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1강(요15: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3. 23:45

요한복음 강해 제131(15: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26()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두 가지의 방법(2:1-11, 15:5, 22:18)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방법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2:1-11). 잔치 도중에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가 아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러한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때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2:4).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형편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 요지는 모집한지 며칠이 되지 아니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기 위하여 부득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이 필요하다는 진언인 것입니다(2:11).

둘째 방법은 하나님의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라 자연적인 것입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잘 재배하여 수확 때에 정직하게 그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15:1-2, 5).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하는 도중에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으로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13:31, 15:1-2). 마지막 유언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열매를 맺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그 이야기는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연의 질서를 창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초자연적인 개입을 줄이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함께하고 있는 모든 자연의 질서를 보시고 심히 만족하여 극찬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포도나무에서 포도열매를 얻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함부로 개방하고 싶어하지 아니하십니다. 자연스럽게 포도열매를 맺도록 하여 그것으로 극상품의 포도주를 만들고자 하십니다. 그러한 포도주를 천국잔치에서 사용을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22:18).

 

신기한 표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신앙생활의 열매를 선호하시는 하나님

 

이미 설명을 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이 창설한 자연질서를 존중하여 할 수만 있으면 자연적인 방법으로 포도열매를 얻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선민사상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특히 현세주의 복락에 목숨을 걸고 있는 유대교인들은 그렇지가 아니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메시아를 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기적을 다시 보기를 원합니다. 그 해방자 메시아가 로마제국의 군정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제국, 그 패권국가를 중동 땅에 다시 재건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시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 목이 다 탈 지경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그들의 기대와 상당히 다릅니다; 첫째,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그 아버지인 이새의 자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1:1-9). 다윗의 직계가 아닙니다. 아버지 이새로부터 갈라져 나간 줄기입니다. 둘째, 혈연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족보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잉태하기에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7:14, 1:20-21).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기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부여되고 있습니다(9:6). 그리고 성령이 강림하여 함께 합니다(11:2). 그 의미가 확대되면 그 아기의 족보에 들어가는 자들이 발생합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취하게 되는 자들입니다(1:12). 소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1:13). 새로운 족보, 곧 하나님의 자녀의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신성을 보유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분이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이제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시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비슷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3: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대속의 피와 물로 인하여 제자들이 죄 사함을 받게 되면 그러한 역사가 분명하게 있게 될 것입니다(19:34). 그 때부터 제자들은 하나님이 새로이 만드시는 의인의 족보, 하나님 자녀의 족보에 등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생명책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기에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17:24). 그와 같은 미래를 창출하기 위하여 당장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헤어져서 홀로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4:31).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표적은 모두 구원과 영생에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기에 부득이 하나님의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고 있습니다(1:29).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에게는 그 옛날 모세의 놋뱀을 쳐다보고서 나음을 얻는 것처럼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3:14-15). 그리고 장차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강림하여 임재하시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중생의 삶이 전개될 것입니다(3:5, 15). 그것은 한 마디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닮아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표적을 많이 베풀기를 원하지 아니했습니다. 자신의 공생애의 모습부터 초인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연속이 되기를 원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 보다는 사람의 아들인 인자로 자신을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1:51, 3:13-14, 6:53). 그 결과 예수님의 사역은 항상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달픈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 배가 고프고 지치고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죄인들과 함께 조잡한 식사를 나누고 밤늦도록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육성으로 큰 소리로 전달하기에 매우 피곤했습니다. 왜 말씀 한마디로 모든 백성들의 병이 한꺼번에 떠나가게 하고 엄청난 표적, 그 신위적인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누구나 생사가 오락가락하도록 만들지 아니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표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표적은 이벤트 위주이며 그 효과가 길지를 못합니다. 표적에 맛을 들이면 마치 마약중독자와 같이 계속 흥분상태를 찾아서 헤매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의 성숙이 아닙니다.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을 하면서 진리의 영이 조명하여 주는 말씀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성숙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닮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서 그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문이 이른 바 본문의 포도나무 비유입니다(15:1-8).

조금 더 설명을 곁들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듭난 자는 남은 생애 동안 이 세상을 남들과 똑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특혜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폭포수와 같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유일한 한 가지의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합니다. 온전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서 평생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매진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삶이며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해당합니다(15:3-5). 그렇게 공생애를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지 아니하고 기적의 연속으로만, 더구나 표적을 내세우면서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만 살게 된다면 그러한 가지는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15:6)”.

결론적으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함으로써 그 열매를 얻어야 하나님께 기쁨으로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공생애를 택하지 아니하고 표적만 선호하여 손쉬운 신앙생활을 영위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권력과 인기에 영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비극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및 제자들의 역할과 하나님의 기대

 

  정상적으로 포도나무에서 포도열매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은 농부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15:1).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를 먼저 가꾸신 것입니다(15:2).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지로 접을 붙이고 있습니다(15:4-5, 11:17). 이제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자양분으로 빨아올리면 됩니다(15:5).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1:8). 그리하면 이방인들이 회개를 하고서 새로운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릴 수 있는 예물이 됩니다(66:20). 포도나무의 열매인 것입니다(15:5, 8). 그 열매를 얻어서 포도주를 만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있습니다(15:8). 그것은 훗날 천국잔치자리를 즐겁게 만드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22:18,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