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골자 제15강(창13:1-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5년 11월 19일(목)
1. 아브람과 롯이 함께 출애굽을 하고 또 함께 가나안 남부 광야 네게브로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창13:1)
(1) 애굽에서 강제추방을 당했으므로 이제는 가나안 땅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된 것임. 그래서 가나안 남부 광야로 들어서고 있음(창13:1).
(2) 아브람 일행이 죽으나 사나 가나안 땅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된 이유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1) 애굽의 바로는 재앙덩어리인 그들을 추방시키고 재 입국을 강력하게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음(창12:17-20).
2) 하란에 살고 있는 아버지 데라의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음. 아버지를 하란에 버리고 떠나왔기에 다시 반겨줄 리가 없는 것임(창12:5).
3)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왔기에 그 엄청난 축복도 놓치고 싶지가 않은 것임(창12:1-3). 실제로 빈손으로 출애굽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큰 재물을 얻어서 나온 것임(창12:16, 20, 13:2).
(3) 함족인 애굽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셈족을 차별하고 있는 것도 큰 이유가 되고 있음.
1) 함족의 종주국인 애굽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셈족이 건너오게 되면 이를 “큰 강을 건너온 도래인”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인’이라고 부르고 있음(창14:13, 43:32, 46:34). 이는 종족이 다른 이주민을 근본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임(창14:13).
2) 따라서 히브리인을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오염원이 될 수 있는 ‘부정한 자’라고 여기고 있음(창43:32).
3) 나아가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최고라고 생각하고서 도래인들의 문명과 직업까지 천시하고 있는 것임(창46:34).
4) 그렇게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고자 도래인들을 차별하고 있으므로 아브람과 롯의 가족이 그들과 함께 살기는 근본적으로 힘든 것임.
2. 그와 같은 애굽 사람들의 히브리인 차별을 이미 알고 있었던 아브람이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은 무엇인가?
(1)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임으로써 자신의 안전도 도모하고(창12:12-13) 애굽에서 살 수 있는 기회도 얻고자 한 것으로 보임.
1) 아브람의 생각대로, 사래의 미모가 탐이 난 애굽 사람들이 아브람 일행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것임.
2) 그러나 그 때문에 사래가 바로의 후궁으로 끌려가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임. 가까스로 하나님의 엄청난 개입으로 사래를 돌려받고 출애굽을 한 것임.
(2) 아브람이 애굽에서의 실수를 만회하자면 앞으로 어찌해야만 하는가?
1)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믿어야만 함(창12:3).
2)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보아야만 하는 것임(창17:1). 그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
3) 예를 들면, 훗날 아들 이삭의 경우 하나님께 사전에 여쭈어봄으로써 애굽이 아니라 그랄 땅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임(창26:2-3).
3. 출애굽을 한 아브람과 롯이 모두 부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창13:2, 6)
(1) 아브람의 경우에는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사래의 연고로 손위 처남이 되는 줄 알고서 아브람에게 재물을 많이 주었음(창12:15-16). 그 재물을 되돌려 받지도 못하고 급하게 출애굽을 시켰기에 자연히 아브람이 부자가 되고 있음(창12:20).
(2) 그런데 롯은 바로로부터 얻은 재물이 없음. 그리고 아직 젊었기에 재산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음.
1) 그러므로 백부인 아브람이 그를 양자로 생각하고서 사전에 애굽에서 재산상속을 해준 것으로 볼 수 있음(창12:16, 13:5).
2) 훗날 하나님이 주신 전리품을 아낌없이 동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는 아브람의 성품으로 미루어보아 그렇게 조치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임(창14:24,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4. 아브람이 일부러 벧엘로 찾아가서 그곳에 제단을 쌓은 이유는 무엇인가?(창13:3-4)
(1) 가나안에 들어와서 최초로 제단을 완성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곳이기 때문임(창12:8b).
(2) 동쪽으로 황폐한 광야 ‘아이’가 있어 주민들이 별로 없으므로 마음껏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안전지대이기 때문임(창12:8a).
(3) 그리고 다시는 가나안 지역에 가뭄이 들어 애굽 땅으로 피난을 가지 아니해도 되도록 온전히 보살펴달라고 벧엘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에게 크게 부르짖고 싶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음(창12:10).
5. 벧엘과 아이 사이의 넓은 들판이 어째서 아브람과 롯의 소유 가축을 치기에도 비좁은가?(창13:5-7)
(1) 그들 두 사람의 가축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임(창13:6)
(2) 그들 뿐만 아니라 원주민인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도 그 인근에 거주하면서 목축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임(창13:7b).
6. 선호하는 목축지역을 먼저 선택하라고 롯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는 아브람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13:8-9)
(1) 아주 가까운 친척끼리 목축지를 두고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임(창13:7a, 8).
1) 그들의 가축을 치고 있는 목자들 사이의 분쟁이 아브람과 롯 사이의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임.
2) 더구나 원주민들과 분쟁이 발생하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참으로 수습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임.
(2) 그래서 아브람이 윗사람답게 먼저 장조카 롯에게 목축지역을 선택하라고 제의를 하고 있는 것임(창13:8-9).
7. 백부의 호의를 추호의 망설임이나 양보 없이 덥석 받아들여 곧바로 행사하고 있는 롯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창13:10-11)
(1) 롯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먼저 자신이 옮겨갈 목축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의 발로라고 하겠음(창13:11).
1) 그 이유는 고대가부장서열사회에 그들이 살고 있기 때문임.
2) 원칙적으로, 선택권이 젊은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 있는 것이 고대사회임.
3) 따라서 아브람이 어른답게 그렇게 먼저 말씀을 하시면 롯은 사양을 해야만 하는 것임.
4) 구체적으로, 백부께서 먼저 선택을 하시면 자신이 이에 따르겠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상식임. 그러나 롯은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만 아름다운 미풍양속과 사회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만 것임.
(2) 그 모습을 보고서 아브람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음.
1) 자신이 옮겨갈 목축지도 얻지를 못하고 동시에 장조카 롯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기 때문임.
2) 롯을 양자로 생각하고서 이미 그에게 재산까지 나누어주었는데 그가 자신을 벧엘에 버려두고 멀리 도회지역으로 떠나고자 하는 것임.
3) 어찌 보면, 그것은 자신이 하란에서 부친을 버리고 떠나온 그 보응을 이제서야 받고 있는 것만 같은 심정이라고 하겠음(창11:31-32, 12:1, 행7:3-4).
8. 백부 아브람과 함께 출애굽을 하였으나 벧엘에서 그를 떠나고자 하고 있는 롯의 심정의 변화는 무엇인가?(창13:1, 5-6, 9-11)
(1) 롯이 백부 아브람을 버리고 떠나고자 하는 것은 그를 더 이상 닮고 싶은 존경하는 어른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의미임.
(2)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가 있음.
1) 아버지 하란이 일찍 돌아가셨기에(창11:27-28) 롯은 백부 아브람을 아버지로 생각하고서 그 동안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음(창11:31, 12:4, 13:1).
2)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할아버지 데라가 이끄는 선교팀에 합류하여 가나안으로 떠나는 길은 젊은 롯의 가슴을 큰 동경심으로 파도 치게 했을 것임.
3) 그러나 도중에 조부 데라가 신도시 ‘하란’을 개척하면서 목적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를 아니하자 롯은 갈등했음. 그냥 그곳에 남아서 백부 아브람 대신에 조부의 재산을 상속하여 한평생 편히 살 것인가? 아니면 백부를 따라 미지의 세계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3) 롯의 선택은 조부 데라가 아니고 백부 아브람이었음. 그 이유는 데라보다는 아브람에게서 더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임.
1) 한 마디로, 아브람이 더 존경스러웠기 때문임.
2) 그러나 애굽에서 그의 존경심이 사라지고 말았음. 사래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임(창12:11-16).
3) 이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의 동경심은 화려하고 풍족한 도시(창13:10)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고 있음.
4) 존경스러운 멘토에게서 실망했기에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작심한 것으로 보임(창19:16, 26).
9. 롯의 선택은 어째서 잘못된 것인가?(창13:12-13)
(1) 멘토 아브람을 따르다가 그만 진짜 멘토이신 하나님을 놓쳐버리고 만 것임.
1) 완전한 신앙, 실망시키지 아니하는 신앙의 모범은 사람에게서 얻을 수가 없는 것임.
2)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신뢰를 줄 수 있음(창17:1, 신30:20, 합3:17-18).
3)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에게서(요4:24) 배우기에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어려움이 많음. 그래서 역사 가운데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완전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임(요1:14).
(2) 롯은 불행하게도 부족한 사람 아브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안목이 없다고 하겠음.
1) 만약 롯이 부족한 사람 아브람 대신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앞길을 인도해달라고 간구하였더라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임.
2)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 것임.
3) 재물을 모으고 도시의 향락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방백으로 우뚝 섰을 것임(창20:7).
4) 불행하게도 그가 얻은 재물에 만족을 하고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갔으므로 악인들과 죄인들의 이웃이 되고 말았음(창13:12-13, 19:4-9).
10.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벧엘에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현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창13:14)
(1) 절망 가운데 부르짖고 있는 아브람에게 힘과 소망을 주기 위한 것임. 그가 가는 곳, 바라보는 곳 그 어디에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임.
(2) 배신감에 사로 잡혀 있는 아브람에게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 직접 현신하셔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해주시는 것임(창13:14).
11. 북남동서로 보이는 땅을 모두 자손에게 주고, 종과 횡으로 발길이 닿는 곳을 모두 아브람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뜻은 무엇인가?(창13:14-17)
(1) 사람이 이 땅에서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땅은 보이는 그 모든 것들임.
1) 동서남북이 아니고 북남동서라고 말하고 있음.
2)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에 들어온 아브람인지라 그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땅 북쪽과 동쪽이 우선이 되고 있다고 하겠음.
(2) 그리고 자신이 당대에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것이 그 한도가 되고 있음.
(3) 그 두 가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또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가장 큰 축복임이 틀림이 없음.
1)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의 기억과 영혼을 생각한다면(히11:16) 그것은 매우 작은 것이라고 하겠음.
2) 따라서 아브람이 훗날에 아브라함이 되고(창17:5) 그의 인생역정 가운데 신앙이 성숙해지게 되면 더 큰 것을 소망하게 되는 것임.
3) 구체적으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는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게 되는 것임(창21:33, 22:12, 히11:16, 19).
12. 티끌과 같이 많겠지만 사람이 셀 수 있는 정도라면 구체적으로 아브람의 자손의 수는 얼마인가?(창13:16)
(1) 티끌은 본래 셀 수가 없는 것임. 만약 전자현미경을 동원한다면 원자의 수에 해당하는 6X10의 23승 정도의 티끌이 있어야 지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임.
(2) 그런데 아브람이 살고 있는 고대사회에서 셀 수 있는 티끌과 같은 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의 개념 가운데 큰 수에 해당하는 것임.
1) 예를 들면, “천천(千千, 10의 6승, 백만 단위임)과 만만(萬萬, 10의 8승, 억 단위임)”의 개념과 같은 것임(삼상18:7).
2) 실제로 현대의 인류도 수십억의 단위이며, 이스라엘의 경우는 몇 십 백만 단위에 불과하다고 하겠음.
13. 벧엘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얻은 아브람이 왜 남행하여 헤브론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창13:18)
(1) 하나님의 축복을 염두에 두고서 가급적 넓은 땅을 얻고자 하는 것임.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약 30km 남쪽으로 떨어져 있음.
(2) 그리고 가급적 인적이 드물고 이방인 차별이 적으며 목축에 적합한 땅을 얻고자 하는 것임.
(3) 당시 가나안의 지배족속이 아모리 족속인데(창15:16) 그들은 여러 족속에 대하여 비교적 포용력을 보이고 있음. 따라서 아브람은 아모리 호족들이 마침 자리를 잡고 있는 헤브론에 정착을 한 것으로 보임(창13:18, 14:1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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