와를 직접 만나고 다시 사명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임(왕상19:8-9).

(3)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또는 불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엘리야가 만나게 됨(왕상19:11-14). 그때부터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쳐죽이는 엄청난 영향력, 기도를 통하여 비를 멈추고 또한 내리게 하는 기적 등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마음을 큰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사역에 나서게 됨.

(4)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양육하고 선지자로 세워서 함께 동역을 하고자 함(왕상15-21, 왕하2:3).

 

5.    씨받이 첩 하갈이 감히 여주인 사래를 멸시할 수 있는 이유(16:3-4, 삼상1:5-6).

(1)  자신이 임신함을 알고서 여주인 사래를 멸시한 것임. 당시 가부장 족장사회에서는 장자가 재산을 상속하게 됨. 아들이 없는 과부는 재산이 없고 멸시와 괄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임. 훗날 유다의 맏며느리 다말의 처지가 그러한 것임(38:6-8).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처지도 그러함(삼상1:6).

(2)  자신의 몸종을 씨받이로 주어 아들을 낳으면 자신의 아들로 양육하려고 계획했던 사래는 대 실망을 하게 됨. 그래서 하갈을 내어 쫓으려고 결심을 한 것임(16:5).

 

6.    처첩(妻妾)사이의 갈등에 대하여 어째서 가장(家長)인 아브람에게 책임이 있는가?(16:5ab)

(1)  자신의 가문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족장이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사회가 바로 고대가부장 족장사회인 것임.

(2)  특히 젊은 첩의 간을 키워준 것이 늙은 남편 아브람이므로 안방마님 사래가 정식으로 항의를 한 것임(16:5ab).

 

7.    여호와 하나님께 그 판단을 맡기고 있는 사래와 그 말을 따르고 있는 아브람 신앙의 위대함(16:5c).

(1)  사람은 잘못과 실수를 하지만 그것을 고치고 바로 잡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아브람 부부가 인정하고 있음. 그래서 사래가 최종판단을 위하여 남편 아브람이 반드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서 처결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임(16:5c).

(2)  하나님 앞에 가장이며 선지자인 아브람 자신의 위치를 인정해주고 있는 아내 사래가 고마워서 아브람 역시 하나님께 바로 간절하게 기도한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음. 왜냐하면 제6절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임.

 

8.    가장(家長) 아브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16:6);

(1)  아브람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심히 간단함. 아내 사래의 요구를 100% 수용하라는 것임(16:6a).

(2)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하갈을 내쫓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이 태산이지만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 그 이유는 모든 뒷감당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고 하는 언질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는 것임(16:6b-7).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자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 뒷배를 보아주시는 것임(28:18-20).

(3)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대로 따르게 되면 그렇게 모두를 살리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임. 그것이 말씀의 능력임.

 

9.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출한 하갈을 보호하시고 축복의 언약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16:9-10)

(1)  비록 늦었지만 아브람과 사래가 이제는 최종판단을 반드시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내리고 있으며 그대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임(16:5-6).

(2)  그것은 사래가 제멋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씨받이를 들이고 그 제안을 아브람이 하나님께 여쭈어보지도 아니하고서 덥석 따르고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16:2).

(3)  그래서 가출한 하갈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있음. 사자를 보내어 광야 샘물 곁 곧 애굽으로 향하는 (15:22, 수르광야로 들어가는 길임)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임(16:7-12).

 

10.  하갈이 아브람에게 낳아주는 서장자 이스마엘에게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큰 축복의 내용(16:11-12, 17:18-20, 21:13).

(1)  하갈이 마음을 돌려서 여주인 사래를 잘 섬기게 되면 큰 복이 내리게 됨(16:9).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자손이 번창할 것임(16:10-11a).

(2)  어미 하갈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 아들을 크게 복 주시겠다는 의미로 하갈이 낳는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로 미리 하나님이 작명을 해주심(16:11b). 그것은 크나큰 세상적인 축복인 것임. 따라서 20세기에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중동 사막에서 엄청난 석유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임.

(3)  특히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척박한 광야와 사막에서 살게 될지라도 자생력이 강한 야생나귀 곧 들나귀같이 강인한 족속이 될 것임을 예언해주고 있음(16:12). 따라서 그들은 전쟁으로 패망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복음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임(19:23-25, 그 옛날 역사상 처음으로 앗수르 제국이 그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음).

 

11.  브엘라해로이의 의미와 훗날 이삭이 그곳에 살게 되는 이유(16:13-14, 24:62-63, 25:9-11).

(1)  정처 없이 고향 애굽으로 도망을 치던(16:6b) 하갈은 자신과 태중의 아이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음(16:13). 그 마음을 담아서 가데스’(가나안의 가장 남서쪽의 국경도시, 14:7, 13:26)와 베렛 사이의 그곳의 지명을 스스로 브엘라해로이라고 부르고 있음(16:14).

(2)  브엘라해로이의 뜻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여기서 뵈었다는 것임(16:13-14). 훗날 그 샘물 곁에서 이삭이 살게 됨(24:62, 25:11). 그는 14살 위의 이복 형인 이스마엘을 친형같이 따르고 있는 좋은 동생임. 따라서 이스마엘도 이복 동생 이삭과의 관계가 좋음. 그들은 우애 깊은 형제로서 훗날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있음(25:9).

 

12.  여종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람 가정의 하나님신앙의 모습(16:15-16).

(1)  집으로 돌아온 하갈이 브엘라해로이에서 만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달하자 아브람의 가정에서는 그 말씀에 따르기로 함. 이에 따라 하갈에게서 태어나는 서장자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작명하신 이름 그대로 이스마엘로 부르게 됨. 그때부터 아브람의 집안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신앙행태가 공존하고 있음;

1)    튼튼한 아들 이스마엘을 얻게 된 이방여인 하갈은 하나님이 주신 세상적인 번영의 축복을 의지하게 됨(16:15).

2)    반면에 자신의 친자식이 없는 사래는 영적인 구원을 소망하면서 더욱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됨.

(2)  하갈의 현세적인 의미의 신앙과 사래의 영생을 희구하는 믿음 사이의 구원의 개념차이가 앞으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성경의 주제가 되고 있는 것임. 예를 들면, 히스기야 왕의 현세적인 축복신앙과(39:8) 선지자 이사야의 영생을 소망하는 메시아 사상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임(40:5).

 

13.  하나님의 예언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하는가?(16:16, 17:19, 18:10-14, 21:1-7)

(1)  우선 안방마님 사래가 열국의 어머니 사라가 되며(17:15-16), 그녀에게서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야만 하는 것임(17:19, 21:2).

(2)  인간적인 육체적 힘에 의존하는 신앙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과 같은 부활의 몸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것임(17:17-19, 18:10-15, 3:10-12).

(3)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17:17, 18:11-12)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 말씀이 현실화되는 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임(21:6-7). 그것이 사람의 상식과 과학을 뛰어넘어 정확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신앙인 것임.

 

14.  아브라함의 서장자 이스마엘과 적장자 이삭사이의 투쟁이 결국 오늘날까지 회교와 기독교 사이의 이념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데 창세기 제16장에 따르게 되면 그 분쟁의 핵심과 시원(始原, 최초의 원인)은 무엇인가?(16:2, 17:17-18)

(1)  안방마님 사래의 성급한 인간적인 그리고 세상적인 판단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재앙인 것임(16:2).

(2)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중에 정확한 예언의 뜻을 말씀해주셔도 아브람과 사래가 역시 믿지를 아니하고 비웃고 있음(17:17-18, 18:11-15).

1)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말씀을 하나님이 하시고 있다는 인간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기 때문인 것임. 마치 복음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주장하면서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견해와 같은 것임.

2)    그것 역시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고 있는 온전한 신앙이 아닌 것임.

 

15.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1)  만약에 사래가 성숙한 신앙인 사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묻고서 약속의 아들을 낳기를 기다렸더라면 이스마엘의 탄생과 그들의 후손인 회교의 비극적인 역사는 없었을 것임.

(2)  그러나 인간은 항상 사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 따라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구주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임.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가 필요함.

(3)  나아가서 현세적인 하갈과 이스마엘의 축복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생의 구원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역사가 강력하게 요청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음(24:45-53, 1:11, 2: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