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22강(창20:1-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년 1월 21일(목)
1. 헤브론에서 잘 살고 있던 아브라함 가족이 갑자기 블레셋 땅 그랄 평야로 이주한 이유는 무엇인가?(창20:1)
(1) 헤브론 지역의 가뭄을 피하여 비옥한 그랄 평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
1) 소돔과 고모라(창19:24-25)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신29:23) 등의 도시국가가 유황불 심판으로 초토화가 되면서 그 재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음(창19:28).
2) 그 때문에 서북쪽으로 60KM떨어져 있는 헤브론 지역까지 가뭄의 피해가 심각하여 아브라함이 식솔을 이끌고 물이 풍부한 그랄 땅으로 이주를 하고 있는 것임(창20:1).
(2) 이방인선교에 대한 아브라함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
1)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창14:19-20, 20:7, 23:6) 그것으로 선교의 사명을 모두 감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2)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른 것으로 보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가나안에서 ‘애굽’(창39:2, 요셉, 47:8-10, 야곱, 출12:29-36,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 및 ‘블레셋의 그랄 땅’(창26:12-14, 28, 이삭과 아비멜렉)에까지 보내어서 그곳 현지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기를 원하시고 있음.
3) 그 이유는 그들 모두가 훗날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임. 따라서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집안에 약속의 아들을 계속 세워서 만민구원의 준비를 미리 미리 하시는 것임(창17:19,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4) 훗날 메시아 시대를 내다보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다음 예언을 참조할 필요가 있음;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
2. 아브람이 75세때 애굽에서 범한 잘못을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이 되어 99세때 다시 그랄 땅에서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0:2)
(1) 첫째, 아내 사라가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아들 이삭을 낳기 위하여 엄청나게 젊은 몸으로 변화가 되어 있기 때문임(창17:17, 19, 18:10, 21:1-2).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전히 젊게 보이는 미인 아내 사라 때문에 이방인 블레셋의 땅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임(창20:2, 11).
(2) 둘째, 믿음이 성숙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신의 약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임.
1) 사도 바울의 고백을 참조할 필요가 있음;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2-25).
2) 어째서 믿음의 열조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다려야만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겠음(요5:24-29, “내(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히11:13-16, 26, 그리스도를 바라는 모세의 믿음).
3) 따라서 성도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함. 한마디로, 말씀묵상과 기도는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두 개의 바퀴와 같다고 하겠음.
3. 그 밤에 즉시 하나님이 그랄 왕 아비멜렉의 꿈에 현몽하셔서 그를 크게 위협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창20:3)
(1)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을 수 있도록 사라를 안전하게 보호하시기 위한 것임.
(2)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과 두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창20:18). 그 때문에 후에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대등하게 상호불가침 조약이 브엘세바에서 체결이 되고 있음(창21:22-33).
4. 그랄 왕 아비멜렉의 항변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서도 일부러 강력한 조치를 취하시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창20:4-7)
(1) 아브라함의 누이동생인줄만 알고서 사라를 후궁으로 데리고 온 아비멜렉의 입장으로서는 사실 억울한 것임(창20:2, 5).
(2) 아비멜렉의 항변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짐짓 가혹한 처벌을 하시는 이유는 따로 있음(창20:6). 그것은 훗날 성도들의 지상명령수행을 위한 것임(마10:1, 7-15, 28:18-20).
1) 첫째, 하나님의 선지자를 이방 땅 선교의 현장에서 강력하게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후세에 알려주기 위한 선례에 해당함(창20:7).
2) 둘째, 하나님의 선지자를 선대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불이익을 주는 자에게는 창조주의 징계가 임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임(창20:18).
3) 셋째, 하나님의 선지자의 중보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임(창20:7, 17).
5.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장치는 어느 정도로 강력한 것인가?(창20:6-7, 18)
(1) 약속의 아들을 생산하게 되는 부모를 괴롭히는 자는 죽을 것이며 그 가문이 모조리 망하고 만다는 것임(창20:7).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왕궁의 모든 여인들의 태를 닫아버리심으로 그 말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음(창20:18).
(2)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로 오신 아기 예수와 그 부모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대왕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마는 것을 역사 가운데 볼 수 있음(마2:13, 22, 미쳐서 실각하게 되는 헤롯 대왕, 그리고 그의 아들 아켈라오도 폭정으로 실각하게 됨).
6. 사라를 보호하여 이듬해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한가?(창17:16, 18:10, 20:6, 21:2)
(1) 이방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신앙을 정착시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임. 그것을 대를 이어서 수행해야만 하는 것임.
(2) 약속의 아들이 있어야 의인의 가계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세대에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발효시키고 적용시킬 수가 있기 때문임. 일찍이 의인 노아가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방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음(창8:20-22, 9:8-13).
(3) 창세기 제5장에 실려 있는 ‘아담의 계보’ 그리고 제11장에 실려 있는 ‘셈의 족보’도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의인의 족보이며 영적인 장자 곧 약속의 아들들의 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임.
7. 아비멜렉이 그날 아침에 일찍이 신하들을 불러 상의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창20:8)
(1) 간밤 꿈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고 두려웠기 때문임(창20:3, 7,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몰살 당할 줄 알지니라”).
1) 그냥 개꿈으로 생각하고 넘겨버리기에는 참으로 이상한 꿈임. 그래서 현명한 신하들을 불러서 상의를 한 것으로 보임(창20:8).
2) 고대사회에서 왕의 꿈은 안보상의 위기를 미리 말해주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임(창41:1-7, 애굽 바로의 두 차례 소 꿈, 단2:1, 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의 금 신상 꿈 등).
(2) 실제로 그러한지 아침 일찍 급히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임(창20:8).
1) 아비멜렉의 종들이 왕의 말을 듣고 심히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조사한 궁내의 사정과 부합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임(창20:18, “사라의 일로 왕궁내의 모든 여인이 아기를 낳다가 기이하게도 도리어 태가 닫히고 있는 것임”).
2) 꿈과 현실을 대조하면서 신중하게 처리를 하고 있는 자가 바로 ‘아비멜렉’ 곧 ‘아비 왕’임. 그는 굉장히 현명한 자임. 왜냐하면, 5도시국가 연합체에서 선출이 된 대왕이기 때문임.
3) 일찍이 지중해 바다로 진출한 함족이 혼혈이 되어 세력이 강해지자 블레셋 족속이 되어 가나안 남부 해안가 좋은 땅을 차지한 것임(창10:14). 그들의 5도시국가가 바로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가드 등임.
4) 참고로, 가드와 가사 사이 넓은 평야지대가 곡창지대인 그랄 땅이며 왕중왕의 직할지가 되고 있음. 그곳에서 훗날 이삭이 농사를 지어 백배의 소득을 얻고 있음(창26:12).
8.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따지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아브라함의 해명은 어떠한가?(창20:9-13)
(1) 귀책사유가 아브라함의 거짓말에 있음을 분명히 규명하고 있음(창20:9a).
(2) 그 때문에 블레셋 도시국가에 위해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은 자신의 숨은 의도를 밝히라고 말함(창20:9b-10).
(3) 논리적이고도 현명한 아비멜렉의 책임소재와 의도에 대한 추궁에 대처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변명은 실로 곤궁하기 이를 데가 없음(창20:11-13);
1) 거인 족(창6:4, 네피림, 민13:28, 아낙 자손, 삿15:1-16, 블레셋과 싸우는 삼손, 삼상17:4, 가드 사람 골리앗)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선지자인 자기를 죽이고 미인 아내 사라를 약탈해갈 것이 두려웠다는 것임(창20:11).
2) 실제로 결혼 전에 사라가 자신의 이복 누이동생이라고 말함(창11:26, 아내가 많은 부자 족장인 아버지 데라, 창20:12).
3) 지금까지 이방지역을 다닐 때에 목숨유지를 위하여 그렇게 했다는 것임(창20:13). 즉 관행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있는 것임.
4) 실제로는 애굽에 이어(창12:11-15)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므로 그것은 설득력이 약함. 참으로 비겁하고 치사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아브라함임.
9. 치사한 변명을 하면서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기적인 아브라함을 그래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창20:11-13)
(1)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임(사44:22,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2) 사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임(출3:5, 거룩하신 하나님, 출3:12, 출애굽시켜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3)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은 첫째, 자신이 이기적이며 치사하고 비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임. 둘째, 자신은 스스로 고칠 능력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임. 셋째, 남은 인생을 직접 인도하시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미 있는 인생이 되도록 해달라고 맡기는 것임;
1) 무자식인 아브람이 자신에게 뭇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줄 것이라고 하는 참으로 믿지 못할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임(창15:5-6).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아브라함의 정직한 신앙자세임. 요컨대, 아브라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자세임.
2)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였기에 피조물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임하는 것임(마7:12). 믿지 아니하면 새로운 인생, 놀라운 축복은 현실화되지를 못하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음.
3)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데 종을 떠나 가지 마시옵고”(창18:3). 자신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함.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루시엘과는 다름(사14:12-15).
4)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18:27). 하나님 앞에 미물과 같은 피조물임을 잊지 아니하고 있음. 하와의 타락(창3:5-6)과 정반대임.
5) 장조카 롯의 가족만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7차례나 간구하고 있는 아브라함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행하는 만민구원 중보기도의 자세를 아브라함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임(창18:23-32).
6) 여기 그랄 땅에서도 마찬가지 자세임. 아비멜렉 왕가를 위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간절히 기도를 해주고 있는 것임(창20:17).
10. 두 차례나 자신을 이방나라 통치자의 후궁으로 끌려가도록 방치하고 있는 남편 아브라함을 그래도 따르고 있는 사라는 어떠한 여인인가?(창12:12-15, 20:2)
(1) 진심으로 남편 아브라함을 사랑하고 그의 목숨을 살리고자 두 차례나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여인임(창12:15, 20:2).
(2) 남편의 진심도 믿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 믿고 있는 뛰어난 신앙의 여인임.
1) 따라서 그녀는 열국의 믿음의 어미가 되며 그녀의 아들이 약속의 아들이 되는 것임(창17:15-16, 21:6-7, 갈4:23-31, 육신보다 영적인 하나님의 약속과 자유로운 창조의 능력을 믿은 여인 사라의 아들 이삭).
2) 이방여인 하갈의 소생과는 다른 것임(창16:9-12, 갈4:23, 현세적인 축복과 육체를 따라서 난 아들 이스마엘).
11. 아브라함을 애굽 땅과 블레셋 땅으로 들여보냄으로써 하나님은 어떠한 이득을 취하시고 계시는가?(창20:7-8, 17-18)
(1) 창조주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게 됨(창12:15, 17, 사래의 연고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심, 창20:3, 7, 18, 여인의 태를 닫아버림으로써 아비멜렉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심, 창20:8, 아비멜렉의 신하들이 심히 두려워함).
(2) 선지자의 기도가 있어야 축복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함(창20:7, 17, 아브라함의 기도로 여인의 태가 열림).
(3) 훗날 만민구원의 대로를 미리 준비하고자 하시는 것임(사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9:23-25).
12. 그래도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머물고 있는 아브라함과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롯과의 차이는 무엇인가?(창19:30-38, 20:3, 7)
(1) 하나님의 언약의 영원성과 그 성취를 믿고 있는 아브라함은 대표적인 “언약 안에 머물고 있는 자”(staying in the covenant)임(창21:33, 22:9-10). 그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간 것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보고 있음(히11:18-19).
(2)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보다는 소돔 성의 향락과(창13:10-13) 그곳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더 아까워하고 있는 롯임(창19:15-16).
1) 그는 그의 아내와(창19:26) 더불어 이미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자”(out of the covenant)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음.
2) 그것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서 일찍 탈락하고 있는 족장 데라의 경우와 뒤늦게 같아져 버리는 것임(창11:31-32, 12:1).
(3) 결국,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신실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 전능성에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임.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데라와 롯의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겠음.
'창세기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강의 골자 제24강(창22:1-2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4.27 |
---|---|
창세기 강의 골자 제23강(창21:1-3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4.26 |
창세기 강의 골자 제21강(창19:1-3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4.23 |
창세기 강의 골자 제20강(창18:1-3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4.23 |
창세기 강의 골자 제19강(창17:1-2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