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4강(요15:16-2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7. 03:17

요한복음 강해 제134(15:16-2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29()

 

소속의 변경, 그 소속사의 위대함(15:16-20)

 

그리스도 예수가 제자들을 선택한 장소는 이 세상입니다(15:16, 19). 그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래 이 세상에 속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제자로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소속이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속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을 알고 있던 세상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그들 가운데 있던 몇 사람들이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과 동행하는 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속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 소속이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소속의 변경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웠나니”(15:16).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로 선택한 것이기에 소속의 변경에 따른 모든 책임을 선택권자인 자신이 철저하게 질 것이라는 뜻이 그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고 보호하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고자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 무덤 속 부활, 승천 등을 보여주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파송하고 있습니다(1:12-13). 그것이 제자들이 속하게 된 새로운 소속사의 위대함입니다. 구원과 영생을 줄 수 있는 창조주가 그 소속사의 원주인이시기에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주어지게 되면 그 때부터 제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그 신분이 완전히 세탁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완전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벧후1:1, 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으로 모시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결단이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결단을 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때부터 그 소속이 달라져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맡게 되는 사명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오직 한 가지 사명을 부여하셨다고 다음과 같이 예수님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보내어 주는 자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마지막 날에 반드시 살리라는 것입니다”(6:39-40). 이제 제자들이 그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선택하여 보내어주는 자들을 모두 진짜배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말씀으로 양육을 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대신하여 그들을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종으로 파송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종들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집단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기관이 그리스도의 몸인 오늘 날의 교회입니다(2:41-47, 4:32-35, 5:11-16, 6:5-7, 1:2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15:17).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속이 같기 때문입니다(15:18-19).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똑 같은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인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데 그 종들이 어떻게 다툴 수가 있겠습니까? 설혹 의견이 갈라지더라도 주인에게 물어보게 되면 자연히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의견이 하나이므로 깊이 말씀을 가지고 함께 기도를 해보면 두 가지의 견해로 갈라질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고집과 욕심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둘째, 이제는 자신들과 달리 그 소속이 달라져버린 성도들을 세상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를 아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두가 이 세상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15:19-20). 그러므로 서로가 힘을 합하여 난국을 헤쳐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으로 뭉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그 이름, 거부할 수 없는 창조주의 위대함(15:20-21)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선택된 제자들이 결코 스승인 자신이나 아들을 이세상에 파송하신 아버지보다 크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5:20). 그 이유는 그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4:1-2).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5:21). 왜냐하면, 유대교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셈법으로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백하게 모세오경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신비한 존재양식, 곧 복수적인 개념을 도무지 수용하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3:22).

더구나 예수님이 주장하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본래의 뜻을 수용하려고 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이 창조주의 마음이라는 하나님 아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1:11-14, 3:16-17). 그들은 외면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유대교리와 반대가 된다고 하여 미워하면서 처형을 하고자 도모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정체와 진의를 그들이 완전히 깨닫지 못하는 한 그러한 증오와 박해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계속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전에 주지를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15:20-21).

 

창조주임을 알고서도 거부하는 자에게 찍히는 낙인(15:22-24)

 

한 마디로, 죄인의 낙인이 예수님에 의하여 찍히고 있습니다(15:22). 유대인들의 성경선생인 니고데모가 일찍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2). 또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이야기와 그 행하시는 표적을 전해들은 많은 유대인들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임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7:31). 이미 알만한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처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유대교를 보전하고 종교적인 기득권을 지키며 선민사상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기심의 발로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 세상에서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어긋나는 것입니다(19:5-6). 하나님 앞에 거룩한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전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방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발령을 내었더니 하는 일이 그와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죄인의 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복음으로 풀이하여 온 유대 땅에 이미 전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핑계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15:22).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미워하고 있으니 그것은 파송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 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15:23-24).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옴을 증거하는 자들과 이미 왔음을 증거하는 자들(15:25-27)

 

율법서인 오경을 저술한 모세와 선지서를 저술했던 선지자들, 그리고 시편에 많을 글을 남긴 다윗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에 대하여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15:25, 24:44-47); 첫째, 모세는 자신과 같은 선지자 하나를 보내어서 백성들을 구원해줄 것이니 메시아의 말을 청종하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18:15). 둘째,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는 처녀의 몸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성령의 능력이 충만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7:14, 9:6. 11:1-2). 그는 여호와의 뜻을 이루는 종으로서 살아갈 것이며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다시 존귀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 제52장과 제53장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다윗은 그의 시편 제110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주님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약의 예언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메시아로 이미 왔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제자들까지 끝까지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믿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시게 되면 그 현장을 보게 될 제자들이 증인이 될 것입니다(15:27, 24:48). 둘째, 승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요청하여 이 세상에 보내어 줄 성령님께서 그 사실을 증언해줄 것입니다(15:26, 24:49). 이미 완벽한 대책이 수립이 되어 있기에 예수님이 그리 무겁지 아니한 마음으로 십자가 죽음의 길로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