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27강(요14:18-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1. 03:01

요한복음 강해 제127(14:1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22()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고아는 고대사회에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있어야 그 재산을 상속할 수가 있는데 고아는 기업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농업사회인 고대국가에서 고아가 자수성가를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고아가 되고 나면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아들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남편의 재산은 아들이 있어야 상속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는 복지제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상속 받지 못하면 모두가 죽은 목숨과 진배가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고아나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22:22-24).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처자식이 그렇게 되지 아니하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공동운명체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68:5).

하나님이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고아를 자신의 형제와 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그 말씀은 인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영광을 회복하고 보좌에 앉아서 심판을 베풀 때에 그렇게 처결을 하겠다고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25:31-33).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모두 고아를 살리고 돌보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을 함께 얻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고아와 같은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1:12).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결코 소망이 없는 고아와 같이 혼자 내버려두지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담아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하나님의 눈이 항상 고아와 과부에게 머물러 있듯이 예수님도 그러한 처지에 빠지게 되는 제자들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부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찾아 오겠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14:19)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인 고린도전서 제15장 일명 부활의 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의 수가 오백여 형제에 불과하다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고전15:6).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이 세상에서 40일을 더 사시다가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신 분입니다(24:50, 1:3). 그렇다면 40일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자들에게 부활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과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 천여 명 정도에게만(‘오백여 형제이므로 여자들도 그만큼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됨) 부활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었을까요? 왜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이 부활하였다는 사실을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직접적으로 증언하지를 아니했을까요? 그 이유가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14:19).

 

예수님이 일단 무덤에서 부활을 하고 나면 그 모습을 아무나 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세상적인 눈으로써는 부활의 몸을 입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제자들만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가르침 받았으며 그 생애를 지켜본 증인들입니다. 스승 예수의 말투와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생전의 몸과 다른 부활의 몸을 입고 그 모습이 달라져서 찾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그 분의 동일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20:14-18).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영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어서 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그렇게 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20:22). 그 예수님의 영이 제자들에게 역사하고 있으며 영적인 삶을 영위하게 해준다고 하는 사실을 의사 누가와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7),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8:9-10).

창세기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두 천사와 함께 헤브론 땅에 나타났을 때에 그 현신하신 모습을 알아채고 본 자는 아브라함밖에 없습니다(18:1-8). 그 목소리를 들은 자도 아브라함과 사라밖에 없습니다(18:9-15). 두 천사의 현신이 소돔 땅에 나타났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만이 그 정체를 알아채고서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19:1-5).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 정체가 드러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대한다는 것, 더구나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대한다고 하는 것은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라고 하겠습니다. 그 특권을 다메섹 도상에서 얻은 자가 사울입니다(9:3-7).  그는 태양의 빛보다도 더 강렬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그만 육신의 눈이 멀어버렸습니다(9:8). 그러나 그것을 볼 수도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없었던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습니다(9:7). 유대교 랍비였던 사울이 그 일로 말미암아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는 더 이상 유대교인 사울이 아니라 기독교인 바울이 되고 구약의 선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 됩니다(1:1). 마침내 이방인 사도로서의 일생을 살게 됩니다(22:11-21).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몸은 보통사람들의 몸과 똑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것은 생노병사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더구나 시공간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몸을 십자가에 못박고 무덤에서 벗어버렸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새로운 몸을 입고 있습니다. 그 부활의 몸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0:19). 닫힌 문과 벽을 그대로 통과할 수가 있으며 승천까지 할 수 있는 새로운 몸입니다(24:50-52). 그 몸을 입으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가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4:20a). 한 마디로, 그것은 영적인 삶이 가능한 영광스러운 몸입니다(8:6, 11, 14, 고전15:52-54).

그 몸을 가지시게 되는 날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자들 안에 거하실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영적인 삶이 가능해질 것입니다(14:20). 오순절 날 강림하시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은 그 모든 예언이 확실한 것임을 체험하게 해주고 있습니다(2:1-42). 그리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게 되고 성령의 임재를 받게 되는 수많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탄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장차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곧 썩어 없어질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고전15:42-58). 먼저, 남은 인생 동안 성령을 받아 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서 살아갈 것입니다. 다음에는, 잠시 자다가 일어나면 불편한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5:28-29, 11:11). 그렇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 가운데 남은 고난의 세월을 이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성도들입니다(8:13-18). 그들은 한 마디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