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3강(요15:12-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6. 00:43

요한복음 강해 제133(15:12-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28(주일새벽)

 

내가 너희를 친구로 여긴 것 같이 너희도 나를 친구로 여기고 내 계명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라(15:12-15)

 

그리스도 예수는 열두 사도들의 스승이며 주인입니다(13:13).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그들의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줍니다(13:4-5). 스승이 종이 되어 제자를 상전으로 모시고 그들의 발을 씻겨주는 이상한 일이 발생을 한 것입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것을 모범으로 삼아서 앞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목양을 하라는 것입니다(10:14-17, 21:15-19). 그리고 그 방법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가라는 것입니다(20:21-23, 24:44-49, 28:18-20).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실천하게 되면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8).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방법이 세상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방법도 세상적인 방법론과 전혀 다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고, 주인이 종이 되고, 스승이 제자가 되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론입니다.

제자들이 알아는 들었지만 실천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인 너희를 친구로 대접하였으니 너희들도 나를 친구로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의 부탁을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부탁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입니다(15:12). 한 마디로, 서로 예수님을 대하듯이 하라는 당부입니다(25:40). 그 이유는 그들 제자들 하나하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이 목숨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원하여 낸 새로운 인생이 바로 제자들이며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목숨의 값을 빚진 자들입니다. 요컨대,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신 그 순간부터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고전6:20).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그들을 대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서로 제 몸과 같이 친구로 여기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12:31).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모든 책임을 감당할 것이다(15:16-19)

 

창조주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있는 독생자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이 땅에 구세주로 파견하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1:11-18, 3:16-17). 하늘의 하나님이 땅에 그리스도를 파견하였기 때문에 그 파송의 순간부터 파견자로서의 모든 책임을 감당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자신의 늙은 종을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물색하여 오라고 친척이 사는 곳 하란 땅으로 파송을 하고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24:1-9). 모든 책임은 주인이 지기로 하고 종을 파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사명은 그저 주인이 시킨 일을 신실하게 파견지에서 수행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사나 뜻은 별로 중요하지가 아니합니다. 주인의 당부와 계획이 우선입니다. 먹고 자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일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적절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리브가의 친정에서 환대를 받게 됩니다. 좋은 식사자리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고 매우 고단한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그 종은 주인 아브라함이 맡기신 일을 먼저 처리를 하고 나서 식사를 하고자 합니다(24:33); “며느리감을 구하고 있는 주인 아브라함의 처지와 형편을 상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그 대상으로 만나도록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주인 이삭의 배필로 달라고 청을 합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나자 비로서 식사를 합니다”(24:34-54). 먹거나 마시거나 종은 주인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에게 주인의 기도가 함께 합니다. 그 주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종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성도들입니다. 신실한 제자들이 지상명령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승천하신 주님이 간구하고 있습니다(28:18-20, 6:20). 그 기도를 들으시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처지와 형편을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종의 운명까지 바꾸고 있습니다(6:10-11, 8:2).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파견한 것처럼 자신의 제자들을 이 세상에 교회를 개척하라고 파송하고 있습니다(15:16, 19).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공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적으로 제자들에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것인지 혹은 어긋나는 것인지를 식별하고서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령님 안에서 자신에게 내주하여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을 적극적으로 받아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시고 자신의 제자와 성도들의 남은 인생이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도록 뒷받침을 해주고자 하고 계십니다. 이제 문제는 성도들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삶의 자세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성과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구세주이며 인생의 주인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 때부터 남은 인생이 창조주 앞에서 영원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세상살이가 한결 편해질 것입니다(11:28-30).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여 세상에 파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내용을 모두 가르쳐주었다는 것입니다(15:15). 둘째, 가는 곳 선교지에서 항상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성도들이 기도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열매가 있도록 역사해준다는 약속입니다(15:16). 셋째, 세상이 제자들의 선교행위를 미워하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경우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스승이며 주인인 예수님이 더 큰 미움과 비난을 미리 감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크지 못하며 종이 하는 일이 주인의 것보다 더 중차대하지 못한 법입니다(15:20a). 나아가서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 자체가 사실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므로 도리어 마음에 위안을 받으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15:18-19).

 

너희가 내 말을 지켰은즉 내가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15: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건적인 상호주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나의 말을 지키면 나도 너희들의 말을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15:20b). 그 말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나도 너희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는 말씀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나아가서 그와 같은 상호주의 입장은 환난과 핍박 그리고 환영과 영광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