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제130강(요14:28-3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7월 25일(목)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요14:28a)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요14:28b).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14:28c).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요14:28a)고 하는 그 짧은 말 속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을 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때문에 무덤 속에서 부활하는 놀라운 상급이 예수님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자마자 제자들을 찾아 올 것입니다(요20:16-29, 21:1-14). 둘째, 예수님은 부활을 하면 단지 40일간만 이 땅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승천을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옆에 계시다가 세상 끝에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1:11). 두 가지 경우 모두가 그 내용은 “사별과 부활로 인한 만남”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그 주인공이 다릅니다; 전자는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 속에서 부활을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다시 찾아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주인공이 제자들입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다가 수명이 다하여 죽게 됩니다. 그리하면 그 죽음의 잠을 깨우러 예수님이 다시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요5:24-29, 11:11) . 그러한 주체의 차이가 있지만 “죽음과 부활”이라는 패턴은 공통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발생하는 일이 후에는 제자들에게 발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발생한 일이 후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제자들에게 발생을 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15:19-21). 그러므로 이제는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곧 성도들은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면서 남은 인생을 살게 되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겨야 하는 자들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게 주님의 본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게 되면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영광이 모두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확실한 사실임을 믿게 해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신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이 스승인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남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선택한 방법으로 이 세상의 권세와 시험을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요14:28b). 그러한 증거가 있을 때에 주님께서 얻으시는 그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영생이 이제는 자신에게도 주어진다는 확신이 더 커지고 그 기쁨이 더욱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14:28)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크신 상급을 받아서 제자들에게 줄 수가 있게 됩니다(요14:28c).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과 영생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제자들에게 줄 수가 있게 됩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증거가 있을 때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기쁘기 한량없고 주님의 재림이 진심으로 기다려질 것입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서의 정의 그대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히11: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서 그 주님의 뜻대로 남은 인생을 살게 되면 마침내 완전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요14:28). 그런데 그 믿음이 확실한 것임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게 될까요? 그것은 예언이 먼저 있고 그 일이 실제로 발생하는 현장을 나중에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예언이 먼저 없었다고 한다면, 발생하는 그 모든 일들은 우연의 연속이 되고 말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적인 역사의 섭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이 먼저 있으므로 말미암아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점을 아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생각해보면, 항상 영적인 예언이 먼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일이 현실적으로 발생을 합니다. 예언과 현실적인 발생 사이에는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고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엄청 중요해집니다. 예언을 믿고서 그 일의 발생을 기다린 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보이지 아니하는 창조의 손이 그 속에 있음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끈질기게 기다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예언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언을 주신 상대방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약이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사기꾼이라면 결코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성도들의 믿음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믿고 기다리면 영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현장을 인생 가운데 보게 될 것입니다. 설령 자신의 수명이 다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잠에서 깨어나게 되면 그 일이 현재화되어 있는 현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믿음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 왜 제자들에게 힘을 발휘하게 되는가?(요14:30)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의 옆에 있을 때와 아니 계실 때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빛을 비추어주고 있는 독생자의 영광이 예수님에게 있기에 죽음과 어두움을 관장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함부로 제자들을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요1:4, 14-18). 그렇지만 제자들에게 스승 예수님이 아니 계시게 되면 다릅니다. 제자들이 확실한 믿음 위에 서있지 아니하면 사탄의 지배 하에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요14:30). 한 마디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옛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아담부부를 유혹하고 시험하던 사탄의 화신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창3:1-6).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무덤 속 부활이라는 미래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과 잠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에 스승을 잃어버린 제자들, 그들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자들은 스승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그대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메시아의 길로 가는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실망을 할까요? 급격하게 예수님의 교훈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기대가 높았기에 그 실망은 말로 표현하지를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급기야 스승 예수에 대한 모든 신뢰를 버리고 세상 임금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 임금을 이기고 있는가?(요14:31)
이 세상의 임금이 예수님의 발목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임금이란 사람의 몸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 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눅12:4). 그래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14:30).
미구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대속의 십자가까지 진 예수님을 사탄이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순종을 하였기에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완전히 맡겨버리고 담담하게 육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기에 그를 사탄이 사망의 권세로 지배할 수가 없게 됩니다(막14:36, 눅23:46-47, 요19:30). 그 결과 하나님이 무덤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는 수순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생을 살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성도들 역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롬8:1-2).
이 세상의 임금은 그 최대의 권세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죽고 나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살릴 수도 없으며 더 이상 그 몸을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 임금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유한한 목숨과 육신의 요구 대신에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창조주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눅12:5-7). 그 점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14:31).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세상의 임금의 권세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설명입니다.
장차 성령께서 강림하시면 제자들도 스승 예수님과 같은 선택을 하고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 곧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에서의 영생을 자신들도 얻을 수가 있다고 확실하게 믿게 될 것입니다(빌3:10-14). 드디어 세상의 임금이 그들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가 예수님의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여기를 떠나 그 믿음의 길로 달려가자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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