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28강(요14:21-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2. 04:08

요한복음 강해 제128(14:21-2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23()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가?(14:21, 24)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 보다 적어도 20년 이상을 더 생존한 사도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도로서 노년의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 없는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에 많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잡히시기 전날 밤 만찬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족의 의식입니다(13:4-17). 그것은 예수님이 지난 36개월간 행한 그 어떠한 표적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계명을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중요합니다(28:18-20).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엄청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 제자들과 믿음의 공동체에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계명이라고 지금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그토록 소중한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사랑의 원리야 말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Three in One”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그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족의 의식을 통하여 보여주신 사랑의 계명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가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중심에 없으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의견이 하나로 통일이 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 둘째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계속 임재하여 역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로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면서 남의 의견을 무시하기 시작한다면 내부의 단결은 깨어지고 세상은 풍비박산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독생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사회는 서열이 엄격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절대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본체이며 삼위의 하나이지만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일관합니다(2:5-11). 그것이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의견을 자신의 것보다 낫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14:24). 그 마음을 성부 하나님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부활시켜서 자신의 오른 쪽 보좌로 올려서 자리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2:35-36, 5:13). 물과 같이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주인처럼 여기고 종으로서 섬기는 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2:5-11).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목숨을 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함께 하시고 부활과 영생을 선물할 것입니다(14:23).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얻고 있는 그러한 자가 지상명령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있으며 교회를 하나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여 상대방과 공동체를 한꺼번에 살리고 있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인 것입니다.

 

출애굽의 기적보다 더 중요한 마음 중심의 변화(14:22-23)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출애굽의 하나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애굽제국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당하게 출애굽을 했습니다(12:35-36). 그들 24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산에 도착하여 여호와의 시내 산 강림을 경험하였습니다(12:37, 19:11). 그 자리에서 온 세상에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백성들의 나라가 성립된 것을 선포하였습니다(19:6). 이제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을 하면 됩니다. 곧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이며 출애굽의 대 영웅인 모세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진행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출애굽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하였습니다. 애굽제국을 벌벌 떨게 만드는 엄청난 하나님의 재앙과 진노를 본 것입니다(12:29-33).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를 전부 홍해 바다에 수장을 시켜버리는 두려우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14:26-31). 그렇지만 하나님은 선민들인 자신들에게는 자비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줄곧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끼니 때마다 챙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21-22, 15:25, 16:4-5). 기습해오는 아마렉의 군대도 물리쳐주십니다(17:8-13). 그래서 곧 약속의 땅으로 입성하여 온전한 선민들의 나라를 완성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찍 터뜨린 축배에 불과했습니다. 40일간 지도자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자 그들 백성들은 옛날 애굽에서 본 그대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명명하고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32:1-6). 그리고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염탐하고 나서는 낙심을 했습니다(1:25-40).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적군이 더 강해 보이면 미리 주눅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나 정체성이 발견되지를 아니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가 있을까요? 모세는 마지막 책 신명기를 저술하면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그 땅의 풍요로움에 젖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율법국가는 멸망을 당할 것이며 선민들은 이방나라를 떠도는 유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버린 결과입니다. 본문에서는 가룟인 아닌 제자 유다가 예수님에게 묻고 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14:22). 그 대답은 짐작이 됩니다. 부활의 주님이 그들에게 모습을 나타내고 싶어도 그것은 표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에 완전한 의식적인 변화가 없는데 이적만 많이 보여주어서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것입니까? 실익이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그 많은 표적과 이적을 경험하면서도 의식의 변화가 크게 없었던 그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들의 공동체가 다시 망하고 전세계에 유민으로 흩어지는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8:12-20, 29:25-28).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게 되는 은혜가 유대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순서 다음에 있을 것으로 사도 바울이 전망하고 있습니다(11:11-15).

그러나 부활하실 예수님은 반드시 제자들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14:21, 23). 그 이유는 36개월 동안 함께 지낸 세월이 있으며 마지막 만찬장소에서 세족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그 의미를 다시 깨우침 받을 것이며 성령의 강림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실천하게 될 수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있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장차 제자들은 믿음에 확신이 생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 주인이 오히려 종이 되어 상대를 섬기는 것, 그 섬기는 사랑의 정신과 실천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실천할 때에 교회가 무너지지 않으며 믿음과 지식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4:13-16, 7:20-27). 비록 믿음과 지식 그리고 구원과 부활에의 소망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사상누각이 되고 말 것입니다(고전13:13). 그곳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속 거처를 함께 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 다음과 같은 사도 요한의 주장입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