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12강(요12:36-4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5. 03:31

요한복음 강해 제112(12:36-4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8()

 

사도 요한의 의문(12:36-37)

 

예수님은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 마을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친구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려내었습니다(11:43-44). 그 소문이 인근에 자자한 가운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유월절 5일 전에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두 가지 놀라운 일이 그곳에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11:43-44, 12:1, 12, 14-15); 첫째는, 명절에 예루살렘 성으로 일찍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이른 바 다윗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왕 메시아로 여기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입니다(12:12-13). 그 때문에 예수를 체포하려고 수배까지 하였던 공회원들과 바리새인들이 주춤하게 됩니다(12:19). 둘째는, 유대교에 입교한 헬라인들이 명절이 되자 예루살렘에 일찍 왔다가 차제에 정중하게 예수님을 예방하고자 합니다(12:20-23).

그 두 가지 사건을 바라보시고 나서 드디어 예수님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12:24-33). 그 말씀 가운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과 같은 세상의 임금을 원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자신이 들어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세상나라들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12:31).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방인 지역에서 온 외국인 순례자들 가운데 유대교를 믿고 있는 헬라인들이 자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지도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폐쇄적인 선민사상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교가 아니라 만민구원을 주장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종교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유대교인이 되어 있는 경건한 헬라인들이 예수님의 기독교를 헬라세계에 도입하고자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만약 그 일이 성사가 되면 아버지 하나님과 자신이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12:28).

이제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기에 십자가의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들 모두를 떠나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12:36).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한 가지의 의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외국인 헬라인들도 표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예방하고자 온 정성을 다하여 찾아오고 있는데 어째서 똑 같은 표적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적대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필두로 하는 유대인들은 왜 만민구원의 복음을 부르짖고 있는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요? 베다니의 나사로까지 무덤에서 살려낸 놀라운 표적을 보면서도 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12:37).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의 깨달음(12:38-40)

 

자신의 의문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미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12:38, 53:1),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12:40-41, 6:10).

원칙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나사렛 예수에게 보내어 주시고 있습니다(6:44). 하나님이 그 능하신 팔로써 이끌지 아니하시면 그 누구도 구세주 예수님에게 나아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게 되면 예수님이 많은 자들을 사도들에게 이끌어줄 것입니다(12:32-33).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와의 만남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치를 사도 요한이 젊은 시절에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그러한 뜻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이다. 유대교인들의 눈을 하나님이 멀게 하셨다. 그들은 이방인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자신들만 하나님 앞에 의롭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종교적으로 교만했던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들의 선민사상과 시오니즘에 맞게 왜곡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 그 때문에 만민을 사랑하시는 창조주의 넓은 마음과 만민구원의 큰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선지자 요나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산술적으로 오로지 한 분이시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의 셈법에 갇힐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양식의 신비에 대하여 한번도 생각을 해보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주가 스스로 자신의 말씀을 주관하고 있는 독생자를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낼 수가 있으며 자신의 영까지 훗날 믿는 자 모두에게 보낼 수 있는 초월자이며 전능자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사도 요한의 설명과 같이 유대교인들이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왜 그토록 쉽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2:23, 28-32).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의 깨달음을 참고해본다면,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섭리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선민이 아니라 그 동안 무시를 당하고 차별을 받고 있었던 이방인부터 먼저 구원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입니다(4:7-42,  9:11-28). 요컨대, 구원을 받게 되는 순서조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된 결과로 보이는 것입니다(11:33-36). 선지자 이사야가 깨달은 바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의 영광이 바로 그러한 의미입니다(12:41).

 

예수를 믿고 있는 많은 유대교 관리들, 그들은 왜 아직 개종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12:42-43)

 

그 이유를 사도 요한은 한 마디로,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43). 당시 유대교 관리들이 누리고 있는 사람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유대교 관리들은 사두개인들이며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이거나 적어도 실무책임자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실무적으로 산헤드린 공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로마제국이 유대 땅을 통치하고 있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종교적으로 유대교는 자치권과 자결권을 누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유대교 관리들, 그들은 유대교 사회에서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기에 비록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의 교리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쫓겨날 판입니다(12:42). 그래서 속마음 따로, 행동 따로, 이중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커밍 아웃을 하게 될까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경우가 타산지석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시자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체를 로마의 총독 앞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19:38-42). 그렇지만 사두개인들 가운데 관리들과 제사장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은 후 초대교회가 시작이 되고 나자 비로소 신앙공동체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6:7). 성령이 임해야 비로서 자신의 기득권 등 세상의 영광을 내려놓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